
● 1948년 경남 창녕 출생<br>● 부산고, 서울대 법대 졸업<br>● 1975년 사법시험 17회 합격<br>● 부산고법·대구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창원지법 충무지원장, 부산지법 울산지원장, 부산지법 동부지원장, 부산고법 수석부장, 現 창원지법원장
법조계에서는 김 판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사시 17회 동기이고, 향판 우대 등으로 대변되는 대법원의 개혁 바람 덕분에 대법관 후보로 거론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법조계의 전반적인 평가는 우호적인 편이다. 그중에서도 ‘분쟁을 그치게 하는 조정(調停) 분야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평이 돋보인다. ‘부산·경남 지역 법조계의 대부(代父)’라는 평도 따라다닌다.
현직 판사를 ‘대부’라고 표현한 것이 어색했지만 호기심이 일었다. 서울고등법원에 근무하는 몇몇 부장판사가 기자에게 김 판사와의 인터뷰를 적극 추천했다. 윤재윤 부장판사는 “지역에서는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통한다”면서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이 폭넓어서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는다. 또한 성격이 자상해 양측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법정에서 당사자들을 조정으로 화해시킨다”고 김 판사를 높이 평가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가 재판한 사건들을 살펴봤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한글로 ‘김종대 판사’를 쳐 넣는 순간 ‘현직 판사가 이순신 평전을 펴냈다’ ‘천성산 고속철 공사 재판장’ ‘르노 삼성자동차 인수 본격화’ 등의 기사가 주르르 올라왔다. 알고 보니 김종대 판사는 현직판사로 이순신 평전을 펴낸 이순신 전문가이자 ‘동물과 재판했다’는 그 유명한 ‘도롱뇽 재판장’이었다.
판사와 인터뷰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한다’ ‘안 한다’를 거듭한 끝에 그는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했다. 김 판사를 만난 건 2월10일. 기자는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5시간 걸리는 창원까지 내려가야 했다.
“서울에서 참 멀지요?”
김 판사는 무거운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는 기자에게 자상한 표정으로 여독을 걱정해줬다. 짙은 눈썹에 까무잡잡한 피부색과 자상한 표정이, 깐깐하고 똑 부러질 듯한 법관 이미지가 아니라 시골길을 걷다가 무시로 만날 수 있는 촌부를 연상케 했다.
“법관들이 대체로 인터뷰를 기피하는 편인데다 대법관 인선을 앞두고 괜히 오해를 살지 모른다며 막상 만나서 인터뷰를 거절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고 하자, 김 판사는 “제가 정말 대법관이 될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그 말에는 ‘향판인데…’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노 대통령의 사법시험 동기들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10월 고위 법관 인사에서 사시 17회 6명이 모두 법원장으로 승진했다. 올 7월에는 대법관 5명이 교체되기 때문에 대통령 동기라면 기대해볼 만하다. 손용근 춘천지법원장, 김능환 울산지법원장, 김종대 창원지법원장, 차한성 청주지법원장 등이 유력한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존경은 당신들이나 하라”
-조무제 전 판사의 경우 대표적인 ‘향판’으로 대법관이 되셨지요.
“조무제 판사님은 결코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분입니다. 영원히 앞에 가실 분이지요. 단군 이래 그런 분이 없을 겁니다. 흉내를 낼 수가 없어요. 199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조무제 판사님의 장인어른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어른에게 ‘조무제 판사를 존경한다’고 했더니 ‘존경은 당신들이나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어른이 세무서장을 지내셨는데, 그 시절에 얼마나 잘살았겠어요. 판사 사위한테 또 얼마나 잘해주고 싶었겠습니까. 한데 딸이 조무제 판사한테 시집가서 평생 호강 한번 못했다는 겁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 겨우 22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