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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

다 비우고 평생 나누었기에 더 고독했던 여성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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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환 추기경은 세상을 뜨는 순간에도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다. 각막을 기증해 두 사람을 눈뜨게 했으며,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김으로써 인생 항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수많은 이에게 등대가 되었다. 김 추기경의 선종은 새삼 10여 년 전 세상을 뜬 마더 테레사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여린 몸을 태워 빈민들의 삶에 불을 밝힌 테레사 수녀. 그도 말년에 사무치는 고독을 느꼈다.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

1981년 한국을 방문한 테레사 수녀와 대화를 나누는 김수환 추기경.

1년 동안 매일 김수환 추기경을 찾아 간병했던 고찬근 신부(서울대교구 성소국장)가 게시판에 ‘추기경의 마지막’을 일기 형태로 올렸다.

어느 날 추기경이 고 신부에게 묻는다.

“고 신부, 고독해 보았는가?”

“예, (평소에도) 고독하게 사는 편입니다.”

조언이나 위로의 말을 기대했을 고 신부에게 날아온 추기경의 말은 뜻밖이었다.



“나는 요즘 정말 힘든 고독을 느끼고 있네. 86년 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절대고독이라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데도 모두가 다 떨어져나가는 듯하고, 하느님마저 의심되는 고독 말일세. 모든 것이 끊어져나가고 나는 아주 깜깜한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느낌일세.”

추기경의 말이 이어졌다.

“(아마) 세상의 모든 것이 끊어지면 오직 하느님만이 남는다는 것을 (하느님이) 내게 가르쳐주시려고 그러시나봐. 하느님 당신을 더 사랑하게 하려고 그러시겠지? 작년에 돌아간 정명조 주교가 요즘 더 많이 생각나는구먼. 아마, 죽고 나면 자네나 나나 모두 하나일 거야. 내가 죽으면 자네 꿈에 나타나서 꼭 가르쳐주겠네.”

필자는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마치 추기경의 내면으로 들어간 듯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숱한 사람 속에 있었으나 이제 죽음 앞에 홀로 서서 절대고독을 느끼고 있는 한 성직자의 내밀한 자기고백, 그러면서도 그런 고독에 휘둘리지 않고 하느님에게 의지하고 순명하려는 치열함, 자신의 고백을 통해 후배 성직자에게 한마디라도 더 해주어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 이 모든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추기경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모두 헤아릴 수 있는 능력도 지혜도 없지만, 사후 나라를 울린 추모 물결이 이어진 것은 추기경이야말로 거짓을 품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 분임을, 또 자신의 고뇌를 스스럼없이 토로하는 분임을 모두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많은 의문을 불교철학에서 풀었던 나에게 ‘득도’에 이른 옛 선사들의 신비한 죽음은 그 자체로 삶과 죽음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묵직한 통찰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 추기경의 죽음은 그것과는 또 다른 감동과 울림을 준다. 바로 ‘평범함의 위대함’이다.

평범함의 위대함

우리는 위대한 성직자라고 하면 평생 어떤 마음의 고통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절대 신’을 믿는 가톨릭이나 개신교 성직자들은 ‘신에 대한 의문’ 자체가 금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흔히 김수환 추기경을, 고민하는 성직자라는 의미에서 ‘햄릿형’이라고 하지만 추기경은 어떤 특별한 활동이나 업적을 이룩했기 때문에 존경받기보다, 하루하루 일상적인 삶 속에 주어지는 평범한 일과 기회를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대함으로써 성인(聖人)이 된 분이다.

그가 남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은 종교적 삶이란 게 무슨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사랑스럽고 성스럽고 거룩하게 빛나는 삶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복음이다. 추기경은 평범한 삶을 비범한 사랑으로 수행했다. 그가 걸어간 길은 특별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따를 수 있고 또 따라가야만 할 보편적인 길이었다.

인위적인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마치 어머니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신 앞에 놓아버린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은 이 시대 가장 극적인 인문학적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한다.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가톨릭 성녀 마더 테레사의 삶이 궁금해졌다. 일생을 외국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바치고 선종한 마더 테레사는 겉으로는 한 오라기 의심도 갖지 않는 초인적 힘으로 ‘사랑의 선교회’를 이끌었지만, 그의 내면 역시 어둠과 고독으로 가득할 때가 많았다. 다만 남을 위해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온 존재를 흔들어대는 고뇌 속에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던 ‘진정한 철녀’ 테레사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테레사 수녀의 본명은 곤히야 아녜스 즈약스히야다. 편의상 세례명을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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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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