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배구 선수의 생명은 유난히 짧다. 구기 종목 중 공중에서 움직이는 볼을 도구가 아니라 인체로 타격하는 유일한 운동이 배구이기 때문이다. 신체에 큰 부담을 주는 수직 상승 동작, 움직이는 볼을 때리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힘을 주는 몸 동작, 관절에 무리가 가는 점프 후 착지 동작이 필수적이다 보니 다른 종목보다 신체에 미치는 부하가 클 수밖에 없다. 배구에서 노장 선수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평균 연령이 만 30세가 훌쩍 넘고, 다른 팀 선수보다 평균 신장도 작은 주전 선수들을 이끌고 17년간 한국 배구의 정상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삼성화재블루팡스의 신치용(57) 감독이다. 삼성화재의 핵심 선수인 석진욱(36), 여오현(34)은 서른이 아니라 아예 삼십대 중반이다. 지난 1월 은퇴한 손재홍(36)과 신선호(34)도 마찬가지다. “환갑이 넘은 어르신이 많아 내가 조석으로 문안을 드려야 할 정도”라는 신 감독의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이런 노장 선수들을 이끌고 신 감독은 엄청난 성적을 냈다. 삼성화재배구단이 창단된 1995년부터 지금까지 17년간 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배구 슈퍼리그 8연패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냈다. 프로배구가 출범한 2005년 이후에는 V리그 7번 시즌 가운데 5회를 우승했다. 17년간 무려 13회를 우승한 셈이다. 삼성화재는 2011~12년 시즌에도 정규리그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랜 기간 단 한 팀을 맡았고, 그 팀을 이끌며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은 그를 한국의 ‘알렉스 퍼거슨’으로 부르기도 한다. ‘신동아’ 3월호 ‘Leadership in Sports 11’에 소개한 대로 퍼거슨 감독은 26년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며 맨유를 세계 축구계의 정상 팀으로 만들었다.
신 감독에게는 많은 비판도 따라다닌다. 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선수들 덕으로 우승한다’는 것이다. 삼성화재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는 김세진, 신진식이라는 한국 배구계의 걸출한 스타들을 보유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2009년 8월 영입한 외국인 선수 가빈 슈미트는 ‘삼성화재 배구는 가빈 몰빵 배구’라는 평까지 낳을 정도로 현재 한국 배구계의 최고 스타다. 물론 우승을 위해서는 좋은 선수가 필요하다. 하지만 좋은 선수만 있다고 누구나 우승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수단이 진정한 하나가 되었을 때만 우승이 가능하다. 당연히 이 부분은 감독의 몫이다.
신치용 감독은 “가빈이 절대로 홀로 잘해서 우승을 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몰빵 배구를 했다고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팀원들의 신뢰와 믿음이 없었다면 결코 가빈이 지금과 같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동료 중 누구도 가빈의 활약을 시기하지 않고 지원해준 점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고 강조한다. 삼성화재의 독주와 외국인에게 의존하는 현상이 한국 프로배구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국내 선수들의 실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승부를 내야 하는 프로스포츠에서 감독과 선수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가빈에게 의존하는 삼성화재의 공격 루트를 뻔히 알고도 막지 못하는 상대팀이 더 문제라는 반박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 감독은 1955년 경남 거제 장승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공부를 위해 부산 아미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그는 특활시간에 배구공을 처음 접했다. 어린 시절 고향 거제도에서 넓은 바다를 보며 바다목장 경영을 꿈꿨던 그는 부산에 오기 전까지 배구가 뭔지도 잘 몰랐다. 하지만 큰 키와 좋은 신체조건을 지닌 그는 곧 두각을 나타냈고 부산 지역의 ‘배구 명문’ 성지공고로 진학했다.
신치용은 누구인가
언뜻 가빈, 김세진, 신진식 등 공격수의 비중이 높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물 수비, 탄탄한 조직력 등 수비수와 세터의 비중이 큰 ‘신치용식 배구’의 밑그림은 성지공고 시절 완성됐다. 신치용 감독은 아시아 최고 거포 강만수 전 KEPCO45(한국전력공사) 감독의 성지공고 1년 후배다. 당시 세터 신치용은 공격수 강만수가 전위에 있건 후위에 있건 무조건 강만수에게만 토스를 줬다. 강만수에게 볼을 줘야 확실하게 점수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른 공격수 선배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참지 못한 선배들은 경기 후 선수 신치용을 불러 심한 기합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