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호

다차원에 푹 빠진‘가위여자’ 환경조각가 안필연

“새로운 아름다움 찾아 오늘도 바지런을 떱니다”

  • 글·이설 기자 snow@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입력2008-05-06 19: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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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원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필연, 말연, 후남, 끝순이들을 위해 이들의 이름을 판 도장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덕수궁 분수대에선 빨래 퍼포먼스를 벌였다. 여성들 손에 가위를 쥐어주며 자신의 옷과 머리를, 여성의 굴레를 자르게 했다. 죽을 때까지 긴장된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작품에 있어 어떠한 틀도 거부한다는 그가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한번 신나게 놀아봐요!”
    다차원에 푹 빠진‘가위여자’ 환경조각가 안필연
    “내가 좀 괴짜 같잖아요? 하하.” 그가 이 말을 했을 때 하마터면 “네!” 하고 맞장구치는 실례를 할 뻔했다. 환경조각가 안필연(安畢姸·48) 경기대 미술학부 교수. 그는 함께 있는 내내 종잡을 수 없는, 그러나 더없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안 교수는 환경조각가, 설치예술가, 행위예술가로 다양하게 불린다. 최근에는 환경조각을 주로 하지만 서울대에서 조소를 전공한 뒤 20여 년 동안 조각, 설치예술, 퍼포먼스 등 장르 구분 없이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해왔다.

    한강이 훤히 내다보이는 그의 작업실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다. 온화한 햇살이 집 구석구석을 비추는 기분 좋은 공간이다. 작업실을 둘러보니 정체 모를 스케일 모형(축소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삼각형 여러 개를 이어 붙여 만든 모형이다.

    “3은 긴장을 내포한 안정이에요. 저는 약간 긴장된 상태를 좋아합니다. 긴장을 기본 인생관으로 살지요. 똑 떨어지는 짝수보다 홀수가 좋아요. 사람도 나이나 기호를 바로 가늠할 수 있는 명확한 이미지보다 헛갈리는 이미지가 좋고요. 그래서 작품에서도 삼각형을 선호합니다.”

    다차원에 푹 빠진‘가위여자’ 환경조각가 안필연

    홍콩 국제금융센터 공항터미널에 설치된 ‘밀물Ⅱ’(좌). 아래는 강남구 대치동 대치유수지에 들어설 그의 작품 ‘빛의 날개’ 제작 현장.



    다차원에 푹 빠진‘가위여자’ 환경조각가 안필연

    삼각형 거울 조각들을 이어 붙인 ‘깊은 거울’. 동시에 한 사물의 여러 모습을 포착하는 다차원을 주제로 삼았다.(좌) 경기도 수원시 경기대 안에 설치된 ‘disappearance of distance(사라진 거리)’ 앞에서.(우)

    다차원에 푹 빠진‘가위여자’ 환경조각가 안필연

    안 교수는 “학생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토론하는 것은 창작만큼 즐거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3이라는 숫자는 내 인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3녀1남 가운데 셋째딸이며, 그의 대표적 모티프인 가위는 세 개의 꼭짓점을 바탕으로 제 구실을 한다. 삼각형 거울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 작품도 눈에 띈다. 자그마한 스케일 모형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이 작품들로 다음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작품명은 ‘깊은 거울’.



    벽에 걸린 몸통만한 크기의 작품 앞에 서봤다.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한 조각조각의 삼각형 거울에 여러 모습이 동시에 드러났다. 한 조각은 얼굴 정면을, 다른 한 조각은 왼쪽 귀를, 또 다른 한 조각은 다리를 비췄다. 눈앞에 작품을 두고서도 그의 작품에 대해 똑 떨어지는 설명을 하기가 힘들다.

    “저는 변화를 좋아해요. 예컨대 정물화는 누구나 보고 ‘어떤 사물의 정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제 작품은 무엇을 보고 왔는지 설명하기 힘들어요. 직접 눈으로 봐야 어떤 모양새인지 이해가 가고, 또 각자의 해석도 천차만별이지요. 제 작품에는 변화하는 인간, 변화하는 작품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한순간에 수십 가지 모습을 담아내는 작품을 통해 다차원을 3차원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다차원에 푹 빠진‘가위여자’ 환경조각가 안필연
    그의 최근 관심사는 다차원. 작업실 책상 위에는 아서 I. 밀러의 ‘블랙홀 이야기’가 놓여 있었다. 과학 이론서, SF 소설 및 영화를 즐긴다는 그는 다차원이라는 주제에 흠뻑 빠져 있었다.

    작품활동 초기 그의 관심사는 죽음이었다. 이후 그의 관심은 페미니즘으로 옮아갔다. 이때 가위를 활용한 왕성한 활동으로 ‘가위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에게 가위는 날카로움과 무딤, 파괴와 창조를 동시에 지닌 매력적인 모티프다. 역시나 창가에는 가위가 찍힌 색색의 유리 모양 공예품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다양한 주제만큼 나무, 흙, 돌, 유리 등 재료도 가지각색이다.

    최근 그는 공원화하는 강남구 대치동 대치유수지에 들어설 조형물 ‘빛의 날개’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작품을 구상할 때는 건물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어느 공간이고 한번 딱 보면 어디에 뭘 넣어야 하는지 보인다니 타고난 감각이다. 독창적인 작품으로 이름이 알려져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도쿄 긴자 고마쓰백화점에 ‘삼켜진 달’이, 홍콩 국제금융센터 공항터미널에 ‘밀물Ⅱ’가 설치됐고, 공모에 당선돼 중국 베이징에도 작품이 들어설 예정이다. 국내에는 국립현충원 충혼당 부조벽인 ‘위대한 영웅’, 신촌 아트레온극장의 ‘포옹’, 신도림 테크노마트 광장의 ‘Plaza with a Wing’ 등 그의 작품이 생활 반경 곳곳에 설치됐다.

    “현실에 충실하기에 내일을 모른다”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이라는 우문을 던졌다.

    “호기심이 많고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표현해왔어요. 그러나 일관되게 새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겁니다. 그게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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