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시절, 국회 출입 기자들은 좋으나 싫으나 마이크 앞에 선 유종필 전 대변인의 모습을 매일 지켜봐야 했다. 어쩌다 부대변인이 논평을 대신하는 날이면 ‘유 대변인에게 무슨 일 생겼나’ 하며 궁금해 하는 이가 생겨났을 정도였다.
스스로 탈당계를 제출한 일이 없음에도 그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원내 제1당부터 2,3,4,5당 대변인까지 역임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만큼 정치 격변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
‘말’로 쌓인 악업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것일까.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호평받던 그였지만, 18대 총선에서는 공천 문턱도 넘지 못했다. 그런 그가 9월30일 국회도서관의 최고 수장이 됐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국회도서관이 첨단 입법정보의 산실이자, 국민에게 친숙한 열린 도서관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국회 임명 동의 직후 나온 취임 일성은 ‘촌철살인의 달인’답지 않게 밋밋했다. 그래도 정치인 특유의 순발력은 녹슬지 않은 모양이다. 도서관장 취임 이후 포부를 묻는 질문에 “독도 관련 자료를 수집해 외국 도서관에 전파하는 일에 주력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독도 문제를 국회도서관장이란 직책과 접목시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낸 것이다. 앞으로 대변인이 아닌 도서관장 자격으로 유종필 전 대변인이 망언을 일삼는 일부 일본 정치인을 향해 따끔한 논평을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