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0일 오전 안경환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밤새 못 주무신 것 같다’고 하자 “그 사내 생각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안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새로운정치위원장을 지냈다.‘정권교체와 새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상임대표를 맡아 범야권의 문 후보 지원을 이끌기도 했다. 저명한 법학자이자 인문주의자로 평생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그는 왜 선거 한복판에 뛰어든 걸까. 그곳에서 무엇을 꿈꿨고, 무엇에 좌절했을까. 18대 대선에 대해 ‘인생의 마지막, 잠깐의 꿈이었다’고 말하는 그와 짧았던 정치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안 교수와의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이뤄졌다. 선거전이 한창이던 12월 15일 그는 희망에 차 있었다. 선거전 초반 압도적인 우위를 지키던 박근혜 당선인의 지지율이 주춤하던 때다. 연일 계속된 강행군 때문인 듯 얼굴이 해쓱했지만 눈빛만은 반짝였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면 사회적인 의미에서 내 평생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평생 특정 정당에 관여한 적 없다. 후진 양성을 통해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 원칙을 깨고 나온 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박 후보 개인은 훌륭한 분이겠지만, 지지자의 세대와 성향은 과거 정부와 다르지 않다. 그의 당선은 곧 이명박 정부의 연장이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반목이 심화되고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더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캠프에 합류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없다. 부모 재산을 물려받지 않으면 자신의 미래가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들에게 꿈을 돌려주고 싶다.”
청년 세대의 좌절
문재인 후보의 낙선이 확정된 뒤 그는 또 한 번 청년에 대해 얘기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승리는 구체제의 승리다. 그들이 의회까지 갖고 있다. 경험과 힘으로 청년들을 밀어붙일까봐 걱정이다. 그럴 경우 분노한 젊은이들이 모여 또 한 번 ‘촛불’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안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젊은 세대가 느낀 좌절과 분노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새 정치’를 꿈꾸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박 당선인에게 ‘포용과 상생’을 주문하면서, 특히 ‘안철수 현상’을 통해 드러난 젊은이들의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을 실현시킬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리나라는 보수와 지역주의가 결합돼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젊은이들이 정치에 대해 냉소할 수밖에 없다. 여당정치는 돈 벌고 기득권 갖고 적당히 타락한 후에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야당정치는 투사적인 것 정도로 여긴다. 건전한 의미의 정치에 대한 상(像)이 없다. 지금까지 야권은 담합이나 연합작전 같은 ‘특별한 사건’을 통해 이를 돌파해왔지만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 젊은 층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대학생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새 정치다.”
그는 이를 위한 출발점으로 참정권 확대를 들었다. 15일 인터뷰 때도 그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박 당선인의 토론 회피와 더불어 ‘참정권 행사의 제약’을 들었다.
“첫째로 지적할 것이 선거 연령 문제다. 민주 시민은 교육을 통해 길러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른 분야에서는 만 18세를 성년으로 인정하면서 선거권은 만 19세부터 부여한다. 타당하지 않다. 투표 시간도 문제다. 야당은 ‘더 많은 국민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투표 시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 후보는 선거 중 발표한 ‘인권 10대 공약’ 중 2번에 ‘참정권 확대’를 넣었을 만큼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안 교수는 대선이 끝난 뒤에도 이 문제의식만큼은 이어져 다음 선거 때는 이런 부분이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의원들 자기 입지만 생각해”
그는 민주당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의원들이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없어 보였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문재인 캠프 새정치위원장에 취임하던 날 안 교수는 ‘민주당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저는 시민의 이름으로 경고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역사의 책무를 주문하고 명령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이후 민주당의 혁신을 위해 뛰었다. 당 외 조직으로 ‘정권교체와 새정치를 위한 국민연대’를 만들기도 했다. 안 교수는 “문 후보는 새 정치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이 분명했다. 그러나 당이 그것을 충분히 지지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재야 등을 중심으로 ‘민주당만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왔다. 문 후보가 당선되려면 민주당 지지자 외에 안철수 전 후보와 심상정 전 후보의 지지자, 나아가 합리적인 보수까지 아우를 조직이 필요했다”고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대선 승리보다 개인 입지를 더 생각하는 사람들”은 끝내 힘을 보태지 않았다.
“ 국회의원 임기가 3년 반이나 남지 않았나. 다음 선거는 새 대통령 임기 후반에 있다. 그때는 여당 인기가 떨어질 때니까 차라리 야당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닐 거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 청년들이 민주당을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는 구세력으로 본 데는 이유가 있다. 이런 당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외연을 넓히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그러나 안 교수는 본인이 이 과정에 참여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15일 인터뷰 때 그는 “나는 50일짜리 기간제 임시직이다. 선거가 끝나면 결과에 관계없이 연구실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만 문재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틋함 때문에 잠시 함께 꿈을 꿨을 뿐”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문 후보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모든 것을 바쳤다.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이자 불편부당한 사회 원로로서의 명성을 기꺼이 내려놓았다. ‘특정 정권의 창출이나 연장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삶의 원칙도 깼다. 첫째 이유가 ‘정권교체’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었다면, 둘째 이유는 ‘인간 문재인’에 대한 신뢰였다. 15일 인터뷰에서 안 교수는“문 후보와 사적인 인연은 거의 없다. 다만 그분이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얘기는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제도권에 있는 변호사들은 민권변호사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어느 누구도 ‘문재인 변호사’에 대해서는 나쁘게 말하지 않았다. 청렴하고 바르고 성실하고 변론 실력도 뛰어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인간 문재인
그렇게 이름 정도만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때다. 문재인 후보가 헌법이론으로 탄핵의 부당성을 뒷받침해줄 전문가를 찾다가 안 교수를 만나러 온 것. 안 교수의 회고다.
“법률가의 상식으로 볼 때 당시 탄핵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 법대 교수들, 특히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교수들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불편한 감정 같은 걸 갖고 있었다. 그러다 내게 상의하러 온 거다. 당시 나는 서울대 법대 학장이었다. 비록 작은 기관일지라도 현직 기관장이 특정 사건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문 후보도 나를 만나러 왔을 때는 도움을 청하려 한 게 분명한데, 내놓고 도와달라는 말을 못하더라. 결과적으로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후 많은 사람이 나섰고, 얼마 지난 후 나는 그 일을 잊게 됐다.”
안 교수가 그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2012년 문재인 후보가 펴낸 자서전 ‘운명’에 그 일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당시 법학자들이 나서는 데 내가 어떤 역할을 한 것처럼 썼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내가 직접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러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제자들을 움직여 돕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실상을 말하자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때 나선 학자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의 내용을 듣고 나는 이미 잊고 있던 일을 문 후보가 기억하고 있다는 데 고마움을 느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어려웠던 시절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마음으로 기억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선거는 깨끗했다”
노무현 정부 인권위원장 시절 받은 인상도 있다. 인권위는 정부의 인권침해를 지적하는 부처라 행정부와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눈에도 문 후보는 공적인 업무를 원칙적으로 수행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배려하는 인물로 보였다. 신뢰가 생겼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도 문 후보에게 실망한 적이 없다고 했다.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문 캠프에서 ‘인권 10대 정책’을 발표한 날이 생각난다. 그날 유세 일정이 워낙 바빠 내가 발표를 대신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 후보가 인권 정책만큼은 직접 발표해야 한다며 틈을 냈다. 놀랍고 고마웠다.”
안 교수는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냈다. ‘정권은 짧고 인권은 길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이번에도 문 캠프의 인권 공약 마련 등에 참여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딱히 인권 공약이랄 것 자체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뭔가를 내놓으면 ‘우리도 하겠다’는 식으로 가져갔을 뿐, 원래부터 그쪽에서 주도적으로 만든 공약이 별로 없다. 정책보다는 그저 인물로 선거를 치른 것”이라고 했다.
“그 인물의 힘도, 물론 본인의 경쟁력도 있지만, 아버지의 카리스마에 기인한 바가 크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게 안 교수의 평가다.
하지만 과반의 국민이 박 당선인을 선택했고, 문 후보는 꿈을 이룰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안 교수는 “그래도 문 후보가 내놓은 정책과 선거를 치르는 동안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노력만큼은 평가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15일 인터뷰에서 안 교수는 박 당선인 측이 ‘야당의 흑색 선전이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 데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그 부분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지지자 개인 차원에서 뭐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선거캠페인 차원에서는 결코 없었다. 선거 기간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네거티브는 뒤지는 쪽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달랐다. 문 후보의 기본 태도는 ‘네거티브 하지 말라’였다. 안철수 전 후보는 말할 것도 없다. 나중에 종합적인 평가를 해보면 알겠지만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주도한 네거티브는 없었다고 본다”고도 했다.
“나는 자유주의자, 낭만주의자”
선거 막바지 큰 이슈가 됐던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 대해서는 “그 문제에는 두 개의 이슈가 혼재돼 있다. 저쪽에서 불법으로 여론을 유도한 것은, 사실관계를 볼 때,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 후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같은 미숙한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고 비중도 다르다.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볼 때 선관위 직원과 경찰이 문을 두드리는 것은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물론 인권 (침해), 그런 거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여론조작 전체를 무너뜨릴 만한 건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어쨌든 선거는 끝이 났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이끌어갈 것이다. 안 교수는 애초 새 정부의 과제를 일자리와 경제문제 해결이라고 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되고 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더불어 ‘동아시아 평화질서 구축’도 새 정부의 중요한 과제로 봤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상대적으로 우리 정부의 역할이 많이 축소됐다. 이명박 정부는 안보를 이유로 댔지만 안보 면에서도 천안함 폭침, 북한군 노크귀순, 북한 미사일 발사 사건 등에서 보듯 문제가 많았다. 오히려 동북아의 주도권만 중국에 넘김으로써 우리나라의 입지가 굉장히 약화됐다. 매우 큰 문제고, 이른 시일 안에 정상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이 과제를 잘 수행해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 자신은 다시 교수로, 그리고 저술가로 돌아갈 생각이다.
“나 같은 자유주의자, 낭만주의자가 정치는 무슨. 마지막에 한 번, 내게 주어진 무대에 다 던져보고 내려가는 거죠.”
목소리는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지만, 홀가분하게 들렸다. 선거운동 중에도 강의는 꼭 했던 그는 20일 오후에도 대학원 수업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