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2년 8월 평양의 한 농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고(故) 김일성 주석(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올해는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 관련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심각한 건강문제를 겪은 경험은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후계문제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김 위원장은 2005년 12월과 2006년 10월 각각 ‘후계 논의 금지’ 지시를 내리고 영구집권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후계체제 구축의 안정적인 순항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은 20년 가까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행되었지만,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은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 스스로 후계가도를 닦았던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과정과 달리,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후계체제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기반조성과 정지작업을 손수 지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둘째, 북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012 강성대국 대문 진입 비전’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강성대국 대문의 실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단지 이미 실현된 정치·사상강국과 군사강국에 기초해 경제강국 실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단계 정도로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3년 남짓한 기간 안에 경제강국 실현을 위한 가시적인 기반을 조성하는 것은 어렵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당국이 2012년 말에 ‘2012 강성대국 대문 진입 비전’이 실패했다고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2012년에 가서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내세워 혁명위업 수행의 가장 중차대한 과제인 혁명위업 계승문제를 완수했다고 선포하고, 이를 ‘2012 강성대국 대문 진입 비전’의 달성으로 규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가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중대한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올해는 김정일 위원장이 1974년 2월13일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후계자로 결정된 지 35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물밑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신년공동사설은 “오늘 우리는 당의 혁명위업수행에서 중대한 력사적 계선에 서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김일성 → 김정일 후계 과정은
북한은 ‘혁명위업 계승’ 문제를 당의 ‘혁명위업 수행’에서 가장 중대한 임무로 인식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일찍이 1974년에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해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을 ‘혁명위업 수행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김일성의 선견지명의 결과라고 선전해왔다. 특히 신년공동사설에서 밝힌 ‘력사적 계선’이란 혁명역사 발전의 경계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중대한 계기에 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은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답습하되 그 방식을 집약하고 기간을 단축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을 수령론과 후계자론으로 정당화하고 규범화했으므로 그 구속력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후계체제 준비단계(1972년 10월~1974년 2월)다. 이 기간은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내정한 가운데 후계자 결정을 위한 내부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 단계였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혁명위업 계승문제와 세대교체를 결부시키는 작업 △헌법개정을 통한 새로운 권력구조 형성 △3대혁명소조운동을 통한 후계체제 구축 기반 조성 △후계자가 활동할 특정 권력기구의 강화 △후계자의 핵심요직 임명 같은 조치가 단행됐다.
둘째는 후계체제 구축단계(1974년 2월~1980년 10월)다. 이 기간은 후계자를 지명하고 후계자의 혁명업적을 축적하는 단계였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한 후계자 지명 △후계자의 통치이데올로기 해석권 장악 △당면 과제에서의 업적 과시 같은 조치가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