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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시나리오’‘장성택의 눈’으로 본 북한 권력엘리트 파워게임

“다 같이 살자는 겁니다, 아님 정말 총과 총이 맞붙는 걸 보시겠습니까”

‘가상 시나리오’‘장성택의 눈’으로 본 북한 권력엘리트 파워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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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 권력변화 분석은 일종의 퍼즐 맞추기나 다름없다. 대부분은 관측 혹은 추측으로 점철된다. 그럼에도 최근 일련의 흐름은 평양 내부에서 뭔가 큰일이진행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후계문제 소식과 김정남의 행보, 급작스레 이뤄진 핵심 포스트의 인사발령이 그 통로다. 이러한 흐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다.
‘가상 시나리오’‘장성택의 눈’으로 본 북한 권력엘리트 파워게임

장성택 북한 노동당 행정부장. 2002년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국가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1946년 강원도 천내에서 출생한 장성택 부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로 1995년 ‘당 중의 당’이라고 불리는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되면서 권력 2인자 자리에 올랐다. ‘친중파(親中派) 테크노크라트’로 분류되는 그는 2002년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하는 등 개혁·개방 지향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후계문제와 관련해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던 장 부장은 2004년 초‘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축출되어 가택연금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이는 차남 정철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애썼던 당시 김 위원장의 처 고영희의 작품이라는 게 정설. 2005년 말 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중앙무대에 복귀한 그는 현재 당 행정부장을 맡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당국자들의 배경설명을 기반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이상 이후 평양 내부에서 전개된 상황을 장성택 부장의 시각에서 팩션(faction) 형식으로 구성했다. 팩션이란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개연성 높은 가상내용으로 다루는 기법을 말한다. 등장인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는 모두 사실과 정보에 근거하고 있고 특히 해설 부분에서 제시된 자료와 분석은 모두 실제의 것이지만, 시나리오 부분에서 이들 사이에 벌어진 것으로 다룬 사건과 대화는 가상이다.

장면1‘나는 살 수 있을까’

한밤을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위원장이 쓰러졌다는 급박한 전갈이었다. 전화기 건너편의 보좌관은 거의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김격식 인민군 총참모장. 수화기 속의 그는 “이상동향이 있으면 즉각 보고하겠다”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한다. 말은 하지 않지만 ‘이상동향’이라는 말이 휴전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이심전심이다.



이럴 때일수록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는 걸 그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침대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지금 위원장이 죽는다면,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원장이 죽을 경우 비상 상황에 대응하는 핵심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될 게 뻔했다. 이 때를 틈탄 미국과 남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모든 권력을 군사위원회로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는 없었다. 당 행정부장이라는 자신의 직함으로는 사태를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중앙군사위원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김영춘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도 겸직하고 있다. 모든 면에서 상황은 자신에게 불리했다. 늙은 너구리를 연상케 하는 김영춘의 얼굴이 칠흑같이 어두운 창문에 어른거렸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불과 수년 전의 뼈아픈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리제강과 군부, 그리고 그들 뒤에 있던 고영희의 위세에 눌려 가택에 연금돼 지내야 했던 적잖은 세월이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시간의 연속. 위원장이 죽는다면, 이번에는 훨씬 더 가혹한 위기가 기다리고 있을 게 뻔했다.

한 번도 권력을 탐해본 적은 없었다. 스스로 권좌에 오르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다만 언제나 강경노선으로만 치닫는 군부의 휘둘림에 나라가 망가지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뿐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렇게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위원장이 세상을 떠나면 인민들이 나서서 변화를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유약한 정철과 그 뒤에서 섭정할 고영희와 군인들이 그런 사태를 감당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건 공화국의 미래가 아니었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찌됐건 군부가 움직이려면, 특히 위원장의 유고(有故)를 틈타 쿠데타라도 일으키려 한다면, 군령권을 쥔 총참모장 김격식은 이를 견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어렵게도 그를 총참모장으로 만든 이유가 그것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있을까. 과연 김격식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과거의 인연은 인연일 뿐, 위원장이 죽고 나서도 믿을 수 있을까. 어느새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였다. 그는 아내의 침실로 건너가 오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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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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