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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장악, 주민 포섭으로 독재 내구성 키웠다

북한은 왜 붕괴도, 개혁개방도 안 할까?

엘리트 장악, 주민 포섭으로 독재 내구성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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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업 망해도 오너 흥하는 독특한 구조
  • ● 시장 확대가 통치집단 권력강화 기회로
  • ● ‘외래地代’ 의존해 권력층 富 독점
  • ● 앞으로도 정치변혁 기대하기 어려워
엘리트 장악, 주민 포섭으로 독재 내구성 키웠다

지난해 12월 1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국가안전보위부를 방문했다.

지난 20년 동안 북한에 대한 정세 판단은 붕괴론과 개혁개방론을 오락가락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조만간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이 풍미했다. 이는 다가올 흡수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와 연결됐다. 2000년대 초반엔 북한이 곧 개혁개방에 진입하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했다. 이 논리를 내세운 이들은 한국의 포용정책이 북한의 개혁개방에 탄력을 줄 것이며, 그러면 북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북한은 이미 개혁개방을 했다는 식의 판단이 주류가 됐다.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 주요 정책 사업 중 하나였다. 아울러 북한 개혁개방에 따른 남북경협의 확대는 한국 경제에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여겨졌다. 2000년대 말에 들어서자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는 판단이 재차 주류가 됐다. 김정일 와병과 권력승계 문제 때문이었다. 통일 준비는 당면 정책과제로 다뤄졌다.

정권 입맛 따른 정세 판단

돌이켜 보면 지난 20여 년 동안의 이러한 정세 판단은 하나같이 정확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북한은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해 크게 변화했지만 개혁개방도 붕괴도 하지 않았다. 한국은 왜 이러한 판단 실패를 지속했을까. 이 글에서는 두 가지만 지적하기로 한다.

첫째, ‘붕괴’냐 ‘개혁개방’이냐의 이분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새로운 생존 조건에 직면해 적응하고 변화했다. 다시 말해 구체제는 ‘붕괴’했지만, 정권은 살아남았다. 아울러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은 채로도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북한 상황이다.



둘째, 지난 20여 년간 정세 판단의 주된 방향이 집권 정치세력의 성격과 연동해 변화했다는 것이다. 사실 정세 판단을 기초로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지, 정책목표에 맞춰 정세 판단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0년 동안 집권 정부가 북한 관련 지식의 생산과 유포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가운데 정부 교체 때마다 붕괴론 또는 개혁개방론의 어느 한쪽으로 쏠림이 심했다. 정세 판단의 쏠림이 심할수록, 그에 비례해 정책도 크게 실패했다.

결론을 먼저 밝히면 ‘북한은 개혁개방하기 어려운 이유로 붕괴하기 어려우며, 역으로 붕괴하기 어려운 이유로 개혁개방하기 어렵다’. 세 가지 이유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다. 첫째, 정치 차원에서 개인 독재와 일당 구조. 둘째, 경제 차원에서 독재의 경제논리와 외화벌이를 통한 정권 재정 확충. 셋째, 사회적 차원에서 공안기관의 강화 및 공개총살과 같은 ‘본보기 폭력’의 강화가 그것이다.

독재정권에는 다양한 양태가 있다. 역사를 보면 양태에 따라 내구성이 달랐다. 독재정권의 내구성이 특히 강한 경우는 두 가지다. 첫째, 독재자가 주변의 엘리트를 확고하게 장악하면서 동료가 아니라 부하로 부리는 경우다. 둘째, 정권이 단일 정당을 매개로 주민을 선별적으로 포섭하는 경우(co-optation)다. 북한은 이와 같은 두 가지 특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흔하지 않은 사례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독재정권에는 두 가지 갈등이 있다. 독재자 대 주변 엘리트의 갈등이 하나, 정권 대 사회의 갈등이 또 다른 하나다. 독재정권의 변동에서 두 갈등 중 중요한 변수는 독재자와 주변 엘리트의 갈등이다. 압도적 다수의 독재자는 대중봉기가 아니라 이너서클 내부자의 역모 때문에 권력을 잃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밀란 스볼릭에 따르면 1946년부터 2008년까지 하루라도 권력을 잡았다가 비헌법적 방법으로 권력을 상실한 지도자는 303명이다. 그 가운데 205명의 독재자, 즉 전체의 3분의 2가 정권 이너서클 내부자에 의해 제거됐다. 대중봉기나 민주화 압력에 의해 권력을 상실한 경우는 62명으로 5분의 1에 그친다. 나머지는 암살 혹은 외국의 간섭에 의해 제거됐다.

엘리트의 역모는 없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독재자에게 1차적 경계 대상은 바로 주변의 엘리트다. 독재자는 엘리트가 역모하지 않고 협조하도록 포섭해야 한다. 독재자와 엘리트 간의 관계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비확고한 독재(contested autocracy)와 확고한 독재(established autocracy)다.

비확고한 독재의 전형은 공산정권에서 정치국원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 체제다. 이 경우 독재자와 동맹자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존재하며, 독재자가 엘리트의 역모에 의해 제거당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확고한 독재의 전형은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김정일 등이다. 이 경우 독재자가 행사하는 권력이 주변 엘리트 전체가 행사하는 권력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주변 엘리트가 단결해 역모를 꾸며도 독재자를 이길 수 없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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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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