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남·북·미·IAEA ‘4자 합동사찰’이 최상의 카드

북한 핵 폐기, 어떻게 검증하나

  • 글: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swc339@kinu.or.kr

    입력2003-05-23 1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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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 베이징 3자 회담에 참석한 리근 북한 대표의 ‘핵무기 보유 발언’ 이후 북한이 과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북한의 핵개발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외신의 ‘추정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 북한의 핵능력을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점검해보고, 향후 북한 핵 폐기 검증을 위해 국제사회가 택할 수 있는 방안을 하나하나 검토해보자.
    남·북·미·IAEA  ‘4자 합동사찰’이 최상의 카드

    4월23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북미중 3자회담에 참석한 리근 북한 외무성 부국장(왼쪽)과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원자로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확보해서 무기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라늄을 고농축시켜서 무기로 만드는 것이다.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핵무기의 화약이라고 할 수 있는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확보했다고 해서 바로 핵무기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며, 까다로운 제조기술과 정교한 기폭기술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작업은 고농축우라늄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폭장치 등 다른 핵무기 부품을 조합해 핵무기를 제조하는 방법(implosion type)은 그 작동원리가 까다롭기 때문에 실험을 통해 폭발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고농축우라늄의 경우, 우라늄의 순도를 높이는 고농축 작업에 다양한 기술이 존재하며 대부분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고농축우라늄과 다른 핵무기 부품을 조합하는 방법(gun-assembly type)은 플루토늄에 비해 간단해서 핵실험 없이도 사용가능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은 우라늄탄이었으며, 나가사키에 투하된 것은 미국 뉴멕시코 사막에서 사전실험을 거친 플루토늄탄이었다.

    북한의 플루토늄 확보능력에 대한 관심의 초점은 IAEA의 사찰이 시작된 1992년 5월 이전에 소위 ‘과거 핵활동’을 통해 생산된 플루토늄의 총량이다. 이는 북한이 5MWe 원자로를 가동해서 얻은 사용후핵연료를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해 생산된 플루토늄의 양을 말한다.

    북한이 생산한 플루토늄의 양에 대한 추정은 IAEA에 신고한 90g 정도에서부터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탄 3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인 20kg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1993년 2월24일 제임스 울시 당시 미 CIA 국장은 “북한이 적어도 한 개의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핵물질을 생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카네기재단의 핵전문가인 리어나드 스펙터는 울시의 평가가 “모든 상황을 북한측에 유리하게 전제하는 소위 ‘최악의 가정’에 근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1993년 12월 CIA는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고 최대한 12kg의 플루토늄을 생산했을 가능성이 50% 이상이라고 밝혔지만, 당시 미 국무부는 이런 계산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편 이라크 핵시설에 대한 IAEA 사찰에 참여했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박사는 “최악의 가정에 근거했을 때 북한이 5MWe 원자로의 핵연료봉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의 양은 최대 6.3∼8.5kg 정도일 것”이라 추정했다(David Albright and Kevin O’Neill, eds., 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Puzzle, Washington, D.C.: ISIS Press, 2000). 재미 핵물리학자로서 미 국무부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깊이 관여했던 송요택 박사는 1998년 발표한 연구에서, 북한의 기술수준과 경험 등을 엄격한 기준으로 고려했을 때 최대 추출량이 12kg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 관계자들의 평가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러시아 해외정보부 책임자였던 예브게니 프리마코프는 1993년 1월 “북한이 핵무기는 갖고 있지 않지만 상당히 진보된 핵기술은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해외정보부의 대량살상무기 통제국장도 1994년 초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엄청난 비용과 외부의 압력 때문에 중단된 상태이며 미국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북핵문제 초기에 대두되었던 러시아의 이런 평가는 현재도 크게 바뀌지 않은 상태다.

    한국 국방부는 1991년부터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의 정보당국은 1990년대 초 북한이 7∼22kg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핵개발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한다면 1994∼95년 사이에 1∼3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으로 추정했었다. 이후 1994년 국방부는 북한이 29∼35kg의 플루토늄을 생산했을 것으로 예측한 바 있고, 국방연구원의 신성택 박사는 북한이 10∼80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해서 최대 10개의 핵무기를 보유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재미 인사로서 친북 주장을 펴고 있는 한호석은 북한이 1970년대에 핵개발을 시작해서 1986년경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일본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능력에 대해 공식적인 평가를 자제해왔다. 하지만 그동안 관련 학자들과 정부 관리들이 비공식 석상에서 발언한 내용들을 보면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는 것이 대세였다. 중·일의 이같은 유보적인 인식은 북한이 핵보유를 시인함으로써 크게 바뀌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자체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의 최대량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미국의 평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8.5∼12kg 정도로 판단된다. 이 수치는 최악의 가정에 근거한 것이므로 실제 플루토늄 생산량은 이 수치를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과거 핵의혹을 해소한다는 것은 북한이 IAEA에 신고한 90g에서부터 8.5∼12kg 사이에서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핵무기 개발에 관여했던 소련의 네 개 공화국(러시아,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에서 유출된 핵물질이 북한의 손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련 붕괴 이후 핵물질과 기술 및 전문가의 유출문제가 심각한 국제안보 사안으로서 꾸준히 강조되어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9·11 이후 달라진 분석과 추정

    우라늄농축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는 IAEA에 관련 정보가 제공되고 6차례의 임시사찰까지 진행되었던 핵연료 재처리에 비해 훨씬 빈약하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핵무기 제조능력면에서의 심각성은 재처리에 비해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제조를 위한 시설 건설에 착수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방사화학실험실을 건설해서 직접 플루토늄을 추출했던 재처리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자체적으로 다량의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농축우라늄을 해외 암시장에서 직접 구매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북한은 지난 1990년대 수십 차례의 기폭실험(혹은 고폭실험)을 실시했다. 기폭실험은 플루토늄의 폭발에 촉매역할을 하는 재래식 폭파장치의 작동상태를 실험하는 것이다. 원구형태의 플루토늄에 360。 전체 방향에서 고루 압력을 가해야 폭발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기폭장치를 개발하는 데는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 북한은 자체실험을 통해 기폭장치에 대한 많은 노하우를 습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농축우라늄탄의 제조방법은 플루토늄과 같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25kg 정도의 핵물질만 확보되었다면 히로시마급 핵무기 1개를 보유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북한의 핵보유 시인은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에 근거한 것으로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타당하다. 최대 플루토늄 추정량인 12kg이면 2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고, 북한의 계속된 고폭실험 증거를 감안할 때 플로토늄탄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경우 핵실험에 성공해야만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 정도의 성능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플루토늄탄이 완벽하게 폭발하지 않더라도 한반도의 좁은 지형과 밀집된 인구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파괴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북한이 소련 공화국들로부터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의 완제품이나 완성된 핵무기를 밀반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많은 미사일 전문가들이 북한의 자체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다단계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가 성공했던 경험을 돌이켜볼 때, 북한이 해외에서 핵관련 기술과 물질을 확보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1990년대 초 북핵문제가 공론화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이 핵을 보유했으리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 것은 사실이다. 특히 9·11테러 이후 ‘핵보유 가능성’ 수준에 머물던 미국 측의 평가가 ‘1, 2개의 핵보유’ 쪽으로 기울어져왔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02년 9월16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우리는 (북한이) 적극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왔으며 복수의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임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추세 속에서 2002년 10월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 당시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의 존재가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은 북한의 독자적인 개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외원조가 관건이 된다는 분석이 많다. 가능성이 많은 루트로는 파키스탄,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및 벨로루시 등이 지목됐다. 특히 파키스탄과의 커넥션은 이슬라마바드의 미사일과 평양의 핵기술이 교환·거래되고 있다는 여러 징후가 포착됨으로써 관계당국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아왔다.

    핵 보유 공개로 협상력 제고

    문제는 북한과 파키스탄과의 비밀거래가 9·11테러 이후에는 불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이 알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 정보가 대부분 미국 쪽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9·11테러 이후 파키스탄과 미국이 급속히 가까워졌고, 이 과정에서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무샤라프 정권이 미국의 승인을 얻는 대신 테러와의 전쟁 차원에서 파키스탄이 관여해온 대량살상무기 관련 비밀교류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을 정황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핵무기 설계와 실험에 관한 민감한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The New Yorker’, 2003년 1월27일자). 2003년 초에 발생한 경원하 박사 등 북한 관련인사들의 망명사건도 미국정부의 판단에 자신감을 심어줬을 것으로 보인다. 망명한 북한 핵기술자들로부터 북한의 핵활동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정보를 보완하고 새로운 정보를 획득했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핵보유 시인은 더 이상 이에 대해 불확실성을 유지하는 것, 즉 ‘확인도 부인도 않는(NCND)’ 정책을 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자체판단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북미간에 피차 뻔히 아는 일을 구태여 부인하기보다는 전면에 공개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이자는 의도가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사자가 핵보유를 시인한 이상, 북한의 핵보유 가능성에 대한 논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국제사회의 평가도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를 꺼렸던 일본에서조차 모테기(茂木敏充) 외무성 부상이 5월4일자 후지TV 방송에서 북한이 적어도 2, 3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북한 당국이나 관련국들이 핵보유 시인을 뒤집는 발언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미 중국 외교부가 4월29일 대변인을 통해 북한이 핵보유를 시인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인 북한 스스로 막중한 의미를 부여한 3자 회담에서 핵보유를 시인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은 북한의 핵무기와 관련된 시설, 장비 및 기술을 어떻게 폐기하고 검증할 것인가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5단계 핵 폐기 검증절차

    북한 핵능력의 폐기와 검증이 어떤 절차를 따를 것인가의 문제는, 향후 북한 핵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만약 이 문제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남아공이 핵무기를 포기했던 것과 같이 북한 당국 또한 스스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폐기와 검증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원만히 절차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3자 회담이 실패하고 북한에 대해 제재가 가해진다면, 최악의 경우 이라크에서와 같은 강제적인 핵무장 해제 경로를 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해체하고 이를 검증하는 작업은 기술적이고 물리적인 작업으로서 북핵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에 구애됨이 없이 나름대로 일정한 형식과 모양새를 띠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북한의 핵폐기와 검증 절차는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누어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미·IAEA  ‘4자 합동사찰’이 최상의 카드

    지난해 말 북한 당국의 추방 결정에 따라 철수한 IAEA 사찰단원들이 중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첫 번째 단계의 핵심 키워드는 북한이 일단 모든 핵활동을 완전히 ‘중지’하는 것이다. 핵무기 개발과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농축별로 다음과 같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핵무기 핵무기의 제조, 실험, 배치, 운반, 사용전략 논의 등 핵무기에 관련된 일체의 활동 중단

    농축 농축에 관련된 모든 연구, 개발, 실험과 관련 시설·장비의 건설·구매 중단

    재처리 5MWe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의 가동을 중단하고 핵연료봉 제조시설 폐쇄

    두 번째 단계에서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재처리·농축 시설과 기술 및 관련 활동과 인적자원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다.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북한당국의 자발적인 공개가 이뤄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외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모든 정보가 공개될 것이다. 사실 1단계와 2단계는 시간적으로 거의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 국제사회는 주요 사항별로 최소한 다음과 같은 정보의 공개를 추구할 것이다.

    핵무기 핵무기의 제조시점과 설계 및 파괴력에 관한 정보, 핵무기의 배치 위치와 관리·명령체계에 관한 정보, 관련 업무에 종사한 인적자원에 관한 정보

    농축 해외에서 수입한 모든 물질, 장비, 기술 및 그 소재(핵공급국그룹, 즉 NSG의 가이드라인에 의거해서 공개할 수 있을 것임), 해외 수입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북한이 자체적으로 생산·제조한 모든 물질, 장비, 기술 및 그 소재, 연구·개발, 시험, 제조 시설과 이들 시설의 작업기록, 농축시설의 설계와 건설에 관한 정보, 관련 업무에 종사한 인적자원에 관한 정보

    재처리 5개 동결시설(5MWe 원자로, 방사화학실험실, 핵연료 제조공장 및 건설중인 50MWe, 200MWe 원자로)을 포함해서 IAEA에 신고한 16개 시설의 현황에 관한 정보, 2002년 12월 핵동결 해제 이후 5MWe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실 및 핵연료 제조공장의 운영기록, 보관중이던 8000개의 폐연료봉 재처리 진행상황과 소재, 5MWe 원자로에서 추가로 생산한 폐연료봉의 존재 여부와 내역, 새로 제조된 핵연료의 양과 소재,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의 양과 소재, 관련 업무에 종사한 인적자원에 관한 정보

    이와 함께 북한이 1992년 5월 IAEA 사찰을 받기 이전에 이뤄졌던 소위 ‘과거 핵활동’에 대한 정보도 함께 공개되어야 한다.

    2단계에서 시급한 문제는 2002년 말 북한이 핵동결을 해제하고 IAEA 사찰관을 추방한 이후 재처리에 관련된 변화상황과 추가로 드러난 농축활동 및 핵보유 현장을 있는 그대로 장악하기 위해서 임시 사찰단을 영변과 기타 지역에 급파하는 것이다. 사찰단을 신속하게 파견해서 해당 지역과 시설 및 인물 등을 장악하고 물질과 정보를 안전하게 확보함으로써 증거인멸이나 외부유출 등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증거를 찾는 데 애를 먹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연합군이 진입하기 전에 관련시설들이 약탈당하고 파괴되었기 때문이라는 추정은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정보공개가 자발적인 것이 아닐 경우 북한당국의 증거인멸 행위가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

    폐연료봉, 국외 반출해야

    세 번째 단계는 공개된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면밀하게 조사하는 임시사찰을 실시하는 단계다. 핵물질에 대한 사찰이 특수기계장비를 제작하거나 과학적 실험을 실시하는 등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임을 감안하면 제3단계를 완료하는 데는 수 년의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참고로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IAEA 사찰을 수용한 남아공의 경우 사찰준비에서부터 완료까지 3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3단계의 사찰작업을 원활하고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내부고발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핵개발 현황과 현지 시설의 운용에 정통한 정보제공자의 존재야말로 최첨단의 과학기술장비 못지않은 귀중한 정보원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단계는 핵무기를 폐기하고 핵시설을 해체하는 단계다. 핵무기 폐기는 이 분야에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미국이나 러시아가 그 임무를 맡아야 할 것이며, 핵시설 해체에도 첨단 원자력기술을 보유한 나라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5개 핵보유국 가운데 희망하는 나라로 반출시키는 작업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플루토늄은 우라늄과 섞어서 MOX 연료를 만들고 고농축우라늄도 농도를 희석시킴으로써 두 물질 모두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일본이나 스위스 등도 이런 기술을 갖고 있지만 북한이 생산한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이 핵무기 제조용이었다는 상징성을 감안해서 이들 물질을 비핵국가에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8000여 개의 폐연료봉 가운데 재처리하다 남은 것이 있다면 이 역시 해외로 반출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이상의 네 단계를 통해 확보된 북한의 비핵화 상태가 장래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확인과 점검 차원의 사찰이 지속적으로 실시된다.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 재가입은 북한당국의 의지에 따라서 1단계에서도 가능하고 3, 4단계에서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NPT의 정상적인 회원국이 받는 IAEA의 정기사찰은 5단계가 일정기간 이행된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개발 시도국가로서의 ‘오명’을 씻고 정상국가로 대우받기 위해서는 우선 핵무기와 관련 시설, 장비를 폐기하고 더 이상 핵개발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신뢰가 뿌리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진정으로 핵무기를 포기했는가 여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어쩔 수 없이 북한의 정치체제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

    북한이 IAEA 사찰관을 추방하고 NPT에서 탈퇴한 이후 북핵문제의 해결과정을 지켜보고 확인할 검증의 주체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핵보유라는 사안의 심각성과 북한과 IAEA 간의 갈등관계를 감안할 때, IAEA가 검증의 주체가 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누가 이를 수행할 것인가. 북핵 검증의 새로운 주체로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가능성을 상정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남북한이 비핵화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해 지난 1992년에 구성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JNCC)를 활용하는 것이다. JNCC는 상호사찰 규정을 마련하는 데 실패한 1993년 1월 이후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JNCC의 재가동은 빈사상태에 빠진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을 다시 살려내고 핵문제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핵문제를 북·미간의 사안으로 인식하는 북한의 입장을 감안할 때, 북한이 JNCC 재가동에 동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두 번째는 남북한과 IAEA가 공동으로 사찰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3자 형식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핵개발을 포기하고 JNCC와 유사한 ABACC란 기구를 만들어 상호사찰과 IAEA 사찰을 동시에 실시하고 있는 전례를 원용하는 방안이다. IAEA의 참여를 통해 북핵문제가 국제문제라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NPT 조약과 200여 개 회원국을 존중한다는 남북한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IAEA가 보유하고 있는 사찰기술과 전문성을 활용해 핵무기 폐기와 핵시설 해체를 더욱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세 번째는 북한과 미국 간에 사찰이 이뤄지는 것이다. 북·미 사찰형식은 북한이 가장 원하는 방식이지만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 입장을 감안할 때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이다. 또한 향후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소외되는 것이므로, 우리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사찰방식이다.

    네 번째는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사찰방식으로서 실현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특히 북한이 체면유지용으로 주한미군기지에 대한 핵사찰을 요구하고 미국이 이를 수용할 경우 미국의 사찰 참여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이 방식은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방식의 장점을 살리면서 미국의 참여를 통해 북한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IAEA의 참여가 배제됨으로써 북핵문제의 국제적 중요성과 국제사회의 관심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남북한과 미국 그리고 IAEA가 함께 참여하는 4자 사찰방식이다. 4자 사찰방식은 남북한과 미국간의 3자 사찰방식의 장점을 살리는 한편, IAEA를 참여시킴으로써 북핵문제의 국제적 성격을 부각시키고 NPT 체제를 존중한다는 남북한의 의사를 입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4자 사찰방식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하고 실현 가능성도 높은 방안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마셜플랜’과 연계하라

    북한 핵문제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안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북한의 핵보유 시인은 우리가 지금까지 상정하지 않았던 새로운 군사적 위협을 제기함으로써 한국의 안보환경을 180。 바꿔놓았다고 볼 수 있다. 핵보유 선언이 야기하는 정치, 군사·안보, 그리고 외교적 파장은 남북관계와 동북아 질서에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문제는 핵무기의 완전폐기와 핵시설과 하부구조의 전면해체, 그리고 관련 정보의 전면 공개와 사찰을 통해 핵무기 부재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 과정은 북한의 협조여부에 따라 최소 수년에서 최대 십 수년이 걸릴 수 있는 장기적인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의 화학·세균무기와 전방에 배치된 장거리 야포의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의 안보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위협의 그늘마저 드리워진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핵개발과 NPT 탈퇴를 통해 200여 개 다른 NPT 회원국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스스로 국제사회의 미아가 되는 결과를 자초했다. 현 시점에서 국제사회의 부랑아로 낙인찍힌 북한정권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북한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단호한 자세가 장기적인 국가이익과 민족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와 화학·세균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거리 야포를 북쪽으로 철수한다면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지원하고 관련인력에게 평화적 업무에 종사하는 기회를 주는 ‘한반도협력위협감소(Korean Peninsula Cooperative Threat Reduction·KCTR)’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KCTR은 미국이 소련의 핵무기 폐기와 군수산업의 민수용 전환을 돕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실시해온 CTR 프로그램을 모델로 한다. KCTR을 북한의 경제재건을 위한 ‘한반도 마셜플랜(Korean Peninsula Marshall Plan)’과 연계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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