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천은 사대문안의 ‘내청룡’
- 두 녹지축 만들어 옛 도성을 ‘역사문화특별구’로
- 북한산과 한강, 강북 동서 잇는 마스터플랜 수립
- ‘변방의 강’ 한강을 시민의 품으로
- 세 개의 중심축, 다섯 개의 구역 어우러지는 ‘서울 그랜드디자인’
타당성과 합리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이명박 서울시장의 ‘불도저식 추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청계천 복원 아이디어를 처음 제기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 건축가 김석철 교수가 청계천사업의 총체적 개념 재정립을 주장하는 글을 ‘신동아’에 보내왔다.
청계천복원사업이 서울 전체의 공간구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독창적인 견해를 들어보자. (편집자)
드드디어 청계천복원사업이 시작된다. 해방 후 수많은 도시사업이 있었지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진행되는 사업은 처음인 듯하다. 도시건설 역사상 처음으로 기본 인프라를 철거해 자연의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사업이자, 600년 역사도시의 기본을 흔드는 도시구조 개혁사업인 까닭이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무언가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완벽하게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사업의 내용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고 전문가들 또한 분명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번 사업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회복하고 낙후된 강북을 일신하겠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겠지만, 정작 그 후의 구체적 목표나 방안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공사가 강행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사대문안 옛 도시구역에 대한 플랜이나 사대문밖 청계천 일대에 대한 체계적인 도시계획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신 조경차원의 계획만 보인다.
청계천사업을 둘러싼 세간의 걱정 또한 공사도중의 교통대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청계천 복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청계천 일대는 역사도시 서울의 원형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황금카드’ 같은 곳이다. 청계천복원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서울은 영원히 역사와 자연을 잃게 된다.
필자도 청계천사업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오히려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방식 그대로는 안 된다. 더 많은 것을 함께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청계천 복원은 단순히 조선시대 개천모습을 살리자는 것이 아니다. 왜 청계천복원사업을 하는지, 문제는 무엇인지, 사업의 전제인 보행중심도시와 환경친화적 도시는 과연 가능한 것인지, 이 사업이 사대문안 서울과 강북개발 및 서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지, 인구 1000만이 북적대는 거대도시 서울의 미래에서 청계천복원사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꼼꼼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1부] 복원계획, 이대로는 안 된다
도시는 흐른다. 물이, 공기가, 사람이, 정보가, 흐른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으로 표현되는 사람의 흐름과 ‘수리’로 표현되는 물의 흐름이다. 600년 전 신생국가 조선의 신도시였던 서울은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흐름을 조화시킨다’는 풍수지리적 도시원리를 바탕으로 지어진 도시였다. 요즘 말로 표현해 ‘교통과 수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도시’였던 셈이다.
청계천 복원은 이 교통과 수리 모두가 핵심적인 사안으로 걸려 있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도(定都) 당시 ‘서울의 꿈’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가 갖고 있는 대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적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교통에 관해서는 아직 원론적인 대책만 있는 수준이며, 수리에 관해서는 복원철학 자체와 어긋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고, 더욱이 자칫하다가는 주변지역의 시민경제를 붕괴시키고 ‘그들만의 공간’으로 전락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원론만 있는 교통대책
거듭 말하지만 교통과 수리는 인간의 흐름과 자연의 흐름에 관한 문제다. 청계천복원사업이 성공하려면 도시의 근본원리에 대한 철학과 원칙이 있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치밀한 현실적 대안 모색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지금부터 청계천 복원계획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하나하나 뜯어보기로 하자.
현재 사대문안 도심지역은 보행중심이었던 역사도시의 가로망과 자동차의 도입으로 새롭게 구축된 현대도시의 가로체계가 무질서하게 엉켜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사대문안 지역이 엄청나게 과밀화되는 과정 속에서도, 청계천 복개와 고가도로 건설 이외에 가로망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종묘~남산간 재개발계획을 입안하던 1967년 당시의 사대문안 도심스케치를 보면 지금과 다른 것이 별로 없다. 서울이 대부분 강북에 국한되어 있던 1960년대의 도시가 지금까지 도심구역의 큰 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는 청계천 복개와 고가도로 건설이 도심 통과교통을 상당부분 담당해 왔다는 뜻도 된다.
사대문안 도심의 교통특성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려면 강북서울의 구조적 특이성을 이해해야 한다. 강북의 중심인 사대문안은 북악산과 남산으로 남과 북이 막혀 있고 동과 서만 트여 있는 구조다. 따라서 동대문, 서대문과 남대문 밖으로만 도성이 뻗어나가 청량리, 신촌, 용산 세 곳으로 도시 확대가 이루어졌다. 또한 도시하천이던 청계천을 복개하고 종로, 을지로 등을 확장해 도시팽창에 따른 교통수요에 그때그때 대처해 왔다.
한동안은 이러한 대응방식만으로도 큰 무리 없이 도시의 흐름이 이어져왔지만, 1980년대 이후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한강을 중심으로 두 개의 500만 도시가 병립하게 되고, 사대문안 도심구역이 두 도시의 중심역할을 겸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교통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강남북의 두 도시가 서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다 보니 도시간의 교통이 두 도시 내부 도로에 더 큰 압력을 주게 되고, 외곽순환도로 역할을 하고 있는 강변도로의 교통하중 또한 도시내부에 가중되면서 정체는 더욱 심해졌다.
특히 남산의 세 터널을 통해 강남으로부터의 차량흐름이 퇴계로, 을지로 일대에 걸리고, 강북 외곽으로부터의 교통유입이 율곡로, 종로에 추가되면서 도심교통은 서행과 지체를 반복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사대문안 도심밀도가 중심과 서쪽에 집중되고 동쪽 청계천 일대가 저밀도를 유지하고 있어 상황을 유지해왔지만, 최근 몇 년 새 동대문 일대의 상권이 살아나면서 교통문제의 심각성은 극에 달했다.
이런 와중에 도심 안 교통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던 청계천로와 고가도로를 철거하기로 한 것은 도시 전체의 교통에 엄청난 압력을 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서울시는 청계천 일대가 담당하던 교통량의 우회, 대중교통 확충, 보행위주의 도시재편 등을 대비책으로 들고 있지만, 도심의 토지이용과 교통흐름 구조로 보아 효과를 얻기 힘들 것이 자명하다.
우선 도심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교통량을 우회시킬 도로가 없다. 도심의 외곽도로라고 해봐야 퇴계로와 율곡로 정도지만 여기는 이미 포화상태다. 강변도로는 지나치게 멀고 역시 과하중이 걸려 있다. 또한 강북의 인구를 감안하면 교통량을 더 줄일 수도 없다. 대중교통을 확충한다고 하지만 도심지역에 지하철은 더 이상 건설할 곳이 없고, 도심지역에서 버스가 분담할 수 있는 지상교통 하중은 맨해튼과 같이 도시형 버스가 가장 훌륭하게 발달한 일방통행 시스템에서도 제한적이다.
더욱이 사대문안의 도시 흐름을 자동차에서 보행위주로 바꾸겠다는 아이디어는 순진하기까지 하다. 이 작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시도해본 사람만이 안다. 필자는 ‘베니스 비엔날레 2000’에서 사대문안 서울을 대중교통과 보행위주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석 달에 걸쳐 갖은 대안을 다 작성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복원된 청계천 지하에 4차선의 도심통과도로를 만든다고 전제해도 상당기간 도시의 흐름을 개혁해나가야 가능한 사업이었다.
지금의 교통대책은 공사도중의 대책일 뿐 공사 이후 생겨날 새로운 도시내용과 공간밀도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당장 닥칠 교통대란은 시행착오를 거쳐 어느 정도 완화되겠지만 주변지역의 개발이 시작되면 자연히 지금보다 더 큰 교통수요가 생길 수밖에 없다. 향후 강북개발이 성공하면 현재의 교통난은 더 가중될 것이다. 청계천복원사업이 성공하려면 공사도중의 교통보다 완공 후의 교통을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지상에 진입도로인 2차선 차로만 확보하겠다는 현재의 계획이 그대로 추진된다면 도심지역의 교통대란은 불가피한 일이다. 지금 사대문안 도심은 도시구조의 혁신 없이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교통량이 폭증하고 있다. 이는 도시의 경쟁력과 바로 연결되는 문제인 만큼 막대한 혼란을 막을 확실한 방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서울시가 내세우고 있는 대책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더 구체적으로 계량화된 증거를 통해 실증적인 도시철학에 근거한 미래의 청사진을 밝혀야 한다.
청계천 복원으로 인한 도시교통 문제는 사대문안을 대중교통과 보행위주로 전환한다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청계천 주위로 지하철역과 바로 연결되는 경전철 등이 다니게 해서 도심교통의 상당부분을 담당케 하고, 청계천 하부에 도심통과 지하도로를 설치하여 통과교통을 담당하게 해 지상교통체계를 지하철과 접속하는 새로운 흐름의 방식을 도입하는 등 보다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내청계천, 외청계천, 한강의 수리체계
도시와 물의 상관관계를 가만히 살펴보면, 보행중심의 도시에서는 물의 흐름이 도시 기본구조의 틀을 이루지만 자동차중심의 현대도시에서는 물의 흐름이 도로에 부속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도시 서울에서도 자연의 질서인 물의 흐름이 인간의 질서를 이끌었다. 조선시대 서울의 도면을 보면 자연의 흐름인 물길과 인간의 흐름인 도로가 혼연일체가 된 것을 볼 수 있고, 청계천과 나란한 종로가 도시의 중심가로가 되어 도시의 기본질서를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물의 흐름은 단순히 물을 얻고 버리는 도시의 하부구조로서 뿐 아니라 도시문명의 상부구조인 문화 인프라로서도 큰 역할을 해왔다. 런던의 템스강, 파리의 센강, 베네치아의 그랑카날레 등은 모두 도시의 하부구조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도시의 공공공간이다.
정도 당시의 도시원리였던 풍수지리에 입각해 살펴보면 청계천은 도성 안의 기를 진작하는 ‘내청룡’의 역할을 해야 할 내수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 동안 청계천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계천은 파리의 센강이나 런던의 템스강처럼 도시의 하부구조와 상부구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보다는, 도심지역의 주배수로 역할만을 담당하던 개천이었다. 영조 때 내청룡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시도한 적도 있지만 그 뜻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물을 ‘얻는’ 강이 아니라 물을 ‘버리는’ 개천이었으므로 청계천은 다른 역사도시의 중심하천과는 다른 양상을 띄게 됐다. 도성 전체에서 물이 나오고 사방에 지천이 있는 서울에서, 청계천은 상류의 물을 이어가는 강이 아니라 사방의 물이 모여 흐르는 도시하천이었다.
청계천을 새로운 공공공간으로서의 ‘문화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것이 이번 복원사업의 목적이라면, 청계천의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외형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라 할 청계천의 ‘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청계천에 흐를 물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도심 한가운데로 흐르는 물은 그 자체가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이루는 문화 인프라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청계천은 한강이 아니다. 청계천은 도시를 관통하는 강이 아니라 도성 안의 물이 모여 흐르던 개천이다. 따라서 청계천의 수리체계도 당연히 원래의 수계를 회복해 도성 안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당연히 청계천 복원은 지천의 복원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복원된 청계천은 도성 안에 내린 빗물이 모여들고 도성 안에서 솟은 물이 모이는 곳이 되어야 한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방안은 하루 10만 톤에 가까운 물을 도성 바깥에서 끌어와 흐르게 하는 형태다. 이는 자연을 거스르고 자연의 흐름에 역류하는 방안이다. 도성 안의 물만으로는 수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사대문안의 지하수와 강우량을 감안할 때 운하 형식이면 큰 무리 없이 물의 순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계천 전체를 여러 개의 운하가 단속적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도시의 일상에 청계천 복원의 철학이 살아 숨쉴 수 있을 것이다.
청계천이 복원되면 주변지역은 전혀 다른 땅이 된다. 복개도로와 고가도로에 의해 차단되었던 땅이 도시 한가운데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사대문안 청계천 주변은 이미 도시형 산업지구가 된지 오래며 나름대로 치밀하게 구성된 도시조직으로 그물같이 엉켜 있는 산업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세운상가, 방산시장, 평화시장, 동대문시장, 동대문 패션몰에 이르는 산업 클러스터는 비록 영세한 규모의 시민자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대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중심 업무지구보다 서울경제에 더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인구조직이 모여 있다.
종묘(위)와 남산(아래)에서 바라본 청계천 주변 컴퓨터그래픽
하루 20만대 가까운 통과교통을 담당하던 도심의 중심가로는 대자본 주상복합건물의 앞길이 되고, 복원된 청계천의 수변공간은 그들만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청계천이 지하에 묻혀있을 때는 시민경제와 옛 도시조직을 유지하게 하는 공공재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것이 무너지면 오히려 옛 도시를 파괴해온 수많은 재개발사업과 다를 바 없게 되는 셈이다.
해답은 간단하다. 청계천 일대 대부분의 토지를 정부가 매입해야 한다. 복원사업으로 인해 손해 보는 사람도 덕 보는 사람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청계천이 청계천 주변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서울시민 모두의 것이라면 기존 거주자들이 손해를 보는 일도, 외지인들의 천국이 되는 일도 막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청계천 복원과 함께 주변지역의 공유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2부] 청계천을 서울 그랜드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지금까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청계천 복원계획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청계천 복원을 단순한 하천 살리기가 아니라 수도서울의 모습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 이를 살피기 위해 우선 중요한 것은 청계천 복원의 개념을 확정짓는 일이다. 즉 우리가 복원하려는 청계천이 과연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청계천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역사적 도시하천이었던 청계천이고, 다른 하나는 삼국시대부터 있던 지리적인 의미의 청계천이다. 광교에서 오간수다리 사이 사대문안에서 ‘생활공간의 역할을 맡던 개천’이 역사적 도시하천으로서의 청계천이라면 지리적 하천인 청계천은 14개 지천으로부터 물이 모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던 10.92km짜리 ‘자연공간으로서의 청계천’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 역사적 도시하천이었던 청계천이라면, 이를 위해서는 사대문안 옛 서울의 원형을 살린다는 개념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리적 하천으로서의 청계천을 복원하자면, 복개된 청계천 도로와 고가도로를 철거해 예전 모습을 찾는 사업이 된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청계천복원사업은 역사도시 서울의 원형을 되찾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도심 인프라 개발과 도시 재개발사업에 가깝다.
앞서 말했듯 서울 정도 당시의 도시원리인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흐름을 조화시킨다’는 풍수지리적 원리에 입각해 청계천이 ‘내청룡’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려면, 이를 통해 청계천을 진정한 서울의 ‘포인트’로 만들고자 한다면, 단순히 복개를 뜯고 고가를 철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600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청계천의 도시상부구조화 작업, 즉 청계천이 내청룡의 역할을 하게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강에서 물을 끌어들여 건천이었던 청계천을 현대식 하천으로 만들거나 그 위에 몇 개의 옛 다리를 복원한다는 것은 정도 당시 서울의 도시원리나 지난 500년 동안의 역사적 실체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를 보다 분명히 살펴보기 위해 옛 도성 안의 역사적 도시하천이던 사대문안 청계천과 삼국시대부터 있던 지리적 하천인 사대문밖 청계천을 각각 내청계천, 외청계천으로 구분해 접근해 보자. 내청계천 복원의 목적이 역사도시 서울의 원형을 찾고 질서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면, 외청계천 복원의 목적은 지리와 수리체계를 회복하고 수변공간을 창출해 새로운 도심을 만드는 일이 된다.
도심의 청계천과 외곽의 청계천을 하나로 인식한다면 이번 복원사업이 갖는 엄청난 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청계천을 내청계천과 외청계천으로 이원화하는 일이 복원사업의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청계천 구역인 사대문안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외청계천 구역인 동대문밖 서울은 또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이 함께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이 있어야만 청계천 복원은 단순한 하천 살리기가 아닌 도시 살리기 사업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청계천 복원을 시작하기 전에 할 일은 분명해진다. 우선 내청계천이 흐르는 사대문안 옛 서울을 역사와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경쟁력 있는 도시로 만드는 사대문안 구조개혁 방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다음으로 외청계천을 지렛대 삼아 강북의 마스터플랜을 입안해야 하며, 마지막 단계로는 한강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의 그랜드디자인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경복궁~남대문을 잇는 서울의 상징가로(왼쪽)와 창덕궁~남산을 잇는 녹지축 구성안(오른쪽).
당시 제안된 다섯 사업은 경복궁에서 남대문을 잇는 서울의 상징가로를 국제업무지구로 만드는 일,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을 역사도시 서울의 원형을 보존한 역사문화지구로 설정하는 일, 율곡로와 퇴계로 3~4가 사이 지역을 첨단산업지구로 재개발하는 일, 동대문 일대 상가와 장충단 일대의 문화공간을 재조직해 패션중심의 디자인 특구로 만드는 일, 상기한 네 지역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의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를 철거하여 청계천을 운하가로로 만들어 네 도시구역을 잇는 내부 가로화하는 일 등이다.
이 다섯 가지 사업의 목적은 사대문안을 대중교통과 보행 위주의 도시가 되게 하고 서울의 자연을 되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악산과 남산을 잇는 두 녹지축, 즉 경복궁~남대문 축과 창덕궁~남산 축이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게 하고, 청계천이 인왕산과 낙산 사이에 휘돌게 하여 정도 당시의 풍수지리를 현대도시에 살리고자 한 제안이다.
이렇게 사대문안 옛 서울을 역사와 자연이 함께하는 세계도시구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대문안을 특별구로 지정하고 이에 따른 조례와 법령을 정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대문안 옛 서울을 역사도시특별구로 선언하고, 사대문안에 들어와 있는 동대문과 서대문구를 제외시킨 뒤, 종로와 중구를 통합해 ‘사대문특구’로 만들고 특별법을 제정하여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공동구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뉴욕 맨해튼이 20세기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가 된 것은 섬으로 독립되어 자기완결성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런던이 국제금융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국제금융이 집합한 ‘시티’라는 이름의 독자적 도시구역과 행정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베이징이 동양을 대표하는 세계도시가 된 것도 베이징의 역사도시구역을 특별구로 만드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던 덕분이다.
서울이 세계도시가 되려면 서울을 상징할 특별도시구역이 필요하다. 사대문안 옛 서울에는 14세기와 20세기가 공존하고 있다. 아직도 정도 당시의 성곽과 대문이 남아 있고 궁궐들이 원형의 틀을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공공기관이 대부분 모여 있다. 거기에 도성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청계천을 복원해 옛 도시의 틀을 되찾고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흐름을 끌어들이게 되면 역사와 자연이 현대도시와 함께하는, 세계 어느 도시구역 못지않은 특별도시구역이 될 수 있다.
사대문안을 역사문화도시특구로 만들고, 성벽을 복원해 성안과 성밖을 분리하는 작업은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 사대문특별구는 시장 직속구로 만들어 다른 구와 차별화된 국제수준의 세계도시구역으로 조성해야 한다. 서울을 동북아의 중심으로 만드는 일은 어렵지만 사대문특별구를 세계도시구역이 되게 하는 일, 베이징, 상하이, 도쿄의 어느 구보다 앞선 동북아의 중심도시구역이 되게 하는 일은 가능한 작업이다. 서울 전체를 세계도시로 만드는 일은 20년이 걸려야 되는 일이지만 사대문특별구를 세계도시구역으로 만드는 일은 10년 안에 이룰 수 있다.
청계천 복원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강행할 명분이 있는 것은 청계천을 통해 사대문안이 새로운 도시구역으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비전과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청계천 일대는 고밀도 건축군으로 점거된 채 사대문안 옛 도성에는 국적불명의 건축물만이 판치게 될 것이다.
국회와 사법부와 행정부 대부분이 사대문 바깥으로 나간 것으로 행정수도 이전은 끝난 일이다. 더 이상의 수도이전은 역사와 지리를 다 잃는 것이다. 사대문안 서울과 ‘대서울’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수도를 다시 이전하는 일은 수도권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사대문안 서울은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 해외공관, 주요언론사 등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기관이 모여 있고 조선조 500년 역사의 대부분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을 워싱턴 D.C. 같은 특별구역으로 만들어 정치, 문화, 외교의 중심이 되게 해야 한다.
청계천복원사업이 단순히 청계천 복원과 주변개발로 끝난다면 이는 청계천을 복개하고 고가도로를 설치한 개발논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된다. 청계천 복원을 통해 사대문안 서울을 역사와 자연을 회복한, 한국을 대표하는 특별도시구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 사대문안 서울을 자연과 역사와 현대가 함께하는 대한민국의 심장부로 만들어야 청계천 복원의 큰 뜻이 사는 것이다.
사대문안 서울의 구조개혁안
앞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북측은 북한산, 도봉산으로 막히고 남측은 한강으로 막힌 채 사대문안 도심으로 인해 동서가 둘로 나뉘어 있는 강북은 공간의 경쟁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어디에도 중심이 없는 변방의 도시가 되고 만 것이다. 강북의 또 다른 문제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 정부 주요기관과 공공기관 상당 부분이 강남으로 이전해 도시중심의 공동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강북 도처에 신도시를 기획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도시구조개혁이나 어번 콘텐츠(Urban Contents)의 확충 없이는 기존의 저밀도지구를 고밀도화, 고급화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동안 이루어진 강북개발은 산동네를 조합주택으로 개발하고 지하철 역세권에 주상복합군을 짓는 부동산 난개발뿐이었고, 가장 중요한 도시 인프라 확충이나 이에 따른 문화 인프라 창출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강북의 가장 큰 도시적 가능성은 북한산과 한강과 사대문안 서울이다. 강북개발 마스터플랜은 한강과 북한산과 사대문안 서울이 강북서울의 기본이 되게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청계천, 중량천, 불광천 등 한강의 지류를 통해 도시내부지역이 한강과 닿게 하는 어번 프런트(Urban Front)를 개발하고, 세 한강의 지류를 통해 한강과 북한산을 서로 연결해 한강과 북한산이 도시 내부에 들어와 있게 해야 한다. 나폴리가 도시의 난개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기존도시를 무자비하게 가로지르는 스파카나폴리를 건설하고 도시 한가운데에 신도심구역을 만들어 이를 구도심과 이어 옛 도시와 현대도시를 공존하게 한 것과 같은 획기적 도시개혁이 필요하다.
한강과 북한산을 연결한 후에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강북대로를 한강과 나란하게 만들어 이를 통해 강북 동서의 두 도시가 사대문안 서울과 바로 닿게 만들자. 이곳에 도시 인프라와 문화 인프라를 집중시키고 고속철도와 공항으로부터 직접 이어지는 마크로 스케일의 도시 인프라를 접속시키면 강북의 혁신을 이룰 수 있다. 바로 그 강북대로의 중심에 청계천이 있는 것이다.
청계천복원사업은 강북서울 구조개혁의 서막이므로 강북 마스터플랜을 함께 만들지 않으면 큰 가능성을 잃게 된다. 강북전체의 마스터플랜 없이 이곳저곳에 신도시라는 이름의 대형주거단지를 만들기만 한다면 이는 곧 강북서울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다.
순리대로라면 청계천 복원사업은 일단 사대문안 내청계천에 국한해 시작하고, 강북 마스터플랜이 성안된 다음 사대문 밖 외청계천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일단 공론에 의해 시작된 일인 만큼 함께 해나갈 수밖에 없다면 공사기간을 연장해야 하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금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청계천복원사업은 2003년 7월에 착공해 2005년 12월말 옛 광교로부터 마장동까지 5.84km 전구간이 완성될 것이다. 수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일단 거기까지는 추진될 것이다. 지금까지 청계천 복원공사와 함께 진행되어야 할 세 가지 일, 즉 사대문안 옛 서울의 특별도시구역화, 내청계천과 외청계천의 이원화, 강북 마스터플랜의 입안을 검토해보았다. 이제부터는 이들 작업 이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서울 그랜드디자인’의 얼개
청계천 복원이 서울의 구조개혁을 시도한 것이라면 당연히 서울 전체의 그랜드디자인이 뒤따라야 한다. 최근에 일부 새로운 사항이 첨부되기는 했지만 30년 넘게 반복되어온 서울 마스터플랜은 항상 같은 종류였다. 동북아경제를 선도하는 세계도시, 서울다움이 느껴지는 문화도시, 자연이 되살아나는 생태도시, 더불어 사는 풍요로운 복지도시, 통일 한반도의 중심도시 등등의 계획은 목표부터가 추상적이고 불분명하다.
‘동북아경제를 선도하는 세계도시’에서 동북아경제의 정체는 무엇이며 서울이 선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서울의 도시계획이 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막연하다. ‘서울다움이 느껴지는 문화도시’라는데 서울다움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자연이 되살아나는 생태도시’라지만 1000만 도시가 생태도시가 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이 정도 크기의 도시면 이미 오랫동안 자연과 교전해온 전시상태의 도시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미래상이라 해도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 않으면 공상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표 자체가 모호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이 막막할 수밖에 없다.
목표와 기본구상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서울이 도시질서를 상실한 ‘비구조화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이라고 할 때 누구나 알 수 있는 공간구조의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혼돈 그 자체라 해도 역사와 지리와 사회 속에 내재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게 마련이다. 사대문안 서울의 기본구조를 자연의 도시, 윤리의 도시로 해석했던 것처럼 대서울의 도시원리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하는 논리의 정립이 필요하다.
청계천이 사대문안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서울 전체에서 이루려면 먼저 서울의 상황과 문제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서울의 역사를 살피는 작업이다. 청계천 복원의 철학을 정도 당시의 원리에서 얻었듯, 서울의 도시원리를 찾으려면 한국문명의 정체성이 확립된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른 긴 역사 속에 겹쳐진 역사와 지리의 질서형식을 찾아보아야 한다.
역사도시인 사대문 도성 안에 청계천이 있다면 1000만 도시 서울의 한가운데에는 한강이 있다. 청계천은 사대문안 옛 도성의 하수개천에 불과했지만 한강은 서울의 수리를 담당하면서 500만의 두 도시가 병립할 수 있게 한 분계영역 역할을 담당한 서울의 중심이다. 한강이 있어 강북서울의 질서가 유지돼왔고 한강으로 인해 강남서울의 틀이 만들어졌다.
한강은 삼국시대부터 서울의 중심이었다. 한강이 서울의 외곽이 된 것은 조선조가 사대문안에 도성을 정하면서였다.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의 두 도시가 마주선 오늘날의 모습은 삼국시대의 형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큰 스케일의 풍수지리적 형상으로 보면 서울의 형국은 북한산 일대가 주산, 한강 상류와 한강 하류가 좌청룡 우백호, 관악산이 안산, 한강이 내청룡의 역할을 하는 모습이다.
서울의 역사를 살피는 작업은 지난 100년의 의미를 반추하는 일로 마무리된다. 그 100년은 고스란히 20세기 세계사의 축도와 같다. 100년 전 세계열강의 아시아 진출이 중국 동해안과 한반도 서해안에 집중되었을 때 오늘의 G7 국가 중 이탈리아와 캐나다를 제외한 다섯 나라가 모두 군함을 보내 서해안을 침공했다. 결국 서해안이 몽고제국 이후 700년 동안의 해안봉쇄를 풀고 개항한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서해안에서 일어났다. 서해안과 서울을 잇는 철도가 개설된 것이 1900년이다. 이때부터 도성 안에 머물던 서울의 확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대문안 도성에서 청계천이 도시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도시의 상부구조가 되지 못했듯이, 서울의 중심인 한강 또한 두 500만 도시의 변방이 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도시의 가장 중요한 상부구조가 되어야 할 한강이 변방의 강이 된 것이다.
이렇듯 역사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연들은 서울의 공간구조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한강을 도시의 중심으로 삼았던 삼국시대의 공간구도, 한강으로 하여금 내청룡의 기능을 맡겼던 풍수지리적 해석, 서해안과 서울 혹은 서해안과 한강이 갖는 긴밀한 공간적 연관성, 여기서 파생된 세계열강의 통로로서의 가능성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청계천복원사업이 단순한 도시하천 살리기가 아니라 도성 안 기본질서를 원래의 형국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던 만큼, 다음 단계는 당연히 서울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변방이 되어 있는 한강을 도시 중심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를 통해 서울의 역사·지리의 원형을 되찾고 한강을 서울 상부구조의 중심공간으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본 사대문안과 서울의 형국
사대문안의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해 제안한 경복궁~남대문간의 서울상징가로, 경복궁~창덕궁간의 북촌, 창덕궁~남산간 3번가로, 동대문~장충단패션시티 등의 네 도시중심구역이 청계천으로 이어지게 하여 사대문안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집합·순환하도록 한 것처럼, 서울에서도 한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간구조의 재편이 필요하다.
지난 30년 동안 반복되어온 1도시중심과 5부도심의 공간구조는 어디에나 있는 진부한 형식이다. 서울의 공간구조는 한강, 북한산, 관악산, 그리고 서해안과 한강상류의 내륙이 이루고 있는 지리적 형국과 역사적 궤적을 집합한 새로운 공간구조로 재조직될 수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을 재조직하기 위해 우선 경복궁과 남대문 사이의 서울상징가로가 용산을 지나 한강을 넘어 국립도서관, 대법원을 지나 예술의 전당에 닿는 서울의 중심축을 설정해보자. 이 중심축 상의 사대문안 서울과 용산, 서초동 일대를 서울의 제1 중심공간으로 상정하기로 한다. 여기에 한강을 마주하고 있는 잠실~뚝섬 일대와 난지도~목동 일대를 제2, 제3의 중심공간으로 삼는다.
이 세 개의 중심공간의 대각선에 위치한 한강 남북의 네 지역, 여기에 한강과 인천을 잇는 경인운하도시를 더해 다섯 개의 도시중심구역으로 서울의 공간구조를 재편하면 그림은 완성된다. 이러한 구도는 서울의 21세기 도약을 준비하는 공간적 가능성을 담고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을 세 개의 중심공간과 다섯 개의 도시중심구역으로 재조직하고 기존의 도시 인프라에 국제공항, 국제항만, 고속철도 등 글로벌 인프라와 내부순환도로, 외부순환도로 등의 로컬 인프라를 접속시키면 서울 전체의 네트워크를 재조직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를 바꿀 지렛대
이렇게 볼 때 청계천복원사업은 서울 전체의 도시구조를 개혁할 출발점이 된다. 청계천 복원의 다음 단계인 청계천 주변개발이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을 세 개의 중심공간과 다섯 개의 도시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서울 그랜드디자인의 한 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어떤 도시사업도 시도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프로젝트다. 청계천사업을 성공시켜야 역사도시 서울이 살아날 수 있고, 1000만 도시 서울의 구조개혁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청계천복원사업에는 사대문 특별구 계획과 강북재개발사업, 한강을 중심으로 한 서울구조개혁사업 모두가 깊이 얽혀 있다. 청계천 복원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복원 이후가 더 어려운 사업이다. 다음단계에 대한 분명한 비전, 서울 전체의 그랜드디자인을 확실히 준비하고 있어야만 청계천사업의 미래 또한 확실해 진다.
이러한 큰 비전을 위해서는 현행 도시계획법이나 건축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우선 청계천 일대의 도시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시계획과 건축법의 특례를 준비해야 한다. 특별조례나 법규개정을 통해 청계천복원사업의 제도적,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성안되어 대략의 모습을 갖추는 데 20년이 걸렸다. 청계천사업의 윤곽이 제대로 서려면 최소한 10년은 필요할 것이다. 개인이 아니라 조직과 법령이 일하게 해야만 이러한 대사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청계천복원사업은 3년 안에 끝나는 청계천 살리기 사업이 아니라, 10년이 걸리는 사대문안 역사도시 살리기이자 20년이 걸리는 미래도시 서울 만들기 사업의 시작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은 서울의 미래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작지만 거대한 지렛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