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호

한나라당 지지율 죽어도 안 오르는 이유

“번트만 있고 홈런이 없다”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8-21 18: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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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당이 ‘지리멸렬’하다고 한다. 바로미터인 ‘정당 지지율’이 10%대 후반~20%대 바닥권이다. 대선 직후의 15%에서 조금 더 올랐을 뿐이다. 죽을 쑤고 있는 민주당보다도 낮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많이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40%선이다. 한나라당 인기가 죽어도 안 오르는 것은 이유가 따로 있다는 분석이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지지율 죽어도 안 오르는 이유
    민정계 출신 하순봉, 양정규, 신경식 의원. 2000년 총선 공천 때 하순봉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다. 하 당시 총장은 ‘공천 물갈이’에 상당히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공천자 명단 발표 후 탈락자측이 몸싸움을 걸어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양정규 의원은 원외 인사였다. 그런데 원외 인사들이 당 공천을 받는 데에 그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충청출신 서청원 의원이 대표경선에서 패배한 후 신경식 의원은 당내 충청권 정치인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더 높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5월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 때 몇몇 의원이 원하는 곳에 배정된 이유를 두고도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다. 다음은 한나라당 한 고위 당직자의 말. “국회의원이 자신에게 공천권을 준 사람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소위 ‘머리 올려준 사람’에 대해선 정치 지형이 바뀌어도 신세를 졌다는 마음을 유지하게 된다.”

    ‘계보정치’ 안하는 최병렬 대표가 이들 중진 의원들의 영향력을 필요로하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다. 이들이 사심 없이 당의 안정에 보이지 않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보는 이들도 다수다. 그러나 홍준표 의원은 비판적이다. 홍의원은 “한나라당 지지율 정체의 가장 큰 이유는 앙시앵 레짐(구체제)이 여전히 당의 주류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지금 장기불황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새 대표 출범’이라는 ‘특효약’마저 안 통했기 때문이다. 8개월 후면 총선이다. 당 지도부는 당혹해 하고 있다. 다시 홍준표 의원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두 가지를 꼽았다. ‘야성(野性) 회복’과 ‘개혁’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3000명이나 되는 분양 신청자에게 사기를 친 굿모닝시티의 검은 돈이 ‘여당 대표’를 통해 ‘현직 대통령’의 대선 자금으로 들어갔다는 ‘딱 떨어지는’ 권력형 비리의혹이 최근 발생했다. 한나라당은 며칠 동안 “전모를 밝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대선 자금을 (여야가) 함께 밝히자”고 하자 한나라당은 꼬리를 내렸다. 당 지도부는 “오늘 부로 대선 자금 문제는 거론하지 말자”는 말까지 했다. 그러자 “한나라당도 굿모닝 시티에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대통령 기자회견에 백기”

    여당대표의 수뢰는 한나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의 대선 자금 비리의혹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결과적으로 적중했고, 한나라당은 백기를 든 모양새였다.

    현 정부에선 ‘불’이 ‘불’을 끄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측근 안희정씨가 나라종금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는데, 곧 이어 대통령 측근의 부동산 특혜의혹 파문이 터졌다. 그러자 안희정씨 사건은 이 새로운 의혹에 묻혀 잠잠해졌다. 이런 식으로 안희정씨 수수문제-대통령 측근 부동산 투기의혹-여권의 굿모닝시티 게이트 자금수수-150억 대북송금 확인-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접대-현대 비자금의 민주당 유입 의혹 등 권력형 비리의혹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결과는 새로운 의혹이 이전의 의혹을 봉합하는 식이었다.

    한나라당 한 재선의원은 “야당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야당이 권력형비리의 규명에 끈질기게 매달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곳곳에서 터지는 현안들의 꽁무니를 쫓는 데도 급급해 했다는 지적이다. 안희정씨의 돈 수수사실은 자당 소속 홍준표 의원이 처음 제기했지만 검찰의 수사 발표가 있자 “미흡하다”면서도 손을 놨다.

    민주당이 공개한 대선자금 명세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당일 “부실투성이”라고만 해놓고, 넘어갔다. 150억 대북 송금 문제에서 한나라당 지도부는 대통령의 2차 특검 거부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다.

    더구나 한나라당이 2차 특검 무산에 따른 후속조치에 미온적인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지적도 나왔다. 현대 정몽헌 회장의 자살로 동정론이 일자 한나라당은 ‘논리적 갈지자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양길승씨 향응 사건의 경우, 한나라당은 부실-축소 조사를 이유로 사정담당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의 해임을 요구했으나 그 날 하루뿐이었다.

    대통령 측근의 부동산투기 의혹은 한나라당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결정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김문수 의원이 주도적으로 의혹을 제기할 당시, 거들어주는 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없었다. 김의원이 그치자 한나라당도 투기의혹 제기를 그쳤다”고 말했다.

    8월13일 오전 한나라당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에 협력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노대통령은 부동산투기의혹 보도와 관련, 김문수 의원과 4개 언론사를 상대로 3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악수하자고 손 내밀다가 오히려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격노했다. 다음날 의원총회에서 ‘하야’ 문제까지 거론하며 대통령을 성토했다. ‘협력’에서 ‘하야’까지 하룻만에 냉탕과 온탕을 오간 셈이다. 홍사덕 총무는 대통령 측근의 부동산투기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를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격분’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당내에서 나온다. 한나라당 소속 한 의원은 “국정조사(청문회 포함)를 하려면 특위가 구성되어야 하는데 여야 합의 없이 한나라당 단독으로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김문수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노건평씨 부동산투기의혹을 제기했다가 대선 후 민주당으로부터 형사피소 되어 무혐의처분을 받은 바 있다.

    국정조사가 무산될 경우 결국 대통령의 소송은 김문수 의원 개인의 송사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는 의원들도 꽤 있다. 한 의원은 “당내에 각종 특위가 있지만 대선 이후 ‘당내 공조시스템’, ‘팀 플레이 의식’이 희미해졌다. 이를 대체할 안정적 리더십이 아직 구축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여권의 실정과 비리를 추궁하는 데 있어, 한나라당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사안별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고위 당직자는 “야당이 불의를 보고도 자꾸 주춤거리고, 재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그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영남권 한 재선의원은 “한나라당이 대선 후 지금까지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한 게 무엇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번트만 있고 홈런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는 지난 대선때의 ‘후보단일화’ 한방의 위력을 떠올렸다. 그는 “한나라당은 무책임하다. 정부의 실정, 권력형 비리가 터지면 즉각 냄비처럼 들끓다가 이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안마다 수박 겉 핥기식이다. 한가지라도 진득하고 끈질기게 파헤쳐 권력기관을 벌벌 떨게 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야당, 뭔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야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위만 일하는 것 같다”

    ‘당 개혁’과 관련, 최대표 체제에 전면으로 나선 중진의원들, 초선의원들은 개혁의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다만, ‘정책정당화’의 공감대가 넓어지면서 한나라당 정책위원회는 최근 경제, 민생문제와 관련된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올 들어 한나라당 의원들의 관련 법안 발의도 크게 늘어 민주당 의원의 두 배에 이른다. 한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정책위만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사덕 총무는 기자에게 “비판은 많을수록 좋다”고 낙관론을 폈다.

    결국 최병렬 대표의 비장의 카드는 ‘상향식 공천’을 통한 ‘물갈이’로 귀결될 듯하다. 9월 중 전국 8개 한나라당 사고 지구당에서 ‘국민참여경선’으로 지구당위원장이 선임될 예정이다. 9월 경선은 개혁의 시금석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조짐이 좋지 않다고 한다. 9월 지구당위원장 경선에 출마할 예정인 한 당직자는 “구태 조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경선에 참여하는 대의원은 대략 2000명선. 일반국민은 경선 참여 전 입당원서를 내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조직적인 인원동원’의 징후들이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향식 공천일수록 물갈이가 어렵고(미국 등의 사례), 현재의 당권분리체제에선 최대표가 물갈이를 아무리 원해도 그 뜻을 관철시키기 힘들다는 것이 난제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한 의원은 “최대표가 공천후보를 확정하는 운영위원회 위원의 과반수를 장악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식사를 함께했지만 최병렬 대표와는 여전히 껄끄러운 서청원 전 대표. 당내에선 “경선 후 최대표 쪽으로 힘이 완만하게 쏠리고 있다”는 분석과, “당내 30%에 이르던 서 전 대표 세력이 의외로 결집되고 있다”는 상반된 분석이 공존한다.

    대구-경북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다.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가 “내년 총선 때 지지해주면 대구를 첨단과학도시로 만들어 보이겠다”는 ‘조건부’ 언급을 하자 여론은 조금 더 나빠졌다고 한다.

    ‘정통야당’의 모습도, ‘개혁’의 모습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 앞에 다른 난제도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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