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호

‘박정희 딸’ 넘어 국가지도자로! 갈등 치유·서민 보듬는 모성 리더십 기대

막 오른 여성 대통령 시대

  • 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입력2012-12-28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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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제18대 대선에서 51.6%의 지지율을 얻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다. 그가 당선된 배경에는 따뜻한 여성 리더십으로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이념 갈등을 치유하고 경제 양극화를 해소해주기를 바라는 대중의 염원이 있다. 한국 사회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의 의의와 막 오른 ‘박근혜 시대’의 핵심 과제를 살펴봤다.
    ‘박정희 딸’ 넘어 국가지도자로! 갈등 치유·서민 보듬는 모성 리더십 기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2월 5일 전남 여수 서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인사하고 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의 선거 구호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자신의 여성성을 전면에 드러냈다. 새누리당의 상징색이기도 한 빨간 재킷 차림으로 TV토론에 나섰고, 단아한 올림머리를 한 채 유세장을 누볐다. 그 모습 그대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대통령 탄생이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2012년 10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내놓은 연례 성(性)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순위는 조사 대상 135개국 중 108위. 필리핀(8위), 몽골(44위), 중국(69위)보다 훨씬 처지고, 이슬람 국가들(아랍에미리트 107위, 쿠웨이트 109위, 나이지리아 110위, 바레인 111위)과 비슷한 수준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출마 선언 직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 잠재적으로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논평을 실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성주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은 한 걸음 나아가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곧 여성 혁명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여성적 리더십

    이번 선거 과정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여성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은 건 아니다.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 등 여성계 인사 130명은 12월 15일 “박근혜 후보는 ‘여성 대통령’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성명을 냈다. 의정 활동을 하면서 여성 관련 법안 발의가 없는 등 여성 분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여성계 내부에는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운동가는 “여성 대통령의 존재는 그가 여성주의자든 아니든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여성 정치인의 역량에 대한 남성들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여성 정치인 스스로도 자기 존중감과 권력의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민심이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선택한 배경으로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이념 갈등과 양극화,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 연달아 발생한 측근비리 등을 꼽는다. 박근혜 당선인이 여성 특유의 ‘따뜻한 리더십’과 청렴결백함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 당선인도 선거 과정에서 여러차례 남성 정치인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권력투쟁보다 국민의 삶에 집중하고, 통합을 이뤄나가며 민생을 섬세하게 살필 수 있다”(11월 22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주최 대선 후보 초청 토론)고 했고,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12월 16일 3차 TV토론)고도 했다. 선거를 이틀 앞두고 방송된 마지막 공식 TV 연설에서는 “저는 돌봐야 할 가족도,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다. 저에게는 오로지 국민 여러분이 가족이고 국민 행복만이 제가 정치를 하는 유일한 이유다. … 항상 국민과 소통하면서 여러분의 삶을 제일 먼저 챙기고 여러분의 삶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 …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만들어낼 우리 사회의 혁명적 변화, 기대가 되지 않느냐”는 발언으로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역시 소통의 리더십, 양극화 해소를 공약했지만 유권자는 박근혜 당선인의 ‘여성 대통령론’에 더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능력으로 승부 거는 지도자

    여성 최고지도자의 탄생은 최근 세계적인 추세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 등 3명의 여성 국가정상이 참석했다. 2012년 역시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자 중에도 5명이 여성이었다. 결혼했다가 자녀를 두지 않고 이혼한 메르켈 총리, 연인과 자녀 없는 동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의 사례에서 보듯, 이들은 결혼이나 출산 유무와 무관하게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과거에도 여성 정치인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초기 여성 지도자들은 기성 정치인의 딸이나 아내인 경우가 많았다. 1966년 인도 총리가 된 인디라 간디나 1974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된 이사벨 페론 등이 이에 해당된다. 간디는 인도 초대 총리 네루의 외동딸, 페론은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낸 후안 페론의 아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을 지낸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와 미얀마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역시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건국 영웅의 딸이고,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는 아버지가 총리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추세가 달라졌다. 게릴라 단체 지도자로 군부 독재에 저항하다 정계에 입문한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물리학 박사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정계에 진출한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자신의 힘과 노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뛰어드는 이가 늘어난 것.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아일랜드의 로빈슨 및 매컬리스 총리, 그리고 핀란드의 할로넨 대통령처럼 ‘성 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에서 최고지도자를 지낸 여성들을 언급하며 “이들은 경제성장과 사람살이의 균형을 중시하고 사회적 협상과 합의를 도출하는 감각을 갖고 있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박정희 딸’ 넘어 국가지도자로! 갈등 치유·서민 보듬는 모성 리더십 기대

    박근혜 당선인이 선거 유세 도중 예비역 병장들에게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목도리를 걸어준 후 포옹하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 정계에 입문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유형의 여성 지도자와 맥을 같이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현장 정치를 배운 뒤 정당 대표로 선출됐다는 점, 2004년과 2012년 총선에서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한 정치적 업적을 바탕으로 정계입문 14년 만에 대통령이 됐다는 점 등에서 분명한 차이도 있다. 박 당선인은 평소 강력한 리더십으로 ‘영국병’을 치료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유럽발 재정위기에 주도적으로 대응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을 정치적인 롤 모델이라고 밝혀왔다. 특히 미국 경제지 ‘포브스(Forbes)’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여성’ 1위에 여러 차례 뽑힌 메르켈 총리는 라이프치히대 물리학과 출신의 물리학 박사로, 서강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박근혜 당선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 새누리당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오랜 우정을 쌓아온 사이기도 하다. 박근혜 당선인은 2000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재외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 야당 기독민주당 당수였던 메르켈 총리와 처음 만났다. 이후 2006년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뒤 독일을 방문해 메르켈 총리와 통일 문제 등을 논의했고, 메르켈 총리는 2010년 G20 정상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을 때 박근혜 당선인을 찾았다고 한다. 메르켈 총리는 2012년 8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맞춰 “올 연말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리당이 대선 후보와 함께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당과 후보의 큰 성공을 기원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경제 회복’을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했고, 여성이 일과 가정을 병행하도록 지원하는 가족 정책이 곧 여성 정책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박근혜 당선인과 통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선거 하루 전인 12월 18일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우리 경제가 고속 성장한 것을 상기시키며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헌신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삶을 돌보는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이후 가장 역점을 둘 분야는 경제 안정과 양극화 해소가 될 것임을 밝힌 것이다.

    또 맞벌이 부부를 위한 방과 후 돌봄 서비스, 저소득층 자녀 수에 따른 세액 공제, 임신 기간 중 근로시간 단축 등 ‘일과 가정 양립’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공약을 내놨다. 여성계에서는 “여성 후보임에도 여성 정책이 부실하다”고 비판했지만 새누리당은 박근혜 당선인이 ‘여성의 감성’을 갖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사회활동과 정치 참여 확대를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례로 제시하는 것이 2004년 7월 한나라당 대표 취임 후 당사에 어린이집을 설치한 것이다. 당시 박근혜 당선인은 야근을 하게 된 여성 당직자가 아이돌보미를 찾기 위해 다급하게 여기저기 전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당장 당사에 어린이집을 만들어라. 어린이집 하나 없는 정당에서 어떻게 보육 정책을 논하느냐”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의 존재만으로도 사회 각 분야에서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기업 등에서 여성복지나 모성보호 등에 좀 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박근혜 당선인은 여성들이 보육에 대한 부담 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여성각료할당제 등의 정책에는 거부감을 보여왔다. 2000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여성 후보에게 당연직 부총재를 주는 관행을 거부하고 경선을 완주한 적도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자서전과 인터뷰 등에서 그 이유를 “‘여성 정치인’으로 보호받고 특혜를 누리며, 여성 몫으로 만들어놓은 자리에 임명되는 것은 정치적 신념과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같은 부총재라도 선출직과 지명직은 말의 힘이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고 소신 있게 내 목소리를 내길 원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당시 선거 과정에서 박 당선인은 “박근혜는 안 찍어도 여성 몫의 부총재로 임명될 것이니 꼭 필요한 사람을 찍어달라”는 얘기를 수차 들으며 여성 우대정책이 오히려 여성에게 장애가 되는 딜레마를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당시 내가 ‘여성 지도부는 들러리’라는 금기에 정면 도전한 것이 나중에 김영선·전여옥 의원 등이 자력으로 최고위원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하며 “언젠가는 선출직 지도부의 반 이상이 여성으로 차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하게 됐다”고 했다.

    실질적인 여권 신장

    이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대통령 박근혜’가 이처럼 또 한 번 다른 여성 정치인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일단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최고 정치지도자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 국가에 산재한 문제를 잘 해결해야만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별이 아니라 최고지도자로서 해낸 성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박근혜 당선인이 국정의 주요 과제로 내세운 민생 경제 회복과 양극화 해소, 부정부패 일신 등의 ‘새정치’를 실현할 경우 여성의 사회적 영향력과 힘은 한 단계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한 시대정신도 바로 그것을 바라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소통의 리더십과 소외 계층을 보듬는 모성적 리더십으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자,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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