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호

미래창조과학부 신설땐 정체성 모호 좌충우돌할 것

  • 이상훈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입력2012-12-28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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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소불위 상공부, 문민정부 출범 후 부침 거듭
    • 우정사업본부 껴안으며 정원 3만 명 넘는 공룡부처 돼
    • ‘중소기업부’ 적극 반대,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두려워
    • 기업 역량 강화되면서 ‘산업 진흥’ 정체성 잃고 방황 지적
    미래창조과학부 신설땐 정체성 모호 좌충우돌할 것

    2012년 10월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과학자들과 간담회를 갖는 박근혜 대통령당선인.

    양말, 대형마트, 로봇, 원자력발전소, 택배, 자동차, 카지노….

    아무 연관성 없는 무의미한 단어 나열로 보이지만,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들은 하나의 커다란 공통점을 갖는다. 바로 지식경제부라는 1개 부처에서 관리·감독 및 규제와 진흥을 맡고 있는 대상이란 점이다.

    양말은 섬유패션 영역이라서, 대형마트는 유통업이란 이유로, 로봇은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이름으로 지경부가 지원과 규제를 맡는다. 원자력발전소는 한국의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이어서, 자동차는 한국의 대표산업이기에 지경부 영역이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택배와 카지노에 와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택배는 2008년 지경부 산하기관이 된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택배’ 때문에, 카지노는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을 근거로 강원도 정선에 세워진 강원랜드가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각각 지경부가 관장한다.

    실물산업 ‘모든 것’ 떠맡아

    담당 영역이 이처럼 넓고 다양하다는 건, 이명박 정부에서 지경부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경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이 부처의 설립 목적은 무려 9개다. 수출의 지속적 증대를 비롯해 △외국인투자 유치 △에너지 정책 수립 △미래지향적 산업발전 정책 수립 △지역경제·산업정책 수립 및 추진 △기술개발 및 산업표준화 △주력 기간산업의 경쟁력 강화 △신성장산업 발굴·육성 등 대한민국 실물산업의 ‘모든 것’을 떠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부처 중 가장 힘이 세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요 업무가 △경제정책 방향 수립 △전략적 재원배분 △조세정책 총괄 등 고작(?) 7개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지경부의 업무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할 수 있다.‘공룡부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지경부의 역사는 ‘굴곡과 부침’으로 요약된다. 지경부의 뿌리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출범한 상공부. 정부 출범 초기, 존재감조차 미미했던 상공부는 박정희 정권 출범 이후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경제기획원, 재무부와 함께 이른바 경제부처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다.

    이 세 부처의 장관을 모두 역임한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는 “경제기획원은 아너러블(honorable)하고, 재무부는 파워풀(powerful)하고, 상공부는 컬러풀(colorful)하다”는 말로 트로이카 체제를 설명한다. 컨트롤타워인 기획원이 밑그림을 그리면 금융과 조세를 통해 돈줄을 쥐고 있는 재무부가 자원(돈)을 조율했다. 그리고 이른바 ‘될 놈’을 뽑아 기술과 인력을 지원하고 나사못 하나까지 꼼꼼하게 지원·규제한 곳이 바로 상공부다. 전자,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등 오늘날까지도 한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은 모두 상공부가 발굴· 육성한 ‘자식’들이다. 박 대통령이 주재하고 상공부가 꾸려갔던 수출진흥확대회의는 ‘안건으로 올리기만 하면 안 되는 일 없던’ 회의로 지금까지도 전설로 통한다. 다소 무리한 정책이 회의 안건으로 올라와도 “그건 상공부 얘기가 맞다”는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게 ‘상황 종료’ 됐다고 한다.



    朴統 시절 무소불위 상공부

    하지만 문민정부 출범 이후 상공부는 본격적인 조직개편 도마에 오른다. 한국의 주력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시어머니 같은 간섭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시작된 것이다. 1993년 동력자원부와 합쳐진 상공자원부가 출범했고, 1994년 통산 분야를 강화한 통상산업부로 개편됐다. 그러나 출범 초기부터 정무(政務) 중심의 외교를 경제, 통상 중심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김대중 정부에서 통상 업무는 외교부(현 외교통상부)로 넘어갔고 산업 및 에너지를 총괄하는 산업자원부로 재탄생했다.

    노무현 정부까지 10년간 이어지던 산자부는 이명박 대통령을 맞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이른바 ‘작은 정부’론(論)을 바탕으로 방만한 부처 조직을 통폐합하면서 그간 업무 영역이 겹치던 부처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예산, 국고, 세제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실물산업을 총괄하는 지식경제부가 탄생했다. 과거 뚜렷한 영역 구별이 가능했던 정보기술(IT), 연구개발(R·D), 산업진흥의 융합이 갈수록 가속화되면서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산자부 간에 업무 갈등이 끊임없이 계속됐던 게 결정적 이유였다.

    2008년 1월 16일, 정부인수위원회는 기존 산자부와 정통부의 IT산업정책, 과기부의 산업기술 및 연구개발(R·D) 정책을 통합한 지식경제부 신설을 발표했다. 여기에 정통부 소속이었던 우정사업본부까지 끌어왔다. 정원 3만2611명(우정사업본부 3만1857명 포함)에 달하는 메머드급 부처가 탄생한 것이다.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라는 이름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정부 초기 거센 조직개편 물결에 휩쓸려 크게 이슈로 떠오르진 않았다.

    지경부 개편 문제를 논하기 전에 우선 지난 5년간 지경부의 성과와 한계를 따져보자. 가장 큰 성과는 업무 영역을 두고 벌어졌던 소모적인 갈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전자상거래, 로봇산업, 바이오(Bio)산업 등 신산업이 부상할 때마다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가 서로 자기 업무라고 갈등을 일으켜 이들 산업의 진흥은커녕 민간 사업자의 발목만 번번이 잡았던 걸 생각하면 이는 분명 큰 성과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땐 정체성 모호 좌충우돌할 것

    2012년 5월 ‘대·중소기업 상생 에너지 동행 협약식’에 참가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

    하지만 과(過)도 분명하다. 이른바 공룡부처로 거듭나면서 너무 많은 업무를 한곳에서 맡다 보니 어느 하나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의 경제연구기관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에 따르면 2007년 세계 3위였던 우리나라 IT산업 경쟁력 순위는 2011년 19위까지 떨어졌다. 대형마트와 중소상인 간 상생을 추진했지만 갈등은 여전하다. 상공부 시절부터 내려오던 ‘산업 진흥’ 업무는 민간기업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갈수록 설 땅을 잃고 있다. 잇따르는 원전 사고와 해마다 반복되는 전력난은 에너지 정책 실패의 증거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지경부는 정부 조직개편 공약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기존 정부의 공보다는 과를 드러내야 하는 대선전에서 지경부는 여야를 막론하고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반복되는 실물산업 부처의 개편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지만,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새 정부 인수위원회의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전을 치르면서 ‘지경부를 어찌하겠다’는 말을 직접 내비치지는 않았다. 지경부가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 중소기업부 신설 문제에 관해서도 유보적인 견해를 밝혔다. 2012년 10월 19일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박 당선인은 “이것(중소기업부 신설)을 말로 하면 지켜야 하는데, 여러 행정조직이 걸려 있어 쉽지 않다”며 “중소기업청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설립을 공약으로 채택했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보다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라 하겠다.

    왜 지경부는 중기부 신설에 거부감을 드러낼까? 지경부는 정통부 및 과기부 부활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중기부 신설에 강한 반발을 드러낸다. 경제부처 1급 관계자는 이렇게 전한다. “지경부의 본질은 결국 산업 진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의 위상은 ‘진흥’이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높아졌다. 앞으로의 정부 산업정책은 대기업 규제와 중소기업 진흥이라는 두 개의 트랙으로 가야 한다. 대기업 규제는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국세청 등이 맡고 있다. 지경부는 태생적으로 기업 규제와는 상극인 조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기부를 만든다는 건 지경부의 정체성을 통째로 흔드는 일이다. 부처 자체가 와해될 수도 있다.”

    “뚜렷한 성과 없다” 비판 직면

    지경부로서는 어떻게든 중기부 신설만은 막아야 할 처지다. 내부적으로는 자신감이 있다. 중기부 신설은 이미 과거 정치권에서 약속했던 공약인 만큼, 이를 막아낼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충분하다. 지경부가 지난해 중견기업국을 신설하며 잇따라 중견기업 육성책을 내놓은 것도 ‘지경부는 중견·중소기업 지원부처’라는 정체성을 다지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중기부 신설보다는 박 당선인이 약속한 ‘미래창조과학부’(가칭) 신설이 더 치명타일 수 있다. 박 당선인은 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과기부 기능을 분리한 뒤 여기에 과거 정통부 기능을 합쳐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되면 당장 지경부 내 일부 조직은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산업기술정책국과 신산업정책국 일부, 정보통신산업정책국 등이 그 대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국 3개가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다. 당선자의 ‘철학’이 반영된 신설 부처에 살점을 떼주고 나면 이후 남은 조직의 위상이 어떻게 될지는 능히 추측할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서 ‘대기업 진흥’이 주력(主力)인 지경부는 그 위상이 일정 부분 떨어질 수 있다. 과거 산자부보다도 힘이 약해질 가능성도 크다. 과거 산자부와 번번이 업무중복 갈등을 일으켰던 정통부와 과기부가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돼 새 정부의 실세 부처로 거듭난다면, 지경부의 역할과 파워는 미래창조과학부의 그것과 반비례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과학기술과 정보기술 영역만을 담당한다고 해도, 갈수록 모든 산업이 과학기술화, IT화되는 마당에 이른바 자동차, 철강 등으로 대표되는 ‘굴뚝산업’과 정확히 경계선을 긋기도 쉽지 않다.

    지경부 모 국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산자부 초기, 우리는 정말 힘들었다. 대기업들은 더 이상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중소기업에겐 뭘 해줘야 할지 몰랐다. 주요 업무였던 통상은 외교부에 넘겼으면서 정작 내부에선 상공부 출신과 동력자원부 출신끼리 자리를 놓고 정치싸움을 벌였다. 인사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당장 우리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정체성이 약해지는 딜레마는 우리가 풀어야 할 큰 숙제다.”

    지경부에 소속된 우정사업본부의 향방은 지경부 미래의 또 하나의 변수다. 과거 체신부가 IT담당 부처인 정통부로 거듭나면서 기존의 우정(郵政) 업무는 1급 본부장을 최고경영자(CEO)로 두는 우정사업본부로 분리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통부가 사라지면서 우본은 정통부를 흡수한 지경부 산하 소속기관으로 변신했다. 당초에는 임시로 지경부 소속으로 뒀다가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공사(公社)로 만들 계획이었으나 결국 무산됐다. 사실상 업무로서는 아무 연관이 없기 때문에 조직도상으로만 지경부 소속일 뿐 우본은 스스로 벌어 스스로 먹고사는 ‘자립경영’을 하고 있다.

    애초 우본을 크게 반기지 않았던 지경부는 최근 우본의 여러 장점을 재발견하고 있다. 우체국 예금과 우체국 보험으로 총 100조 원의 자산을 굴리는 데다 정원이 3만 명을 넘고 2급 이상 고위공무원 자리만 14개가 있다. 무엇보다 중앙부처에는 없는 전국망인 우체국을 광화문 네거리부터 최남단 서귀포시까지 두고 있다.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운동 당시 정부가 ‘100만인 서명운동’을 폈을 때, 우체국이 불과 닷새 만에 42만 명의 서명을 받아온 건 아직까지도 정부 내에 회자되는 ‘우체국의 힘’이다. 이런 알짜조직을 놓지 않기 위해 지경부는 우본을 차관급 외청기관인 ‘우정청’(가칭)으로 승격시키는 방안을 인수위원회에 적극 건의하기로 했다.

    실물경제 뉴 거버넌스 성공할까

    지경부 개편은 단순히 1개 부처 생존의 문제만이 아니다. 작게는 중소기업청,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직개편 이슈와 얽혀 있고, 크게는 대한민국 실물경제의 진흥 및 규제의 새로운 지배구조를 짠다는 의미가 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지난 20년간 산업, 에너지, IT, 과학기술 영역은 서로 간에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하며 숱한 조직개편 실험을 거듭해왔다. 수많은 조직들이 명멸해갔지만, 정작 국민들이 지금까지 이름을 기억하는 조직은 상공부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명칭을 유지해온 산자부 정도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회사가 된 건 정부에 반도체부가 없었기 때문’이란 우스갯소리는 과연 정부의 역할과 위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5년 만에 다시 공론화된 조직개편 논의가 정치권의 논공행상과 정부부처 간 생존경쟁으로 변질된다면 정치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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