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현상, 노무현 돌풍보다 강해
反페미 아냐…젠더 문제 역사적 접근은 부족
‘일 못 한’ 문재인 정부가 키운 이준석
與, 젊은 사람 있어도 젊은 리더 없어
30대 보수 정치지도자 출현은 세계적 추세
‘우리는 가족’ 외쳤던 시대의 종말, 새 시대 진입
우석훈(53) 성결대 교수는 “‘이준석 현상’은 한 시대의 종말을 상징한다”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청년들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호영 기자]
책 ‘88만원 세대’(2007)로 한국 사회에 이름을 각인시킨 우석훈(53) 성결대 교수는 세대 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려면 젊은 세대의 정치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토플(TOEFL) 책을 덮고 기득권을 향해 짱돌을 던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이 대표는 22살이었다. 우 교수는 지금도 청년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갖고 있다. 2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세연 전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낸 대담집 ‘리셋 대한민국’에서도 “유능한 젊은 사람들이 신속하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썼다.
5월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우 교수는 이 대표의 당선을 예상했다.
- 대담집이 출간된 것이 2월이다. 불과 4개월 뒤 이준석 돌풍을 예견했나.
“그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나올 줄은 몰랐다. 지금 상황에서 이준석을 이길 사람은 없다. 당을 전두지휘했던 전성기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시 나와도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 포인트 개헌하면 대권도 가능”
우 교수는 “만일 40세 연령 제한만 없으면 대통령이 됐을 것”이라고 현재 이준석 열풍을 평가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 후보로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갤럽이 6월 1일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3% 지지율을 얻어 이재명 경기도지사(24%) 윤석열 전 검찰총장(21%)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5%)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이처럼 뜨거운 돌풍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 대표는 처음 등장한 ‘멀쩡한 보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을 폭도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든가 ‘박 전 대통령은 감옥 가 있는 게 맞다’는 이야기는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했어야 했던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이는 없었다. 보수가 논리가 아닌 정서로 정치를 해왔던 것이다. 또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두루뭉술한 언행에 염증을 느껴왔다. 맞는 말 같지만 사실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나, 말이 말 같지 않은 비논리적인 언행 등이다.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하는 보수 정치인이 이 대표 전에는 홍준표 무소속 의원밖에 없었다.”
-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했을 때 상황과 비견되기도 한다.
“유사하다. 시대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노 전 대통령이 상고(부산상고) 출신으로 대선 후보까지 됐다. 당시 국민들은 그를 보고 ‘세상이 좋아졌다’고 느꼈다. 이 대표 돌풍은 그때보다 더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은 어찌 됐든 변호사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국회의원 경험도 있고 완성된 커리어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대표는 국회에도 한 번 들어가 본 적 없다.”
- 공직 경험이 없는 것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이다. 정치는 대기업 입사가 아니지 않나. 스펙 쌓는다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은 프로필이 없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3·4선(選) 경력보다 비전 있고 유능한지가 평가 대상이다. 젊은 나이에 당대표 선거에도 나간다는 것은 적어도 무능하지 않다는 것 아닌가.”
능력주의, 이준석의 세계관
이 대표가 강조하는 세계관은 능력주의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것을 말한다.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여성·청년 할당제 폐지도 성별이나 나이만으로 배려받는 것은 옳지 않다는 능력주의에 기반했다. 경쟁에서 낙오한 이들이나 기회가 동등하지 않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비판도 자연스레 뒤따른다.- 여성 할당제 폐지 공약이 페미니즘 반대 세력을 끌어들이고자 한 소위 ‘갈라치기’ 전략이라는 비판도 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갈라치기다. 그렇다고 이 대표가 반(反)여성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그 수단이 여성 할당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정책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페미니즘에 반감이 쌓인 2030 남성의 마음을 자극한 것이다. 이 대표 입장에서 자신을 지지할 표가 뻔히 보이는데 이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우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 후보가 젠더 문제에 대한 역사적 시각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여성 할당제는 유럽에서 수십 년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제도다.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유럽에서 만들어진 제도를 차용한 것이다. 그의 발언을 보면 젠더 정책이나 여성 인권신장에 대한 역사를 알고 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물론 할당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좋은 정책이 있다면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다.”
- 다른 정책이 있을까.
“나는 다른 방식은 없다고 보는데, 그건 이 대표가 제시할 문제다. 정책은 수단이니 여성 권리 향상이라는 목적에 할당제가 부응하지 않는다면 바꿀 수 있다.”
우 교수는 “다만 이 대표의 선전을 계기로 ‘한국형 극우파’가 형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이다.
“유럽에서는 동구권이 붕괴한 뒤 외국인 노동력이 서유럽에 유입되면서 극우파가 만들어졌다. 일자리가 줄어들자 불만이 쌓인 청년들이 극우 민족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한국 경우엔 민족이 아닌 젠더 갈등이 극우 형성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 여성이 사회의 절반인데 반(反)페미니즘 가치만으로 극우파 형성이 가능한가.
“극우파는 전체 국민 중 15~20%만 동의하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대표가 극우파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이 대표를 지지하는 이들이 하나로 뭉쳐 있다. 정부에 대한 섭섭함과 여성에 대한 증오가 섞여 있다. 만일 보수가 집권당이 되면 증오가 하나의 분파를 형성해 보수와 극우로 분화할 시점이 올 것이라 본다.”
정부가 판 깔고 여당이 쐐기 박은 이준석 현상
능력주의에서 경쟁은 중요한 가치다. 이 대표가 경쟁을 수식한 단어는 공정이다. 이 대표는 2019년 출간한 ‘공정한 경쟁’에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본다”며 “‘엘리트주의’라는 비난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경쟁에 지쳐 있는 2030이 왜 능력주의를 옹호할까.
“작금의 현실이 만든 현상이다. 좋은 일자리는 소수에 불과하니 모두가 그 자리를 위해 노력한다. 나보다 노력이 부족해 보이는데 어떤 배려를 받아 같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기회가 모두에게 동등한 상황이라면 능력주의는 먹히지 않았을 이야기다. 먹고살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분노다.”
- 그렇다면 ‘이준석 현상’은 문재인 정부가 키웠나.
“그렇다. 현 정부가 일을 너무 못 했다. 어느 정도 살만한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다. 현 정부가 청년세대에게 ‘바꿔야 한다’는 에너지를 줬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준석이 아니라 ‘오준석’이 나왔어도 지지했을 것이다. 전당대회에 이렇게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적이 없다. 길 가는 사람에게 지금 민주당 대표 누구냐고 물어보면 아는 사람 있겠나.”
- 여당에는 뼈아픈 일이다.
“민주당은 4·7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지만 이에 대한 반성이나 정확한 분석도 없었다. 민주당은 왜 졌는지, 누구에게 졌는지도 모르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은 이 대표 작품이다. 그가 청년 관련 메시지를 담당하며 청년들에게 마이크를 쥐여줬다.”
한 시대의 종말
6월 11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에서 당 대표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속되게 말하면 ‘꼬붕(‘부하’의 일본말)’만 키운 거다. 젊은 사람은 있어도 젊은 리더는 없다.”
우 교수는 민주당이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 몰렸다고 말하며 씨름 경기 얘기를 꺼냈다. 민주당은 배지기를 당해 지금 등이 땅에 닿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이다. 그는 말을 이렇다.
“마지막 되치기를 빼곤 진보가 이길 가능성이 없다. (전 씨름선수) 이만기가 전성기의 강호동을 이긴 적이 있지만 그건 이만기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2030이 민주당에 등을 돌렸고, 호남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 추세다. 정치적 고향에서 쫓겨난 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면 많은 고생을 해야 한다.”
- 2030의 마음이 바뀔 여지가 있나.
“쉽지 않은 일이다. 생각보다 스윙보터(swing voter·특정 정당 충성도가 낮은 유권자)는 적다. 투표장에 가느냐 안 가느냐 정도다. 이 추세가 적어도 10년은 간다고 본다. 지금 민주당이 너무 싫어서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이 살아생전 다시 민주당을 좋아할 일이 있겠나.”
- 이 대표가 잘할 거라고 보나.
“정치판에서 워낙 잔뼈가 굵은 사람이니 정치는 잘할 것이다. 문제는 정책인데….”
- 어떤 의미인가.
“지금까지는 원칙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는 총론으로 인기를 얻어왔다. 당대표는 구체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가령 ‘부산 가덕도 공항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구체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각론에 답을 하는 순간 비판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 진보학자 입장에서 ‘이준석 열풍’이 씁쓸하기도 할 것 같다.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봐’ 하는 생각이다. 동구권이 붕괴하고 30년이 지났지만 좌파는 아직 살아 있다. 이유가 있다. 한국 자본주의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분배를 악(惡)으로만 봐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편으로 젊은 보수 정치인이 등장해 돌풍을 일으키는 일은 세계적 흐름이다. 한국은 오히려 늦었다. 앞으로 적어도 몇 달간 한국은 이준석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다.”
우 교수는 ‘이준석 현상’이 한 시대의 종말이자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분기점이라고 진단한다. 그의 말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우리는 한 가족’을 강조하며 끼리끼리 뭉쳐 다닌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이준석 현상’은 여의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심지어 교회·절에서도 벌어질 일이다. ‘워라밸’ 등 개인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내는 목소리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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