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기괴한 반응
책임 회피로 정치적 이득 본 경우 없다
경찰 야단치기? 책임 회피 오해 살 여지 다분
11월 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알맹이’ 빠진 채 ‘아랫사람들’에게 호통
사건 이후 청와대의 반응은 더 기괴했다. 논란이 커지자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 석상에서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사과했지만 애초에 윤창중 씨를 대변인으로 뽑은 스스로의 오판과 책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 직원의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면서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면 관련 수석들도 책임져야 한다는 엄포를 놓았을 뿐이다. 사과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이고 따라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진솔하게 밝히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그런데 알맹이는 쏙 빠지고 ‘아랫사람들’에게 호통을 치는 얘기가 들어갔다. 며칠 후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 자리에서도 박 대통령은 이런 얘기를 한다. “그런대로 절차를 밟았는데도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저 자신도 굉장히 실망스럽고, 그런 인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박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면 인선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뼈아프게 느끼기는커녕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국민이 보기에는 황당한 일이다. 대통령을 향해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말을 할 처지에 있는 것은 국민인데 오히려 박 대통령이 그 말을 해버렸으니 말이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초대 내각 구성 과정에서 내정자가 7명이나 낙마한 인사 참사를 겪었다. 윤창중 대변인의 임명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과 염려가 있었다. 언론사에서 근무하다가 청와대에 들어가기도 하고, 유력 정치인의 보좌역 노릇을 하다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그는 대선 때 야당 후보를 지지한 정치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정치적 창녀’라고 지칭해 시비를 자청했다. 여론의 비판을 무시하고 이런 사람을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한 것은 박 대통령 자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하거나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남의 일 말하듯이 자신도 실망했다고 한 것이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 참모진의 반응도 가관이었다. 사건 직후 귀국한 윤창중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어 스스로의 결백을 강변했는데 윤 대변인의 직속상관인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에 대응하는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에게 사과하다니. 공개된 자리에서 공직자가 대통령에게 잘못했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생색 나는 일만 앞에 나서서야
한국시리즈에서 프로야구 선수가 형편없는 플레이로 게임도 망치고 심지어 관중석에 대고 욕설까지 하는 무례한 행태를 보였다고 생각해 보자. 야구단 단장이나 감독은 팬들과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논리적으로 볼 때 소속 선수들이 일탈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통제해야 하는 것은 구단 전체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단장이나 감독은 나타난 결과 자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개인적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두 번째로는 좀 더 실제적인 면을 볼 때, 그래야만 선수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화가 난 팬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단주나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나는 그런 일을 하라고 시킨 일이 없는데 그 선수가 정신이 나갔는지 관중석에 대고 욕설을 했어요. 그 선수한테 엄중한 책임을 묻겠습니다”라고 얘기한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구단의 이미지 회복에 도움이 될까. 오히려 팬들의 분노가 더 커지고 책임을 전가한다는 비판만 받게 될 것이다. 당연히 정중하게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는 해법이다. 물론 선수의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내부적으로 할 일이다.박근혜 정부 대응은 이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해결 방향과 정반대의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이남기 홍보수석이 박 대통령에게 사과한 것은 야구단 코치가 기자회견장에 서서 선수가 잘못해서 감독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셈이다. 어느 팬이 그런 모습을 보고 황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이런 모습은 박근혜 정부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은 생색이 나는 좋은 일에서만 앞에 나서고 책임이 부각되는 일에서는 뒤에 숨는 경향이 계속돼 왔다.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고 현실 정치에서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것은 대단히 비정상적 현상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책임을 회피해 정치적으로 이득을 본 경우도 별로 없다. 오히려 국민감정을 악화시키고 때로는 정권의 몰락을 불러오는 계기가 된 일도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윤석열 정부의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 대단히 우려스럽다.
우선 이태원 참사의 성격을 보자. 어떤 시각에서 보더라도 불가항력적인 사고라고 할 수는 없다. 지진, 해일 등 천재지변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외부의 침략으로 인한 전쟁이 일어났던 것도 아니다. 피해자들이 법을 어기거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해서 위험을 자초한 것도 아니다. 그날 목숨을 잃거나 다친 분들은 단순히 축제를 즐기려고 거리로 나섰던 것뿐이다. 설사 예상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하물며 평화롭게 보행로를 걷다가 158명이 압사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면 당연히 정부는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리고 정부를 지휘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과연 최종적인 책임자로서 자각을 보여주었는지는 의심스럽다.
10월 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한 관계 부처 장관 브리핑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장관의 이런 발언을 질책하고 교정해야 할 대통령실은 오히려 보조를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 “(이상민 장관의 발언은) 현재 경찰에 부여된 권한이나 제도로는 이태원 사고 같은 사고를 예방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이해하고 있다. 경찰은 집회나 시위와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 제도적 권한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 발언 역시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경찰은 극도의 혼잡 등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거나 피난시키는 등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사실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급박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경찰관이 아니라 민간인이라도 누구나 필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한 말은 상식에도 반하는 황당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11월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동아DB]
책임 회피 오해 살 여지 다분
도대체 이상민 장관이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사리에 맞지 않는 얘기를 했을까. 이 장관의 다른 발언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위와 같은 발언을 한 이유에 대해) 정치적, 선동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나 나름대로 해석해 보자면, 정부의 책임을 인정할 경우 정치적으로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있을 수 없는 참사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시민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선동’으로 몰아붙이는, 지극히 잘못된 발언이다. 국민들의 판단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가져야 할 공직자로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기도 하다.그렇다면 정부는 이런 입장에 대해 최소한 일관성이라도 보였는가. 그렇지도 않다.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경찰에 다수의 신고 전화가 접수됐고 그 가운데는 압사 위험성을 언급하거나 보행자들이 일방통행을 하도록 통제해 달라는 내용도 있어서 도저히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지자 180도로 태도를 돌변한 것이다. 현재의 제도 아래에서는 경찰이 이런 참사를 예방하거나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던 대통령실은 돌연 “누가 얼마나 무슨 잘못을 했는지, 철저한 감찰과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정부의 바뀐 입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윤 대통령은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 참석해서 경찰을 강하게 질책했다. “왜 4시간 동안 (첫 112 신고가 들어온 오후 6시 40분부터 참사 발생까지)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그 상황에서 경찰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느냐.” “이태원 참사가 제도가 미비해서 생긴 것인가. 저는 이건 납득이 안 된다”라고 호통을 친 것이다.
11월 11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출국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환송 나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뉴스1]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을 공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경찰의 잘못을 질타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이태원 참사로 참담함을 느끼는 국민들의 마음이 다소라도 풀릴 것으로 여겼으리라고 보인다. 뜻에는 공감이 가지만, 사람들이 더욱 원했던 것은 대통령이 먼저 책임을 통감하고 죄송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참사 6일 후에나 사과를 했다.
윤창중 사건 때 스스로 책임지기보다는 청와대 보좌진을 질타하며 기강을 강조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때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혼자 도망친 선장을 ‘살인적 행위’라고 비난하고 구조에 실패한 해경에 대해서는 ‘해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지만 정작 스스로는 14일이 지나서야 사과했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면서 대통령이 책임을 인정하면 끝까지 밀린다고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정권 몰락의 한 원인이 된 것은 결코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지도자에게 국민들이 질렸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이끄는 최고의 리더로서 국정 전체에 대해서 최종적 책임을 진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빙의해 관료들에게 호통을 치는 것은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다.
신동아 12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