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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 특집 | ‘핵 왕따 위기’ 한국외교의 초상 |

김일성 | 싱가포르 부러워한 老정객… “개혁·개방하려 해”, 김정일 | ‘아버지 짓누르고’ 제 살길 찾은 ‘美國바라기’, 김정은 | “서울 단숨에 타고 앉겠다”는 담대한 전략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核전략 어떻게 다른가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김일성 | 싱가포르 부러워한 老정객… “개혁·개방하려 해”, 김정일 | ‘아버지 짓누르고’ 제 살길 찾은 ‘美國바라기’, 김정은 | “서울 단숨에 타고 앉겠다”는 담대한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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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자 고립감에 시달렸다. 북한은 중국에 배신당했다고 여겼다.”

자오후지(趙虎吉)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북한이 핵 개발을 시작한 까닭을 1989~1991년 소련·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와 한소수교(1990), 한중수교로 인한 고립감과 체제 불안에서 찾는다. 

자오 전 교수는 김일성 통치 시기부터 북한을 수시로 오간 북한통(北韓通)이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우창(五常)시에서 태어난 중국인이되 한국·북한인과 정체성 일부를 공유한다. 부모 고향이 각각 평안도, 경상도다. “김일성은 김정일과 달랐다”고 그는 설명한다.

“김일성은 나진·선봉을 제2의 싱가포르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개혁·개방을 선택한 거다. 김영삼(YS)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느닷없이 죽는다. 자연사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YS가 평양에 갔더라면 북한은 완전히 다른 길로 갔을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 간 권력·노선투쟁이 있었다는 건 과도한 추측 아니냐고 질문하자 그가 이렇게 답한다.



“노선·권력투쟁이 일어났을 공산이 없다고 볼 수 없다. 김정일은 굉장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김일성은 1994년 7월 25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7월 8일 사망한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던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 회고는 자오 전 교수 견해와 맥이 닿는다. 



북핵 문제의 기원

“김일성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지 않아 김영삼-김일성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두 정상 간 한반도 통일과 핵 문제에 관한 통 큰 결단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이쪽에서는 김영삼 대통령, 저쪽에서는 김일성 주석이었으니까, 당사자들 각자 위치나 위상으로 보아 ‘무엇인가 이뤄낼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했고 또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한승주, ‘외교의 길’에서 인용) 
한 전 장관은 1차 북핵 위기 때 중국이 역할을 적극적으로 했다고 기록한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미국, 외교적으로 중국 압박을 받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받아들이는 등 움직였다는 것이다. “1992년 한중수교를 거치면서 중국이 북한을 한 차례 버렸다”는 게 중국학 권위자인 서진영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명예교수) 평가다.

당시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던 정종욱 전 주중대사는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이 ‘그간 2선에 물러나 있었는데 사태가 엉망이 돼버렸다. 조국에 마지막 봉사를 하고자 다시 복귀해 남북 정상회담도 열고, 핵 문제도 해결하고 은퇴할 것이다. 남북회담 의제엔 조건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국에 전했다”고 말한다. 김일성은 △남북 정상회담 △제네바 비핵화 협상 복귀 △IAEA 영변 핵시설 사찰 수락을 카터 전 대통령을 통해 YS에게 전달했다.

북한이 핵 개발을 시작한 때는 1980년대 말이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다. 닷새 후인 12월 18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 내 미국 핵무기가 없다”고 선언한다. 12월 31일엔 한국,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요구와 IAEA 사찰을 허용한다고 선언했다. 한미 양국은 1992년에는 팀스피리트(Team Spirit) 군사훈련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한반도가 해빙 분위기로 흘러간 것이다.


역류 일으킨 김정일·네오콘

1992년 여름부터 상황이 뒤바뀐다. 그해 7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결과와 북한 신고 내용이 어긋나면서 특별사찰 문제가 대두된다. 평양이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라는 강수를 두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당시 통일부 장관이던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아버지 부시(조지 H W 부시), 행정부 국방장관이던 딕 체니, 대통령비서실장이던 도널드 럼스펠드 등 미국 네오콘과 북한 강경 군부 세력이 상황을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고 본다. 1992년 10월 미국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이듬해 3월 재개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이던 도널드 그레그 태평양세기연구소 회장은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에서 “(네오콘에게) 완전히 기습당한 꼴이었다”고 썼다. 미국 네오콘 탓에 평양의 강경 군부가 힘을 얻었다는 게 한 전 장관 주장이다.

“팀스피리트 군사훈련 재개 결정으로 가장 큰 힘을 얻은 것은 북한 강경 군부 세력이었다. 그 세력 뒤에는 이미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이 있었다. 북한 군부는 김정일이 장악하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사에 감동받은 김일성이 왜 강경 군부를 관리하지 못했는지 언뜻 이해할 수 없었으나 북한의 실권은 김일성에서 김정일에게로 넘어갔음을 곧 실감할 수있었다.”(한완상,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에서 발췌 인용)

‘한미 군사연습 축소 또는 중단을 검토하면서 핵 동결을 출입구로 삼아 핵 폐기 및 평화협정으로 나아가자’는 취지의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 견해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일시 중단한 1992년 상황을 2017년에 원용한 것이다. 핵 능력이 초보 수준이던 당시와 달리 평양이 완성 단계에 도달한 핵을 포기하려 하지 않으리라는 점에서 문 특보 주장은 비판을 받는다.  

YS는 1993년 2월 25일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면서 김일성에게 대화를 제의한다. “세계는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민족과 국가 사이에도 다양한 협력이 이뤄집니다. 그러나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 어느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14대 대통령 김영삼 취임사에서 인용)



김정일 ‘3대 전략’의 딜레마  

요컨대 1994년 상황은 남북 모두 공유하는 민족주의 정서가 현재보다 강했으며 김일성은 싱가포르가 이뤄낸 성취를 부러워하면서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려 했는데, 김정일이 강경 군부와 함께 김일성을 짓누르고 제 갈 길을 갔다고 재구성해볼 수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 극심한 식량난을 겪는다. 김정일에겐 정치적, 생물학적 생존이 중요했다. 다음은 자오 전 교수 설명이다.

“김일성은 나라가 잘되는 방향으로 바꾸고 죽을 수 있었으나 민주적, 평화적으로 통일이 이뤄져 선거한다면 김정일은 어떻게 되겠나. 김일성이 죽은 다음 제(祭)를 지낸다며 3년을 보낸 후 내놓은 게 선군(先軍)정치다. 선군정치는 생존전략이면서 국내 정치전략이다. 당도 내각도 믿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 위기를 차단하는 위기관리 조치로 선군정치를 택한 것이다. 선군정치가 국내용 생존전략이라면 대외용이 핵 개발이다. 한국은 한미동맹으로 미국을 업었으며 중국은 믿을 수 없었다. 경제 전략으론 7·1 조치(2002)를 내놓는다. 7·1 조치는 중국 개혁·개방 초기보다 더 깊은 개혁이다. 개인 투자까지 허용했다. 이발소, 식당 이런 게 다 허용됐다. 문제는 3대 전략(선군정치, 핵 개발, 7·1 조치)이 서로 마찰 관계라는 점이다. 경제를 개발하려면 평화로워야 하는데, 평화로워지면 선군정치가 정당성을 잃는다. 투자가 들어와야 하는데 핵을 개발하면 외자 유치가 불가능하다. 3대 전략이 마찰하면서 북한이 악순환에 빠진다.”

그는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 노선’도 김정일의 ‘3대 전략’과 비슷한 딜레마에 처했다고 본다.

“김정은 통치 이후 북한 경제성장률이 연간 4%에 달한다고 본다(7월 21일 한국은행은 2016년 북한 경제성장률을 3.9%로 추정했다). 경제가 개선돼 자신감이 넘치는데, 그게 한계다.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이 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우리나라는 기름과 고무 빼곤 모든 자원을 다 가졌습니다. 자력갱생(自力更生)이 가능합니다’다. 북한 과학기술이 기초연구에 매달려왔는데, 과학자들을 응용과학으로 돌리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자신감을 김정은이 가졌다. 그런데 북한처럼 군수산업 비중이 높은 경제구조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일본이 6·25전쟁으로 살아나고, 한국이 베트남전 덕을 봤다. 군수산업이 돌아가려면 외부에서 전쟁이 일어나 군수품 수요가 늘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북한 공산품은 품질이 좋지 않은 데다 생산력도 떨어진다. 북한 경제가 더 개선되긴 어렵다. 이런 상황인데도 김정은은 자신감이 넘친다.”

자오 전 교수는 김정은은 중국이 압력을 가한다고 무릎 꿇을 상대가 아니라고 분석한다.
“무아마르 카다피(전 리비아 최고지도자)의 죽음은 북한엔 피부에 와 닿는 일이다. 미국에 덤벼 안 자빠진 놈이 없는데 힘을 가져야만 살아남는다는 게 북한 논리다. 현재는 ‘핵을 갖고 강국이 됐다, 감히 나를 못 건드린다, 경제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진 상황이다. 핵 포기는 그들이 보기에 죽는 길이다. 저 사람들, 무릎 안 꿇는다.”


“김정은은 당대 최고 전략가”

그는 김정은이 김정일과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세 가지가 다르다. 첫째, 어리다. 권력을 확실히 잡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인사권을 막 휘두르는 등 무단(無斷)적 행위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젊다는 건 이념이 확고하지 않다는 얘기다. 둘째, 집권 환경이 다르다. 김정일은 20년 넘게 아버지 그늘에 있다가 혼자가 된 반면 김정은은 곧바로 홀로 섰다. 셋째, 외국 유학 경험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경제·문화·사회·교육 다 봤다. 이 셋을 합치면 김정은이 변화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개혁·개방으로 가면 체제가 흔들리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정당성을 잃는다. 그 사람들이 아파하는 게 뭔지, 두려워하는 게 뭔지 정확히 파악해 그것을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김정일은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말하곤 했다. ‘김정은의 북한’ 또한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라는 태도를 밝혀왔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일방적 핵 포기가 아니다. 미국 위협 해소(평화협정 및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 전체 비핵화(미국 핵우산 폐기)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일한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김정은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김정은은 당대 최고 전략가다. 북한의 목을 쥔 중국이 하지 말란 짓을 하면서도 큰 벌 안 받고 이겨내고, 미국이 예방 타격을 협박하는 생존 게임에서도 기 안 죽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미치광이 취급하나.”(‘주간동아’ 1004호 인터뷰에서 인용)

생존을 위해 김일성 뜻을 거스르고 핵무장에 나선 김정일은 ‘미국바라기’ 측면이 있었다. 핵과 미사일을 북·미 관계 정상화 지렛대로 사용하려는 태도를 내비쳤다. 북·일 수교를 통한 식민지 지배 보상금에도 관심이 많았다. 김정은은 핵을 체제 보장이나 협상용으로 여긴 김정일과 다르다. 김정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담대하면서도 입체적인 전략을 내놓았다. 김정은이 손에 쥔 ‘핵사용 설명서’는 평화협정→미군철수→통일대전→북한 주도 통일을 가리킨다.



“수렁으로 몰릴 것”

“인민군대에서는 서울을 단숨에 타고앉아 남반부를 평정해야 한다. 전략군에서는 앞으로 태평양을 목표 삼아 탄도로켓 실험을 많이 해서 전략 무력을 실전화해야 한다.”(김정은)

서울을 순식간에 평정하고, 핵과 미사일로 미국 핵우산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전시 미군 증원을 막겠다는 것이다. 자신감 가득한 야심가, 김정은은 핵무기를 완성한 후 협상장에 나올 것이다. 미국·중국과 ‘맞짱’ 뜰 핵보유국이 됐다고 선전할 것이다. 경제 제재를 해체시키고 경제 발전 재원을 마련하려 들 것이다. 핵-경제 병진 노선 성공을 이뤄내려 할 것이다. 김정은은 성공할 것인가.
 
자오 전 교수는 이렇게 전망한다.

“핵-경제 병진 노선이 한계에 다다랐다. 한계가 온 시점부터 3년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3년이 지나도 이런 상황에 이어지면 김정은은 수렁으로 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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