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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라인’ 동쪽으로 美 몰아내는 게 中 목표

미국 vs 중국, 태평양 패권전쟁

  • 장량(張良) | 중국청년정치학원 객좌교수·정치학박사

‘하와이 라인’ 동쪽으로 美 몰아내는 게 中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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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늄 농축 문제와 관련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끈질기고 강력하게 반발하는데도 지난 7월 이란과 타협한 데서 보듯 세계 각지의 다종다양한 문제에 동시에 개입할 힘도 줄었다. 북한의 안보 위협 저지를 포함해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에서 발생하는 군사안보 문제에 스스로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칠 군사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동아시아 국제 정치판의 졸로 전락할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 북아메리카 대륙의 중심부를 영토로 하는 면적 982.6만㎢(세계 3위), 인구 3억2000만 명(세계 3위), GDP 16조8억 달러(세계 1위)의 최강대국이다. 기축통화 발권력을 가졌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을 중심으로 한 국제금융체제도 장악했다. 영어와 할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막강한 문화권력도 지녔다. 미국의 군사력 투사 범위는 옛 몽골제국이나 대영제국보다 넓다. 동아시아, 유럽, 중동 등 대륙과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 대양의 130여 개 국가에 3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전개하고 있다.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위치했으나 영국과 독일 등 유럽 문화를 기원으로 하는 미국은 18세기 말 건국 이래 늘 유럽 우위, 즉 대서양주의에 기초한 대외정책을 취해왔다. 2013년 겨울 베이징에서 만난 주중(駐中) 미대사관의 한 외교관(한국 근무 경력도 있다)은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은 늘 유럽이었고, 중국이 부상한 지금도 유럽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외교안보정책 목표 중 가장 중요한 4가지를 들었다.

첫째, 본토를 외침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대량파괴무기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 둘째, 유라시아 대륙에서 세력균형을 확보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유라시아 대륙의 양 날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함께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자유롭고 개방된 세계경제 질서를 확보하는 것이다. 넷째, 매장량이 풍부한 대규모 셰일가스전을 갖고 있으나 안정된 에너지 공급선을 확보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페르시아 만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다른 나라의 독점적 지위 확보를 막아야 한다.

이 가운데 우리와 가장 밀접한 것은 ‘중국, 일본, 러시아, 인도, 독일 등 강국이 위치한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세력균형 유지’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세력균형이 무너지면 미국의 패권도 종말을 고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한국의 국가 안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13억5000만 인구의 초대국 중국의 부상과 도전은 독일의 히틀러 제국이나 일본제국, 소련의 도전과는 규모가 다르다. 미국은 지금껏 상대한 나라와는 판이한 규모와 문화를 가진 국가의 도전에 직면했다.



美의 對日 애증 변주곡

미국은 1776년 대서양 연안 13개 주에 나라를 세운 이래 계속 서쪽으로 나아가 19세기 중반에는 태평양 연안 캘리포니아에 도달했다. 1893년 하와이를 거쳐 1898년에는 타이완 남쪽에 위치한 필리핀까지 손에 넣었다.

필리핀에 교두보를 확보한 미국은 거대 국가 중국에 대한 이권을 놓고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의 유럽 국가 및 일본과 경쟁했다. 당시 중국 연안에서 제동이 걸린 미국의 관심은 이후 유라시아 대륙의 특정 국가가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것, 즉 세력균형 유지로 바뀌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세력균형 유지라는 측면에서 미국의 적국은 1900년대 초까지는 러시아, 1930년대 이후에는 일본이었다.

일본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청나라와 러시아를 차례로 격파하고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한 데는 러시아의 남진을 우려한 영·미(Anglo-Saxon) 세력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일본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아버지로 주일(駐日) 미대사관 무관이던 아서 맥아더도 참관한 뤼순(旅順) 203고지 전투 등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직전 미국과 일본은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체결해 필리핀과 조선에 대한 우월권을 맞교환했다. 영국은 2차례에 걸친 영일동맹을 통해 일본을 지원했다.

미국은 러일전쟁 이후 뤼순과 다롄(大連)을 포함한 남만주 이권을 놓고 일본과 갈등했다. 이로 인해 일본의 조선 병탄은 약 5년 지체된 1910년에야 완성됐다. 대공황(1929~1939) 발생 직후인 1930년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주요 관심은 일본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만주와 중국 본토, 동남아, 서태평양 군도를 놓고 벌어진 미·일 간 갈등은 태평양전쟁(1941~1945)으로 이어져 원자폭탄 투하와 함께 일본의 패전으로 끝났다.

종전 후 미국은 장제스의 중국을 지원해 러시아의 확대판인 소련의 남진을 저지할 계획이었으나, 1949년 10월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내전에서 승리하자 일본을 동아시아 제1동맹국으로 선택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NATO와 함께 자본주의 세계의 보루인 미국의 양 날개 중 하나가 됐다.

2차대전 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기초가 된 것은 독도 영유권 분쟁의 원인이기도 한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초안과는 달리 일본이 영유권을 포기해야 할 한반도 도서 중 하나로 독도를 명기하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불씨가 됐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일본이 포기해야 할 도서의 예로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만 명기했다.

애치슨 라인, 닉슨 독트린

1948년 한반도 북부에 이어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했지만 미국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여전히 낮게 봤다. 미국이 38선 이북을 소련에 넘겨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딘 애치슨 당시 미 국무장관은 1950년 1월 미국신문기자협회 연설에서 미국의 서태평양 방위선은 알류샨 열도-일본 열도-오키나와 열도-필리핀 열도를 잇는 선이라고 선언했다.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방위선 밖에 놓은 애치슨 라인은 북한 공산세력의 남침 욕구를 자극했다.

1950년 6월 25일, 6만여 명의 재만(在滿) 조선인 병력이 주공(主攻)이 된 북한군이 한국을 침공하자 미국은 일본 방어와 함께, 소련의 서진(西進) 시도와 관련해 서독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을 신뢰하지 않으리라는 우려 때문에 전쟁에 개입했다. 전쟁이 소강 국면에 들어간 1952년 미국은 중앙정보국(CIA)을 동원해 ‘부산 정치파동(직선제 개헌)’을 계기로 공산 측과의 휴전협상을 방해하던 이승만 제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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