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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이 불수록 바람개비는 더 세차게 돌아간다”

Interview -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

  • 기획·취재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거센 바람이 불수록 바람개비는 더 세차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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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YWCA 선정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 수상
  • ● ‘보증금 없는 병원’에서 ‘새생명찾아주기운동’으로
  • ● 4개 대학 통합 가천대…글로벌 명문대 지향
  • ● 내년은 ‘Gachon Project 2025’ 가동 원년
바람개비를 유난스레 좋아한 소녀가 있었다. 수수깡에 형형색색 종이를 붙여 만든 바람개비는, 바람 불어 좋은 날이면 미지의 미래를 향해 한껏 꿈을 키워가는 소녀의 ‘발전기’였다. 바람이 잦아들 때면 소녀는 바람개비를 힘차게 돌리려 산으로 들로 쉼 없이 달렸다. 역경과 고난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맞선 소녀에게, 바람개비는 때로 번민과 잡념을 떨치게 하는 ‘환풍기’였다.

‘바람개비 소녀’는 어느덧 스스로 ‘멈추지 않는 바람개비’가 됐다. 의사이자 교육자인 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가천길재단 회장) 이야기다.

이길여 총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듬해인 1958년 인천에서 개원한 24평짜리 작은 ‘이길여산부인과’를 모태로, 1978년 의료법인 길의료재단을 설립하고 현재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1998년 후진 양성을 위해 가천의과대학을 세운 뒤 2005년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을, 2006년 경원대와  경원전문대를 통합했으며 2011년 두 대학을 합쳐 사실상 4개 대학을 통합한 가천대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 총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자수성가한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2012년 3월 미국의 3대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2012 세계를 움직이는 여성 150’에 선정됐고, 같은 해 8월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가 수여하는 ‘인촌상’(공공봉사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올해 11월 3일엔 여성 권익과 지위 향상을 위해 헌신해온 공로로 YWCA 선정 제14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을 받았다.



이런 그에게 바람개비는 꺼지지 않는 열정과 도전정신의 표상이다. 가천대와 가천대 길병원 로고인 ‘G(‘가천’을 의미하는 영문 이니셜)’자 한가운데 바람개비 문양이 빠지지 않는 연유다.

이 총장에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을 받은 소감부터 물어봤다.



박애, 봉사, 애국

“평생 환자를 따뜻이 돌보고 학생들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온 걸 인정받은 듯해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하는 일에 공감하는 분이 많아지면서 ‘박애, 봉사, 애국’이란 가천길재단의 정신도 점점 공감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많은 분이 나눔과 돌봄을 얘기하는데, 이는 곧 ‘희망의 증거’ 아닐까요. 나누는 ‘봉사의 정신’과 ‘공존의 정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가천대 총장으로서 학생들이 매년 국내는 물론 베트남과 동티모르, 캄보디아 등 15개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지원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전공을 살려 지역사회 벽화 그리기, 집짓기 등에 나서는 등 작지만 뜻깊은 봉사활동을 하며 사회에 밝은 빛을 비춥니다.

아울러 가천대 길병원에선 개발도상국 환자를 초청해 무료로 심장병 수술을 해주는데, 1996년부터 지금까지 16개국 400여 명을 치료했습니다. 1983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부부가 우리나라 어린이 2명을 초청해 심장병 수술을 해주는 걸 보고 느낀 바 있어 ‘새생명찾아주기운동’을 시작했어요. 최근엔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의 환자들을 초청해 새 생명을 찾아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가진 의료 및 교육 인프라를 바탕으로 국경을 넘는 봉사를 적극적으로 실천할 계획입니다. 저의 이런 봉사철학을 잇는 이가 더욱 많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 ‘이길여산부인과’ 개원 후 ‘(입원)보증금 없는 병원’을 운영하는 등의 과감한 결단은 지금까지도 국내 의료계에서 회자됩니다.

“1958년 개원 직후 환자가 구름떼처럼 몰렸어요. 서울에서 온 젊은 처녀가 진료한다는 소문에 구경 삼아 온 이들도 있을 만큼 화제였죠. 그만큼 병원과 의사를 접하기 힘든 시대였어요. 국내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해 특별한 사명감과 희생정신이 없고선 의사 가운을 입을 수 없는 시대였죠.

개원 이후 1977년 의료보험제도 시행 전까지 ‘보증금 없는 병원’ 푯말을 내걸었을 때 주변의 다른 병원들에선 걱정이 많았어요. 돈이 없어 진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한둘이 아니니 금세 문을 닫을 거라고 했어요.

결과는 정반대였죠. 현재 가천대 길병원은 전국 최고 수준의 대형 병원으로 성장했습니다. 돈을 못 내고 진료받은 환자들은 고마운 마음을 평생 가슴에 담아두고 형편이 될 때 조금씩 갚기도 했고, 제철 농산물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환자에게 제 병원을 소개하기도 했고요. 제겐 ‘돈을 내지 못한 환자들이 고마운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살면 언젠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될 것’이란 신념이 있었어요.”



청진기 걸어주는 이유

▼ 인재 양성에 대한 열정도 유명합니다. 가천의과대학 설립 당시 입학생 전원에게 등록금 면제, 기숙사 제공 등의 혜택을 줬는데요.

“의사가 되고 싶어 열심히 노력한 학생들이 경제적 여건 등 현실적 이유로 꿈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환자를 살리는 일만큼이나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가천’의 이름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최고의 환경에서 오롯이 훌륭한 의사, 자신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가 되는 데만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생각입니다. 2015년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과대학으로 전환한 뒤에도 의과대학 신입생에게 똑같은 혜택을 주고 있어요.

저는 졸업식 때마다 새내기 의사가 된 제자들 목에 청진기를 걸어줍니다. 저는 산부인과 진료 시절, 가슴에 늘 청진기를 품고 다녔어요. 가뜩이나 병원은 환자에게 두려운 공간인데, 차가운 쇠붙이까지 갑자기 몸에 닿으면 치료도 하기 전에 공포감이 더욱 커지니까. 체온으로 따뜻이 데운 청진기로 진찰하면 환자들이 놀라지 않았어요. 새내기 의사에게 청진기를 선물하는 건 ‘환자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항상 유념하라는 뜻에섭니다.”

▼ 국내 의료 발전을 견인해온 원로로서 우리 의료계가 나아갈 방향을 조언하신다면.

“국내 의료기관들이 내부적 경쟁만 해선 안 돼요. 세계적 흐름을 읽고 선진 기술에 먼저 접근해야 합니다. 의과학 분야에서 세계 수준을 뛰어넘어야 해요. 의사와 과학자들이 국내에서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죠. 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가천대 뇌과학연구원, 이길여암·당뇨연구원, 가천바이오나노연구원 등의 설립을 구상했고, 이 3대 연구기관은 불과 10여 년 만에 해당 분야에서 세계 어느 기관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뇌영상, 진단 분야 등은 세계 유일의 특허를 보유하는 등 세계 최정상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녜요. 뇌를 손금 보듯 들여다보는 시대가 곧 열립니다.  

인공지능(AI) 분야도 마찬가집니다. AI를 의료에 접목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흐름을 빨리 읽고 선봉에 선다면, 처음 길을 가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노하우를 습득하게 됩니다.”



‘하면 된다’와 ‘상전벽해’

▼ 가천대는 올해 통합 5년을 맞았습니다. 그동안의 가장 큰 변화로는 무엇을 들 수 있습니까.

“2006년부터 시작한 4개 대학 통합을 2011년 완성했습니다. 2012년엔 가천대로 새롭게 출범했죠.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학 숫자만 많은 것보다는 한국을 이끌 글로벌 명문대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이뤄냈습니다. 통합으로 가천대는 대학원생을 포함해 경기 성남과 인천에 총 2만여 명이 재학 중인 대규모 대학이 됐어요. 의과대와 한의대, 약학대, 간호대를 모두 갖춘 메디컬 파워도 가천대의 자랑입니다. 상상하기 힘든 변화가 이뤄진 거죠. 매년 사회각계에서 맹활약하는 동문을 초청해 ‘자랑스러운 가천인의 밤’ 행사를 여는데, 이때 모교를 방문한 동문 모두가 ‘상전벽해’라며 발전상에 놀라워합니다.

통합이 외형적 변화라면 통합 이후엔 글로벌 경쟁력 강화, 교육환경의 획기적 개선, 학교 재정 건실화를 3대 목표로 내적역량 강화에 공을 들였어요. 가천대 출범 이후 임상교원 76명을 포함해 우수교수 386명을 신규 초빙했으며, 우수 논문이 쏟아지고 국내외 특허출원, 연구 프로젝트 수주 등이 이어졌습니다. 입시 경쟁률과 입학성적도 올라갑니다. 2017학년도 수시모집에서도 18.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의과대는 38.1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학생과 교직원, 동문 등 대학 구성원의 자신감과 긍지가 높아진 겁니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가천대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 각종 정부 지원사업에도 선정됐는데요. 주요 성과와 비결은.

“끊임없이 도전했습니다. 고치고 부족한 게 있으면 또 고쳤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바꾸고 또 바꿨습니다. 가천대의 강점은 ‘can do(할 수 있다)’ 정신입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출발도 하기 전에 실패는 예견된 겁니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임했기에 각종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었어요. ‘2014년 교육부 대학특성화 사업’에서 수도권 1위로 6개 사업단이 선정돼 5년간 200억 원을 지원받아 특성화에 매진 중이고, 올해 초 성과 평가에선 6개 사업단 모두 ‘우수’를 받아 성과를 인정받았습니다. ‘2015년 교육부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Advancement of College  Educdtion, 일명 ‘잘 가르치는 대학’)에도 선정돼 학부 교육의 우수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가천대는 평균 7.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경기·인천지역에서 유일하게 선정됐습니다.

이와 함께 미래창조과학부 전국 8대 소프트웨어(SW) 중심대학 선정, 교육부 1주기 대학구조개혁 평가 최우수 A등급 획득, 고용노동부 ‘장기현장실습(IPP) 일학습병행제 사업’ 선정 등으로 수도권 명문사학의 입지를 단단히 굳혀가고 있습니다.”



덕성 갖춘 글로벌 인재 양성

▼ 가천대가 지향하는 인재상은 무엇입니까.

“덕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입니다. 이를 위해 가천리버럴아츠칼리지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인성 함양에 각별한 정성을 들여요. 캠퍼스에 텃밭을 만들어 학생들이 배추, 고추 등을 심으며 생명과 나눔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하는 등 따뜻한 인성이 스미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미래사회는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됩니다. 전공 불문하고 SW를 모르면 앞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가천대는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소프트 파워를 갖춘 인재를 양성하려 SW 교육에 주력합니다. 올해부터 그동안 쌓아온 SW 교육 노하우를 살려 학생들의 SW 교육을 의무화했어요.

세계엔 국경이 사라졌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실시간 공유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글로벌 감각과 어학능력도 필수입니다. 가천대는 하와이가천글로벌센터를 글로벌 교육의 전진기지로 삼아 다양한 글로벌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멈추지 않는 바람개비

▼ 향후 가천대 발전을 위한 핵심 전략은 무엇입니까.

“앞으로의 10년을 위해 시대 변화에 발맞춰 중장기 발전전략을 준비하고 있어요. 대학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수립 중인 ‘Gachon Project 2025’가 그것입니다. 대학 발전을 위한 전 구성원의 지혜도 모읍니다. 내년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원년으로 새로운 변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비전과 목표, 발전계획을 재설정하고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대학 프레임을 만들 것입니다.”

▼ 청년들이 취업난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은.

“‘헬조선’ ‘인구론(인문계 90%가 백수)’ 등 신조어가 젊은 세대에서 유행합니다. 청년실업과 경제불황 등으로 많은 청년이 노력해도 안 돼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하지만 젊은 세대의 강점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실패는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키는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 말고 도전하세요.

간절히 꿈꾸고 그 꿈을 향해 달려 나간다면 못 이룰 게 없습니다. 난관에 부딪혀도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합니다. ‘흙수저’ ‘헬조선’ 같은 자조와 푸념으로 하루하루 아까운 시간을 소모하지 말고 당당히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노력하는 사람에겐 길이 열리고 간절하면 통하게 마련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틈만 나면 ‘바람개비 정신’을 강조합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바람개비처럼 당당하게 맞서라’고. 힘내야 합니다.”

바람이 분다. 이 총장의 바람개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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