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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崔·朴의 그림자

“유신헌법 신임투표 자금 금고로 옮겼다”

박정희 대통령 청와대 집무실 금고의 진실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유신헌법 신임투표 자금 금고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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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 효자동지점

“유신헌법 신임투표 자금   금고로 옮겼다”

1979년 11월 3일 열린 국장에서 박근혜 영애가 고 박정 희 대통령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동아DB]

▼ 마련한 돈은 얼마나 됐나.

“직접 보고 들은 게 아니라서 정확한 액수는 모른다. 하지만 국민투표를 충분히 치를 정도 돈이라고 들었다.”

이듬해인 1980년 신군부는 5공화국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이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경제기획원에 요구한 국민투표 소요 예산이 78억 원이었다. 이것으로 대통령 집무실 금고 속 자금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 그 돈은 어떻게 조성했나.

재벌이나 돈 많은 사람들에게서 받았다. 그 실무를 김씨가 했다. 그가 직접 돈을 받으러 다녔다고 말했다.”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회고록 ‘아, 박정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기록한 바 있다.

“나는 정치 성금 대상 기업을 엄선하고 그 기업주를 청와대 신관에서 만나 기업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판공비와 기밀비 중 일부를 민주주의의 필요악적 비용인 정치자금으로 도와줄 것을 요청하면서 반대급부는 일절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성금은 최고 1억 원, 최하 1000만 원 범위 내에서 각 기업의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부탁한 스물대여섯 기업주는 모두 기꺼이 승낙하고 협조를 확약해주었다.”

기업들로부터 광범위하게 정치자금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 김정렴 비서실장도 당시 기업들 대상으로 연간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당시 경제 규모로 기업에 또 다른 비자금을 요구하는 게 무리다 싶은데.

“크게 무리가 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 그 돈은 어디에 보관했나.

“내가 듣기론 기업이나 재력가들로부터 돈을 받으면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예금해놓았다. 확실한 건, 개인적인 착복을 위해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명이나 차명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이름이나 대한민국 정부 이름으로 개설했을 것이다. 정확한 건 모르겠다. 아무튼, 이자를 포함해 목표액을 넘자 그 돈을 빼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금고로 옮겼다고 들었다.”

▼ 모두 현금으로?

“현금만 있는 게 아니라 수표도 있고….”

그에게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금고를 말하는 것이냐고 확인하자 그는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금고의 존재를 알고 있다”며 “당시 청와대 본관 1층은 집무 공간이었고, 2층을 대통령 사저로 사용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열쇠냐, 번호냐

대통령 집무실에 금고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공식적으로 박정희 대통령 집무실에 최초로 들어간 것은 11월 14일 최광수 당시 대통령권한대행 비서실장과 공식조사팀(고건 당시 정무제2수석비서관, 김태호 의전비서관, 정기옥 의전비서관, 박학봉 부속실비서관, 이광형 부속실 부관, 유혁인 정무제1수석비서관)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확인했을 때 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정기옥 전 대사(당시 의전비서관)는 최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금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통령 책상에도 문구용품 몇 개 있는 정도였고, 특별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고건 전 총리(당시 정무제2수석비서관)도 “(금고 안에는) 서류 몇 장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확인해주었다.

그런데 정 전 대사는 당시 상황과 관련해 의미 있는 증언을 했다. “당시 집무실은 범죄 현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출입금지 팻말이 있거나 줄을 쳐놓는 등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지 않았다”는 것. 열쇠만 있으면 집무실에 들어갈 수 있고, 실제 누군가 출입했어도 이를 알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대통령 집무실 열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본관 경호원과 박근혜 영애뿐이었다.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10월 27일 새벽 대통령 집무실이 어떻게 돼 있는지 가봤더니 잠겨 있었고 열쇠를 박근혜가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박학봉 부속실장도 “그 일이 있고 나서 저희들은 집무실 열쇠와 금고 열쇠를 본관 경호원에게 맡겼다. 박 대통령은 별도로 금고와 서랍 열쇠를 갖고 계셨다. 따라서 10월 26일 이후 근혜 씨만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과거 인터뷰에서 “국장(國葬)이 끝난 11월 초순에 아버님 집무실을 정리한 적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그(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금고는 열쇠로 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쉽게 열 수 있는 것이었고 내용물도 서류들이었으며 귀중품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소각로로 사라진 금고

김계원, 박학봉 씨는 금고를 열쇠로 여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손으로 쉽게 여는 것(번호를 맞춰 여는 것으로 추정)이라고 말했다. 만약 금고가 열쇠로 여는 것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진술 전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대통령 집무실을 출입했던 인사들에게 연락해보았지만 누구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문제의 금고는 이미 1979년 말 소각로로 사라졌다.

▼ 박근혜 당시 영애가 가져갔을 것이란 소문이 있다.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가 몰랐을 리 없다.”

▼ 그러면 그 돈이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나.

“어디로 갔는지는 내가 보지 못했고, 확인하지도 못했다. 다만, 당시 계엄군 관계자들이 들어와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기는 했다.”

▼ 계엄군 관계자라고 하면.

“당시 실제 권력자가 누구였겠나. 신군부였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금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증인이라 할 수 있는 당시 청와대 직원 김00 씨를 만나려 했지만 그는 기자와의 만남을 고사했다. 채 회장 증언만으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금고에 78억 이상의 비자금이 들어 있었다고 확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준비하며 선거비용까지 마련한 게 사실이라면 ‘민주주의를 말살한 독재자’라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일정 부분 수정될 수 있다. 또한 국민투표 선거비용으로 모아놓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도 확인돼야 한다. 





신동아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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