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회장은 2004년 인터넷 포털 ‘다음’에 박사모 카페를 개설한 이후 줄곧 박근혜 대통령 팬클럽이자 지지 모임을 자처해왔다. 그는 2016년 10월 29일부터 이어져온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촛불집회에 맞서 같은 해 11월 19일 서울역광장에서 연 맞불집회를 필두로, 박사모 등 52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의 ‘태극기집회’를 이끌고 있다. 탄기국 대변인으로도 활동 중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무한 사랑’과 ‘탄핵 반대’를 외치는 박사모의 가감 없는 속내가 궁금했다. 1월 10일 정 회장을 만났다. 그의 재킷 옷깃엔 태극기 배지가 선명했다.
▼ 만나기가 어렵다.
“언론이 편파적인 탓이다. 집회신고 업무차 늘 경찰청을 들락날락거려 바쁘기도 하고. 아주 경찰청에 살림을 차렸다. 이번이 탄핵 정국 최초의 대면 인터뷰다.”
▼ 이곳이 박사모 사무실인가.
“탄기국 유튜브 방송 ‘Voice Of Justice(정의의 소리)’ 사무실이다. 박사모는 다음 카페 자체가 온라인 사무실이고. 오프라인 사무실은 따로 없다. 여기 말고 다른 데 내 개인 사무실이 있긴 하다. 그런데 너무 알려고 들지 마라.”
▼ 정 회장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기에 묻는 것이다. 본래 말투가 그렇게 거침없나.
“박사모 만들고부터 그렇다.”
CF 감독 출신

“TV CF 감독, 좀 코믹하지만. 내가 필름 세대다.”
▼ 대중에 알려진 히트작이 있나.
“그런 건 말할 거 없고…. 아무튼 돈 좀 만진 감독인데, 어느 날 문득 사업을 해보고 싶더라. 그래서 음성인식 어학학습기 사업을 벌였는데, 동업자 한 명이 수십억 원 떼먹고 필리핀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결국 접었다. 아직도 안 돌아왔다.”
경북 포항이 고향인 정 회장은 경영학을 전공했다. 박사모 카페 운영 전엔 상사맨과 CF 감독으로 일했고, 한때 ‘키스콤’이라는 광고제작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박사모의 전면에서 떠나 있던 최근 4년 동안은 모 회사에서 월급쟁이 생활도 했다. 영상소설 ‘쿠’(키스콤, 2000년), 수필집 ‘독도의 진실’(동강출판사, 2008년), 예수의 실존을 부정한 ‘예수는 없었다’(후아이엠, 2010년) 등 책도 몇 권 썼다.
기억의 휘발성
2017년 1월 10일 현재 박사모 회원은 7만2676명. 카페 개설 이래 최다 인원이다.▼ 박사모 카페를 정확히 언제 개설했나.
“2004년 3월 30일 밤 10시 30분.”
▼ 10여 년 전인데, 일시까지 다 기억하나.
“하도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인이 박였다.”
▼ 왜 만들었나.
“당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극성을 부렸다. 보수세력은 괴멸했고, 지금처럼. 인터넷 공간을 죄다 노사모가 장악했다. 그해 4월로 예정된 17대 총선을 앞둔 절박한 시기였기에 보수우파도 결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차에 마침 그날 그 시각 TV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한나라당 17대 총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나오더라. ‘아, 저 사람이 대통령감이다. 박근혜라면 보수우파 또는 중도세력이 재기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카페를 열었는데, 박사모보다 한 해 앞선 다음 카페가 있더라. ‘근혜사랑’이었다. 그때 근혜사랑 회원 수가 1만2000명쯤인가 그랬다, 박사모는 나만의 1인 카페였고. 근데 내 카페의 회원 수가 일주일 만에 1000명을 돌파했다. 그러곤 오프라인에서 엄청난 홍보활동을 펼쳐 근혜사랑을 추월해버렸다. 그렇게 시작한 거다.”
▼ 정 회장은 이렇게 기억을 잘하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했거나 특별검사팀에 소환되는 인물의 상당수가 왜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할까.
“이런 식으로 물어볼까봐 인터뷰 안 하려 했다. 김 기자는 일주일 전 일을 기억하나.”
▼ 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있다.
“나도 그렇다. 기억의 휘발성은 강해서 웬만한 사람은 일주일 혹은 한 달 전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걸 잘못이라 할 수 있나. 누구나 첫사랑은 기억하겠지. 그럼 3번째 사랑은?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인데도 모조리 기억하진 못할 거다. 그래서 이런 시(詩)가 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박인환, ‘세월이 가면’) 신(神)도 아닌 인간이 어떻게 모든 걸 기억하겠나.”
▼ ‘질문시답(質問詩答)’ 쯤으로 받아들이겠다. 근데 현재 보수세력이 궤멸된 상태라고 보나.
“지금 좀 살아났지. 촛불집회에 100만 명 모였다고 큰소리 뻥뻥 칠 때 보수단체 집회엔 100명도 채 안 모였다. 그런 상황에서 최초로 1만 명 단위를 넘긴 게 박사모의 서울역광장 집회다. 당시는 탄기국 결성 전이다. 탄기국 공동주최단체가 52개인데, 실제론 140개가량이 집회에 참가한다.”
▼ 탄기국 집회를 주도하는 까닭은.
“예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박사모 개설 당시 이런 약속을 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이 만일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난 박사모 활동을 사실상 멈추고 권력 주변엔 얼씬도 하지 않으며, 박사모를 해체하거나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 생업에 전념하겠다’고. 그런데 결국 2012년 말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약속을 지켜야 할 게 아닌가. 하지만 회원 76%가 해체에 반대했다. 그럴 즈음 어딘가로부터 연락도 왔었다.”
‘컴백’의 이유
▼ 청와대? 권력 핵심부?“이른바 실세는 아니고…주변부라고 하자.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더라.”
▼ 자리 제안을 받은 거네?
“그때 내가 뭐랬는지 아나. 2004년 당시 약속을 했으니 난 그 자리로 갈 수 없다. 내 힘으로 벌어먹을 수 있으니 또한 갈 이유가 없다. 내가 거기 가면 박 대통령한테 누가 되니 역시 갈 수 없다. 그러곤 박 대통령이 만일 위기에 빠진다면 돌아오겠다는 내용의 글을 카페에 공지한 후 박사모를 떠났다. 그게 4년 전이다. 근데 위기에 안 빠질 줄 알았는데 최순실 사태로 위기에 빠져버렸잖아. 그러니 난 또 약속을 지켜야 하겠지. 그래서 이번에 다시 나타난 거다.”
▼ 박사모의 정체성은 뭔가.
“사랑, 봉사, 평화, 정의 4가지가 회칙에 규정돼 있다. 공식적 정체성이다. 또한 우린 박 대통령을 포함한 그 어떤 정치인이나 외부 단체에도 예속되지 않는다. 오로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 사랑과 예속은 물론 다르지. 하지만 다른 정치인들이 박사모 조직을 활용하려 기웃거리기도 했을 텐데.
“많았지만, 일절 눈 안 돌렸다.”
▼ 촛불집회를 어떻게 생각하나.
“망국(亡國) 집회.”
▼ 왜 그렇게 보나.
“한번 따져보자. 지금까지 드러난 박 대통령의 죄가 있나.”
▼ 현재 특검이 수사 중이지 않나.
“수사 중인 사안으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나.”
▼ 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것 아닌가,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그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심리 중이고.
“국회의원들? 만일 그들의 양심이 잘못됐다면? 명확한 법률적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탄핵소추를 가결했다. 그런데도 증거물이 없다. 언론보도가 전부 아닌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단돈 1원도 먹지 않은 대통령을 무슨 죄목으로 탄핵?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다. 증오가 생겨나는 국면을 일부러 조성한 거다.”
▼ 누가 왜 그런 국면을 만들었다고 보나.
“어둠의 세력.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 검찰, 정치권이 다 짠 거지. 이번 사태에서 맨 먼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몰아내라고 박 대통령에게 압력 넣은 주체가 조선일보 아닌가. 박 대통령이 그를 안 쫓아내니 그다음에 왕창 붙은 거지.”
‘피바다’ 공연

“물론.”
▼ 어떤 측면에서?
“자, 봐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에 얼마를 퍼줬나. 그걸로 북한이 핵무기 만들었지 않나. 그건 팩트(fact)다. 박 대통령이 제일 잘한 건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 자체다. 개성공단 폐쇄, 통일진보당 해산 및 이석기 전 의원 구속도 잘했고. 무엇보다 그걸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웠다. ‘창조경제’를 들고 나온 것도 잘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이 전 지구적 이슈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 야당이 협조했나. 시시콜콜 발목 잡고 국정을 이끌지 못하게 하지 않았나. 그게 되레 잘못이다.”
▼ 그리 국정 운영을 잘했다면, 왜 이번 사태가 터졌을까.
“그러니 대통령을 잡을 게 아니라 어둠의 세력이 왜 그랬는지 밝혀야 하는 거다. 왜 검찰과 경찰, 특검은 거기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나. 내가 촛불집회를 망국 집회라고 한 건 정확한 표현이다. 초등학생이 ‘박근혜 죽여라’고 해도 되나. 살아 있는 대통령의 인형 목을 쳐서 장대에 꽂는 게 말이 되나. 그게 집회냐, ‘피바다’ 공연이지.”
▼ 박 대통령의 잘못은 전혀 없다는 뜻인가.
“소통 문제는 여러 번 지적됐지. 근데 난 대통령이 외부와 지나치게 소통하면 되레 부정부패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선지 박 대통령은 소통을 잘 안 했다. 그 바람에 최순실 씨가 바깥에서 돌아다니며 저지른 일이다. 박 대통령의 구체적 잘못을 논하라면, 난 없다고 본다.”
▼ 최순실 씨와 지나치게 가깝게 지낸 건 문제이지 않나.
“미국 대통령의 경우 공·사석에서 여러 사람 얘기를 듣는 것에 대해 불법을 논하지 않는다.”
▼ 여긴 대한민국이다. 근데 최순실 씨를 옹호하는 건가.
“최순실? 만일 내 눈앞에 보이면 폭력을 쓸 만큼 증오한다. 박 대통령의 신임을 팔았잖아. 그 점에서 그는 매우 잘못됐다.”
‘忠臣不事二君’

“다른 정치인 사랑할 생각 없다. 한 사람만 사랑해도 눈알 튀어나오려 한다.”
▼ 너무 맹목적인 사랑 혹은 추종 아닌가.
“‘충신불사이군 정녀불경이부(忠臣不事二君 貞女不更二夫)’라는 옛 말이 있다. 무릇 충성된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절 높은 여인은 두 지아비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멋지지 않나.”
▼ 진정한 ‘박근혜의 남자’ 같다.
“왕은 하나지만 충신은 많다. 그러니 내겐 첫사랑이라도 박 대통령에겐 많은 사람 중 하나겠지. 내가 그 글을 올린 건, 박사모의 사랑은 박 대통령에 대한 것으로 끝내겠다는 뜻이다. 모르지. 보수우파가 한껏 위기로 치달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면 다시 나설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렇게까지는 가고 싶지 않다. 이쯤에서 끝내야 나도 먹고살 길이 생기지.”
▼ 박사모 회장이니 박 대통령과 만날 기회가 많았을 법한데.
“2004년엔 많았다. 같이 행사도 여럿 했고, 자주 만났다. 그러다 1~2년 후쯤 박 대통령 쪽하고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많으면 되레 서로에게 상처를 줄 듯해 자연스레 멀어졌다.”
▼ 탄기국 집회를 일주일 단위로 연다. 개최 경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경비 현황을 보여주겠다. 카메라 들고 와라. (자리를 옮겨 책상 위 PC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사진 찍어라. 이게 서울역광장 집회 때 들어온 회원·시민들의 후원금이다. 1만 원, 10만 원, 20만 원…. 우린 100% 후원금과 현장 모금액만으로 행사를 치른다. 외부 지원은 전혀 없다. 나도 무보수로 일한다.”
▼ 최근 태극기집회와 관련해 박사모 카페를 통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인명진 목사의 입장을 물은 까닭은 무엇인가.
“서청원 의원 기자회견 중 인 목사가 ‘광화문 애국보수집회에 나가지 말 것을 강요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인 목사는 과거 도시산업선교회 활동 시절부터 줄곧 좌파 성향을 보였다. 그가 보수 성향이란 건 사기다. 경력상 보수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설사 전향했다 해도 전향서를 쓴 적이 없다. 예컨대 나는 전향한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가 지금 하는 짓이 과연 새누리당을 부활시키려는 건가. 되레 완전 궤멸 단계로 가고 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다.”
▼ 새누리당 당원인가.
“그렇다.”
탄핵 기각 때까지 집회
▼ 이재명 성남시장의 셋째 형 이재선 씨가 박사모 성남지부장에 임명된 경위는.“일전에 성남지부 회원 한 명이 사람을 소개해준다기에 누구냐 물으니 이 시장 형이라더라. 지부장 하려면 리더십이 있어야 하고 지부 정기·번개모임도 가져야 하니 시간도 많이 내야 한다. 어쨌든 전화 통화를 하게 됐는데, 내가 맡아달라고 설득했다. 지부장 자리가 비어 우린 사람이 급했으니까.”
▼ 1월 7일 ‘박근혜 대통령 체포’를 요구하며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분신한 정원스님이 결국 사망했는데.
“뉴스로만 접했다. 난 회원들한테 항상 평화 집회를 당부한다. ‘과격시위는 우리를 폭도로 만든다. 우리가 폭도가 되면 박 대통령은 죽는다’고. 스님이 열반에 드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고 싶다. 극단을 배제해야 한다. 자기 것이라고 마음대로 붙였다 뗐다 하는 게 생명인가.”
▼ 언제까지 집회를 계속할 건가.
“탄핵이 기각되는 그날까지.”
▼ 박사모도 유권자 집단이다. 차기 대선 때 조직 차원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할 생각이 있나.
“전혀 없다.”
▼ ‘4월 퇴진, 6월 대선’이란 새누리당 당론이든 아니든 박 대통령의 임기는 조만간 끝난다. 그 후 박사모 거취는.
“해체 여부를 회원투표에 부쳐야겠지. 회장으로선 해체하는 게 맞다고 본다. 2004년 개설 당시 그랬거든. 목표를 달성하면 역사 속으로 아름답게 퇴장하자고.”
▼ 박 대통령 퇴임과 더불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