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역삼각형 윗변’처럼 넓다
‘자유주의로 가자’는 취임사, ‘이해 부족’한 정치권
정치 실종된 대한민국, 진보·보수 모두 엉터리
명품 백, 의대 정원 같은 개별 이슈가 국정 덮어
‘담론 부재’한 한국 정치, 정쟁보다 더 큰 문제
“윤 정부 둘러싼 환경이 꼼짝할 수 없게 만들어”
“국정 모멘텀 실종되고 당은 당대로 정신 못 차리고…”
尹, 민심 넓고 정확하게 읽고 지혜 가진 사람과 대화해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윤 대통령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가 컸지만 4월 총선 결과가 말해 주듯 현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이나 내용에 대한 긍정 평가보다는 부정 여론이 우세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에게 남은 2년 반이 어떤 시간이 될지 우려한다.
지난 2년 반을 거울 삼아 국론을 모으고 국민 화합을 끌어낼 동력이 필요한 시점에서 김병준(70)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떠올렸다. 여야를 두루 경험했고,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캠프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지낸 그는 윤석열 정부 2년 반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 회장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로 재직한 뒤 2001년 새천년민주당 당무위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정치권에서는 그를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식견과 자유주의자로서 뚜렷한 소신을 가진 인물로 평가한다. 그래서일까. 진보·보수 정권은 그를 요직에 기용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무총리로 내정됐으나 당시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임명되지는 않았다. 2018년에는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으로 뽑혀 당 쇄신을 주도하기도 했다. 대선캠프 선대위원장과 인수위 시절에는 지역균형발전위원장을 맡았다. 10월 8일 서울 중구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정 운영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멘토로 활약하며 당선을 도운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윤석열 캠프에서 그는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뉴스1]
자유주의의 기본과 핵심
대선 전부터 윤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대선 출마를 마음먹기 딱 한 달 전에 상갓집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눈 정도다. 이전부터 특별하게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그간의 국정 운영을 어떻게 평가하나.
“세부 정책보다 국정 전체가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에 기반한 여러 생각이 내가 지닌 자유주의 사상과 일치한다. 그런 교감을 바탕으로 의기투합해 대선을 치렀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야기하던 자유주의가 제대로 착근하지 못해 굉장히 아쉽고 안타까운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이 일치했나.
“자유주의의 핵심은 탈국가주의다. 내가 가진 자유주의 사상의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국가 권한이 너무 크다. 모든 문제에 국가가 개입해 감독하고 감시하고 규제하고 승인하고 허가하고 처벌하는 게 가능하다. 이런 국가 권한을 확 줄여야 한다. 처음에는 좀 혼란스럽겠지만 우리 국민은 혁신 역량이 뛰어난 데다, 공동체 정신과 성공을 향한 열정도 강해 자유주의의 질서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윤 대통령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가 자유주의의 꿈을 내게 이야기를 했을 때 정말 세상이 이대로 흘러가면 좋겠다고 반응했을 정도로 기대가 컸다.”
윤 대통령이 말한 자유주의는 어떤 개념인가.
“자유주의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1단계는 공산주의나 아주 강렬한 사회주의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국민 개개인과 기업의 자유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게 자유주의의 기본이다. 자유주의는 국가가 공동체와 시장에 대한 규제나 감독은 줄이고, 역할과 기능을 키우는 방식으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가진 역량을 다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국민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자유권을 줘도 그 자유권이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와 상식, 공정의 질서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바탕을 이룬다.”
윤 대통령의 자유주의가 착근하지 못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자유주의라는 틀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간에 ‘문지방도 제대로 못 넘었다, 시작도 제대로 못 했다’고 할 수 있다. 여소야대 정국도 걸림돌이지만,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사적 이슈가 국정 전체를 가로막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는 야당이 김 여사를 트집 잡아 정부의 발목을 잡는 데 성공했다고도 이야기할 수가 있다. 정부가 급격하게 추진하다가 이해당사자들과 대치 상황에 있는 의대 정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국정을 다 멈추거나 아예 시작도 하지 못했다. 정말 안타깝다.”
정치 소멸 시대
왜 이런 상황이 됐다고 보나.
“정부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것을 이슈화해 국정의 주요 어젠다로 삼는 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의 논리도 함께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어느 쪽도 욕하지 못하는 게 지금 한국 정치 자체가 형편없다.”
정치가 형편없다?
“국민에게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역량을 발휘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치가 돼야 아는데 지금 어떤가. 비서관의 말 한마디, 선거에 관여한 사람의 말 한마디로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이슈들이 국정 전체를 막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가 거의 소멸돼 버린 느낌이랄까. 정치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해결할 과제가 많은데 정치권은 ….
“정치인들이 진영 논리를 갖고 싸우는데 내가 보기엔 진보나 보수나 엉터리다. 진보 진영에서는 ‘우리 사회의 억울하고 힘없는 약자를 대변한다’면서 맨날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한다. 힘없는 사람들이 언제 더 딱하게 되는지 아는가? 경제가 성장하지 않을 때다. 그런 사회에서는 춥고 배고픈 사람이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성장이 진보의 가장 중심 가치가 돼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진보가 성장전략이나 비전을 제시한 적이 있나. 그걸 비판하니 기껏 내놓은 게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은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에 담겨 있던 ‘임금주도성장’에서 ‘임금’을 ‘소득’으로 바꿔놓은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게 분배 정책이지, 성장 정책이 아니라는 거다.”
성장 정책이 아니다?
“특히나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형 국가에서는 절대적으로 성장 정책이 되지 못한다. 내수만 가지고는 우리 경제를 절대로 성장시킬 수 없다. 그런 엉터리 이론으로 우리 자영업자들을 얼마나 괴롭혔나.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했다. 대한민국의 진보 진영은 제대로 된 진보 정치를 한 적이 없다. 성장 이론도 없다. 성장 이론이 없다는 것은 결국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전혀 생각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국민의 이해가 필요할 때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설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지호영 기자]
“윤석열 정부 둘러싼 환경이 꼼짝할 수 없게 만들어”
보수는 진짜인가.
“보수의 가장 기본 가치가 자유라고 이야기한다. 자유는 공정과 상식과 정의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면 존속하지 못한다. 억울한 사람이 세상에 많아지면 사회주의혁명, 공산주의를 하자고 튀어나온다. 그게 유럽에서 나왔던 사회주의고 공산주의 혁명이다. 자유주의는 공정과 상식과 정의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보수 진영은 늘 힘센 자들의 논리를 대변했지 정의의 담론도, 공정의 담론도, 상식의 담론도 없었다. 엉터리다. 엉터리면 엉터리라는 것을 자각하고 국민을 위해 국가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싸움을 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싸워야 하는데 허구한 날 ‘디오르 백’ 얘기다. 대선 때 일했던 참모가 한 이야기가 국가 전체를 뒤덮어 다른 이슈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 이런 정치가 돼서는 안 된다.”
윤 정부가 잘한 일, 잘못한 일을 꼽는다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여소야대 정국에 모든 것이 발목 잡히더니 그다음에는 본질이 아닌 것들이 전부인 양 세상을 다 덮어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윤석열의 자유주의는 문지방도 못 넘었지만 크게 두 개의 바퀴를 굴리려는 시도는 있었다. 하나는 규제를 혁파하고자 했다.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국가권력을 확 줄이고 기업과 개인의 자율적 기능을 살리겠다며 탈국가주의의 그림을 제시했다. 또 한편으로는 지방시대를 선언하면서 지방분권, 지역 균형발전에 힘쓰고자 했는데 두 축 모두 처음부터 발목이 잡혔다.”
왜 발목이 잡혔나.
“지방시대를 열려면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지방분권위원회가 대통령의 자문기구로서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런데 두 기구의 구성원이 문재인 정부 때 임명한 사람들이었다. 윤 대통령과 철학이 맞는 사람들을 새로운 위원으로 채우려고 하니 아무도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두 위원회를 없애야 했다. 법을 개정해 폐지시키고 지방시대위원회라는 새 기구를 만드는 데만 1년 반이 걸렸다. 그러고 나니 이미 국정의 초기 모멘텀이 뚝 떨어졌다.
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규제 완화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었는데 관료조직은 관료조직대로 타성에 젖어 있었다. 게다가 건건이 모두 입법 사안이라 발목이 잡혔다. 그러니 두 바퀴를 제대로 굴려보지도 못한 상태로 2년 반이 흘러버렸다. 지금은 사람들이 이 정부가 뭘 하려고 했는지 다 잊어버렸다. 지역균형발전도, 지방분권도, 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가 출범 초기 마련하려던 큰 틀이 다 부서졌는데도 당은 당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산 너머 산인가.
“두 바퀴를 굴리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윤석열 정부가 하나의 방향이라도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 다르게) 좀 틀었으면 했는데 그런 모습조차 안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 운영을 잘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환경 자체가 꼼짝할 수 없게 만든 거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대한민국 ‘배임죄’
환경이라면 여소야대 정국 말인가.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담론 수준이 너무 낮다. 진보와 보수 다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자유라는 말을 35번 했다. 대통령이 취임사 준비위원회가 쓴 걸 마다하고 직접 작성하다시피 한 취임사였다. 유엔에 가서도 30번 넘게 자유를 이야기하고, 자유를 기반으로 한 소위 국가 간 연대를 이야기했다. 그 뒤로도 자유를 계속 이야기했다. 이 정도면 그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지, 아니면 어떻게 거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이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취임사가 나오자마자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고 야당과 진보 진영이 비판했다. 그 취임사를 놓고 ‘아무 내용도 없다’고 하는 정도의 실력이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공부를 하나도 안 했다는 거다. 대통령이 자유주의로 가자고 했을 때는 그 틀 속에서 시장·공동체·지역사회가 각기 자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인데, 보수 쪽에서조차 개인의 자율권 확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른바 ‘아스팔트 보수층’에서는 반공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 정도로만 받아들이더라. 이처럼 우리 사회 전체의 담론 수준이 워낙 낮으니 자유주의를 말해도 이에 대한 고민이나 정치적 논쟁 자체가 없는 것이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법 개정도 필요한가.
“지금 검찰이 행사하는 배임죄를 세계에서 가장 강하게 적용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배임죄로 걸면 기업 총수가 꼼짝없이 걸린다. 대한민국의 배임죄는 위험성 조항까지 있다. 경영을 맡은 사람이 회사나 주주에게 손실을 끼쳤을 때만 처벌하는 게 아니다.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있을 때도 처벌할 수 있다. 손실 가능성 판단을 검찰, 경찰이 한다. ‘스폰서 검사’가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혁신이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데 배임죄가 무서워 그러지 못한다. 따라서 기업인에게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며 기업의 목을 죄는, 자유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배임죄 강도를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으로 낮추는 입법안이 보수정당에서 나와야 한다. 배임죄처럼 과도한 규제를 고치는 게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입법이다.”
올해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 지형이 달라질 걸로 기대한 지지자도 적지 않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가장 큰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정부가 잘못한 것도 많지만 야당이 이를 이용해 정부 여당에 대한 반대 감정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거다. 야당의 전략이 성공할수록 정부와 여당이 더 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문제다. 야당에 흠잡힐 일이 계속 일어났던 거다.”
2022년 국민대 강연에서 “대통령은 무소불위 권력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렇게 말한 근거가 뭔가.
“국민이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와 대통령이 지켜야 하는 헌법적 의무는 역삼각형의 윗변처럼 넓다. 다만 역삼각형의 권력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넘어진다. 대통령은 그런 위치에 있다. 인사권도 제약돼 있다. 총리도, 내각 인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게다가 행정부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만 평균 3년이 걸린다. 개혁을 위한 법안은 이해관계가 복잡해 더 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대통령의 권한으로도 어쩌지 못한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기에 임기가 3년 지나면 공무원들이 현 정권보다 다음 정권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대통령이 5년 동안 소신껏 일해도 공무원이 안 움직인다.”
대통령직인수위에 있을 때 “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윤 대통령 ‘소통’은 어떤가.
“국민과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는 불평이 나와서가 아니다. 국민에게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해야 할 사안이 있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국민과 소통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단순히 할 말을 주고받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정책적 사안이나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민 가슴에 닿아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아픔을 진심으로 아프게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서로 교감이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담론을 들고나와야 한다. 자영업자를 살리겠다며 부채를 탕감해 주겠다, 대출금 상환 기한을 연장해 주겠다, 저리로 융자해 주겠다고 하는 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심장이 고장 나서 머리가 아픈 사람에게 두통약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우리나라는 국가가 가진 권한이 너무 큰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지호영 기자]
지역균형발전, 핵심은 권력
근본적 해결책이 있나.
“정부가 돈을 주는 게 사회안전망이 아니다. 해외 선진국들처럼 평생교육 제도를 활성화해 구직에 필요한 역량과 전문성을 키울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가 제공하는 직업훈련기관에서 기술을 배우는 2~3년 동안 실업급여가 안정적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면 고용과 노동의 선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지금 평생교육 체제도, 실업급여의 안전망도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약하다.”
저출생, 인구소멸, 일자리 부족 등의 문제로 지역 불균형이 날로 심화하는 추세다. 지역 균형발전을 이룰 묘안이 있나.
“중앙집권화한 국가와 연방 체제로 분권화한 국가 중 어느 쪽이 지역균형발전에 유리하겠나. 당연히 후자다. 연방 체제로 된 나라에서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 없다. 미국과 독일이 대표적이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중앙집권화한 국가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이 수월하지 않다. 지역 불균형을 초래하는 핵심 요인은 권력이다.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하기 전에는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
지방에 권한을 나눠줘라?
“현대자동차가 왜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짓겠나. 주지사가 땅을 공짜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우리 자치단체장에겐 그런 권한이 없다. 공장을 지으라고 허가를 내주는 권한조차 없다. 중앙에 집중된 권한 때문에 지역 불균형이 초래되는 문제를 해소하려고 현 정부와 지방시대위원회가 지방분권, 균형발전 문제를 다루고 있다.”
메가시티가 서울 과밀 문제 해소와 지역균형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나.
“물론 도움이 된다. 메가시티를 만들면 구역이 커져 중앙정부가 더 큰 권한을 줄 수 있다. 권역이 넓어지면 산업통상권을 포함해 줄 수 있는 권한이 많아지고, 지방분권이 더 획기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지역 간 협력도 활성화할 것이다. 그런데 메가시티 안에서 지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할 소지가 높다. 그 때문에 잡음이 나오더라도 되도록 추진하길 바란다. 권역별로 권한을 더 많이 가지려고 메가시티끼리 경쟁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 리더십
수도권 못지않게 메가시티로 만들기에 좋은 지방권역을 꼽는다면.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을 메가시티로 묶으면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다. 현재 조성돼 있는 산업단지와 항만, 공업단지가 자체적으로 서로 협력해 처리할 수 있는 게 많다.”
지근거리에서 경험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땠나.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어디로 가야 한다는 자기 철학이 확실했다. 동시에 어떤 수단을 찾거나 세부 사항을 정할 때는 전문가들의 얘기와 현장 목소리를 경청했다. ‘회의 없는 결정은 없다. 대통령에게 갑작스러운 결단을 요구하지 마라’는 소신을 지켰다. 개인적으로 소신껏 일하게 해준 게 굉장히 고마웠다. 나중에 말썽이 나 대통령에게 부담이 갈까 봐 내가 독자적으로 결단을 내린 적이 세 번 있다. 대통령께 ‘알고만 계십시오. 이렇게 결정했고, 이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했는데, 그때마다 대통령은 자신이 지시했다는 내용의 메모를 써주며 ‘이 정부가 끝난 다음에 행여 말썽이 일어나면 대통령의 오더를 받았다고 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 메모지를 받진 않았다. 그때마다 감격해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른 대통령들은 어땠나.
“이명박 대통령은 추진력이 남달랐다. 서울시장 시절 공무원들이 ‘부수는 데만 2년 걸린다’고 했던 청계천 일대를 한 달 만에 허물었을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의아심이 들게 했다. 한진해운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보고 체계 문제를 드러냈다. 해운은 ‘후방 효과’가 굉장히 큰 산업이다. 한진해운을 다른 부실기업과 같은 수준으로 처리해선 안 됐다. 당시 국비 4000억 원만 투입하면 그 회사를 살릴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다른 회사에 넘겼어도 되는데 그걸 파산시킨 거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도 성급하게 결정했다. 당시 박 대통령에게 ‘지금은 중국과 맞서서 우리에게 이로울 게 없다. 중국이 보복 조치할 것이다. 우리의 산업 기술 능력과 연구개발(R&D) 수준까지 다 고려해 (사드 배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충언했는데 결국은 파행을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하지 않았나.
“대통령을 안 했으면 좋았을 분이다. 세상에 ‘소금’ 역할을 하는 사회운동가로 남았어야 한다. 정치 같은 현실 영역엔 안 어울리는 사람이다.”
윤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민심을 넓게 파악하고,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민심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지금 민심이 상당히 안 좋다. 지혜를 가진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지혜는 지식이나 정보와 다르다. 직언이나 고언과도 다르다. 지혜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현묘함까지 아우른다.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를 가진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하길 바란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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