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단 지명뿐만 아니다. 단체 명에 대해서도 그 뜻을 따서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를 ‘南加州大學(남가주대학)’이라 하고, ‘Northwest Airline’을 ‘西北航空社(서북항공사)’라 불렀다.
그런데 오직 일본에 대해서만 ‘東京(동경)’을 ‘도쿄’로, ‘北海道(북해도)’를 ‘홋카이도’라고 부른다. 단체 명도 ‘日本大學(일본대학)’이 ‘닛폰대학’이어야 하고, ‘明治生命(명치생명)’은 ‘메이지세이메이’라고 불러야 한다.
요새 방송에서 자주 듣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왜 ‘日本經濟新聞(일본경제신문)’이라 부르지 않나.
최근에는 사극에도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도대체 400년 전 우리 조상 중 누가 ‘加藤淸正(가등청정)’을 ‘가토’라고 했으며, 100년 전 누가 ‘伊藤博文(이등박문)’을 ‘이토’라고 불렀겠는가. 이것은 고증(考證)에 충실해야 할 사극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런 관행은 일제 강점기도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 가령 1930년대 중반에 발행된 민족지를 보면 ‘大阪’이라 쓰고, 그 옆에 ‘오사카’가 아니라 ‘대판’이라고 표기했다. 그리고 ‘長谷川’이라고 쓴 옆에는 ‘하세가와’가 아닌 ‘장곡천’이라는 우리말 토가 달려 있다.
일본식 교육 받은 지식인의 편의
그렇다면 일본 인명과 지명을 원음대로 발음해야 한다는 원칙이 언제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이런 괴상한 논리는 국수주의가 창궐하던 1930년대 일본에서 생겨났다. 그것도 다른 나라 것은 무방하고 오직 일본 것만 그렇게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1934년 일본 정부는 각국에 “일본의 국호는 ‘Japan’이 아니고 ‘Nippon’이니 앞으로는 그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거기에 응한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국호뿐 아니라 천황도 ‘Emperor’가 아닌 ‘Tenno’, 천황의 생일 천장절(天長節)은 ‘Tenchosetsu’ 등 일본에 관한 모든 것은 다 일본 발음으로 표기하도록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관영 영자지를 보면 이것이 과연 영문인지 일본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1937년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 각 기관에 같은 룰을 적용하도록 지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