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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죽느냐 사느냐 치맥집에서 판가름 난다?

치맥집의 정치학

조직에서 죽느냐 사느냐 치맥집에서 판가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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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의 기술

시간의 태엽을 치맥집으로 돌려보자. 당신은 어떤 말을 쏟아냈는가?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보자. 혹시 그 정보도 흘렸는가? 흘려서는 안 되는 그 정보를? 만약에 그랬다면 이제부터 당신에게는 당할 날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니면 수습을 해야 한다. 수습, 잘해야 한다. 수습 작업을 잘못 걸었다가는 더 호되게 당할 수 있다.

치맥집에서는 사내정치 기술을 걸 수 있다. 참석-청취-수집-분석이라는 정보 정치의 기본 활동에 더해, 유출이라는 기술을 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출은 치맥집 술자리에 참석해서 정보를 청취하고 수집하면서, 내가 아는 정보 가운데 남들에게 알리면 내게 유리할 법한 정보를 슬쩍 흘리는 것을 말한다. 유출하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근거 또는 물증이 분명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증거가 부족한 가십성 정보를 흘릴 경우에는 출처라도 분명히 해야 한다. 나중에라도 누구로부터 들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십성 정보를 흘리는 것은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일임엔 분명하다.

활활 타오르게

유출할 땐 타이밍도 잘 잡아야 한다. 치맥집까지 간 상황이면 다들 어느 정도 취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유출의 약발이 잘 받는 반면 유출한 정보가 유실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모두 집중력 해이에 기억력 감퇴를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취한 정도를 잘 판단해 적기에 정보를 유출해야 한다. 직장생활 초기 그 시점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별로 취하는 시점 또는 주량이 다르기 때문에, 경험으로 이것을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대상도 잘 선택해야 한다. 정보를 흘려줬을 때 보이는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의심부터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점에서 사전에 개인별 반응을 충분히 살펴두는 것이 좋다. 누군가 정보를 흘렸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체크해나가다 보면, 전체 참석자의 반응 태도가 보일 것이다. 이 역시 경험으로 알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정보를 유출할 때는 그 사람만 알기를 원하는 경우보다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지기를 바라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회사의 정보통, 빅 마우스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사람만 듣기를 원한다면 굳이 치맥집을 택할 이유도 없다. 일대일로 만나서 전하면 그만이다.

필터링 된 정보 vs 날것 그대로의 정보

유출 시엔 확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를 택하는 것이 좋다. 뉴스도 흐름이 있다. 아무리 중요한 이슈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데에 쏠려 있을 때 이야기하면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관심사를 보도하면 반응이 곧바로 폭발적으로 온다. 사내에서도 여론이 있고 또 여론의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잘 파악해 적절한 때 터뜨려야 불에 기름을 부은 듯 활활 타오른다. 그 시기를 잡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꾸 해보면 감이 온다.

유출 기술을 쓴 다음에는 피드백도 해야 한다. 내가 기대한 만큼의 효과가 나왔는지, 원하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고른 상대방이 정보를 제대로 소화해 다른 사람에게 퍼뜨렸는지 평가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유출 시점이 적절했는지 평가해야 한다. 빨랐다면 얼마나 빨랐는지, 늦었다면 얼마나 늦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유출 효과도 파악해야 한다. 효과가 없었다면 왜 효과가 없었는지도 당연히 알아야 한다.

역정보에 유의

이쯤에서 치맥집 정보만 정보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지당한 의문이다. 치맥집에서만 정보가 떠도는 건 아니다. 일과 중에도 수많은 정보가 사내를 떠돌아다닌다. 문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냐는 것이다. 아니다. 맨 정신에 퍼뜨리는 정보는 이성으로 한 차례 걸러서 내보내는 정보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의 이성 필터를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행간이 생략되었을 것으로 봐야 한다. 날것 그대로의 정보가 아니라는 말이다. 걸러진 정보는 사실 죽은 정보다. 술자리, 그중에서도 특히 이성 필터가 무력화된 치맥집의 정보는 이것과 다르다. 오히려 감정 필터가 개입해 각자의 해석이나 느낌까지 더해진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풍부하다. 배경을 파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잘 취합해보면 행간이 모두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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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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