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2015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 영어 출제 오류의 책임을 지고 지난 11월 24일 자진 사퇴했다.
얼마 전 스마트폰으로 할리우드 신예 여배우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이라고 했다. 참 당당하고 멋진 대답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TV 토크쇼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연기파 중년 남성배우’가 초등학교 고학년 딸과 함께 출연했다. 딸이 “나도 아빠처럼 배우가 될 거야”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당황했다.
“그래, 뭐 나중에 배우가 되더라도, 일단 서울대는 가야 해. 그러면 ‘서울대 출신 배우’라고 해서 더 주목받을 수 있다고!”
교육부의 ‘익숙한 해법’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8명이 “학벌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답했다. 대학 시절은 4년 남짓이지만 그 꼬리표는 40년 이상 따라다니며 인생의 주요 변곡점마다 큰 힘을 발휘한다. 모순은 이른바 ‘SKY’를 중심으로 한 서울 주요 대학 입학정원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데에서 비롯된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사교육비를 줄이고 대학들이 공정하게 합격자를 선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교육정책을 편다. 문제는 정책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 박근혜 정부가 집권 직후부터 3년차인 현재까지 내놓은 교육정책만 해도 대학 구조조정, 대입 전형 간소화 방안, 선행학습금지법, 자유학기제, 수능 영어 절대평가 등 부지기수다.
대학입시를 둘러싼 갈등은 2015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을 기점으로 폭발했다. 수학, 영어 과목이 너무 쉽게 출제되면서 1~2점 차이로 등급과 당락이 바뀌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능은 실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 실수를 확인하는 시험”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영어와 생명과학Ⅱ 영역에서는 복수정답을 인정해야 하는 문제 오류가 발생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또 ‘익숙한 해법’을 내놓았다. 지난 12월 4일 교육부는 ‘수능 출제 및 운영체제 개선위원회(이하 수능개선위)’를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김신영 한국외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수능개선위는 향후 4개월간 수능 출제 오류와 들쑥날쑥한 난이도를 안정화하기 위한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수능개선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수능개선위원 7명 중 6명이 대학교수다. 수능 출제위원 중 현직 교사 비중이 너무 낮다는 것이 수능 출제 오류의 주요인으로 거론되는 판국에 또다시 교수 위주의 수능개선위가 꾸려진 것. 수능개선위가 얼마나 획기적인 해답을 내놓을지도 의문이다.
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에서 복수정답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교육인적자원부는 지금과 유사한 대책위를 구성했다. 당시 △출제위원 검증 강화 △특정 대학 출신의 출제위원 비율 40% 미만으로 조정 △문제은행 방식의 출제체제 도입 등 개선안을 발표했으나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
모 대학 교육학과 교수는 “2004년 2월 교육부는 ‘2008년부터 수능을 완전 자격고사화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언젠가 없던 일이 됐다. 이번에도 비슷한 수순을 밟지 않겠나”라며 불신을 드러냈다. 김신영 위원장에게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위촉된 지 얼마 안 돼 드릴 말씀이 없다. 연구를 해서 결과를 내놓겠다”고 답했다.
한글 해설 외우는 영어공부
많은 전문가가 대입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수능의 EBS 70% 출제 연계정책이 집중포화를 맞았다. 수능과 EBS 연계가 도입된 건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당시 IT 발달에 힘입어 메가스터디를 필두로 한 온라인 사교육 시장이 급속히 팽창했다. 교육부는 사교육비 절감과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교육방송만 들어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겠다”며 이 정책을 도입했다. 2004년 4월 4일 한석수 당시 교육부 학사지원과장(현 대학지원실장)이 교육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그런 고민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교육방송은 해열제 처방이다. 학교교육을 정상화해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교육 문제가 너무 심각하니 급한 불을 끄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것이다. 교육방송 수능 강의에서 그대로 수능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EBS 방송 및 인터넷 강의는 학교교육 정상화 및 사교육비를 줄이고 교육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