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한국 괴물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훑어본 건 ‘어우야담’이다. 학창 시절 어느 교육기관에서 펴낸 축약본으로 이 책을 처음 접했다. 그 내용을 한참 지난 후에도 기억하게 된 까닭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거기에 조선시대 인어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이강훈/ 워크룸프레스 제공]
유럽 설화 속 인어는 으레 바다 한쪽에서 노래를 부른다. 거기에 이끌린 뱃사람들이 넋을 잃고 따라가다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곤 한다. 고대 그리스 고전 ‘오디세이아’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가진 세이렌 이야기가 나온다. 유럽권에서는 제법 뿌리 깊게 퍼져 있는 이야기인 셈이다.
동해 바다에 나타난 인어
‘어우야담’의 인어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의 한 장면. 배우 전지현이 인어 역을 맡았다. [문화창고·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강원도 흡곡현에 김담령이라는 사람이 지역 관리로 부임한다. 그는 해변의 한 인가에 묵다가 특이한 이야기를 듣는다. 인근의 어부가 낚시를 나갔다 인어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그중 둘은 창에 찔려 죽고 나머지 넷은 살았다는 것. 그가 직접 가서 보니, 살아남은 인어들은 모두 새끼였고 눈물을 비처럼 흘리고 있었다. 가련함을 느낀 그가 “인어를 놓아주자”고 부탁하자 어부는 ‘인어 기름질이 매우 좋은데…’ 하며 아까워했다. 하지만 그의 간곡한 부탁에 어부는 결국 네 마리 새끼 인어를 풀어줬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흡곡현은 지금의 강원도 통천 지역에 해당한다. 강원도 어느 바닷가에서 사는 어부가 우연히 인어를 잡았다는 게 그 핵심이다. 인어기름이 어떠니 하는 말로 미뤄보면 당시 사람들은 인어를 매우 흔히 접한 것처럼 들린다.
‘인어’라고 하면 ‘인어공주’부터 떠올리던 학창 시절, ‘어우야담’의 인어 이야기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야기의 배경이 머나먼 이국이 아니라 강원도 해변이라는 점, 인어가 ‘동화 속 공주’가 아니라 어부의 낚시에 잡히는 존재로 묘사된 점 등 때문이었다. 글의 형식 면에서도 동화와는 다른 느낌이다. 실제로 벌어진 일을 소문으로 전해 듣는 듯, 현장감이 생생히 살아 있었다.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몇 년 전 한 공중파 TV방송사에서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 연속극을 방영했다. 이후 조선에 인어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제법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그 세부 내용은 여전히 많은 이에게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먼저 ‘어우야담’에 담긴 인어의 구체적인 모습부터 보자. 이야기 속 지역 관리 김담령은 인어의 손바닥과 발바닥에 주름이 있다고 언급했다. 발바닥이 있다는 건 일단 다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 위의 주름은 물갈퀴나 지느러미 같은 모양이 달려 있는 걸 묘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인어의 겉모습은 하체가 물고기 모양인 인어공주와는 전혀 다르다.
김담령은 또 잡힌 인어가 “네 살 난 어린이 같다”면서도 “얼굴에 누런 수염이 달려 있었다”고 했다. 고양이나 염소처럼 태어날 때부터 얼굴에 수염이 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수염의 모양은 메기 또는 새우 수염과 비슷했을 수도 있다. 머리에는 검은 털이 나 있었다. 검은 털이 이마까지 덮고 있었으며 피부 색깔은 옅은 적색이거나 온통 흰색이었다. 등에는 옅은 흑색 문양이 있었다. “인어 얼굴이 아름답고 콧마루가 우뚝 솟았으며 귓바퀴가 분명히 있다”는 묘사로 미뤄보면 미모가 뛰어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어우야담’에는 “인어가 무릎을 껴안고 앉는 동작을 했다”거나 “남녀가 같이 있는 모습이 사람과 꼭 같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어부에게서 풀려난 뒤 헤엄쳐 떠나는 모습은 마치 자라나 거북을 닮았다고 한다.
조선 사람들은 이런 인어를 어떻게 대했을까. 먼저 인어공주 동화나 세이렌 설화를 살펴보자. 이들 이야기 속에서 인어는 신비롭고 고결한 바다의 왕족이거나, 마법 같은 힘으로 선원을 유혹하는 존재다. 사람들은 그런 인어를 존중하고 때로는 두려워한다.
조선 사람들은 달랐던 것 같다. ‘어우야담’ 이야기를 보면 어부는 인어를 좀 희귀할 뿐 그저 한 마리 바다 짐승에 불과한 존재로 여긴다. 인어에 동정심을 느낀 김담령이 그들을 풀어주라고 하자 어부가 “인어기름은 고래기름보다 좋다. 고래기름은 상하면 냄새가 나지만 인어기름은 시간이 지나도 냄새가 안 난다”며 아까워하는 대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고래기름은 등잔을 밝히기에 좋은 재료였다. 그에 비춰보면 인어는 바닷가 사람들이 상급의 연료를 얻는 수단 정도로 묘사됐다. 가차 없고 냉랭한 태도다.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그중 둘이 창에 찔려 죽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붙잡힌 인어가 다른 물고기들처럼 도망치려 하고 어부는 못 도망치게 창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이 떠오른다.
“인어기름이 좋다지”
중국 산해경 중 해경에 나오는 인어.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18세기 학자 위백규가 펴낸 ‘격물설’에도 인어 목격담이 나온다. 이 책의 인어 이야기는 “근년에 어부가 인어를 잡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정확한 장소에 대한 묘사는 없지만 위백규가 주로 호남에 머물렀던 점으로 미뤄 이야기의 배경은 전라남도 어느 지역 해안일 터이다. 이야기 속 인어의 생김새는 사람과 꼭 닮았지만 수염이나 머리카락이 없다. 마치 세 살짜리 아이 같은 외모를 한 인어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슬프게 울면서 눈물을 흘렸고, 손으로 아랫도리를 가렸다. 위백규는 이 책에서 “인어조차 수치심에 몸을 가리는 행동을 한다”며 “이것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성향”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19세기 초 활동한 작가 이옥의 ‘백운필’에는 전북 김제 지역 사람들의 인어 목격담이 실려 있다. “뱃사람들이 물 밖으로 상반신만 드러낸 여성 형체를 발견한 뒤 놀라서 쌀을 뿌리며 주문을 외웠다”는 내용이다.
‘백운필’에는 ‘어우야담’과 ‘격물설’ 속 인어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지금의 황해도 지역으로 유람을 떠난 어떤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는 거기서 빈집을 발견하는데, 집 안에는 아름다운 여성과 어린아이 형상을 한 인어들이 몸을 하얗게 드러낸 채 갇혀 있다. 이들은 말은 못 하지만 주인공에게 정감 있는 태도를 보인다. 주인공은 그들과 제법 깊은 관계를 맺으며 어울린다. 그런데 얼마 후 돌아온 집주인은 “이들은 내가 잡은 물고기”라며 인어를 삶아 요리로 대접하려 한다. 깜짝 놀란 주인공이 집주인을 설득해 인어를 바다에 풀어주도록 하자 인어는 세 번 뒤를 돌아보며 감사를 표한 뒤 떠나간다.
인어 요리
부산 해운대 동백섬에 있는 인어공주상. [신태양건설 제공]
작가 이옥은 이 인어 이야기 말미에 또 다른 인어 이야기도 덧붙였다. “쌍부라는 지역의 어부들이 걷어 올린 그물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인어를 발견했는데 어쩐지 두려운 느낌이 들어 그냥 풀어주었다”는 내용이다. 쌍부는 지금의 경기도 화성 지역으로, 이옥은 이 이야기를 통해 인어를 잡아먹는 등 인어를 해치는 행동과 불길한 분위기를 슬쩍 연결한다. 독자로 하여금 잠시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를 노린 듯하다.
그렇다면 인어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져 널리 퍼지게 됐을까. 한 가지 원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중국 고전의 영향이다. 중국 고전에는 바다에 사는 사람 같은 존재, 즉 ‘교인(鮫人)’ 이야기가 제법 나온다. 그들이 ‘교초(鮫綃)’라는 매우 신비로운 옷감을 짠다거나, 눈물을 흘리면 진주가 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많다.
인어는 당나라 시대 이후 문학작품 소재로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널리 사용됐다. 그 영향을 받은 조선 작가들도 시를 지을 때 ‘교인’이나 ‘교초’ 같은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예를 들어 정약용은 밤바다의 파도 위에 달빛이 아름답게 일렁이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달 밝은 은빛 물가에 교인의 옷감이 잘리고 있네(月明銀浦剪鮫紋)”라는 표현을 썼다.
19세기 실학자 한치윤이 정리한 ‘해동역사’에는 중국 당나라 세력가 원재(元載)가 신라 사람으로부터 인어가 짠 매우 가벼운 옷감을 구해 설요영(薛瑤英)이라는 아끼는 여성에게 입게 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눈여겨볼 사실은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인어 이야기에는 “진주로 변하는 눈물”이나 “교인이 짜는 신비로운 옷감” 같은 상투적 내용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가졌지만 실은 사람만 못한 짐승”으로 인어를 규정짓는 내용의 이야기가 도처에서 발견된다.
조선에서 ‘짐승 대접받는 인어’ 이야기가 탄생하고 구전된 까닭은 여러 가지로 짐작해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좀 끔찍한 상상을 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악당이나 해적이 감금해둔 노비나, 조선말을 할 줄 모르고 용모가 우리와 다른 외국인이 조선에서 인어 취급을 받았을 수 있다는 설이다. 배가 난파돼 우연히 조선 바닷가에 떠밀려온 그들을 당시 사람들이 ‘사람보다 못한 짐승’이라고 여겨 감금한 이야기가 설화로 변해 퍼져나갔다는 해석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추측을 내놓은 사람도 있다. 조선 후기 역사학자인 안정복은 저서 ‘동사강목’에서 울릉도의 ‘가지어(嘉支魚)’가 사람과 물고기의 중간 단계 괴물로 착각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가지어는 바다사자의 한 종류로, 울릉도·독도 근해에 살며 지금은 ‘강치’라고 부른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이 어종을 “몸은 물고기 같은데 네 발이 달렸고 바위 밑에 굴을 파고 산다”고 소개했다. 또 “어린애 같은 소리를 내며 그 기름은 등잔기름으로 쓸 만하다”고 밝혔다. 강치의 독특한 울음소리와 지방이 많은 몸을 제법 사실적으로 설명한 셈이다.
독도 앞 강치?
일본 어민이 1934년 독도에서 강치를 잡는 모습. 일본의 남획으로 독도 강치는 멸종됐다. [서해문집 제공]
나는 이런 상상을 해봤다. 어민을 낮추본 조선 유학자들이 아름다운 물고기를 잔혹하게 대하는 어부 이야기를 수군거리고 다니는 과정에서 인어 이야기가 퍼졌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어우야담’ 인어 이야기의 주인공 김담령은 실존 인물로,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은 관리다. 서울에서 과거 공부를 하며 책만 읽던 그가 관리가 돼 어촌에 갔을 때 어부들의 삶을 존중했을까. 물고기를 잡고 내장을 손질하는 그들의 삶을 잔인하고 험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자신이 잘 모르는 것을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는 유학자의 시선이 반영돼 조선 특유의 인어 이야기가 탄생한 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진실이야 영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인어 이야기를 상품화하려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조선 인어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지면 머지않은 시간 안에 인어 전설이 있는 바닷가 그 어디에서 곰 모양 젤리나 토끼 모양 솜사탕처럼 인어 모양 어묵이나 맛살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곽재식 | 1982년 부산 출생. 대학에서 양자공학, 대학원에서 화학과 기술정책을 공부했다.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교양서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한국 괴물 백과’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