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중·고교 ‘동아리 가입 전쟁’ 백태

‘생기부에 한 줄’ 넣으려고…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19-05-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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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마다 반복되는 동아리 가입 전쟁, 인맥 없인 힘들어

    • 학종에 도움 된다는 동아리로만 지원자 쏠려

    • 엄마가 팀 짜고 지도교사 섭외? 자율 동아리의 실체

    • 학생 입시 부담 크고 공정성 결여… “교육 효과 의문”

    • 입시 평가 항목서 동아리 제외, 교육과정서 취미 활동 시간 제공해야

    #1 지난 3월 초, 서울 K고등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한 경제 동아리의 가입 신청 안내문이 올라왔다. 2013년에 결성된 이 동아리는 해마다 1학기 초에 동아리 신입 부원을 모집한다. 홍보자료에는 ‘지원자가 모집인원의 2배를 넘을 경우 자기소개서 등 1차 서류 전형을 진행하고, 2차 면접을 치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면접시험에서는 공통 질문 2개, 개인 질문 2개가 나간다는 내용도 함께 공지됐다. 까다로운 심사 절차에도 불구하고 이 동아리에는 해마다 수십 명의 지원자가 몰린다. 올해도 마찬가지. 1차 서류심사 경쟁률은 10대 1, 면접심사 경쟁률도 3대 1을 기록했다. 최종 선발 인원은 10명이다. 

    #2 서울 소재 S자율형사립고 생물탐구 동아리는 올해 처음으로 필기시험 전형을 도입했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 서류 전형만으로는 적합한 학생을 뽑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 올해 필기시험의 주제는 각각 ‘에볼라바이러스의 무생물과 생물의 특성을 각각 설명하라’ ‘DNA 복제에 필요한 효소는 무엇이고, 그 역할은 무엇인가’ 등 꽤 고난도의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전체 지원자 수는 70여 명으로 모집인원 20명의 3배를 넘었다.

    해마다 학기 초만 되면 전국 고등학교 내에서는 ‘동아리 가입 전쟁’이 일어난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사이에서는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를 일명 ‘동아리 시즌’으로 부른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동아리 가입 경쟁 때문에 서류 전형은 물론 면접, 필기, 토론시험까지 치르는 동아리들이 생겨나고 있다. 

    중·고교 동아리는 학교 정규 수업시간(주 2~3시간)에 진행하는 ‘정규 동아리’와 학생 스스로 만들어 활동하는 ‘자율 동아리’로 나뉜다. 정규 동아리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본인이 원하는 동아리에 들지 못했거나, 자체적으로 서클 활동을 하고자 할 때 만드는 게 자율 동아리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둘 다 ‘흥미나 적성이 비슷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잠재된 창의성을 발현하고 진로탐색과 자아실현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목적은 같다.

    동아리 가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최근에는 자율 동아리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신고제로 운영되는 자율 동아리는 동아리 이름부터 부원 구성, 활동 커리큘럼, 운영 방안, 지도교사 섭외까지 모두 학생들의 몫이다. 동아리 구성 인원은 대략 5~10명 내외. 지도교사의 관리감독하에 이뤄지는 활동 내용을 학생들이 직접 일지로 기록하고, 지도교사의 사인을 받은 자료는 나중에 담임교사에 의해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반영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아리 활동 또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자율 동아리 역시 가입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멤버 구성과 역할 분담을 두고 학생 혹은 학부모들 사이에 잡음이 상당하다. 



    도대체 고교 교내 동아리 활동이 뭐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동아리 가입이 하늘의 별 따기’가 돼버린 것일까. 현재 대입의 열쇠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종으로 대학 가는 시대’에 비교과 활동은 교과 성적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특히 동아리 활동은 학생의 ‘전공 적합성’을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내용 중에서 매우 중요한 항목으로 꼽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마다 동아리 입회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동아리의 종류는 주로 봉사·스포츠·공연·취미활동·학술 등으로 나뉘는데, 이 중 학술 관련 동아리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신입생들의 학술 관련 정규 동아리 가입 경쟁이 치열하다. 올해부터 소논문(R&E) 대회 수상 경력은 생기부에 쓰지 못하게 되면서 학술 관련 동아리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게다가 현재 고1부터는 자율 동아리 활동은 3개까지 가능하되 생기부에는 학년별로 각 1개의 동아리 활동만 기재할 수 있고, 해당 내용도 30자 이내(정규 동아리는 500자 이내)로만 써야 해서 정규 동아리에 비해 매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여러 개의 자율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보다 ‘똘똘한’ 정규동아리 1개에 ‘올인’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정규 동아리는 1개만 가입할 수 있다. 

    인천 소재 외국어고에 다니는 강모(18) 군은 동아리 활동이 어느새 입시, 특히 학종을 대비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강군은 “동아리 활동만큼은 공부 부담 없이 재미있게 하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다”며 “정규 동아리 44개 중 오케스트라와 미술부 2개를 빼고 나머지는 다 학술 관련 동아리”라고 밝혔다. 경제·경영, 수학, 시사, 어학, 국제교류, 인문연구, 철학, 사회과학, 언론, 법, 기술경영 등 분야도 다양하다. 

    4차 산업혁명이 강조되면서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 등을 접목한 융합연구 동아리도 인기를 얻고 있다. 코딩·드론·앱 개발 관련 동아리를 비롯해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한 ‘에듀테크’ 분야도 마찬가지다.

    ‘갑질 면접’부터 부모 인맥 동원까지

    중·고교 동아리 활동 모습.

    중·고교 동아리 활동 모습.

    동아리의 인기는 ‘대입 실적’에 따라 확연하게 나뉜다. 동아리 홍보 글에도 ‘화려한 생기부 보장’ ‘학종 대비가 유리한 동아리’ 등 대입과 관련된 문구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서울 강남지역 B자사고의 한 과학 동아리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서울대생을 배출하는 동아리’로 정평이 나 있다. 2018학년도 수능 만점자 역시 해당 동아리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B고교 재학생인 김모(17) 군은 “동아리를 소개할 때 활동사항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보다 선배들이 동아리 활동으로 어떻게 생기부를 채웠고, 어떻게 학종으로 대학 문을 열었는지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요즘 들어선 동아리 입회 면접을 둘러싼 잡음도 커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소재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유모(16) 양은 최근 시사 동아리 면접시험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다. 면접위원으로 참석한 2학년 선배들이 “동아리 가입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노래나 춤 등으로 표현해보라”고 강요한 것.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양모(16) 양도 중학교 동문인 2학년 선배로부터 “교지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으면 나한테 잘 보이는 게 좋다” “앞으로 학교에서 보면 크게 인사하라”는 등의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동아리 가입 과정에서 부모의 인맥이 동원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학부모 C씨는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선배 한 명만 잘 포섭해도 동아리에 들어가는 게 한결 수월해진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들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의학 동아리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아이의 엄마를 잘 알아 한시름 놓았다”고 털어놓았다.

    엄마가 만드는 ‘생기부의 꽃’ 자율 동아리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아리 입회 절차를 놓고 학교 측에 항의하는 학부모도 많다. 결국 일부 학교는 공정성을 내세우며 온라인 홈페이지를 이용해 선착순으로 회원을 모집하거나 아이들끼리 ‘가위바위보’를 시켜 이긴 사람에게 동아리 가입 권한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되지 못한다. 

    동아리 가입 전쟁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국제중학교를 준비하는 초등학생이나 자사고·외고·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학생들은 생기부를 좀 더 화려하게 채울 요량으로 동아리 활동에 목을 맨다. 

    하지만 학생들이 원하는 정규 동아리는 한정돼 있다 보니 인터넷 입시 관련 커뮤니티에는 ‘이럴 바엔 차라리 자율 동아리를 만드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묻는 게시물이 자주 올라온다. ‘청소년판 팀플’이라 불리는 자율 동아리는 초등·중등 사이에서 ‘생기부의 꽃’으로 불린다. 

    하지만 학부모의 관여가 매우 심하다는 점에서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자녀를 대신해 부모가 나서 직접 동아리를 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서울 대치동에는 자신의 아이와 같은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출신인 아이들을 모아 자율 동아리를 직접 만드는 학부모가 많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서 상위권에 속하거나, 큰아이를 먼저 명문대에 보낸 경험이 있는 엄마들은 동아리 활동에서도 발언권이 커진다. 동아리 리더 자리도 이런 학부형의 자녀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자율 동아리 인원은 대개 10~20명 안팎인데, 인원이 많지 않다 보니 팀 결성 단계부터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수학이나 과학에 소질이 있고, 특히 외국에서 살다 와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영입 1순위다. 따라서 실력 있는 아이들로 멤버를 꾸리고자 겨울방학 때부터 같은 중학교로 배정받은 친구들을 중심으로 팀을 짜는 학부형이 많다. 일찌감치 동아리 이름부터 활동 계획과 모임 스케줄, 학술제 일정 등을 정해뒀다가 새 학기가 시작되면 발 빠르게 자율 동아리 신청서를 제출한다.

    동문끼리 팀 결성… 학부모 간 갈등도

    자율 동아리 지도교사를 섭외하는 것 또한 엄마 몫인 경우가 많다. 모든 자율 동아리는 반드시 교내 교사 한 명이 지도교사를 맡아야 정식 동아리로 인정받는다. 가장 인기 있는 지도교사는 수학·과학 선생님이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수·과학교사는 5~7명 정도로 그나마 다른 교과목에 비해 많은 편이지만, 너도나도 수·과학교사에게 지도교사를 부탁해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자칫 미술선생님에게 수학 동아리를 부탁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올 4월 수학탐구 자율 동아리를 직접 만들었다는 서울 대치동 소재 중학교 학부형 박모 씨는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평소 ‘수학 좀 한다’는 아이들을 모아 자율 동아리를 만들었다.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할 아이들을 선별하기 위해서는 평소 엄마들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 과정에서 수학교사를 섭외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학부모의 역량이 판가름 나기도 한다. 

    학부모가 활동 방향과 결과물을 도출해놓고 아이들에게 거꾸로 주입하는 경우도 있다. 고2 자녀를 둔 학부형 김모 씨는 “1년에 10회(30시간)에 걸쳐 과학 실험을 해야 하는데, 2주에 한 번꼴로 모이는 게 쉽지 않다. 중간·기말고사를 비롯해 수시로 수행평가도 준비해야 해서 엄마들이 도와주지 않고서는 아이들끼리 당초 짠 커리큘럼을 다 소화하기 힘들다. 지난해에도 동아리 리더 아이의 엄마가 실험 키트 준비부터 실험일지 작성까지, 동아리 활동 전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털어놓았다. 

    동아리 활동을 아이들에게 맡겨두지 않다 보니 학부모들 사이에서 갈등도 잦다. 특히 ‘리더 자리’를 놓고 학부형들 간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생기부에 ‘리더로서 동아리 활동을 주도했다’는 내용을 한 줄 넣기 위해서인데, 최근에는 리더 경력을 직접적으로 쓰지 못하도록 교육부 방침이 바뀌었지만, 리더 경력을 에둘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 학기 수과학융합연구 동아리를 직접 꾸린 학부형 이모 씨는 “엄마들의 태도가 동아리를 짜기 전과 짠 후가 너무 달라 기분이 상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자기 아이를 껴주기만 해도 고맙다고 하던 엄마들이 막상 동아리가 만들어지자 “팀 전원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리더를 맡게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것. 심지어 자신들의 뜻을 들어주지 않으면 단체로 동아리에서 빠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반대로 동아리 가입 과정에서 횡포에 가까운 권력을 휘두르는 학부모도 더러 있다. 아이가 서울 강북구 사립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부모 최모 씨는 장래 희망이 변호사인 아이를 위해 모의법정 동아리 리더 엄마에게 자신의 아이를 부원으로 넣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끝내 거절당했다. 같은 사립초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학종, 바꿀 때 됐다”

    지난해 10월 김해영 의원은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10월 김해영 의원은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얼마 전 서울 강북지역에서 대치동으로 이사 온 학부모 이모 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를 의료봉사 동아리에 넣으려 했지만 다른 엄마들이 대치동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반대해 입회에 실패했다. 이씨는 “일부 엄마들이 결탁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놓은 탓에 동아리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며 “지도교사들도 ‘부원 선발은 학생들의 권한’이라며 모른 척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 다수는 “학종을 비롯한 입시 전형에 동아리 활동을 반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부모의 인맥과 경제 능력이 아이들의 동아리 활동에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마당에 ‘공정한 경쟁’은 이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학부모가 대신해주는 동아리 활동이 과연 아이들에게 얼마나 교육적일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교육 전문가들은 “동아리 본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학종의 획기적인 쇄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입학사정관제가 막 들어온 2008년 초기에는 교과평가에서 의미 있는 평가 자료를 당장 얻을 수 없었던 탓에 한시적으로 비교과 요소를 허용했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비교과가 학종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 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리 활동을 비롯한 비교과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학종 전형 비율만 날로 높아지는 바람에 학종에 대한 불신이 심화됐다는 얘기다. 이어 구 국장은 “동아리 활동을 입시 평가 항목에서 제외하고, 교과과정에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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