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인터뷰] ‘여권 대북전략가’ 이수혁 의원의 진단

“북한에 대한 ‘일방적 선심’ 오래 못 간다” “하노이 회담 직전 美(비건)와 ‘단계별 비핵화’ 공유”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9-04-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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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는 쪽에서 상응조치 취해줘야”

    • “‘평창 활용’ 잘한 일”

    • “신한반도체제, 비핵화 후엔 화려한 정책”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북핵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권의 유력한 대북전략가로 꼽힌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외교안보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신한반도체제’를 선언했다. 이 모태는 2015년 8·15 광복 70주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당시 당 대표가 밝힌 한반도신경제지도 구상이다. 이 구상의 실현을 위해 2016년 1월 ‘한반도경제통일특별위원회’를 설치했는데, 문 대표는 이수혁 전 대사를 영입해 위원장에 임명했다. 4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수혁 의원을 만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외교 2년을 리뷰했다.

    “북한에 대한 선의”

    - 문재인 정부는 어떤 ‘선의’를 가지고 지난 2년여간 비핵화 대북정책을 펴왔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어떤 ‘선의’를 갖고 있습니다. 이 선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보수 진영은 ‘유화적이다. 좋지 않은 정책이다’라고 보겠죠. 반면 진보 진영은 긍정적으로 보고요. 더불어민주당은 북한을 보는 눈이 보수와 다르죠. 이를 부인하면 안 됩니다. 이 점 때문에 전폭적 지지를 받는 경향도 있으니까요.” 

    - 남북관계에 대해 보는 시각이 상반되죠. 

    “남북관계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관계인 것 같아요.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나중에 통합돼야 할 같은 민족 내부의 관계죠. 어느 한쪽으로 가면 심한 반발이 있어요. 합리적 균형점을 찾아야겠죠. 다시 선의로 돌아가서요. 선의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 어떻게 나뉘죠? 

    “선의는 호의를 베푸는 건데요. 이때 보상을 기대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이타적 선의냐, 호혜적 선의냐. 일반적으로, 일방적 이타주의는 개인들 간 관계에서도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호혜적이어야 오래가겠죠. 북한에 대한 선의도 호혜적 선의로 가야 합니다.” 

    - 북한에 대한 호혜적 선의는 구체적으로…. 

    “받는 쪽에서 상응조치를 취해주는, 보상을 받는 선의겠죠.” 



    - 북한에 대한 이타적 선의는 어떻습니까?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잘사는 형이 못사는 동생에게 그냥 잘해주면 되지 무슨 대가를 바라느냐? 굳이 보상이 없더라도 무한사랑을 베풀면 감동하는 날이 있을 것 아니냐?’ 하는 건데요. 국가 간의 관계, 특히 적대적이거나 경쟁적 관계에서는 그 균형점을 찾아야겠죠. 말은 쉬워도 어려운 일이에요.” 

    이수혁 의원은 북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선의’가 이타적인지, 호혜적인지, 혹은 그 중간 어디쯤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이 의원은 “이 정부의 정책서 장기적으로는 호혜적 선의가 오히려 유용하다. 일방적 이타주의와 선심은 오래가기 힘든, 깨지기 쉬운 조건”이라고 말했다. ‘호혜적 선의’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뢰’를 형성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반(反)사실적 사유’

    2017년 북핵위기가 심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책상 위의 핵단추”를 언급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더 큰 핵단추”와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이야기했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넘어오면서 극적으로 대화 국면이 조성됐다. 이어 2019년 4월 현재까지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이수혁 의원은 “지도자가 어떤 기회를 잡아 이벤트를 만들고 협상을 이끈 굉장히 좋은 교과서적 사례”라고 높게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기회를 잘 활용한 점은 역사적으로 평가될 겁니다. 역사학에서 가정을 ‘반(反)사실적 사유’라고 하는데, 만약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그냥 지나쳤다면 한반도는 굉장한 위기 국면을 맞이했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구축이라는 역사가적 철학을 가지고 원대하게 보고 치밀하게 준비·이행했어요.” 

    -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밝힌 ‘신한반도체제’는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요. 

    “신한반도체제 개념은 집권 후 나온 건 아니고요. 2016년 1월 문재인 당 대표가 한반도경제통일위원회를 만들어 저를 초대 위원장에 임명했어요. ‘한반도 동·서해와 휴전선을 H자 축으로 활용하자. 북한의 경제를 부흥시키고 한국의 경제영토도 넓히자’ 즉 경제통일시대의 실현 방안을 수립하기 위함이었죠. 앞으로 핵 문제가 해결되면 가장 화려하게 등장할 정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대북제재 때문에, 사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실질적인 집행이나 이행은 어렵겠죠. 하지만 이 개념은 북한도 다 동의해요. 국제사회도 좋은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여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아 좀 답답한 일이죠.”

    “궁극의 목적은 핵 폐기”

    -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됐습니다. 정부도 하노이 회담 결렬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만나는 전문가들은 제 말에 동의합니다만, 저는 하노이 회담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은 협상 초기이거든요. 협상 초기의 기싸움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치열하게 한 거예요. 미국은 스몰딜, 빅딜, 2단계, 3단계를 논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궁극적 목표는 북한의 핵 폐기’라는 점을 확인받고자 했어요. 이것이 대전제예요. 그래야 단계별로 하는 것이고. 이 목표가 정확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미국은 봤어요. 하노이 회담의 미국 측 실무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제게 자주 질문했죠. ‘정말 김정은 위원장은 핵 폐기를 결심했느냐’라고요.” 

    - 최근까지 북한은 핵물질을 계속 만들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만.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행동이 ‘결심한 국가’의 행동처럼 안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핵을 폐기하겠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핵물질을 생산하고 핵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왜 핵 활동을 하느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북한은 핵 활동 중단을 약속한 적은 없죠. 하지만 상대편에서 ‘핵을 폐기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예의는 핵 활동 중단인데, 협상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죠.” 

    -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에서 보면? 

    “‘국내적으로 설득시키기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핵무기 폐기는 스텔스기 폐기 차원이 아니잖아요? 30년 가까이 체제 생존을 위해 올인한 프로젝트였어요. 많은 경제적 손실과 국제적 위상의 손실을 겪어왔죠. 이런 측면에서 ‘단계적으로 하겠다고 할 때는 궁극의 목적은 핵 폐기다. 그걸 꼭 로드맵을 만들어 몇 년 몇 월까지 하겠다고 내놔야 하겠느냐? 그러기엔 미국과의 상호신뢰도 없지 않으냐?’라고 하는 것이죠.” 

    - 하노이 회담의 결렬을 예상했나요? 

    “냉정하게 보면 최종 목표까지 합의가 쉽겠느냐 하는 의문을 가졌죠.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성격상 믿고 보자고 할 수도 있었고요. 김정은 위원장도 확실히 핵 폐기까지 갈 테니 믿어달라고 해서 어떤 절충점을 찾을 줄 알았더니 서로 ‘강 대 강’으로 갔어요. 서로 최대를 요구하고 최소만 주겠다면서 일종의 부동산 매매 협상하듯이 했어요.” 

    -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에서 영변 핵시설을 내줄 테니 대북제재 5개를 풀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평양선언에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비건 대표에게 ‘미국은 북한이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 걸 먼저 하게 하라.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을 하게 하려다 하겠다고 한 것조차 안 하게 만들지 말고’라고 조언했어요. 미국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는 공감해요. 김 위원장의 요구는 대북제재를 거의 해제해달라는 것과 다름없어요. 트럼프 대통령이 최소로 주고 최대를 요구했듯이 김정은 위원장도 그렇게 했다고 봐요. 협상 초기니까요. 실무협상으로 가는 단계입니다. 아직 저는 낙관론을 펴고 있어요.” 

    - 그렇게 낙관하는 근거는? 


    “협상 외에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정부는 남북교류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의 재개를 타진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우리 정부의 이러한 계획에 명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 대통령의 협력적 접근법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 남북교류협력을 시도하는 정부의 노력에서 이해할만한 측면이 있나요? 

    “선후 문제인데요. 북한의 비핵화조치와 상응조치 간의 선후 문제죠. 인간적 관계로 접근하면 제재 완화 주장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국가관계는 더 냉정합니다. 인간관계엔 심장이 있고 따뜻함이 있어요. 국가관계에는 심장도 없고 아주 냉혹합니다. 제재를 완화해주면 북한이 핵 폐기로 가는 데에 스무스하지 않겠느냐 하는데, 선후관계를 따지면 핵개발계획 때문에 제재가 있는 거지 제재가 있어서 핵 개발을 한 것은 아니죠. 

    물론 핵 개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인한 안보불안, 생존문제 등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북한은 주장하고 있죠. 일반적으로 원인을 제거해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뒤에서 밀어주는 작업을 한다고 해놓고 오히려 끌고 가고, 말 앞에다 마차를 두는 격이 돼선….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 북한 사정을 보면 어떤가요? 


    “‘우리가 강요된 제재를 좀 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북한의 행동반경이 좀 커질 수 있고 김정은 위원장이 군부와 주민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건데요. 냉철한 시각에서 보면, 상응조치는 핵 폐기에 상응하는 조치이므로 핵 폐기가 선행돼야 합니다. 지금 조금 순서를 바꿔서 하자고 하니 인간관계에선 수긍이 되지만 모르겠어요. 우리 정부는 길을 만들고 있거든요. 그러나 후회할 일을 아예 안 하는 사람은 후회할 기회도 없는 법이죠. 그걸 딛고 가야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겠죠.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접근법은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 어떤 측면에서 공감할 요소가 있나요? 


    “북한의 핵 개발이라는 행동으로 인해 제재가 나왔으니 이 행동을 하지 않아야 제재가 풀린다는 것은 외교정책 중 강압적 정책이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엔 무력이 통하기 더 쉽잖아요? 주먹이 먼저 나가죠. 반면, 문 대통령의 정책은 협력적 정책이죠. 외교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방법인데요. 그러나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우리 정부는 제재의 틀 안에서 남북경협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입니다.”

    “비건이 페이퍼 달라고 해”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미국은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고 검증 가능한 북한의 비핵화로 완연히 돌아선 것으로 비친다. 완전한 비핵화 후 제재 해제를 추구하는 것으로 읽힌다. 반면, 정부는 ‘포괄적 합의, 단계적 진행’을 제시한다. 이수혁 의원은 이러한 기조를 바탕으로 정교한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 로드맵에 따르면, 1단계에서 북이 미래 핵인 핵시설을 폐기하면 ‘종전선언, 대북제재 일부 완화’ 같은 상응조치가 북에 제공된다. 2단계에서 북이 현재 핵인 핵물질을 폐기하면 광범위한 대북제재 해제와 남북경협이 제공된다. 3단계에서 북이 과거 핵인 핵무기를 폐기하면 완전한 대북제재 해제, 북·미 국교 수립, 평화협정이 제공된다. 북·미 간 신뢰도는 1~3단계를 거치면서 40%, 70%, 90%로 높아진다. 

    - 이러한 로드맵을 구상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북핵위기가 고조됐을 때 북폭 같은, 외교가 아닌 군사적·강압적 방법이 자주 거론됐지만 저는 늘 협상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저는 2003년 북핵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를 할 때부터 비핵화 로드맵을 대여섯 개 만들었어요. 그때는 핵무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없었고 그냥 우라늄농축 활동을 하겠다는 프로그램만 있었어요. 지금은 북한이 핵무기와 ICBM을 가졌으니 훨씬 복잡해졌죠. 그러나 복잡한 문제일수록 해법은 간명해야 합니다. 폐기할 대상, 상응조치, 시제, 신뢰도라는 네 가지 요소로 비핵화 방식을 단순화했어요. 이에 따라 미래 핵은 핵시설, 현재 핵은 핵물질, 과거 핵은 핵무기로 구분했죠. 제 구상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 신뢰도입니다. 비핵화 단계가 올라갈수록 신뢰도가 높아지는 거죠.” 

    - 3단계로 된 이 로드맵을 비건 대표와 공유했나요? 

    “제가 지난해 12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로드맵의 윤곽을 이야기했어요. 비건 대표가 그 기사를 본 겁니다. 그는 하노이 회담 이전에 서울에 왔을 때 제게 그 로드맵을 설명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말해줬더니 페이퍼를 달라고 해서 영문과 국문으로 줬어요.”

    “두 단계로 줄이는 게 좋겠다”

    - 반응은? 

    “자기 생각과 거의 같다고 했어요. 다만, 비건 대표는 ‘두 단계로 줄이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했어요.” 

    - 두 단계로 줄이는 것이라면…. 

    “현재 핵(핵물질) 폐기인 2단계와 과거 핵(핵무기) 폐기인 3단계를 하나의 단계로 합치면 되는 것이죠. 제가 비건 대표에게 ‘북한을 설득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라. 난 시간을 일부러 늦춘 게 아니다. 북한이 동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죠. 그렇게 저와 비건 대표가 비핵화 로드맵에 공감대를 형성했어요. 비건 대표는 여태까진 저와 만난 것을 외부에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이번엔 만나서 이런 로드맵을 논의했다는 것을 언론에 공개해달라고 하더라고요.” 

    - 그 목적은 아무래도 북한…. 

    “북한에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었겠죠. 이후 비건 대표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연설한 비핵화 방식을 보면 제 설명과 거의 다르지 않아요. 그러나 막상 하노이 협상에선 최소치와 최대치를 내놓아 충돌한 것이죠.” 

    -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함한 핵물질-시설 전체를 신고해 완전히 비핵화해야 제제를 풀어준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해석됩니다만. 

    “현 신뢰 상태에서 핵무기의 제원이나 위치, 농축우라늄을 언제 어떻게 생산했느냐를 다 밝히라고 하면 북한이 밝힐까요? 수류탄 돌리기 게임이나 똑같아요. 만약 북한이 전체 핵물질 리스트를 미국에 신고하더라도 문제입니다. 미국은 그것을 받아 어떻게 할까요. ‘사실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거짓말이고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단계별로 신고를 받아 검증하라고 하는 것이죠. 과거 핵 협상의 실패는 북한의 핵 신고 문제가 원인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내놓겠다는 영변 핵시설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썩은 돼지고기”라며 그 가치를 평가절하했다. 이에 대해 이수혁 의원은 “원자로 같은 일부 시설은 고철덩어리라고 봐도 된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가 사찰을 중단한 이후 영변에 새로운 핵시설이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300개가 넘는 시설이 있다고 한다. 영변 핵시설이 실제로 어떠한지 알기 위해서라도 영변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北 ‘지금 죽게 생겼다’

    -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은 무엇인가요? 

    “한 술에 배부르겠다고 하지 말자는 것이죠. 북이 이 정도는 폐기하겠다고 하면 그것부터 폐기하고 나중에 조금 더 폐기하는 식으로 나가는 겁니다. 점진적 진전과 안정을 함께 추구하는 ‘진화적으로 안정되는 전략(evolutionary stable strategy)’이라는 이론에 부합하죠. 1단계 비핵화에서 북에 아무것도 안 주면 안 되죠. 저는 미국의 의도를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를 해제해주면 안 된다. 비핵화의 끝에 가서나 제재를 해제해줘야지 그전에 부분적 완화나 유예는 없다’라고 해석하지 않아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에 동의한 것만 해도 굉장한 표현이죠. 우리는 미국의 이야기를 너무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요. 미국이 상응조치라는 단어를 쓰는데 비핵화에 상응하게 제재를 완화해야 합니다. 물론 핵무기 폐기가 제일 중요하니까 결정적인 제재는 맨 마지막에 풀겠죠.” 

    - 대북제재가 북한에 어느 정도 타격이 되고 있다고 보나요? 

    “제가 정확한 수치를 확인했어요. 에너지가 중요한데요, 원유에 대한 대북제재는 북한에 별 영향을 안 주죠. 북한엔 정제시설이 별로 없어서 원유보다는 정제유가 필요하죠. 정제유는 북한이 연간 500만 배럴을 쓰는데 지금 50만 배럴로 제재를 받습니다. 필요한 에너지의 10%밖에 수입을 못 한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 북한 선박이 해상에서 석탄과 바꿔치기 불법 환적을 하다 발각되곤 하는 겁니다. 지금 북한에서 우리 쪽으로 미세먼지가 많이 넘어온다고 해요. 기름이 없어 석탄을 많이 쓰니까요.” 

    - 대북제재가 북한을 상당히 압박하는 효과를 낸다? 

    “그런 것이죠. 더구나 북한의 주력 수출품이 광물, 섬유, 수산물인데 이게 다 금지됐죠. 외화도 못 벌어오는 것이죠. 해상에서의 대북제재로 석탄으로 물물교환하는 것도 쉽지 않게 됐고요.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는 ‘내가 지금 죽게 생겼다. 좀 도와달라’ 하는 이야기겠죠.”

    “레짐체인지 안 할 것”

    - 이런 시점에 문 대통령이 워싱턴에 가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정보를 얻는 데, 과거 같으면 (한미) 외교관들 간에 상대가 거의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서로 설명해줍니다. 저도 그런 역할을 했어요. (지금은) 미국과 공유하는 정보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정책 추진에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왜 하노이 회담이 그렇게 됐는지 등에 대해 직접 듣고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대북정책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미국은 ‘한국이 무슨 중재자냐, 동맹국으로서 같은 파트너가 돼야지’ 하는 불만이 있었다고 봐요. ‘한국이 미국과 같이 북한에 2대 1로 대하는 모양새를 갖춰달라’는 것이겠죠. 반면, 북한은 ‘한국이 미국에 쩔쩔맨다’고 말합니다. 정부가 민감하게 역할을 해야 합니다.”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북과 조기대화” “3차 북·미 정상회담 희망 심는 게 중요”라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유지” “단계 밟아야”라고 했다. 북한과의 대화 재개와 관련해, 온도차가 느껴진다. 다만, 문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 끝날 때까지 빛 샐 틈 없는 공조”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속했다. 

    이에 대해 이수혁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유지 발언은 ‘핵무기가 완전히 폐기될 때까지 제재를 건드리지도 말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러려면 상응조치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적기가 아니다’라고 했는데요. 문 대통령의 요구를 완곡하게 거절한 것일까요?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기 위해 제재를 완화해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야기했을까요? 안 했을 것으로 봅니다. 미국의 몇몇 전문가는 남북경협에 대한 한국 측의 언급이 미국 측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을 해요. 두 사업이 의미 있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어도 이것을 재개할 수 있도록 제재를 완화해달라고 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젠 영변+α로 안 될 것”

    - 트럼프의 빅딜엔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 교체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나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죠. 미국이 김정은 정권의 전복이나 붕괴를 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미국이 전략적 판단을 했다고 봐요. 김 위원장의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레짐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낸 듯해요. 레짐체인지는 북한의 사정을 정치적으로 더 어렵게 한다고 보고 되도록이면 스무스하게 핵을 폐기하려고 하는 듯해요. 결혼 이야기를 할 때 약혼이나 상견례 문제로 갈등이 생기면 사람들은 ‘결혼하는 거냐 안 하는 거냐’라고 하겠죠. 그래서 미국 대통령은 중간 과정을 빼고 완전한 비핵화라는 결론만 이야기하죠.” 

    이 의원은 4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몇 달 끌면 모멘텀(동력)을 상실할 수 있으므로 빨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영변+강선 핵시설 폐기를 내놓는 대신 대북제재 완화를 얻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의원은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영변만 갖고는 안 된다고 했으니까 ‘플러스 알파’ 문제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 그 알파가 강선일까요? 

    “이젠 영변 플러스 알파로는 안 된다고 봐요. 핵시설 전체의 폐기를 이야기할 때는 알파가 더 커질 수 있겠죠. 핵시설 전체에 대한 신고-사찰-폐기일 수 있죠. 핵무기와 ICBM을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설이 필요하겠어요. 그걸 다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겠죠.” 

    - 핵시설을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북한 전체 땅덩어리를 샅샅이 봐야 하는 문제가 생길지 몰라요. 북한으로선 정말 발가벗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톱다운 방식 외교사적 의미 있어”

    - 3차 북·미 정상회담은 올해 안에 열릴까요? 

    “과거엔 ‘톱다운’ 방식을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북핵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 할 때 제 꿈이 6개국 정상을 언젠가 한자리에 모시는 것이었죠. 한 번도 안 이뤄졌죠. 외교사적 의미가 있어요. 어쨌든 톱다운 방식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나선다는 것이고요. 비핵화 방식이나 상응조치와 같은 가격 매기기는 전문가들이 사전에 해야겠죠.” 

    - 김정은 위원장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포기하지 않을 거면 협상할 필요가 없죠. 안보 딜레마는 서로 상대를 못 믿어 무기를 증강하는 것이고 역안보 딜레마는 서로 상대를 못 믿어 군축을 못 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역안보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이 의원은 “북한은 북·미 간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핵이 없으면 리비아의 카다피나 이라크의 후세인 꼴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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