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이용준 前북핵담당대사 “北 ‘세계 3위 핵보유국’ 등극 시간문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9-04-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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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편파적 중재’가 北 ‘핵보유국 굳히기’ 도와

    • 위장된 부분적 비핵화는 비핵화 안 된 것만 못해

    • 오판·시행착오·방치 탓 ‘핵 게임’서 北 승리

    • 한미동맹 와해될만한 수준의 커다란 상처 입어

    • ‘핵을 가진 北’ ‘안보 약화된 南’ 현실화

    • ‘남아 있는 한줄기 희망, 제재’ 완화해선 안 돼

    [홍태식 객원기자]

    [홍태식 객원기자]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북핵 협상 30년 현장의 산증인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오판, 시행착오, 방치를 현장에서 겪었다. 1991년 청와대 남북 핵협상 담당관을 시작으로 주(駐)미국 대사관 북핵 문제 담당관, 경수로 협상 대표, 북미 1과장,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부장,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정책국장으로 일했다. 외교부 북핵외교기획단장, 6자회담 차석대표, 북핵담당대사, 차관보를 역임했다.

    핵보유국 돼버린 북한

    이 전 대사가 2018년 12월 출간한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은 북핵 협상 정사(正史)다. 그는 이 책 서문에 “미국은 제재 조치라는 한 가닥 밧줄에 모든 희망을 건 채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면서 “30년 핵 게임이 북한의 승리로 사실상 종말을 맞았다”고 썼다. 북한이 고철 수준의 영변 핵시설을 내놓고 제재 완화를 받아내 ‘핵보유국 굳히기’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은 족집게처럼 들어맞았다. 

    이 전 대사는 “위장된 부분적 비핵화는 비핵화가 아예 안 된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핵무기 수십 개를 보유한 북한에 ‘부분적 비핵화’ 대가로 제재조치 해제, 경제지원 제공, 한미동맹 격하 등 반대급부를 제공한다면 북한의 핵 보유 의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며, 그로 인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점점 더 요원한 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핵을 가진 북한’과 ‘안보가 약화된 한국’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게 그의 우려다.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 현안으로 부각된 것은 1989년. 그로부터 28년 만인 2017년 11월 북한은 수소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성공을 계기로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러곤 2018년 김정은 신년사를 기점으로 대남·대미·대중관계 개선에 나섰다. 3차례 남북 정상회담, 2차례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사이 ‘핵보유국 북한’은 기정사실이 돼버렸다. 

    -숨 가쁜 속도로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를 하던 북한이 돌변해 ‘미소 외교’에 나섰다. 



    “2017년 말 핵무장 완성을 선포한 것은 복잡다단한 핵개발 게임에서 북한이 마침내 승리해 핵보유국으로 등극한 순간이었다. 국제사회가 핵 보유를 용인하건 불용하건, 핵보유국이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은 인도·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해왔다. ‘미소 외교’에 나선 것도 이 방식으로 ‘핵보유국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실제 북한이 2016년 이 같은 계획을 세우고 외교관들에게 지시한 내용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 저서에도 기록돼 있다.”

    북한이 짜놓은 시간표대로 전개된 ‘핵보유국 굳히기’

    태영호 전 공사에 따르면 2016년 6월 평양에서 ‘제44차 대사 회의’가 열렸다. 리용호 외무상이 회의를 진행했다. 의제는 셋이었다. ①핵무력 완성 기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②대북제재는 어느 정도까지 심화할 것인가 ③핵보유국이 되려면 어떤 노정을 거쳐야 하는가. ①,②와 관련해서는 단기간 핵무력을 완성해야 하며, 제재는 지금껏 견뎌온 문제라는 결론이 나왔다. ③은 인도·파키스탄 모델을 창조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2016년 말 미국 대선이 진행된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모든 정책 라인의 인선 작업을 마무리하려면 2017년 중순까지 갈 것이다. 그리고 이해 하반기 남조선이 대선 국면에 진입한다. 결국 2016년 말부터 2017년 말까지는 남조선과 미국의 정치적 공백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때까지 미국은 조선에 대한 군사적인 공격을 가할 수 없을 것이다. 2018년부터는 핵보유국 지위를 공고화하는 평화적 환경 조성에 들어가야 한다. 이때는 조선도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핵동결을 선언하고 장기적으로 남조선과 미국에 조선의 핵에 대한 면역력을 조성해야 한다.”(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403쪽) 

    -태 전 공사 증언대로라면 2018년은 북한에 있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 조성의 시기였다. 

    “다행스럽게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정신을 차림으로써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면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에 비춰볼 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대화 국면은 ‘핵보유국 굳히기’ 전략에 따라 ‘북한의 시간표’대로 전개된 것이라고 봐야 할까. 

    “그렇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지금껏 후퇴하거나 멈춰 선 적이 거의 없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8년간 동결 기간이 있었으나 고폭실험을 계속했으며 우라늄 농축시설도 비밀리에 건설했다. 그때도 할 건 다 했다.” 

    고폭실험은 핵실험 직전 단계로 핵분열 물질을 주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폭장치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영변의 녹슨 핵시설에 시선이 멈춘 사람들

    그는 “북한은 명실 공히 핵보유국”이라고 했다. 

    “2006년 플루토늄탄 개발 성공 이후 우라늄탄, 수소탄을 차례로 개발했다. 인도, 파키스탄은 수소탄 실험을 한 적이 없으며, ICBM 비행도 없었다. 핵 보유를 시인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핵실험을 한 적도 없다. 핵 능력만으로 볼 때 북한은 5대 핵보유국 다음에 위치한 ‘세계 6위 핵보유국’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핵보유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5개국이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받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핵보유국이 실전 배치한 핵탄두가 80~300개 수준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북한이 원하기만 하면 중국 영국 프랑스를 추월해 세계 3위 핵보유국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사정이 이런데도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시선이 영변의 녹슨 핵시설에 멈춰 서 있는 이들이 있다. 1990년대처럼 영변 핵시설이나 동결해놓고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 해결되리라는 구시대적 사고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북한 핵시설의 근간인 영변 핵시설이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진행 과정에 있어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영변 핵 시설 폐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만 적당히 폐기한 후 나머지는 그대로 보유하면서 제재의 대부분을 해제하려고 했다. 영변의 플루토늄 핵시설은 고철 수준으로 낡은 데다 미국이 위성으로 감시하기에 비밀스러운 활동을 할 수 없다. 북한이 낡아빠진 플루토늄 생산용 원자로를 내놓고 실효성 있는 제재 거의 모두를 해제하는 딜(deal)을 시도한 것은 30년간 이어진 협상 과정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었다. 2010년 북한 스스로 공개한 바 있는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이 딜에 포함되더라도 전체 핵능력의 30%가 안 된다. 하노이 회담에서 드러났듯 북한이 내놓을 첫 번째 폐기 대상은 더는 필요 없거나 다른 시설로 대체가 가능한 시설이다. 두 번째 폐기 대상은 공개돼 숨길 수 없고 숨길 필요가 없는 시설이다.”

    “영변 시대의 고정관념 버려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9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왼 주먹을 불끈 쥐며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9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왼 주먹을 불끈 쥐며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신문]

    그가 덧붙여 말했다. 

    “현재 단계에서는 ‘과거 핵’ ‘현재 핵’ ‘미래 핵’을 나누는 게 큰 의미가 없다. 영변 시대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북한 핵 개발을 3단계로 나눠보자. 1단계는 영변 핵시설 단계로 핵무기가 1개냐, 2개냐 할 때다. 북한이 하노이에서 폐기하겠다고 밝힌 영변 원자로를 1년 동안 풀로 가동해봐야 플루토늄탄 1개를 만들 수 있는데, 고장이 잦아 1년에 반 이상이 수리 중이었다. 영변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핵무기 30개는 만들었어야 하는데 지금껏 5개밖에 못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영변 시대에는 동결이 1차 목표가 될 수 있었다. 동결하고 해체할 시설이 명확해 더 못 만들게 한 후 시설을 해체하면 됐다. 

    2단계는 우라늄 농축 단계로 우라늄을 어느 곳에서 얼마나 농축하는지 알 수가 없다. 대상이 불분명하므로 동결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3단계는 수소탄 단계다. 수소탄은 핵물질을 똑같이 사용해도 수소를 늘리면 원자탄보다 수십, 수백 배 폭발력을 가진다. 표면상 완전한 비핵화를 하더라도 수소탄 1개만 숨겨놓으면 그것으로 한국을 파괴할 수 있다. 또한 핵물질 일부만 남겨놓아도 언제든 수소탄 제작이 가능하다.”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는 핵 군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핵 개발을 완료한 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김정일 시대부터 공공연한 계획이었다. 핵무장이 완료된 2017년 말 이전과 이후의 협상은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핵무장 이전까지는 잘못한 행동을 취소하는 게 협상의 목표였으나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과 올해 하노이 회담은 미국이 제공하는 상응 대가와 북한 핵을 교환하는 협상이었다. 하노이 회담이 깨진 것은 미국이 이 같은 개념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놓은 것에 비해 북한이 원하는 게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므로 핵무장이 완성된 게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그렇게 말하는 이는 미국 사람이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다. ICBM은 한국과는 상관이 없고 미국에만 해당한다. 그간의 북핵 협상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자 나온 논리인데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핵무장은 플루토늄탄 개발로 진즉에 마무리됐다. 국제사회가 인도,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 된 시점을 언제로 보나. 1차 핵실험에 성공했을 때다. 북한이 플루토늄탄으로 첫 핵실험을 한 게 2006년이다.”

    핵 개발 도와준 ‘제네바 합의’ ‘9·19공동성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협상 결렬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웃고 있다.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인스타그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협상 결렬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웃고 있다.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 인스타그램]

    그는 “지난 30년간 북핵 문제는 단 한 번도 해결의 문턱에 접근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단 한순간도 상황의 호전됨 없이 지속적으로 핵 개발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돼왔을 뿐이다. 북한이 핵 개발에 성공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핵무장을 완성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둘째, 국제사회의 오판, 시행착오, 방치가 30년간 이어졌다.” 

    그는 국제사회가 뒷북을 치거나(제재), 헛발질하거나(잘못된 합의), 썩어문드러지도록 방치(전략적 인내)해왔다고 봤다.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은 북핵 문제가 해결 문턱까지는 간 것 아닌가. 

    “핵 문제 해결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얘기할 때 제네바 합의와 9·19공동성명을 언급하는데 둘 다 치명적 결함을 가졌다. 제네바 합의와 9·19공동성명은 북한 핵 개발을 비호하고 도와줬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외교적 승리라고 여긴다. 제네바 합의의 골자는 핵 프로그램을 동결한 후 한미일이 북한에 짓는 경수로가 완공되는 시점에 핵을 포기하는 것이다. 경수로 완공까지 최소 8년 내지 10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북한은 동결 기간 미국으로부터 매년 1억 달러 상당의 중유를 지원받았다. 북한이 그 기간 뭘 했나. 제재, 압박이 없는 상황에서 핵 개발에 매진했다. 핵 개발을 계속하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되자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9·19공동성명의 치명적 결함은 뭔가. 

    “한마디로 헛발질이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지은 게 2002년 발각돼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앞서 언급했듯 영변의 플루토늄용 원자로와 우라늄 농축시설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럼에도 9·19공동성명은 우라늄 농축시설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우라늄 농축 탓에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는데 기존의 핵 프로그램만 합의에 담겼다. 북한이 2008년 영변 5MW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를 벌일 때 미국이 지불한 경비만 250만 달러다. 미국은 그해 10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9·19공동성명은 북한 외교가 거둔 또 한 번의 승리였다. 미국은 1987년부터 북한을 압박한 테러지원국 제재라는 지렛대를 헛되이 날렸다. 그 결과 북한 핵 능력이 현재 수준에 도달했다.”

    “수소탄, ICBM 가진 채 군사적 압박에서 벗어나”

    -김정은은 외교적 승리를 확신하고 하노이행 열차에 올랐겠다. 

    “그랬을 것이다. 북한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북핵 협상에서 실패한 적이 없다. 1,2차 북핵 위기 때는 전리품을 가득 안고 금의환향했다. 영변 및 은닉된 핵시설을 다 내놓고 농축시설 한 곳만 남겨놓아도 됐는데도 구두쇠처럼 행동했다. 영변 핵시설 중 우라늄 농축시설을 폐기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전체 핵시설의 극히 작은 일부분밖에 안 된다.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하더라도 30%가 안 된다. 너무 조금 내놓고 제재 해제는 99%를 요구한 것이다.”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지목해 김정은이 놀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의 정보가 사실과 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 대북제재 또한 핵무장을 막지 못했다. 

    “첫 핵실험을 한 2006년부터 유엔 제재가 시작됐는데 말만 요란했지 실제적 압박을 준 게 없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경제는 호황을 구가했으며 제재로 고통받는다는 얘기가 들려오지 않았다. 중국, 러시아의 동의를 받아 만장일치로 결의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고통을 줄 만한 제재는 거의 없었다. 2016년과 2017년 상반기의 제재는 과거보다 실질적이기는 했으나 압박 효과가 크지는 않았다. 북한이 아파하는 제재는 2017년 8~12월 사이 유엔이 채택한 제재들이다. 2006년이나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 강력한 제재안이 마련됐다면 북핵 문제가 해결됐을지도 모른다. 국제사회가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한 이후에야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 너무 늦었다. 북한이 완성된 핵무기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북·미 협상에서 이제껏 제재 해제를 받아내지 못했으니 평양도 얻은 건 없다. 

    “북한은 굉장히 많은 것을 얻었다. 제재 해제 하나만 못 얻고 나머지는 다 얻었다. 2017년 말로 되돌아가보자. 북한이 어떤 처지였나. 언제 군사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때 추진한 ‘무력 위협을 통한 핵 포기 압박’ 옵션은 사라진 지 오래다. 북한은 3차 북핵 위기를 촉발한 수소탄과 ICBM을 그대로 가진 채 군사적 압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됐다? 

    “그렇다. 미국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추가 제재도 피했다. 정상회담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제재를 추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무엇보다도 협상 국면이 2년째 이어지면서 핵보유국으로서 입지가 다져졌다. 기존의 핵무기 보유는 기정사실이 돼버렸다.”

    “北 최우선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 공고화”

    -미국은 뭘 얻었나. 

    “2017년 8~12월 제재가 북한을 압박한다는 게 입증됐으며 평양이 핵 포기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별게 아닌 것 같으나 협상 전략을 짤 때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한국은? 

    “한국은 북한에 유리하게 편파적 중재를 했다. 북한으로부터 호감을 얻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별로 고맙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한국이 잃은 것은 북·미 사이에서 편파적 중재자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었으며 한미동맹이 거의 와해될 만한 수준의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현재 국면에서 북한과 미국의 우선순위는 뭘까. 

    “북한의 최우선 목표는 핵보유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공고화하는 것이다. 핵 보유를 포기한다는 개념은 북한에 없다. 두 번째 우선순위는 제재 해제다. 차순위 목표인 제재를 해제하지 못해도 핵은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의 우선순위는 명확하다. 첫째, 북한 핵무기가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것은 ICBM만 못 만들게 하면 된다. 둘째, 북한 핵이 미국의 핵심적 국익이 걸린 중동 지역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저지하는 것이다. 맨 마지막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일각에서는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을 향한 직접 위협만 제거하는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많은 전문가가 걱정했다. 다행히도 한국이 운이 좋아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북한이 절대로 핵보유국 지위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변하지도 붕괴하지도 않는 ‘핵보유국 북한’과 공생해나갈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핵보유국은 누가 인정해주는 게 아니다. 핵을 보유했으면 핵보유국인 것이다. 북한은 현재 핵보유국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핵을 폐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도 없지는 않겠으나 대단히 비현실적인 바람이다.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 정권의 성격이나 속성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기대할 수 없는 비현실적 목표다.” 

    그는 “북한 핵이 자위용이라는 것은 착각”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북한이 체제를 지키고자 방어용으로 핵무장을 했으므로 안전을 보장해주면 핵을 포기하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북한이 사는 게 어려우므로 경제적으로 큰 대가를 지불하면 핵을 포기하리라는 것도 착각이다. 이러한 착각 탓에 북한에 퍼주기를 한 정부도 있으며,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거나 연합훈련을 제한한 정부도 있다. 북한을 안심시키려는 시도는 어떠한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남아 있는 한 줄기 희망, 제재”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시작한 1960~70년대는 소련의 위세가 아주 강했던 때다. 남북관계에서도 북한이 우위에 있었다. 1974년까지 북한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한국보다 높았다. 시민들의 생활수준도 북한이 우위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시작했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을 제압해 한국을 북한 주도로 통일하겠다는 일념으로 핵 개발에 나선 것이다. 1990년대 공산권이 몰락하고 북한 경제가 취약해졌으나 이후의 핵 개발도 수세적인 것이 아니라 공세적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수소탄까지 개발할 필요는 없었다. 방어용이라면 2006년 플루토늄탄 개발까지는 설명이 가능하다. 북한은 수소탄과 ICBM을 가지려고 집요하게 노력했다. 방어용이라면 한국과 일본을 공격하는 핵무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수소탄과 ICBM까지 나아간 것은 북한 주도 통일이라는 과거 목표의 연장선상에서 행동한다는 강력한 증거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생존을 위해 핵무장을 했으나 ICBM, 수소폭탄은 없다. 이웃한 적군을 공격할 핵무기만을 가졌을 뿐이다.” 

    -핵 보유에 대한 북한의 의지가 그렇듯 강력하다면 북핵을 제거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 제재 조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해서는 안 된다. 제재가 남아있는 한 한 줄기 희망은 있다. 경제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경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북한의 주요 수출(광물, 섬유제품, 수산물)을 다 막아놓았다. 밀수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제재는 미국이 가진 마지막 보루다.”

    “중재자가 북한을 일방적으로 두둔”

    [홍태식 객원기자]

    [홍태식 객원기자]

    -문재인 정부는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합의)’이라는 표현을 내놓았으며 부분적 제재 완화가 비핵화를 촉진한다고 본다. 

    “북한을 빼고 제재 완화를 말하는 나라는 중국, 러시아와 한국 셋밖에 없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단계적 이행을 받아들이면 북한이 원하는 핵보유국 공고화가 성공한다. 제네바 합의, 9·19공동성명 때처럼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만 단계적으로 이행하고 다 얻으면 그 단계에서 중단하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다. 한꺼번에 합의하고 한꺼번에 이행하는 일괄타결, 일괄이행이 거의 유일한 해법이다. 일괄타결, 일괄이행은 미국이 원하는 선(先)핵폐기도 북한이 주장하는 후(後)핵폐기도 아닌 ‘동시 핵폐기’ 방식을 말한다. 1~2주의 짧은 기간을 설정한 후 모든 핵시설의 신고 및 폐기 전체와 미국이 제공할 상응 조치를 한 바구니에 넣고 동시 조치를 하는 것이다. 신고 즉시 검증한 후 핵시설과 핵무기를 폐기, 국외 반출하는 것과 동시에 제재 해제, 종전선언, 한미동맹 문제 등을 즉각 이행하는 방식이다.” 

    -‘핵보유국 권리 확보’가 평양의 최우선 목표라면 북한이 그 같은 방식의 비핵화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핵 포기 의지가 없는 것을 확인한 미국이 ‘전략적 인내’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겠다. 

    “북한이 핵 포기를 끝까지 안 한다면 그 길밖에 방법이 없다. 대화는 지속되지만 특별히 진전도 없고 파국도 아닌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핵보유국의 기정사실화라는 목표를 달성한다. 미국은 제재를 지속하면서 북한이 경제적 문제 때문에 도저히 못 버티거나 체제의 속성이 무너지거나 바뀌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남아 있는 것은 군사적 옵션밖에 없는데 그것은 한국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핵시설 위치를 다 모르기에 실행할 수도 없다.” 

    김정은은 4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그만두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연말까지 용단을 내리라”고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는 운전자→중재자→촉진자로 스스로를 규정해왔다. 대화 국면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하나. 

    “처음에는 운전자를 자처했으나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라고 여기고 중재자로 떨어져 있었기에 운전자 역할을 한 것은 없다. 중재자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중재자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하는데 북한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편파적 위치에 서 있었다. 북한의 핵보유국 권리 확보를 도와준 격이다. 하노이 회담을 통해 북한의 본심이 드러나면서 미국도 한국을 중재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촉진자는 이후에 나온 용어인데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북핵 문제에서마저 노골적으로 북한 편들기를 하는 바람에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공감대나 공통의 가치관이 점점 없어지는 상황이다. 한미동맹에 아주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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