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 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검증된 지식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에 드물어서다. 국내 최고(最古)의 시사종합지 ‘신동아’는 이런 ‘지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 동안 월 1회씩 ‘신동아’ 고재석 기자와 책 한 권을 함께 읽기로 했다.
3월 25, 26일 양일간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수십 명의 1기 멤버가 속속 모여들었다. 첫 수다의 대상이 된 책은 개발경제학의 세계적 석학 장하준(56)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이다. 멤버들이 정성스레 써온 서평 중 일부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2018년 7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불온도서 10년 그 후…’라는 주제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책을 관통하는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선진국이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정해야 한다’ 정도가 될 터. 개발도상국이 충분한 역량을 갖출 때까진 기울어진 운동장, 즉 보호주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후 역량을 갖춘 개도국이 사다리를 올라타겠다면, 걷어차지 말고 자유무역으로 윈-윈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거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저자는 부자 나라의 과거를 근거이자 증거로 삼는다. 부자 나라는 사실 다 비슷하다. 기득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과거를 왜곡하고 인과관계를 뒤바꾼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조정한다. 기득권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책에서 뚜렷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자의 위선을 낱낱이 파헤쳤지만, 그들이 왜 ‘가난한 나라’의 성장을 도와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개도국의 성장을 도와라. 장기적으론 너희들에게도 이득이니라’ 정도의 말뿐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게 먹힐 주장이 아니다.
장하준은 ‘부자 나라가 과거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은 적이 없다’며 그 경험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라고 표현했다. 너무 낙관적인 결론이다. 이미 나쁜 맛을 알아버린 사마리아인들이 아무 대가 없이 자신들의 천국인 ‘신자유주의’를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사상은 생각 이상으로 주위에 만연해 있다. 당장 이 서평을 쓰면서 ‘부자 나라의 위선을 고발한 장하준 교수’에게 ‘부자 나라가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를 묻고 있는 나부터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모두는 사실 꽤나 나쁜 사마리아인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