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마녀사냥식 사법부 뒤집기에 권력분립 무너져

풍전등화 위기 맞은 ‘사법부 독립’

  •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jamta@korea.ac.kr

    입력2019-05-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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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불신, 양승태 넘어 법원 전체로

    • ‘사법농단’ 표현, 매우 모호하고 자극적

    • 제왕적 대법원장, 황제처럼 군림하는 대통령이 임명

    • 대통령이 대법원장 훈계하는 듯한 상하 관계

    • 정부·여당, 김경수 재판 때 사법부에 일말 존중 없어

    • 법원, 판사 막말 등 고압적 태도 자성 부족

    • 판사들의 독립 의지 약화됐는지 의심

    2019년 1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소환에 앞서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2019년 1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소환에 앞서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대한민국 사법부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과거 독재정권하에서 사법부가 겪은 수난의 역사를 생각하면 1948년 사법부 구성 이래 최대 위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는 점을 부인키도 어렵다. 

    민주화 이후 사법부는 적잖은 부분에서 발전해왔지만 사법 비리가 지속적으로 반복된 것도 사실이다. 사법개혁 논의 또한 힘차게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비리는 얼마나 잦았고, 성과 없는 정치개혁 논의는 또 얼마나 많았는가? 

    사법부가 최대 위기를 맞게 된 직접적 원인은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킨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에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배경과 진행 경과를 살펴보면 의문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검찰의 수사 과정과 법원의 대응을 두고 언론이 앞장서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의 구속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법원의 영장기각을 두고 일부 언론이 여론을 자극한 것이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발부로 이어진 과정 역시 논란의 소지가 적잖다.

    양승태, 유죄건 무죄건…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법개혁안도 그렇다. 이번 개혁안은 법원 내 사법발전위원회의 안을 참고했다. 이는 2017년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에서 제시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던 사법평의회 안과 유사한 사법행정회의 안이다. 그러면서 사법농단 의혹의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대통령과 대법원장 간의 상하 관계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법이 올바르게 집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재판의 공정성이 곧 사법의 본질이다. 



    중립성과 독립성은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물론 중립성, 독립성을 갖춘다고 해서 반드시 재판의 공정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판사 개인의 왜곡된 선입견이나 전문성 부족 탓에 잘못된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중립적이지 않은 재판은 공정할 수 없고, 독립적이지 않은 (즉, 종속된) 재판은 중립적일 수 없다. 재판의 (나아가 사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인 셈이다. 

    최근 사법부가 겪고 있는 위기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법원 재판이 공정치 않다는 사법불신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국민들은 이런 현상에 극도의 불안함을 느낀다. 과거 사법비리로 인한 일시적 불만, 불신과는 양상이 다르다. 법원 조직 전체에 대해 극도의 불신이 팽배한 것은 민주화 이후 최초다. 향후 법원에서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건 무죄 판결을 내리건 국민의 사법불신이 더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국민의 사법불신은 사법의 기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재판을 거부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는 법원이 법치와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서 제 기능을 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사법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기대하는 사법부, 즉 공정한 재판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설령 내가 재판에서 패소하더라도 법원의 결정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만드는 설득력 있는 재판이 계속돼야 한다. 

    원론적이고 평범한 답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기대하는 사법부는 영웅적인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재판을 통해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기관, 국민을 존중하고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기관이 사법부다.

    법원 길들이기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9월 1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9월 1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검찰 개혁을 가장 먼저 추진했다. 2년이 지난 현재, 가시적 개혁 성과는 없고 ‘검찰 길들이기’만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법농단 의혹을 두고 이제 ‘법원 길들이기’라는 비판이 부상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사법농단’이라는 표현은 매우 모호하면서도 자극적이다. 애초에 ‘재판거래 의혹’으로 시작됐다가 ‘재판거래’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순실 사태를 ‘국정농단 의혹’으로 지칭한 것에 빗대 ‘사법농단 의혹’으로 표현을 바꾸게 된 과정도 석연치 않다. 마땅히 문제로 지적받았어야 할 점들이 공론으로 다뤄지지 않은 것도 문제다. 

    첫째, 사건 진행 과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녀사냥식으로 사법부를 뒤집어 놓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다. 사법부에 대한 존중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사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직 대법원장을 포함해 전·현직 법관들을 둘러싸고 온갖 의혹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조차 존중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둘째, 정부·여당은 사건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과 대법원장 간 상하 관계에 대해 의도적으로 언급을 회피했다. 제왕적 대법원장이라고 문제 삼으면서도 그 제왕적 대법원장이 황제처럼 군림하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는 점은 도외시했다. 2018년 9월 14일,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훈계하듯 기념사를 하고, 대법원장은 이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정부·여당과 사법부 모두 이런 상하 관계를 애써 외면했다. 사법농단이라고 일컫는 문제를 이 정부와 여당이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한다. 

    셋째, 김경수 경남지사 사건 판결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격한 반응에서는 사법부 판단에 대한 일말의 존중조차 보이지 않았다. 해당 재판을 “적폐판사의 보복판결”이라고 비난한 것이나, 이후 검찰이 김 지사를 법정구속 판결한 담당 부장판사를 기소한 것이나 결국 사법부 독립성을 뿌리째 흔드는 행태다. 

    이런 문제들은 정부와 여당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무력화로 귀결된다. 사실상 권력분립 원칙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사법부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국민의 사법불신이 본격화한 계기는 2012년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됐을 때다. 이 영화는 2007년 ‘석궁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종래 국민들은 판사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자, 그중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마친 엘리트라고 여겨 막연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반면 이 사건 이후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판사도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석궁테러 사건의 잔상이 강하게 부각되는 상황에서 스폰서검사, 벤츠여검사 등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국민의 불신을 야기했다. 우병우, 진경준, 홍만표, 최유정 같은 고위 법조인들이 연루된 비리를 두고 국민의 불만이 누적됐다. 설상가상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까지 제기돼 국민의 사법불신이 극에 달했다. 반복되는 사법비리를 두고 법원이 타성에 빠진 대응을 보이자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간 판사들이 사법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면을 보인 탓도 있다. 소송 과정에서 일부 판사들이 보인 고압적 태도는 큰 문제다. 막말하는 몇몇 판사의 행태는 국민이 사법을 적대시하게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법원의 자성은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수직적 관계와 인사권

    2018년 12월 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사법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12월 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사법행정제도 개선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뉴스1]

    새삼 강조하건대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이며, 그 전제는 사법의 독립이다. 그런데 대법원장과 대법관에 대한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어 대통령과 그들 사이에 수직적 관계가 형성된다. 법원 안에서는 대법원장 인사권을 통해 대법원장과 법관들이 유사한 형태의 수직적 관계를 형성해 사법부 독립을 저해한다. 

    그러므로 공정한 재판은 사법부를 대통령의 인사권으로부터 독립시키고, 법관 인사에 대한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대법원장 및 대법관에 대한 임명권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개헌 이전에라도 대통령은 독립적인 추천위원회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결정된 후보자에 대해 (코드에 맞는 대법원장,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인 임명권만을 행사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법관 인사와 관련, 법조일원화 제도(일정 기간 변호사로 근무한 법조 경력자 중 법관을 선발하는 제도) 도입 이후 법관 임용 방식의 변화가 끼친 긍정적, 부정적 요소에 대해 신중한 검토도 필요하다. 사법시험 폐지 및 법학전문대학원 도입과 연계된 법조일원화는 서구 선진국의 법관 임용 방식을 따르는 것으로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 맞게 보완해야 하고, 이른바 ‘후관예우’ 문제에 대해서도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 지역 법관들이 토호세력과 결탁할 것을 우려해 도입된 순환보직제도 역시 합리적으로 완화하지 않을 경우 유능한 법관이 법원을 떠나는 현상을 막기 어렵다. 

    ‘사법의 민주화’에 대한 오해도 불식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사법부를 두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사법의 본질이 ‘공정한 재판’이며, 이를 위한 전제가 ‘정치적 중립’이라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부실한 사법 서비스의 원인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있다는 오해를 불식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국민이 사법부가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사법 서비스를 가시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먼저 법원 문턱이 낮아졌다고 여길 수 있을 만큼 판사들과 법원 직원들이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재판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사법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 전문법원제도의 확대와 전문법관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현재도 행정법원, 가정법원, 특허법원, 회생법원 같은 전문법원이 있다. 이를 다양한 분야로 늘려 전문성 강화를 꾀해야 한다. 예컨대 독일처럼 사회법원, 재정법원 등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 더불어 전문법원의 관할 범위를 분명히 규정한 후 제1심과 제2심을 담당케 하고, 대법원에는 이에 상응하는 전문부를 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판사들이 민사부와 형사부, 행정법원과 특허법원 등을 넘나들며 재판을 담당하는 것도 전문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로펌에서는 오래전부터 변호사 담당 분야를 세분화함으로써 전문성을 키워왔다. 검찰도 검사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니 법원만 안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적잖다. 이제는 전문법관제를 통해 판사들도 각자 전문 분야를 정해 해당 분야 재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법 서비스의 효율성 강화는 재판의 신속성, 경제성과 이어진다. 법원 조직 효율화와 판사 증원을 통해 법원의 사건 부담을 줄임으로써 재판의 신속성을 꾀할 수 있다. 사법 서비스의 경제성은 변호사 비용과 무관치 않다. 이는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변호사가 늘면서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다.

    권리 위에 누워 잠자는 자

    위기를 극복하려면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더불어 해결 방향에 대한 확고한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합리적 처방을 마련해 실행에 나서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사법부 위기를 바라보는 여야 간 시각이 판이하다. 법원 내부의 시각과 국민의 시각에도 또렷한 차이가 엿보이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법원 전체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적잖다. 사건 연루 판사들을 탄핵해야 한다는 법원 일각의 주장에서도 이런 시각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는 사안의 중대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국민의 불신은 법원 전체를 향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차량에 화염병이 날아드는 사태까지 빚어졌는데, 법원 내부는 이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사법개혁에 대한 법원의 태도도 안이하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중심의 사법개혁 논의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사법의 민주성 강화 요구에 대한 대응도 그렇다. 일부에서 사법부를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비판하며 법관선거제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정작 법원은 입장 표명조차 못하고 있다. 향후 관련 쟁점이 어떤 후폭풍을 불러일으킬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원 내부의 안이한 태도는 김경수 지사 판결 이후 국면에서도 엿보인다. 담당 판사들에 대한 정부의 압력은 1971년 제1차 사법파동 당시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법원의 반응은 어떠한가? 사법부 독립과 공정한 재판에 대한 판사들의 의지가 예전에 비해 되레 약화된 것은 아닌지 의심케 만드는 대목이다. 

    진정 사법부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정부가 사법부를 흔들어서도 안 되고, 국민은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사법부 스스로 제몫을 하는 데 있다. 사법부를 흔들려는 내·외부의 힘에 단호히 대처하지 않는 사법부는 ‘권리 위에 누워 잠자는 자’가 되기 마련이다.

    장영수
    ● 1960년 출생
    ● 고려대 법과대학 및
    동 대학원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 법학박사
    ●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정개특위 자문위원회 위원
    ● 現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저서: ‘민주헌법과 국가질서’, ‘헌법총론’, ‘기본권론’, ‘국가조직론’, ‘헌법학’,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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