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2018년 7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불온도서 10년 그 후…’라는 주제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책을 덮고 난 후, 한 친구와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체급을 나눠 경기하는 운동을 직업으로 삼은 친구다. 경기 전이면 체급을 맞추기 위해 혹독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살을 빼고 그것도 모자라 침을 뱉으며 몸무게를 맞춘다. 심할 때는 피까지 뽑는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아주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왜 그렇게까지 해? 그냥 위 체급으로 출전하면 안 되는 거야?”
친구는 너무 많이 들어본 질문이라는 듯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그렇게 쉬우면 좋겠다. 나보다 머리 하나 큰 사람이 나만큼 살을 빼고 나오면, 난 경기를 해보지도 못하고 지는 거야.”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가만히 둔 채, 아니 기울어졌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다 함께 위를 향해 뛰는 느낌이다. 장하준은 이 책에서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는 타고난 짝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부자 나라가 개발도상국에 무역 자유화를 권장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했기 때문에 자립한 것이지, 자립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왔다.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다.”
파이가 크든 작든 세상의 이치는 다 같은 방향으로 흐르나 보다. 장하준은 거대한 세계경제 흐름을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감탄스러운 논리로 풀어간다. 문장마다 큰 공감을 얻은 이유는 내 주변의 작은 세상에서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 세대부터 부를 축적해온 집안의 아이들은 좋은 학벌과 일자리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서울 대치동 ‘1타 강사’의 머리카락도 보지 못하고 정말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는 이들은 대학에 가서도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알바를 하면서 고달픈 취업전선에서 허덕인다. 피나는 노력을 해야 부모 세대만큼 벌 수 있다. 세계의 흐름 때문에 내가 흘러가는 걸까, 개개인의 세상이 세계의 흐름을 만드는 걸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