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금융 인사이드

카드사vs대형 가맹점 ‘수수료 갈등’ 속사정

‘적당선’ 타협안에 소비자 부담 부메랑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19-04-2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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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드사, 대형 가맹점 수수료 반대급부로 마케팅 비용 써

    • 중소·영세 가맹점에는 더 적은 마케팅 비용 지출

    • 정부 “카드사 과도한 마케팅 제한해야”

    • 소비자는 혜택 많은 카드 찾기 어렵게 돼

    카드사들과 대형 가맹점 업체들이 카드 수수료율을 두고 갈등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결제액 일부를 수수료로 받았는데, 이를 높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완성차업체나 대형마트, 통신사 등 대형 가맹점들은 “업황도 나쁜데 무슨 소리냐”며 버티는 형국이다. 협상의 첫 타자였던 현대자동차는 카드사와의 가맹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강수를 둬 결국 카드사가 한발 물러섰다. 이후 카드사는 대형마트, 통신사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이 정도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은 요금을 “올려달라”고 하고, 서비스를 받는 측은 “안 된다”며 “그럴 거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옥신각신 협상하는 모습이다. 수수료율 변화에 따라 많게는 수백억 원이 오간다고 하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대급부

    속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카드사와 대형 가맹점이 상식적인 거래를 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실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측은 조금 ‘이상한’ 공생 관계였다. 

    양측의 관계는 금융위원회가 관련 통계를 내놓으면서 알려졌다. 정부는 앞서 영세·중소 가맹점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을 낮춘 뒤, 카드사에는 대형 가맹점 수수료율을 높이라고 한 바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카드사는 대형 가맹점으로부터 받은 수수료의 60~140% 규모를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했다. 마케팅 비용은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포인트나 할인 서비스, 무이자 할부 비용 등이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대형 가맹점 입장에서 보면 카드결제라는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그 반대급부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마케팅을 카드사들이 일부 펼쳐주고 있었던 셈이다. 대형 가맹점의 협상력, 즉 결제 규모에 따라서 지불하는 수수료보다 제공받는 마케팅 금액이 더 큰 ‘이상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대형 가맹점은 안 그래도 영세·중소 가맹점보다 경쟁력이 높다. 더불어 이런 부가 서비스까지 곁들이면 시장에서 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소비자는 포인트를 안 받고 전통시장이나 일반 음식점에서 결제하는 게 손해인 상황에 직면한 셈. 물론 대형 가맹점들이 카드사들에 직접 ‘수수료를 마케팅 비용으로 충당해달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포인트나 할인 서비스, 무이자 할부 등 부가 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어떻게 보든 결론은 같다. 대형 가맹점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카드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많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해져서다. 

    이는 카드사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더 이상한 일이다. 카드사는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고 있는데, 그 수입 중 일부를 다시 마케팅 비용이라는 형식으로 되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비용은 소비자의 카드 사용을 늘리기 위한 자체 마케팅 성격도 갖고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과하다. 도대체 돈을 벌 수는 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 

    여기서 잠깐 카드사의 지난해 실적을 살펴보자. 돈을 벌고 있는 건 확실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업 신용카드사 8곳은 국제회계기준(IFRS) 1조7026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회계 기준에 따라 전년보다 돈을 더 벌었다느니 덜 벌었다느니 논란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많이’ 벌었다.

    ‘덤’ 서비스

    최종구 금융위원장(맨 오른쪽)이 4월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카드산업 경쟁력 제고 및 고비용 영업구조 개선방안 논의를 위한 카드사 CEO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 [뉴스1]

    최종구 금융위원장(맨 오른쪽)이 4월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카드산업 경쟁력 제고 및 고비용 영업구조 개선방안 논의를 위한 카드사 CEO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 [뉴스1]

    그렇다면 돈을 어디서 벌고 있을까? 카드사의 수익원은 결제 수수료 외에 카드론(대출)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정부가 지목한 것은 영세·중소 가맹점을 통한 수수료 수익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카드사들은 일반음식점이나 슈퍼마켓에 대해서는 받는 수수료 중 30%만을 마케팅 비용으로 썼다. 대형 가맹점과는 다르게 수수료의 70%를 수익으로 챙겼다는 의미다. 서비스의 대가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대형 가맹점과의 관계와 비교해보면 ‘당연하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카드사들이 지난해 쓴 전체 마케팅 비용 규모는 가맹점 수수료의 55%가량이었다. 대형 가맹점에는 더 많이 쓰고, 영세·중소 가맹점에는 덜 쓰는 식으로 절반가량을 수익으로 챙긴 셈. 

    카드사와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율 협상은 적당한 선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크다. 양측 모두 여론 탓에 ‘서비스 종료’라는 강수를 두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현대차의 경우, 카드사들은 수수료율 0.1%포인트 인상을 요구했지만 결국 0.05%포인트 인상으로 합의했다. 

    카드사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정부 정책으로 영세·중소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율을 낮췄는데, 대형 가맹점의 경우 그에 맞는 인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드사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자 금융위가 나섰다. 금융위는 대형 가맹점 수수료를 높이면 된다며 카드사들을 달래왔는데, 그게 어려워진 탓이다. 금융위는 4월 9일 정부서울청사에 카드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모아놓고 카드사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 내용 중 가장 주목받은 방안은 카드사의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법령으로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특히 카드 신상품의 수익성 분석을 까다롭게 바꾸겠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즉 부가 서비스가 과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카드를 만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카드사에 마케팅 비용을 줄일 여지를 준 방안이다. 

    카드사들은 당장 수익 보전을 위해 기존 카드의 부가 서비스도 줄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금융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신상품 규제를 통한 ‘단계적’ 완화 방안을 내놓은 셈이다. 

    그러면 각 이해당사자 입장에서 이번 카드 수수료율 개편의 득실을 따져보자. 우선 대형 가맹점의 경우 당장 수수료율을 일부 올리면서 비용이 늘게 된다. 다만 카드사들이 추가로 제공하는 마케팅 비용이라는 ‘혜택’은 당분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장기적으로 마케팅 비용의 혜택이 줄긴 하겠지만 어차피 ‘덤’으로 받던 서비스였다. 카드사의 경우 영세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인한 수익 저하를 전부 보전하기는 어렵게 됐다. 대형 가맹점과의 협상에서 원하는 만큼 수수료율을 올리기가 쉽지 않아서다. 대신 장기적으로 카드 부가 서비스를 줄여나갈 여지가 생겼다. 소비자는 카드를 만들 때 계약한 대로 부가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다만 혜택이 많은 카드를 찾기 점점 어렵게 됐다.

    “모른 척했다”

    이제 결론이다. 정부는 영세·중소상인을 보호한다며 수수료를 낮췄다. 이를 카드사와 그간 과도한 혜택을 받은 대형 가맹점이 부담토록 하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카드사는 대형 가맹점의 버티기로 정부 ‘약속’ 만큼의 수익 보전을 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결국 소비자도 일부 부담을 지는 방안이 도출됐다. 

    이런 결론을 정부와 카드사, 대형 가맹점이 예상치 못했을까?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도 대형 가맹점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카드사들은 지속해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 인상을 압박하거나 강제할 법적인 수단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냈지만 정부는 이를 모른 척했다. 대형 가맹점과의 협상 난항으로 인한 정부의 추가 대책 마련은 예상됐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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