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한국 턱밑까지 온 ‘돼지 잔혹사’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어이할꼬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입력2019-04-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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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8월 중국 상륙…베트남 몽골로 번져

    • 1957년 ‘리스본의 악몽’ 재현될 수도

    • 예방백신·치료제 全無… 바이러스 유입 막아야

    • 한국에 들어온 중국산 소시지에서 바이러스 유전자 발견

    • 미국 세관국경보호국 중국산 돼지고기 454t 압수

    • 미국돼지 감염 시 돼지고기 품귀·가격 폭등

    2017년 12월 20일 러시아 돼지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로이터]

    2017년 12월 20일 러시아 돼지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감염된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로이터]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함께 대서양을 자기 집 연못 삼으면서 식민지를 경략(經略)한 제국이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곳곳에 식민지를 두고 종주국 노릇을 했다. 앙골라도 포르투갈 식민지 중 하나였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은 대서양과 지중해 두 곳 모두에 진출하기 좋은 항구도시다. 포르투갈은 리스본을 전초기지로 삼고 원양을 가로질러 식민지를 개척했다. 제국주의가 철 지난 유물이 된 21세기의 리스본은 이베리아반도를 대표하는 금융도시면서 관광도시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학도에게 리스본은 서구 제국주의 상징 중 하나겠으나 전염병학자에게 리스본은 다른 의미를 가진 곳이다. 20세기 중반 리스본에서 유럽인이 보기에 매우 낯선 전염병이 발병해서다. 전염병학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무서운 바이러스였다. 

    리스본을 공포에 몰아넣은 전염병은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ASF). 멧돼짓과 동물에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질병이다. 치사율이 100%에 가까운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사하라사막 이남의 토착 전염병이다. 

    그런데 이 무서운 돼지전염병이 1921년 이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실체가 세상에 공개된 것은 케냐에서 일어난 야생 멧돼지에 의한 사육 돼지 감염 사건 이후다.



    잔반(殘飯)에서 시작된 ‘돼지 잔혹사’

    ‘리스본의 악몽’은 1957년 포르투갈 식민지이던 앙골라에서 시작됐다. 앙골라를 출발한 배 한 척이 리스본에 도착했다. 여느 배와 마찬가지로 쓰레기를 항구에 버린 후 항해에 필요한 물자를 싣고 떠났다. 배에서 버린 쓰레기에는 잔반(leftovers·殘飯)도 있었다. 누구도 그 잔반 안에 유럽 돼지의 목숨을 빼앗고, 양돈농가에 엄청난 해를 입힐 바이러스가 있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앙골라를 출발한 선박에서 수거된 잔반은 리스본에서 폐기되지 않고 돼지사료로 사용됐다. 바이러스가 포함된 잔반을 먹은 돼지가 곳곳에서 쓰러졌다. 그렇게 리스본의 악몽은 시작됐다.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리스본에 도착한 배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지역인 앙골라에서 출항하기 직전 리스본까지 가는 동안 먹을 식재료를 실었다. 그중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돼지고기 혹은 그 가공식품이 있었다. 선원들은 항해 중 그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먹고 잔반을 배출했다. 리스본 정박 후 잔반이 수거됐으며 가열처리가 올바르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돼지사료로 제공됐다. 사료를 먹은 돼지는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차례로 죽었다. 

    포르투갈 농부들이 간과한 점이 있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비록 잔반에 있어도 가열처리만 제대로 하면 돼지사료로 사용해도 전염병이 발병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바이러스는 생존 능력이 우수하지만 고온에는 약하다. 섭씨 75도 이상에 수분만 노출돼도 사멸한다. 

    유럽 최초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국가인 포르투갈은 근절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전염병과의 싸움은 예상을 뛰어넘는 희생 속에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포르투갈은 발병 36년이 지난 1993년 전염병 종식을 선언할 수 있었다. 인접국 스페인도 사정이 비슷했다. 1960년 아프리카돼지열병 최초 발생 후 35년이 지난 1995년 전염병과의 전쟁이 끝났음을 알렸다. 

    아프리카돼지열병과 30년 넘는 전쟁을 치른 이베리아반도의 두 나라를 보면서 유럽은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잔반은 가열처리한 후 돼지에 사료로 제공한다”는 게 그것이다. 오랜 기간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은 교훈이지만 간단하고 따라 하기도 쉽다. 원래 좋은 교훈이란 이렇듯 단순명료하다.

    2007년 조지아에 상륙한 바이러스

    ‘리스본의 악몽’은 잔반으로 시작됐다. [The Federalist Papers]

    ‘리스본의 악몽’은 잔반으로 시작됐다. [The Federalist Papers]

    1991년 크리스마스, TV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에 집중하며 초조와 긴장의 시간을 보낸 이들이 있었다. 긴급 뉴스가 전 세계로 타전된 곳은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였다. 모스크바는 그날 연방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사임 소식을 전한다. 이튿날부터 소련은 신속하게 해체 수순을 밟는다. 

    소련은 이렇듯 허무하게 역사에서 사라졌으나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을 미국과 함께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국제사회에서 소련의 역할은 2차대전 종전 이후 더욱 도드라졌다. 전승국인 미국, 영국과 함께 전후 질서를 짰으며 46년간 사회주의 진영 맹주 노릇을 했다. 

    소련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SSR) 15개로 구성됐다. 고르바초프 대통령 사임과 연방 해체 이후 공화국들은 독립국가가 된다. 그중에는 인구 500만 명이 안 되는 조지아도 있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조지아 출신이다. 그는 낙후된 농업국가 소련을 산업국가로 개조했으나 무자비하고 폭압적인 방식으로 정적들을 학살했다. 

    스탈린 사후 국제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조지아가 2007년 그 이름을 널리 알린다. 전염병학자라면 누구나 아는 나라가 된 것이다. 1957년 리스본 발병 이후 공포의 대상이던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조지아에서 다시 나타난 것이다. 

    흑해 연안 인구 5만 명의 항구도시 포티에 조지아 해군사령부가 위치해 있다. 전략적 요충인 포티에 2007년 어느 날 크루즈선이 정박한다. 이 배는 잔반을 포함한 쓰레기를 항구에 버리고 출항했다. 여기까지는 포티에 정박하는 다른 배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특기할 점 하나는 이 배가 포티에 도착하기 전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국가를 거쳐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국가에서 식재료를 보급받았다는 뜻이다. 조달한 식재료 중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돼지고기 혹은 그 가공식품이 있었다. 포티에서 수거한 잔반을 먹은 돼지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포티에서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1957년 리스본 사례와 유사하다. 발병 국가에서 실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의 잔반을 가열처리하지 않고 돼지에게 먹인 것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두 사건은 본질이 같다. 

    50년 전 리스본이 준 교훈을 조지아와 유럽이 망각한 것이다. 조지아 양돈농가들이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잔반을 가열처리했다면 유럽에서 제2차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동아시아로 번진 조지아發 돼지열병

    중국은 동북부 랴오닝(遼寧)성에서 처음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조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뉴시스]

    중국은 동북부 랴오닝(遼寧)성에서 처음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조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뉴시스]

    조지아발(發)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리스본 발병 때와 마찬가지로 인접 국가로 전파됐다. 문제는 2007년 조지아에서 불붙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불씨가 여전히 번진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불씨가 잦아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었다. 2018년 이후 오히려 더욱 불이 붙는 상황이다. 조지아에서 가까운 코카서스 지역과 동유럽은 물론 저 멀리 동아시아까지 조지아발 불길이 번지는 상황이다. 

    중국 식문화는 돼지고기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14억 중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세계 돼지 절반인 4억5000만 마리를 사육한다. 올해 1월 한 달 동안 중국에서 도축된 돼지 수만 헤아려도 2426만 마리다. 엄청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규모다. 중국 양돈산업은 그 어떤 나라도 따라가기 어려운 세계 1위다. 따라서 양돈대국 중국에서 돼지전염병이 유행(epidemic)한다면, 이는 결코 작은 피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인류의 상상을 넘어서는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려스럽게도 양돈대국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했다. 2018년 8월 중국은 아시아 최초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아시아 최초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도시라는 불명예는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이 차지했다. 

    선양은 800만 명이 사는 대도시다. 동북3성(東北三省)에서 도시 규모가 가장 크다. 내륙에 위치했으나 항구도시에 뒤지지 않을 만큼 수많은 노선의 철도·항공편이 연결돼 있어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곳이다. 교류가 많다는 사실은 전염병을 퍼뜨리기 쉽다는 뜻이다. ‘선양의 악몽’으로 일컬어질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선양을 시작으로 중국 각지로 번져나갔다. 올해 2월까지 32개 광역행정구역(성·省, 시·市, 자치구·自治區) 88%에 해당하는 28곳에서 발병했다. 다행히 현재는 발병 속도나 규모 면에서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승리나 종식을 선언하기에는 매우 이르다. 이베리아반도에서 종식되는 데 30년 넘게 걸린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선양을 통해 아시아로 건너온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올해 1월 몽골, 2월에는 베트남으로 번져나갔다. 특히 1억 명의 인구대국 베트남에서는 유행의 조짐까지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괜찮을까.

    바이러스 국내 유입 차단해야

    미국이 중국에서 발생해 확산 중인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우려로 밀수입된 중국산 돼지고기를 압수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3월 16일 보도했다. [뉴스1]

    미국이 중국에서 발생해 확산 중인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우려로 밀수입된 중국산 돼지고기를 압수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3월 16일 보도했다. [뉴스1]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우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2007년 조지아에서 발병한 후 동유럽과 옛 소련 지역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중국까지 동진(東進)한 이상 더는 남의 뉴스가 아니다. 그 불씨가 한반도까지 번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에서 최초로 발병한 선양은 한반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다. 베트남과 교류가 부쩍 늘어난 점도 전염병 예방 측면에서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현대의학이 수많은 질병을 통제하고 있으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예외적 존재로 남아 있다. 유효한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 그래서 공포가 더 큰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다. 

    3월 14일 중국 국적 여행객이 한국으로 들여온 중국산 돼지고기 가공품 4건(소시지 3건, 햄버거 1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 유전자가 나왔다. 발병 국가에서 반입되는 돼지고기나 돼지고기 가공품 단속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히 중국에서 반입되는 식재료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잔반을 사료로 사용하는 극소수 양돈농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세계 1위 축산대국 미국에서도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관련한 사건이 발생했다. 3월 16일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ustoms and Border Protection·CBP)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농산물 압수를 실시했다. 압수가 진행된 곳은 뉴욕 인근 뉴어크다. 뉴어크항은 통관항(Port of entry·通關港)인데 맨해튼에서 13㎞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통관항은 다른 나라에서 출발한 사람은 물론 동물과 식물 등 각종 물품이 합법적으로 반입되는 곳이다. 통관항을 거쳐 적법하게 들어오지 않을 경우 사람은 밀입국자, 물품은 밀수품이 된다. 

    세관국경보호국이 압수한 품목은 중국산 돼지고기다. 454t이나 되는 돼지고기를 밀반입하는 것을 적발했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먼저 중국은 돼지고기 부족국가다. 2018년 기준 중국의 돼지고기 생산량은 5496만t이지만, 소비량은 5624만t에 달한다. 지난해 중국은 돼지고기 160만t을 수입했는데 이는 같은 해 한국 돼지고기 생산량(92만t)의 1.7배에 달한다. 요컨대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돼지고기 밀수출 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공중보건(public health)적인 측면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국은 돼지고기 수출이 금지돼 있다.

    미국 발병 시 ‘돼지고기 대란’ 불가피

    미국은 돼지고기 생산량과 쇠고기 생산량이 거의 같다. 올해 미국 돼지고기 생산량이 1262만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미국 쇠고기 생산량 추정치인 1266만t과 비슷한 수치다. 하지만 수출량에서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생산된 돼지고기의 20%가량을 수출하는 반면, 쇠고기는 10% 정도만 수출한다. 미국인이 돼지고기보다 쇠고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쇠고기와 달리 돼지고기는 국제 교역이 많지 않다. 자국 내 돼지고기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수출 물량이 많은 미국이 세계시장에서 가장 큰 공급자다. 미국은 2017년 기준 돼지고기 교역량 828만t의 31.3%에 해당하는 259만t을 공급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미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면 돼지고기 무역시장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 가격 폭등 및 품귀라는 극단적 파행 현상이 일어날 게 자명하다. 돼지고기 부족국가가 돼지고기를 수입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돼지고기 자급률이 64.2%에 불과한 한국에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돼지를 사육하면서 잔반을 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1957년 포르투갈이나 2007년 조지아 같은 형태의 발병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전염병 예방은 최악을 가정해야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세계의 돼지들을 집어삼키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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