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호

사교육 제로, 시골학교의 반란

꼴찌학교 수능 돌풍 산골학교엔 전입생 북적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4-01-28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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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곳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숨쉰다. 그곳 교사들은 전교생의 이름을 부른다. 그곳에는 학원도 족집게 과외도 없다. 범재도 영재로 키워내는 시골학교가 공교육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 폐교 위기의 산골학교에 도시의 전학생이 찾아오는 이유는.
    사교육 제로, 시골학교의 반란

    겨울 체험학습으로 연날리기를 하는 거산분교 아이들.

    전북 익산시 금마면 동고동리 565번지 익산고등학교(교장 최인호).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왁자한 소리가 들리는 학생기숙사로 향했다. 방학을 하루 앞둔 12월26일, 기숙사 대청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에 분주한 아이들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1966년 개교한 익산고는 전주, 군산, 익산 등 평준화 지역 선발고사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입학하는 ‘후기 학교’였다. 학생들은 창피하다며 교복을 입지 않으려 했고 졸업생들도 모교 이야기가 나오면 머쓱해했다.

    그러나 1999년부터 영재학생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상황은 180。 달라졌다. 특히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발표된 12월2일 이후 이 학교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면 소재 종합고등학교(인문계 3반, 실업계 3반)에서 전라북도 인문·자연계 전체수석(고인성), 예체능계 수석(김경범)을 동시에 배출했을 뿐 아니라, 3학년 영재반 29명 가운데 330점 이상 고득점자가 16명, 수능평균은 320점대였다. 영재반뿐 아니라 일반반 학생들의 성적도 동반상승해 2개반 62명 중 26명이 이미 4년제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이런 소문이 나자 제일 먼저 언론사 카메라가 들이닥쳤다. ‘만년꼴찌 시골학교의 수능반란’ ‘꼴찌학교 명문고로 우뚝’ ‘농촌학교의 쾌거’ 등 익산고 돌풍은 전국적인 뉴스거리였다. 12월 내내 손님이 끊이질 않아 수업에 지장이 생기자 최 교장이 ‘방문 금지’ 명령을 내렸을 정도. 불청객인 기자가 익산을 방문한 바로 전날에도 서울 손님들이 다녀갔단다. 그들은 한결같이 “공부를 잘하게 만든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범재를 영재로 만든 비결

    “찾아온 분마다 질문은 똑같은데 해드릴 말이 없네요.” 고3 학년부장인 이정두 교사(42)는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 교사는 3년 동안 2기 영재반 담임을 맡았다. 일부에서는 익산고 돌풍에 대해, 장학금으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끌어모아 3년 내내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1999년 익산고가 영재반 간판을 내건 것은 사실 신입생을 끌어모으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인구 1만명이 채 안 되는 익산은 다른 농어촌 지역 학교들과 마찬가지로 학생 부족이 최대 고민이었다. 이 무렵 학교설립자인 익성학원 지성양 이사장(1999년 작고·신흥증권 창업자)이 150억원의 장학기금을 내놓았다. 이 기금으로 익산고는 30명 규모의 영재반을 설치했다. 이들에게 3년간 학비와 기숙사비 면제, 1개월간 호주 어학연수, 원어민 영어회화, 방과후 특별수업(수학, 토플, 논술) 등 파격적인 특전을 약속했다. 그래도 선뜻 ‘꼴찌 학교’에 오겠다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말이 영재반이지 전라북도가 실시하는 고교 선발시험(180점 만점)에서 140~160점대를 받은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3년 후 수능에서 330~340점대를 받았다.

    범재를 모아 영재로 키워낸 비결이 궁금해 질문을 쏟아냈다. “기숙학교니까 보충수업이다 자율학습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책상 앞에 붙잡아둔 것 아닙니까?” “3년치 진도를 2년 만에 끝내고 3학년 때는 수능 문제풀이 위주로 복습했죠?” “방과후 특별수업이 있던데 별도의 족집게 과외 아닌가요?” “사립학교니까 전국에서 난다 뛴다 하는 교사들을 특별 초빙이라도?” 대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사실 사립학교인 익산고는 꼴찌였을 때나 지금이나 교사들의 변동이 거의 없다. 이정두 교사도 이 학교에 14년째 재직중이다. 속진수업 이야기가 나오니까 학교 사정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며 웃는다. “교과과정은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어요. 인문계·실업계 18개 학급에 교사가 교장·교감 포함해 38명입니다. 한 교사가 2~3개 과목을 맡는 것은 일도 아니어서 저만 해도 1학년 공통과학, 2학년 물리1, 3학년 물리2, 교과 재량 보충까지 맡고 있어 속진은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학원에 대한 미련 끊어라

    기숙사의 기상시간은 아침 6시반에서 7시. 운동장 한바퀴 도는 정도로 아침 운동을 하고 0교시 심화학습, 1~7교시 정상수업, 다시 8교시 심화학습, 9교시 자율학습까지 마치면 저녁 8시. 도시의 아이들이라면 학원으로 향할 시간이지만 이곳 익산은 학원이 있는 시내까지 너무 멀다. 그래서 고3 수험생들도 새벽1시까지 기숙사에서 자율학습을 한다.

    “성공 비결이 있다면 ‘자율’이에요. 1학기 때 강제로 9교시(저녁 8시에 끝난다) 논술강좌를 듣게 했는데 어느 날 학생들이 희망자만 들었으면 좋겠다고 건의를 해요. 대신 뭐할래 하고 물었더니 교육방송을 시청하겠다는 아이, 인터넷 사이버 강의를 듣고 싶다는 아이, 과학실습실에서 그룹스터디를 하겠다는 아이 등 제각각이었습니다. 희망에 따라 그룹을 만들어주고 7개 교실을 개방해서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라도 질문을 할 수 있도록 기다리죠. 그래서 익산고 아이들은 질문이 있으면 교무실로 스스럼 없이 찾아와요. 그렇게 했더니 첫 모의고사 성적이 오히려 올라가서 아예 3학년 보충수업을 없앴죠.”(이정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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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고 영재반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익산고 교사들은 수험생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 같다. 자율학습 시간에 딴짓하는 아이가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야단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 시간만큼 더 공부하고 잠자리에 들게 한다. 5일장이 서는 날 떡볶이 사먹으러 몰래 빠져나간 학생을 찾아오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또 영재반 학생들은 2학년 겨울방학 때 한 달씩 학원 종합반을 다닌다. 그것도 학교에서 학원비를 지원한다. 이상한 학교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다 교육적인 이유가 있다.

    “입학하자마자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학원은 마음의 위안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도시에 비해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으니까 불안해하죠. 그래서 공식적으로 한 달 동안 학원에 다니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뭐가 다른지 직접 확인하고 오라고 합니다. 선배들이 ‘돈만 쓰고 효과가 없다’고 해서인지 요즘은 잘 안 가려고 해요. 서울 유명학원에 갔던 아이도 일주일 만에 돌아왔어요. 그러고 나면 학원이나 과외에 대한 미련이 싹 없어지죠.”

    전북 수석을 차지한 고인성군도 “학원 수강 없이도 학교 교육프로그램에 따라 스스로 터득한 방법으로 공부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고군이 말하는 익산고의 교육프로그램이란 정규수업 시간 외에 외국인 영어회화, 방과후 특별수업, 토익·토플·텝스 수업, 논술특강, 외부강사 초빙, 교육방송 시청 등이다.

    5년 전까지 신입생 정원을 채우기 힘들었던 익산고였지만 요즘은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가 됐다. 지난해 10월 선발한 5기 영재반 경쟁률이 2대1을 넘었고, 이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익산으로 주소지를 옮긴 서울 학생도 4명이나 된다.

    익산고 돌풍 뒤에는 학교법인 익성학원의 아낌없는 투자가 큰 힘이 됐다. 학교는 전 이사장이 내놓은 150억원의 장학기금을 토대로 영재반 학생 1인당 2400만원(3년)의 교육비를 투자한다. 현 지승룡(50) 이사장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어, 이 학교 교사 중에는 이사장 얼굴을 모르는 이도 많다.

    맞춤형 진학지도로 수시 공략

    사교육의 기승에 위축될 대로 위축된 공교육의 반란은 농촌에서 먼저 시작됐다. 전북에서 익산고가 두각을 나타냈다면, 전남에서는 몇 년째 담양군 창평면 소재 창평고와 장성군 장성읍의 장성고 돌풍이 거세다. 1980년에 개교한 창평고는 도내에서 “공부 안 하면 창평고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위권을 맴돌던 학교.

    그러나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창평고를 울면서 들어와 웃으면서 졸업하는 학교로 변화시켰다. 지금은 도내 중학교 전교 10위 안에 들어야 입학할 수 있다. 지난 3년간 창평고 졸업생 전원이 4년제 대학에 합격한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창평고는 ‘서울대 많이 보내는 학교’라는 관심보다 ‘인사 잘하는 학생이 다니는 학교’라는 칭찬을 더 반긴다. 이 학교는 ‘인성이 발라야 공부도 잘한다’며 예절교육을 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5년 개교한 전남 장성고 역시 1998년부터 지금까지 졸업생 전원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해 지역 명문고로 급부상했다. 장성고는 골프와 포켓볼을 할 수 있는 ‘즐거운 학교’로 먼저 알려졌다. 1~2학년 학생들은 골프, 미술, 포켓볼, 바둑, 고전기타, 사물놀이, 만화, 합창, 댄스, 한문강독, 길거리 농구 등 20여개 프로그램 가운데 자신이 선택한 특기적성 교육을 받는다. 또 재학중 45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졸업을 할 수 있다.

    가톨릭계 학교인 경북 상주시 함창읍 상지여고는 원래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가난한 농촌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설립한 ‘성모고등공민학교’로 출발했다(1961년). 1973년 상지여상을 개교하고 1984년 인문계 신입생을 받기 시작해 종합고등학교가 됐다가 상지여고로 교명을 바꾸었다. 인문계·실업계 합쳐 18학급 규모의 이 학교도 요즘 몰려드는 신입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상주·문경 외에 예천·의성 등의 지역에서 상지여고 진학을 희망하는 이유는, 몇 년 사이 대학 진학률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올해 보통과(인문계) 졸업예정자 58명 가운데 절반 가량이 수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이 학교 역시 입시위주의 교육보다 인성교육을 우선한다. 6년째 매주 토요일을 ‘책가방 없는 날’로 정해 1학년은 다도, 2학년은 상주민요, 3학년은 천연염색 등 외부 체험학습과 전일제 클럽활동을 해 2001년 제2회 ‘아름다운 학교’ 공모전에서 교육과정운영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삼광고는 농업고로 출발해 1981년 인문계 학교로 전환한 전형적인 농촌 학교다. 학년당 2학급, 전교생 208명, 교사 16명(교장·교감 포함)에 불과한 미니고교지만 대학진학률은 90%가 넘는다. 이 학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교원 평균연령 35세, 교직 평균경력 8.3년이라는 수치. 젊은 교사들이 발로 뛰어 입시정보를 모으고, 학생들의 성적뿐만 아니라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파악해 진학지도를 하고 있다. 학생의 특성에 맞는 학교와 학과를 골라 진학지도를 한 결과 이미 절반 이상이 수시모집에 합격했다.

    사교육 제로, 시골학교의 반란

    2004학년도 대입 수능에서 전라북도 수석을 배출한 익산고.

    물론 수능 고득점자 배출이 곧 공교육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진짜 명문은 입시 명문이 아니라 독특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학교들이다. 최근 신흥 명문으로 떠오른 시골학교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건전한 교육철학과 교육목표를 가진 사립학교라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 공교육 체제 안의 대안학교로 유명해진 거창고(교장 도재원)는 ‘직업선택의 10계’라는 독특한 정신을 강조한다.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엔 절대 가지 마라’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는 내용의 10계는 거창고 출신들 사이에서 ‘거고 정신’으로 통한다. 도재원 교장은 사립학교의 역할에 대해 “공립학교는 일반적이고 보편타당한 교육을 하는 곳이고, 사립학교는 보편 타당한 일반교육에 특별한 그 무엇(이념)을 보태어 교육하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명문학교는 교사가 만든다

    지방의 신흥 명문으로 떠오른 사립학교에는 학교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넘치는 교사들이 있다. 공립학교에서는 3년 이상 근무하면 학교를 옮기지만 이들은 평생 한 학교에 몸담을 각오로 근무한다. 익산고 이정두 교사도 성공 비결 중 하나로 ‘교사의 헌신’을 꼽았다. 교육프로그램은 모두 교사들이 개발한 것이다. 재단은 학교를 최대한 지원하고 교사들은 자율성과 주도성을 갖고 교육에 임한다.

    2002년 교육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읍·면 이하 농어촌 학교는 총 7272개교로 전체 학교의 44.1%를 차지하며, 교원 수는 23.3%다. 그러나 학생수는 전체의 16.8%에 불과해 심한 지역 불균형 상태를 나타낸다. 1992~ 2001년 사이 농어촌 지역 학생수는 무려 66%나 감소했지만,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경기도는 지난 한 해 동안 100개교를 새로 짓고도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인천은 올해 30개교를 새로 지을 계획이다.

    반면 농어촌 학교들은 대도시로 학생을 빼앗겨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북 고령군에선 인근 대구와 김천으로, 나주에선 광주로, 전북 무주에서는 도 경계를 넘어 대전이나 거창쪽으로 학생들이 빠져나간다. 기초자치단체마다 ‘내 고장 학교 보내기 운동’ ‘지역인재 육성사업’ 등을 펼쳐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학생 유출을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심지어 비평준화지역 고교들이 중학교에 돈을 주고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상식 밖의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결국 시도교육청이 고육책으로 타시도간 전입학을 금지했으나, 오히려 그 지역 인구를 대폭 감소시키는 역효과만 불러왔다.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인근 대도시로 빠져나가 한 해 동안 인구 1000명이 준 한 소도시의 경우, 타시도 이동을 막자 아예 부모와 학생이 대도시로 거주지를 옮겨 한꺼번에 인구가 2500명이나 줄어들기도 했다. 이런 규모라면 1년에 면이 하나씩 없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앞의 예처럼 독특한 교육프로그램을 앞세운 시골학교들은 대도시 학생의 역류현상으로 입학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전남 창평고의 경우 재학생의 45%가 타시도 출신으로 서울·경기·충남지역 학생들이 주소지를 옮겨 입학하고 있다. 거창고의 경우 한때 거창군 밖 타지역 출신이 90%에 달했다.

    지난해 7월 출범한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의 전성은 위원장은 “지방을 살리려면 지방 교육부터 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육혁신위원회의 올해 첫 과제도 농어촌 교육 살리기다. 전 위원장은 “도시는 과밀학급을 해소하려고 돈을 쏟아붓지만 학교 지을 땅이 없고, 농어촌 학교들은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현실에서 해결책이 무엇이겠나. 농어촌 교육을 살려 도시로부터 역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평준화는 유지, 학교 차별화 시도

    그러나 전 위원장은 “교육은 살리지 않고 학교만 살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각 학교의 ‘교육력’을 높이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몇 십억씩 들여 새 컴퓨터를 구입하고 호화시설을 갖춘다고 해서 떠난 학생들이 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전 위원장이 말하는 ‘교육력’이란 바로 각 학교의 독특한 교육프로그램을 가리킨다.

    “평준화는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학교간 차별화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과거 명문고 부활과는 다릅니다. 고유의 교육이념과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학교가 전국에 50개 정도만 생기면 확실히 달라질 겁니다. 서울 강남 집중현상을 막기 위해 강북에 특목고를 만드는 대신 충남 홍성 풀무학교처럼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학교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좋은 학교가 있으면 학생이 찾아오고, 전체 인구가 늘고, 그 지역경제가 살아나죠.”

    사교육 제로, 시골학교의 반란

    방학중에도 학교에 나와 아이들을 지도하는 박덕규 교사.

    전성은 위원장은 농어촌 학교의 교육력을 살리는 한 방법으로 교장·교사 충원의 다양화를 제시했다. 승진 점수 따러 시골로 들어오는 교사가 아니라 5년이고 10년이고 한 학교에 뼈를 묻겠다는 교사가 있으면 순환보직에서 빼주고, 지역주민의 합의 아래 능력 있는 교장이나 교사를 모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전 위원장은 사명감을 가진 교장·교사 한 사람만 있어도 학교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한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전교생이 96명에 불과한 삼포초등학교에서 한 기간제 교사의 실험이 진행중이다. 박덕규 박사(62)는 인천사범을 나와 잠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유학을 떠나 독일 도르트문트대에서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한국교육개발원에 21년간 재직하며 교육정보부장, 기획처장, 교육연찰실장을 두루 거쳤다. 교원인사제도, 인성교육의 이론과 실제, 토론식 수업의 실제, 경기도 평준화 실시에 관한 연구, 장기 교원수급계획 수립, 교원 표준수업시수 설정 등 학교교육과 관련해 그가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없을 만큼 교육계에서는 알아주는 이론가다.

    그런 그가 2003년 6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대학 강단이냐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냐. 고민 끝에 그는 후자를 택했다. 자신이 개발한 이론과 학습법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강원도교육청 장학사 시절 박 박사의 강연을 듣고 인연을 맺었던 삼포초등학교 조병준 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는 삼포초등학교는 박 박사의 학습법을 펼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비록 기간제지만 담임을 맡는 조건으로 조 교장에게 180쪽에 달하는 수업계획서를 보냈다. 조 교장은 “20년 교사생활을 했지만 그처럼 치밀한 계획서는 처음 봤다”고 했다. 그 안에는 박 교사가 개발한 ‘완성학습’ ‘시나리오 학습’ ‘장기기억학습’ ‘3색원리’ 등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8월26일 박 교사는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홍천 골짜기로 들어와 사택에 짐을 풀었다. 그가 맡게 된 4학년생이 모두 11명. 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학생들을 모아 기초학력검사, 기본학력검사, 체력검사를 실시하고 두 차례씩 가정방문을 했다. 개학 전 아이들의 학습능력과 가정환경, 등하교 거리까지 모조리 파악했다.

    어느 기간제 교사의 꿈

    “부임하기 전 4학년생들은 비교적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웬걸요, 한 아이에게 ‘13 빼기 5가 뭐냐’고 물었더니 손가락을 꼽으며 ‘7이요’ 하는 거예요. 다른 아이에게 물었더니 빙긋이 웃으며 ‘계산을 해봐야겠는데요’ 하잖아요. 구구단도 순서대로 하라면 곧잘 하는데 불쑥 ‘7 곱하기 8’을 물으면 대답을 못해요. 아, 기초가 전혀 잡히지 않았구나 했죠. 4학년 2학기는커녕 3학년 수준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삼포초 4학년생들은 아침 7시20분에 등교해 저녁 6시반까지, 토요일은 5시까지 보충수업을 했다. 개천절과 일요일 등 달력의 빨간 날도 예외없이 학교에 나왔다. 박 교사는 수업시간에 기도하듯 양손을 꼭 쥐게 해서 손가락을 쓰지 않아 속셈하는 능력을 길러주었고, 선생님의 설명이나 질문을 잘 듣지 않고 되묻는 나쁜 습관도 고치게 했다. 학습의 기본자세를 만든 후 완전학습에 돌입했다.

    “진도 따라가기에 급급한 공부가 아니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학습법이죠. 예를 들어 ‘설명하는 학습법’은 수학을 설명식으로 배웁니다. ½+½이 왜 1인지 설명해야 해요. ‘시나리오 학습법’은 수학의 원리를 연극대본처럼 읽으면서 배우는 겁니다.” 박 교사가 보여준 ‘수학 시나리오 학습안’을 보니 분수와 소수에 관한 대화가 적혀 있다. 등장인물은 실제 이 반 아이들의 이름이다.

    슬기 : 1 더하기 1은 얼마입니까?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요?

    남일 : 물론 압니다. 1부터 10, 100, 1000 등 1보다 큰 수에 대하여 그 동안 우리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등을 배웠습니다.

    혜진 : 질문이 있습니다. 1보다 작은 수나 적은 양은 어떤 경우에 생깁니까?

    해리 : 시장엘 가면 커다란 생선을 몇 토막으로 나누어 파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반 마리만 산다면 그것은 한 마리보다 분명 작은 것입니다.

    다솜 : 수학에서 적다와 작다의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어떤 경우에 사용하는 것인지 정확히 설명해주세요.

    박 교사는 수학 단원마다 이런 식의 시나리오를 써서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교사가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연극하듯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수학의 개념을 익힌다. 국어시간에는 교과서 연속으로 세 번 읽기를 했다. 새 단원이 나오면 한 번은 작은 소리로, 두 번은 묵독으로 내리 세 번씩 읽고 1시간 후 다시 세 번 읽는다. 이 방식대로 하면 교과서 한 권을 평균 30번씩 읽게 돼 외우지 말라고 해도 저절러 외워진다. 이것이 ‘장기기억학습법’이다.

    또 수업을 과목마다 40분 단위로 토막토막 끊지 않고 하루종일 한 과목만 집중적으로 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2주 내리 영어수업만 했다. 수업시간도 영어, 놀 때도 영어, 밥 먹을 때도 영어, 이렇게 지겹도록 영어를 들려주면 배우기 싫어도 영어를 해야 한다. 영어캠프가 따로 없다. 알파벳을 읽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쳐 학기말 발표회 때 ‘두루미와 여우’라는 영어연극을 훌륭히 해냈다. 대본은 박 교사가 직접 썼다.

    환갑을 지낸 박 교사는 학생들에겐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는 엄한 ‘할아버지 선생님’이요, 제 자식 귀여워할 줄만 알았지 예절은 가르칠 줄 모르는 학부모에겐 잔소리 많은 시아버지 같은 존재다. 그가 휴일도 방학도 반납하고 4학년 교실을 지키는 이유는 간단하다. 농촌의 교육환경이 열악하다 해도 교사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생 교육이론가로 살아온 그에게 이것은 마지막 봉사 기회이기도 했다.

    1월2일 흰 눈이 곱게 쌓인 운동장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던 현주와 예은이가 젖은 장갑을 말리려 교실로 들어선다. 이제부터 오후 4시까지 할아버지 선생님과 수학 심화학습을 시작할 참이다. 삼포초 4학년 교실에는 겨울방학이 없다.

    1990년대 미국 공립학교의 개혁방향을 제시한 보고서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를 보면 교육의 분권화, 학교의 차별화(다양화), 소규모화를 강조하고 있다.

    “교육은 고도로 특성화되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성공적인 학습의 기술과 접근방식은 학생의 배경과 학습태도, 교과목, 연령, 지역사회 그리고 그밖의 요인들에 따라 다양해야 한다. 학교교육에서 하나의 원칙은 성공하기 위해 차별화하라는 것이다.…규모의 경제와는 반대로 교육에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학교의 3분의 1은 더 작고 개별적인 단위로 쪼개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거꾸로 지난 20여년간 농촌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이 추진됐다. 6학급 미만의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함으로써 교육재정의 효율성을 증대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학생수가 적으면 정상적인 교육이 어렵고 사회성 형성에 좋지 않으며, 경쟁의식이 낮아 학업성취도가 낮다. 전담교사 부족으로 예체능 교육도 불가능하다”는 소규모 농촌학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이런 논리로 1999년 한 해만 900여개의 작은 학교가 통폐합됐다.

    도심의 거대학교 vs 전원형 작은 학교

    그러나 그 무렵 농민, 교사, 학부모 단체를 중심으로 ‘작은 학교를 지키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경기도와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학교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연대기구가 조직돼 본격적인 통폐합저지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을 이끈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전원형 작은 학교’ 공동대표)는 “도시학교에 다니면 공부를 잘하고, 농어촌학교에 다니면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선입견이며, 오히려 농어촌 학교가 도심의 과밀학교보다 훨씬 우수한 교육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통계청 조사에서도 농촌지역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교육내용, 학교시설, 교우·교사와의 관계, 주변환경)가 도시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전교생이 34명밖에 되지 않아 폐교가 추진되던 송남초등학교 거산분교도 지역주민과 인근 아산, 천안 시민들의 지원 속에 2002년 3월 ‘전원형 작은 학교’로 다시 태어났다. ‘전원형 작은 학교’란 도심 외곽 반경 10km 안팎에 위치한 농어촌 학교로, 해당 지역 학생뿐 아니라 인근 도심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통학버스를 이용해 다니는 형태를 가리킨다. 학교 규모는 전교생 120명 내외, 학급당 20명 수준을 지향한다.

    사교육 제로, 시골학교의 반란

    새끼꼬기 체험학습을 하고 있는 거산분교 아이들. 학부모 도우미들이 교사의 수업진행을 돕는다.

    ‘전원형 작은 학교’는 전교생이 1000명이 넘는 도심의 거대·과밀학급을 해소하고, 농어촌 학교의 학생수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원형 작은 학교’를 주장하는 이들은 학생 100명을 위해 새로 교실을 지으려면 8억원이 들지만, 이들을 인근 농어촌 학교로 보내고 통학버스나 학교시설 보수 등을 지원하면 3억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현재 거산분교는 병설 유치원 포함 재학생이 119명이다(본교 송남초 전교생은 140명이다). 12월 마지막주 겨울체험학습이 한창인 충남 아산의 거산분교를 찾았다. 눈발이 날리는 교정에서 아이들이 빨갛게 곱은 손을 호호 불며 연날리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여름, 겨울 두 차례 열리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은 1개월 전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결정한다.

    “이번 겨울엔 뜨개질, 윷 만들기, 연날리기, 콩주머니 만들기를 했어요. 도시에서처럼 문방구에서 사온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재료를 구하는 과정부터 아이들이 직접 합니다. 예를 들어 윷을 만들 때는 큰 나무를 쪼개서 다듬고 조각하는 모든 과정을 합니다.”

    천안에서 거산분교로 자녀를 등교시키고 있는 문남희씨는 거의 매일 학교로 출근한다. 다양한 환경체험학습 위주로 교육프로그램이 짜여 있어 6명의 교사만으로는 진행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도시학교라면 ‘치맛바람’을 걱정하겠지만 처음부터 이 학교 살리기에 동참했던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학부모 도우미를 자처한다.

    전교생 119명의 분교

    거산분교 재학생의 3분의 1은 원주민이고 3분의2는 아산과 천안 등지에 거주하면서 전세버스로 등교하는 아이들이다. 도교육청은 이들 3분의 2가 실거주를 하지 않는 위장전입이어서 인정하기 어렵다며 통학버스 제공이나 본교 승격을 미루고 있다. 결국 학부모들이 매달 1인당 6만원씩 부담해 통학용 전세버스를 마련했다.

    본교 송남초의 이원훈 교장은 “도내에 전교생이 100명 미만인 초등학교가 40%가 넘는데 전교생이 119명이나 되는 학교가 분교인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위장전입 탓만 할 게 아니라 학구 제한 규정을 개정해서 공동학군제를 도입하는 등 인접도시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전·입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산분교는 2008년까지 매년 20명 이상 신입생의 입학이 예정돼 있다. 최근에는 천안·아산에서 아예 송악면으로 이사하는 가구도 늘고 있다. 이 학교에 남매를 보내고 있는 박경화씨는 지난 11월20일 유곡리로 이사했다. 아이들이 원거리 통학을 하는 대신, 남편이 원거리 출퇴근을 하기로 한 것. 뒤이어 유치원 학부모 가족이 새로 이사를 와서 마을의 평균연령이 한층 젊어졌다.

    거산분교가 ‘전원형 작은 학교’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경기도 남한산초등학교의 성공사례가 큰 힘이 됐다.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도립공원인 남한산성에 자리잡고 있는 이 학교는 9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2000년 전교생이 26명으로 줄어들어 복식학급을 꾸렸다가 결국 2001년 폐교대상 학교로 지정됐다. 한 기업에서 이 학교를 인수해 연수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놓은 상태에서 산성 안 마을주민들, 성남지역 학부모, 교육시민단체 등이 학교 살리기에 뜻을 같이해 ‘전입학추진위원회’가 구성됐고 2001년 73명의 학생이 집단전입해 폐교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농촌 작은 학교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남한산초등학교를 처음 방문한 사람은 예쁜 교정에 놀란다. 학교 뒷마당인 2만평의 느티나무 숲에 교사들이 직접 타잔줄, 그네, 줄사다리를 만들어 놀이터를 꾸미고 산책로를 조성했다. 운동장에는 철제 체육시설 대신 목재로 된 복합놀이시설과 나무벤치를 놓고, 주차장으로 방치된 땅을 일구어 학부모들의 주말 농장으로 분양했다. 학교 외양만 가꾼 게 아니라 수업 방식도 완전히 바꿨다. 40분 단위의 분절식 수업 대신 80분 공부하고 30분 쉬는 방식을 채택했고 토요체험학습, 여름·가을 계절학교, 특기적성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현재 남한산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30명으로 늘어나 더 이상 전입생을 받기 어려운 상태다.

    남한산초등학교나 거산분교 외에도 ‘공교육 속의 대안학교’로서 시골 작은 학교의 성공사례는 많다. 경기도 마장초등학교는 1999년 신입생이 달랑 2명뿐인 폐교대상 학교였지만 영어·중국어 원어민 교사를 초빙하고 피아노 수영 등 특기적성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최성일 교장이 앞장서 지금은 전교생이 146명으로 늘어났다. 또 동문들이 앞장서 9억2000만원의 장학기금을 마련해 통학버스를 운행하고 고교와 대학 진학시 학비를 대주는 등 지역사회 전체가 학교 살리기에 나선 광주 번천초등학교, 골프 꿈나무 육성으로 소문난 양평 단월초등학교 등 경기도에서만 서너 군데 작은 학교가 폐교 위기에서 벗어나 지금은 가장 다니고 싶은 즐거운 학교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농어촌 작은 학교를 무조건 통폐합하기에 급급했던 학교정책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충남교육청은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반대하는 50여개 학교를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했다. 전북교육청은 2003년 통폐합 대상학교 지정·고시 정책을 아예 폐지하고, ‘소인수 학교’의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경기도는 2004년 목표를 ‘학교의 지역사회화·지역사회의 교육자원화’로 내걸고 농어촌·중소도시의 ‘좋은 학교’ 만들기를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1월3일 대전에서 ‘농어촌 작은 학교 교육활성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흥미롭게도 주최측이 ‘농어촌 작은 학교 교육을 살리려는 우리’다.

    2003년 폐교 직전의 고산서초등학교와 삼기초등학교를 통합해 삼우초등학교(전북 완주)를 설립한 지역 주민들, 전교생 16명에 교사 3명의 단출한 학교지만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어느 도시 학교보다 풍성한 특별활동 프로그램을 마련한 화령초등학교 송계분교(경북 상주), 1998년 교육청의 통·폐합 통고에 등교거부 등으로 직접 맞서 학교를 지역공동체의 중심지로 일궈낸 상천초등학교(경북 의성) 가족들이 바로 ‘우리’다.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시골학교 살리기 방안을 모색했다. 왜 시골학교인가. 2년 전 상주로 귀농한 송계분교 3학년 혁빈이의 시 ‘우리 학교의 수요일’이란 제목에 그 답이 있다.

    수요일은 좋은 날 모두가 친구 같다/아빠들과 엎치락뒤치락 축구 한다/축구를 끝내는 소리 아쉬운 소리/목공예는 쓱싹쓱싹 우리 손에서 총과 칼이 만들어진다/연극은 우리 아빠가 선생님/우리들이 연극 하는 소리가 학교를 흔든다/행복도 같이 흔든다.

    정부가 농어촌 개선사업에 45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농촌공동체의 부활은 이처럼 작은 시골 학교의 보이지 않는 힘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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