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뛰는’ 관리팀 위에 ‘나는’ 반돌이였다. 반달곰 관리팀은 가출한 반돌이를 눈앞에서 놓쳤다. 잠복중이던 대원들이 랜턴을 켜자 놀라 숲 속으로 달아나버린 것. 불빛을 보고도 가만히 있던 예전과 달리 야성을 회복했다는 증거다. 사람의 허를 찌를 만큼 영민하고 자연에 잘 적응하고 있는 방사곰 반돌이와 장군이를 찾아 눈 쌓인 지리산을 올랐다.
“삐∼, 삐∼” 발신음은 규칙적으로 또렷하게 들렸지만 장군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드디어 커다란 바위 뒤에 웅크리고 있던 장군이가 빼곰이 얼굴을 드러낸다. 장군이를 발견한 한상훈(43) 팀장이 대원들의 접근을 막았다.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동물들’에 장군이가 놀라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이미 120kg의 거구가 된 장군이 역시 대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장군이는 5분 가량 대원들 앞에서 어슬렁거리다 다시 산속으로 들어갔다.
“매일 장군이의 위치를 파악하고 탈출한 반돌이를 찾기 위해 산에 오릅니다. 발신음이 또렷이 들려도 장군이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때가 많아요. 오랜만에 장군이의 건강한 모습을 확인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한상훈 팀장의 이야기다.
이제 국민적 관심사가 된 반달곰 장군이와 반돌이는, 1998년 환경부가 주도한 ‘멸종 위기 야생동물 복원기술 개발’ 프로젝트와 함께 탄생했다. 멸종 위기 야생동물 중에서도 단군신화의 주인공인 반달가슴곰(천연기념물 329호) 복원이 가장 핵심적으로 진행됐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반달곰은 한반도 곳곳에 서식했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무분별한 남획,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서식지 파괴와 그릇된 보신문화 등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했다. 2000년과 2002년 두 차례 무인 카메라에 야생 반달곰이 찍혀 지리산 일대가 야생 반달곰의 서식지임이 밝혀졌지만, 개체수는 10마리 미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 개체가 한 지역에서 자손을 내리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개체수를 최소 50마리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대로 둔다면 지리산 야생 반달곰은 멸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은 국내 반달곰과 거의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 중국산 새끼 반달곰 네 마리를 들여와 3개월의 야생적응훈련을 거쳐 2001년 9월 지리산에 방사했다. 연구팀이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방사곰들의 목에 발신기를 달았다. 이는 국내 최초의 야생동물 복원 시도였다.
반순이는 죽고 막내는 적응실패
반달곰 수컷 두 마리는 반돌·장군, 암컷 두 마리는 반순·막내로 이름지었다. 하지만 막내는 방사 후 등산객을 따라다니는 등 야생 부적응 상태를 보여 한 달 만에 하산, 현재 관리팀 사무실 근처 농장에서 살고 있다. 어릴 적 장염에 걸렸을 때 사람들의 극진한 보호를 받아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반순이는 2002년 7월 올무에 걸린 주검으로 발견됐다. 야생상태 부적응으로 인한 아사(餓死)인지, 밀렵꾼들의 소행인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현재 반돌, 장군 수컷 두 마리만 지리산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반돌이는 지난해 11월 발신기 교체를 위해 포획했으나 보호시설을 탈출하는 바람에 현재 발신기 없이 완전 자유의 몸이 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관리사무소 남부지소 산하 곰 관리팀(이하 곰 관리팀)이 조직된 것은 2002년 5월이다. 국립환경연구원 김원명 박사가 이끌던 연구팀이 네 마리의 어린 새끼를 데려다가 야생적응 훈련을 시키고 방사하는 1차 과정을 책임졌다면, 한상훈 박사가 이끄는 곰 관리팀은 장군이와 반돌이가 야생에서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보호·관리하는 2차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관리팀은 곰의 특성과 서식지, 먹이 등을 연구해 2011년까지 50마리의 반달곰을 지리산 일대에 증식시키는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곰 관리팀 대원들은 국내외 대학과 대학원에서 야생생물을 연구하고 수년간 현장경험을 거친 베테랑이다. 일본 홋카이도대에서 포유동물에 대해 연구한 동물학 박사 한상훈 팀장을 필두로 박소영 차인환 문홍석 정두성 최태영 정상욱 하정욱 박선홍 조동현 차수민 김선두 박승우 강도영 이윤수 박성환 김종백 대원이 장군이와 반돌이의 ‘어미 곰’ 역할을 하고 있다. 대원들 대다수가 30세 전후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곰 관리팀 대원들.
“반돌이요? ‘웬수’덩이죠.”
요즘 곰 관리팀을 가장 괴롭히는 일은 지난해 11월17일 보호시설을 탈출한 반돌이의 행적이다. 대원들은 예전부터 반돌이는 ‘문제아’였다고 말한다.
“반돌이는 장군이보다 예민하고 영리한 편이에요. 장군이는 의젓하고 뚝심이 있어 말 그대로 장군감이고요. 사실 반돌이는 탈출한 ‘전과’가 있는 놈입니다(웃음). 지난 겨울 반돌이는 3개월 동안 동면을 했거든요. 동면이 끝날 무렵 발신기 교체를 위해 포획하려고 동면굴로 가니까 반돌이가 사라졌더군요. 그때 반돌이는 속이 빈 커다란 나무 기둥 속을 동면굴로 삼아 자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나무가 썩어 다소 허술해진 한쪽 귀퉁이를 뚫고 탈출한 겁니다. 다행히 그때는 발신기를 착용하고 있어서 다시 포획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정욱 대원의 이야기다.
탈출 전과 화려한 반돌이
지난해 11월16일 마지막 포획 때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일이 벌어졌다. 반돌이 목에 단 발신기 신호음이 약해져 발신기 교체를 위해 반돌이를 포획했는데, 54kg이었던 반돌이가 120kg의 거구로 자라났던 것. 곰 관리팀은 평소처럼 마취총을 쏘아 잠들게 한 후 관리팀 사무실 근처 보호시설로 반돌이를 운반했다.
“철창으로 된 운반시설이 없어 그냥 트럭 짐칸에 반돌이를 태워 옮겼어요. 그런데 마취약이 모자랐는지 운반 도중에 깨어났죠. 묶지도 않은 상태에서 반돌이가 깨어나니 짐칸에 타고 있던 4명의 대원들이 혼비백산해 트럭 뒤에 매달렸어요. 차를 세우고 대원들이 모두 달려들어 반돌이 사지를 붙잡은 후 겨우 마취주사를 놓아 다시 잠들었어요.”
하정욱 대원은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다”며 당시를 이야기했다. 간신히 반돌이를 보호시설로 운반한 후 바로 목에 있던 발신기를 떼어냈다. 체중이 급속히 늘면서 발신기로 인해 생긴 목 부분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한 차례 대원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반돌이는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보호시설 바닥을 파고 탈출해버렸다.
“반돌이는 정말 영리해요. 보호시설 앞쪽 바닥은 시멘트지만 뒷부분은 흙바닥이었거든요. 반돌이는 예전에 탈출했을 때처럼 가장 허술한 곳이 어딘지 살펴본 후 흙바닥에 가로·세로 1m 크기의 구멍을 뚫고 빠져나갔습니다.”
반돌이가 탈출한 보호시설은 원래 막내가 머물던 곳이다. 막내는 지난 2년간 단 한 번도 탈출을 시도한 적이 없다. 이는 반돌이의 야성이 막내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반돌이가 다시 나타난 것은 지난해 12월2일 새벽 6시경. 지리산국립공원 피아골대피소였다. 반돌이는 대피소 움막의 비닐을 뜯고 들어와 플라스틱 쌀통을 훔쳐 10m 정도 달아나 인기척이 없는 곳에 가서 뚜껑을 열고 쌀을 꺼내 먹었다. 반돌이는 그날 밤 10시에 다시 나타나 냉장고 안에 있던 게장을 꺼내 먹고는 쌀통을 들고 달아났다. 이번에는 15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펴고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용변도 봤다. 반돌이는 2일부터 5일까지 피아골대피소에 계속 나타났다.
대피소로부터 반돌이가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은 곰 관리팀은 3일부터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반돌이가 사흘 연속 대피소에 나타난 것을 확인한 관리팀은 5일을 포획 예정일로 잡고 포획틀 2개와 올무 등을 설치했다. 마취총으로 무장한 수의사를 포함한 대원 19명은 2개조로 나뉘어 반돌이를 기다렸다. 잠을 잘 때도 신발을 신고 침상에 누웠을 정도로 긴장을 멈추지 않았다. 반돌이가 인기척을 느낄까봐 랜턴과 난로도 켜지 않은 채 대기했다.
드디어 5일, 반돌이가 이날도 쌀통을 노릴 거라고 예상한 관리팀은 쌀통이 있는 움막 주변에 인력과 장비를 배치하고 쌀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움막 비닐을 열어 통로를 만들어주었다. 쌀통 근처에는 한 팀장이 숨을 죽인 채 앉아있었다.
하지만 반돌이는 관리팀의 허를 찔렀다. 열린 통로를 외면한 채 관리팀이 잘 볼 수 없는 사각(死角) 방향으로 접근해 움막의 비닐을 다시 찢고 쌀통에 접근한 것. 생각지 않은 방향에서 반돌이를 발견한 관리팀은 마취총을 발사하기 위해 랜턴을 비췄으나 불빛에 놀란 반돌이는 순식간에 숲 속으로 달아났다. 불빛을 보고도 가만히 있던 예전과 달리 야성을 회복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팀장은 “반돌이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움막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다른 방향으로 접근한 것이다. 우리가 완전히 당했다”고 고백했다.
반돌이의 영민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피아골대피소에 나타난 시간을 보면 오전 6시경, 밤 10시 이후다. 이는 대피소 관리자인 함태식(77)옹이 잠자리에 든 시간을 골라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즉 대피소 근처에서 계속 주시하고 있다가 인기척이 없어진 시간을 타 움막에 접근한 것.
①반돌이가 탈출한 구멍. ②반돌이의 이빨 자국. ③포획 틀에 갇힌 장군이. ④발자취, 배설물 등 반달곰의 흔적을 조사하고 있다.
“곰은 6∼7세 유아 정도의 지능을 갖추고 있어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가만히 생각한 다음에 행동하죠. 반돌이 역시 처음에는 힘들게 이빨로 쌀통을 들었지만 손잡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앞발로 들어 옮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윤수 대원의 설명이다.
새끼 곰 6마리 방사 계획
지난 1월3일에도 한 등산객이 반돌이로 추정되는 곰을 목격했다. 놀란 등산객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자 곰은 등산객의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내 뚜껑을 열고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그후 반돌이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한 팀장은 반돌이 포획 계획을 봄 이후로 미뤘다고 말했다. 우선 반돌이가 동면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동면을 할 경우 발신기가 없는 반돌이를 찾는 일은 훨씬 어려워진다. 찾는다고 해도 자고 있는 곰을 마취총으로 포획하는 것은 곰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또 여러 차례 포획 시도로 반돌이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기 때문에 다소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한 데다 무엇보다도 봄이 되면 산에 먹을거리가 없기 때문에 꿀 등을 찾아 민가로 내려올 가능성이 높아 포획이 용이하다는 판단이다.
“일부에서는 야성을 회복해 자연으로 돌아간 반돌이를 굳이 포획할 이유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반돌이와 장군이는 어릴 때 인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야성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볼 수 없어요. 민가에 자주 출몰해 꿀이나 과일 등을 빼앗아가는 것도 인간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죠. 게다가 밀렵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한 팀장은 “장군이와 반돌이는 복원을 위한 시험개체”임을 강조했다. 즉, 이 다음 복원할 곰들이 야생에 제대로 적응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게 장군이와 반돌이의 역할이라는 것. 그렇다면 진짜 복원프로젝트는 언제 시작되는가. 곰 관리팀은 오는 6월 러시아로부터 6∼7개월 된 새끼 곰 여섯 마리를 들여오기로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관리사무소 남부지소는 지난해 9월 곰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러시아 우수리스크 보호구로부터 새끼 곰 6마리 도입 협약을 맺었다. 생물분야에서는 처음으로 맺어진 국제협약이다.
곰 관리팀은 국립공원 내 2000∼3000평 규모 보호지역을 만들어 새끼 곰들에게 야생훈련을 시킨 후 방사할 예정. 한 팀장은 “관리자들도 검은색 옷과 복면을 착용하도록 하는 등 새끼 곰들이 인간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며 “반돌이, 장군이를 통해 겪었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첫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 환경부는 반달가슴곰 프로젝트에 총 155억원의 예산을 책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03년 21억원의 필요예산 중 4억5000만원만 확보됐고 올해는 43억의 필요예산 중 겨우 6억5000만원만 예산에 반영됐다. 이는 18명 대원들의 인건비를 포함한 것이다.
18명의 대원 중 정규직은 단 1명뿐. 한상훈 팀장을 비롯해 17명이 계약직, 상용직이다. 계약직은 연봉 1700만∼1800만원이고, 상용직은 1200만∼1300만원에 불과하다. 수색작업의 특성상 항상 야생동물의 공격 등 위험 상황에 노출되지만 이에 대한 위험수당은 없다.
장비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곰이 보내는 발신음을 잡으려면 곰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가서 사람이 직접 수신기를 들고 있어야 한다. 이 수신기로는 곰들이 험준한 지역이나 산속 깊이 들어가면 신호를 제대로 잡을 수 없다. 위성을 통해 발신음을 포착하는 GPS 컬러 수신기와 발신기로 교체해야 하지만 1대에 1200만∼1400만원이나 돼서 사실상 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가는 불빛만으로도 사물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야간투시경도 4~5개 정도 필요하지만, 현재 한 팀장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야간투시경 1개를 대원들이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또 지금 당장 반돌이를 발견한다고 해도 바로 포획할 수 없다. 포획장비가 구비돼 있지 않고 마취총을 쏠 수 있는 수의사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한상훈 팀장의 설명.
“전문적인 연구는 고사하고 반돌이, 장군이를 모니터링하기에도 벅찬 실정입니다. 서식지 특성연구, 인공증식기술개발 등 계획은 거창한데 손도 대지 못하고 있어요. 사실 개발사업은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쉽게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사업은 달라요. 환경 문제에서 곰 복원사업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정부와 국민 모두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대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장군이와 반돌이, 그 밖에 야생동물들에 대한 대원들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랑은 이기적인 소유욕이 아니었다. 자연 속에서 잘 적응하는 새끼를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어미곰 같은 마음, 관리는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사랑이었다. 오늘도 곰 관리팀 대원들은 야생동물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지리산 자락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