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틈나는 대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열심히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있다. 누가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할 만큼 책에 푹 빠져 있다. 이런 아이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부모가 품에 안고 책을 읽어준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책을 생활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 아이가 책과 친구가 되게 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자녀의 독서 지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 시기에는 시처럼 리듬 있는 글을 읽어주는 게 좋다. 그러면 아이는 규칙적인 리듬과 언어, 박자를 자각하게 된다. 또 선이 분명하고 밝고 단순한 그림이 있는 이야기책이 바람직하다.
‘동물들은 왜 옷을 입지 않아요?’(지양사)를 펼치면 시원시원한 구성이 눈이 띈다. ‘가시두더지가 옷을 입는다면 가시에 옷이 몽땅 해어지고 말 거예요’라는 글이 큼직하게 씌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가시두더지의 너덜너덜한 옷 조각들이 가시에 매달려 있다. 낙타, 뱀, 생쥐, 양, 돼지, 암탉, 캥거루, 기린 등의 동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동물들이 옷을 입으면 어떻게 불편할지 리듬감 있는 언어로 알려준다. 아이들은 들은 내용을 눈으로 확인하는 걸 좋아한다. ‘돼지가 옷을 입는다면 금방 더럽혀 놓을 거예요’라는 대목에서 돼지의 옷이 깨끗하면 아이들은 책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또한 정확하면서 다양하고, 풍부하면서 살아 있는 언어로 씌어 있는 책이어야 한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일일이 설명한 책은 좋지 않다. 그런 잔소리는 책 읽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아이들은 상상의 여지가 있는 책을 좋아한다.
‘그건 내 조끼야’(비룡소)에는 단 몇 마디뿐이다. ‘엄마가 짜 주신 내 조끼. 어때, 정말 멋지지! 정말 멋진 조끼다! 나도 한번 입어 보자. 그래. 조금 끼나? 앗, 내 조끼!’가 전부다. 첫 장에는 엄마가 선물해준 빨간 조끼를 입은 꼬마 생쥐가 그려져 있다. 다음 장에는 ‘정말 멋진 조끼다. 나도 한번 입어보자’는 글과 함께 오리가 부러운 표정으로 빨간 조끼를 만져본다. 그 다음부터는 “조금 끼나?”란 글과 꽉 끼어서 불편해하는 동물이 그려져 있다. 조끼를 입어보고 싶은 친구들은 생쥐보다 더 큰 동물들이다. 결국 코끼리가 입은 후에 조끼는 쭉 늘어나 가느다란 빨간 줄이 되고 만다. 생쥐는 울상이 되지만 마지막 장으로 넘기면 줄로 그네를 만들어 타면서 즐거워하는 토끼의 모습이 보인다. 물론 이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는 글은 없다. 아이가 그림을 보고 생쥐의 기분을 생생하게 느낄 뿐이다.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사물과 배경이 담겨 있는 그림책이 좋다. 아이들은 자기 주위의 사물을 인식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세밀화로 그린 보리아기 그림책 시리즈’(보리)는 먹을거리와 동물들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아이들이 혼란 없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 ‘술술 말놀이’(다섯수레)는 의성어, 의태어 같은 말의 재미를 전래동요로 알려주는 책이다. 또 ‘싹싹싹’ ‘달님 안녕’ ‘손이 나왔네’(이하 한림)와 같은 그림책도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좋다.
한편 그림책의 그림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책을 꼼꼼히 여러 번 반복해서 본다. 이 페이지에는 집의 창문이 오른쪽에 있었는데, 다음 페이지에는 왼쪽에 있다면 아이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어려서부터 좋은 책을 접한 아이들은 커서도 좋은 책을 본능적으로 가려낼 수 있다. 아이가 책과 친해지게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준다. 또 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게 한다. 책을 주면 찢어버리거나 입으로 가져가기 때문에 걱정이라는 부모도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소재로 만든 책들, 예를 들어 소리가 나거나 무언가 튀어 오르는 책도 많이 있다. 또 아이들의 손 안에 들어갈 만한 작은 크기의 책들도 출판되고 있다.
[ 4~7세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다
이 무렵엔 호기심이 왕성해 알고 싶은 것이 많다. “이건 뭐야?” “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궁금증을 부모나 책을 통해 풀고 싶기 때문에 책에 푹 빠질 수 있고 상상력이 가장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상상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세계를 자신의 마음속에 그림처럼 그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상상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간다. 그림책은 스스로 영상을 만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의 세계를 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림책의 수준이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키워가기 때문이다.
‘옛날에 오리 한 마리가 살았는데’(시공사)의 겉표지에는 오리가 힘들게 밭을 갈고 있는 그림이 있다. 표지를 넘기면 어스름한 어둠이 몰려오고 있는 넓은 들판과 멀리 언덕 너머에 작은 농장이 보인다. 다음 장에는 오리 한 마리가 자기보다 더 큰 갈퀴를 들고 집을 향해 힘겹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이렇듯 이 책은 겉표지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림책은 겉표지부터 천천히 읽게 하고 글이 아닌 그림을 따라가면서 보게 한다.
농장의 게으름뱅이 농부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면서 오리에게 ‘일은 잘돼 가나?’고 묻는다. 오리는 바깥일과 집안일을 모두 하면서 농부의 끝없는 물음에 ‘꽥’ ‘꽥’ 대답한다. 요리하면서도 ‘꽥’ 다림질하면서도 ‘꽥’ 하는 오리의 표정은 피곤에 절어 있다. 오리만 부려먹는 게으른 농부를 보다못한 동물친구들이 힘을 합해 농부를 쫓아낸다. 반복적 물음과 대답이 주는 운율, 그리고 동물들의 다양한 의성어들은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한다.
이 나이대가 되면 아이들은 엄마 품에서 벗어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또래들과 함께 사회생활을 경험한다. 그곳에서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을 배운다. 이에 대한 정보를 주는 책을 읽게 하는 것도 좋다.
‘조지와 마사’(논장) 시리즈는 우정에 대한 짤막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완두콩 수프 만들기를 좋아하는 마사는 매일매일 냄비에 가득 수프를 만들어 조지에게 준다. 조지는 완두콩 수프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지만 싫다고 말하지 못한다. 조지는 수프를 더는 먹을 수 없어 마사가 부엌에 간 사이 신발에 쏟아붓고 이를 본 마사에게 “네가 속상해할까봐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마사는 “친구에겐 언제나 진실만을 말해야지”라고 한다. 이렇듯 이 책은 친구 사이에 지켜야 할 것들을 재미있게 풀어내준다.
이 밖에도 자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벤자민의 생일은 365일’(미래M&B), 아이들의 호기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침앤지’(행복한아이들), 낡은 오버코트가 작은 단추로 변하는 것을 통해 물건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베틀북) 등도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한편 7세쯤 되면 책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로 뚜렷이 나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아이들은 글을 빨리 깨친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에게 혼자 책을 읽으라고 한다. 그러나 글을 아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다르다. 부모가 아이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주는 것은 단순히 글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감정도 전해준다. 슬프거나 기쁜 감정이 그대로 녹아 있어 아이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조금 힘들더라도 아이에게 꾸준히 책을 읽어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가 스스로 책을 집어들 것이다.
[ 초등학교 1~2학년 ]아직은 그림책을 보여준다
유치원과 학교는 매우 다르다. 학교에 다니면서 부모의 영향이 줄어들고 교사와 또래의 영향이 커진다.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 지켜야 할 규칙들과 마주쳐야 하는 학교생활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선생님은 내 마음도 모르고 나한테만 야단치는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사계절)라고 생각한다.
취학 전 또래 사이의 갈등은 유치원 교사나 다른 어른들을 통해 풀 수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는 아이들 세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친구가 다른 친구하고만 논다거나 모둠에서 소외될 때, 부끄러워하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을 받을 때 아이는 가장 괴로워한다. 이럴 경우 ‘부끄럼쟁이 바이올렛’(문학동네어린이) 등과 같은 책을 통해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 이때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그들의 생활이 드러나 있는 생활 동화를 많이 읽는 것이 좋다.
그런데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인지 상태를 무시하고 동화책을 읽어야 할 때라고 하니 무조건 동화책을 읽게 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책에서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 그림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기는 힘든 일일 수 있다. 물론 그림책이 글이 짧을 뿐 동화책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또 책읽기에는 연령에 따른 특별한 기준도 없다. 아이가 책읽기를 싫어한다면 독서의 수준을 한 단계 낮춰야 한다. 이해하기 쉬운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을 찾게 된다.
아이마다 개인차가 있다. 책을 좋아해 취학 전부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보통의 아이라면 한창 그림책을 즐길 때다. 그림책의 그림은 아이들에게 무한한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샌지와 빵집주인’(비룡소)에는 이책의 저자가 쓴 다른 책의 주인공들이 숨어 있어 이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엄마 마중’(소년한길)을 읽으며 아기가 엄마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눈이 소복이 내린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림을 보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는 그림책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훨씬 어렵다.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책이 주는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수많은 책을 접하게 하면 오히려 아이는 책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책의 내용에 감동할 수 있는 여유를 주자.
[ 초등학교 3~4학년 ]넓은 세상을 보여준다
이때는 학교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해 안정감을 드는 시기다. 5∼6학년에 비해 공부에 대한 부담도 적고 또래 친구들과의 탐색전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또 책읽기에도 적응이 되어 다양한 독서를 체험한다.
또 이 시기에는 환상보다는 현실에 더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먼 옛날에도 사람이 살았을까?’ ‘고대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 관심영역이 자신의 주변에서 점차 확대된다. 특히 신화와 전설에 관심이 많아진다.
신화와 전설은 현실과 환상이 결합된 문학이다. 신화는 신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판타지의 세계다. 인간은 신이 길흉화복을 좌우한다고 믿었지만 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적절히 예의를 갖춰 대하면 인간을 잘살게 도와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인간의 모습을 닮은 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소별왕 대별왕, 당금애기’(한겨레아이들)에서는 아기를 세상에 내보내고 보살펴주는 일을 담당하는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황우양씨 막막부인, 자청비와 문도령’(한겨레아이들)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신에게 먼저 고하는 조상의 모습을 그렸다. ‘염라대왕을 잡아라’(창비)에서는 이승의 삶 너머의 저승에 대해 다룬다. 이승에서 남에게 베풀고 살면 저승에서 보답을 받는다. 하지만 저승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찾아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저승사자가 인간에게 찾아와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데려간다고 이야기한다.
신화 읽기는 판타지를 포기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그 세계를 즐기게 하는 것이자 우리 의식에 내재한 옛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게 한다. 이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 있는 아이들에게 현실의 뿌리를 더욱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위인전집을 구입한다. 부모들에게 “왜 이렇게 빨리 위인전을 읽히려 하냐”고 물으면 “교과서에 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모르면 안 되지 않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필자는 너무 어린 나이에 위인전을 읽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본다. 아이들에게 좌절감만 심어주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을 존중하고 생각의 중심을 가질 수 있을 때 위인전을 읽는 것이 좋다. 생각의 중심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위인전을 읽으면 그 인물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할 수 있다. 영웅들은 태몽부터 남다르고 자라면서 뛰어난 능력들을 발휘한다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럼 나는 뭐지? 나는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영웅은 시대적 상황과 주변환경이 만드는 것이다. 개인의 뛰어난 능력뿐 아니라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영웅이 된다. 이순신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수많은 이름없는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또 부모들도 한 인물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하는 지식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아이가 하나라도 더 지식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위인전을 읽히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나쁜 영향만 끼칠수 있다. 또 너무 정형화된 영웅의 이야기보다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읽히는 것이 아이에게 바람직하다. 아울러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옳고 그름에 대한 신념을 북돋아주고 공동체 의식과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심어주는 책이 좋다.
어린이 독서지도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다. 아이가 책이 주는 재미와 풍요로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 초등학교 5~6학년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선택하게 한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해지고 구체적인 목표에 따라 생활하는 시기다. 현실에 대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자신만의 잣대로 세계를 바라본다. 또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의 독서 취향이 확연히 달라진다. 보통 남자 아이들은 역사나 사회, 과학에 관심이 많은 반면 여자 아이들은 문학에 관심을 갖는다.
아직 몸도 마음도 스스로 책임질 만큼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꿈꾼다. 그래서 이때는 모험을 찾아 떠나는 내용의 책을 좋아한다. 모험은 항상 보호받던 자신의 주변으로부터 떨어져 전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모든 것을 판단해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매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고 선택의 결과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아이들은 책 속 주인공과 함께 모험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한다. 또 모험은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몸도 정신도 자란다.
세계명작은 언제, 어떻게 읽힐까
“아이에게 세계명작을 읽히고 싶은데 언제 읽히는 것이 좋을까요?”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은 대개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부모다. 요즘 부모들은 마음이 무척 급하다. 아이가 어려도 무조건 세계명작을 읽히고 싶어 한다. 학년이 높아지면 학원에 다니며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명작은 저학년 때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생각한다.
지금 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 세대가 자랄 때는 책이 많지 않았다. 또한 출판시장 상업화의 영향으로 집집마다 세계명작이라고 하는 전집류를 갖추고 읽었다. 하지만 그때의 세계명작 전집류는 완역이 아니라 줄거리만 요약해놓은 것이다. 요약본을 읽었을 뿐 그 작품을 읽었다고 할 수 없는데, 줄거리를 알면 다시 그 책에 손이 가지 않게 마련이다.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은 세월의 무게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진리를 담고 있다. 명작은 행간 사이에 무수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명작이 우리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피노키오’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릴 적 피노키오를 읽으며 거짓말을 하면 피노키오의 코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만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완역본 ‘삐노키오의 모험’(창비)을 보면 거짓말을 해서 코가 늘어나는 것은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삐노키오는 가출을 밥먹듯 하고 아버지 옷을 팔아먹는 등 온갖 말썽을 피운다. 남의 말을 쉽게 믿어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경험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삐노키오는 나무 인형에서 진짜 아이로 성장한다. 즉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아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한 아이의 성장기다.
따라서 세계명작을 무조건 어린 나이에 읽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어느 정도 자신과 세계에 대한 탐색이 가능한 시기에, 그 나이에 맞는 완역본을 읽게 하는 것이 좋다.
문학작품은 사회적 환경 및 당대인들의 사고를 그대로 반영한다. 따라서 작품이 탄생한 시대에 대한 기반지식을 가지고 작품에 접근하도록 하는 게 좋다. 세계명작은 주로 18∼19세기에 유럽에서 탄생한 문학을 말한다. 당시 유럽은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빈부차가 극심하던 시기였다. 기계의 발달로 인해 상품생산 담당자가 기계로 대치됐고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은 거리의 부랑자로 내몰렸다.
가령 ‘올리버 트위스트’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회에 만연하는 부정부패와 뒷골목에 버려진 민중의 아픔과 갈등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이다. 이런 시대적 이해 없이 이 작품을 읽는다면,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려움을 겪다 어느 신사의 도움으로 신분을 되찾은 내용으로만 기억할 것이다.
명작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해서도 안 된다. 18∼19세기는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다. ‘로빈슨 크루소’는 모험이야기로 가장해 침략과 약탈,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고, 원주민을 미개인으로 치부하면서 자신들이 그들을 개화했다고 미화한다. 부모와 아이가 이런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명작을 읽도록 도와줘야 한다.
천천히 꼭꼭 씹어 흡수해야
책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친구와 갈등을 풀어가는 법을 알려주며 놀이공간이 되기도 한다. 책을 통해 꿈을 꾸고 모험을 할 뿐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갖게 된다. 하지만 모든 책이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나이와 수준에 맞는 책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연령별 목록에 맞춰 무조건 책을 읽히면 안 된다. 만약 아이가 책을 버거워한다면 또래 수준보다 낮춰 읽게 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책을 읽으면 성적이 좋아지고 풍부한 지식을 가지게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래서 무조건 많이 읽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음식을 급하게 먹으면 체하듯 책도 마찬가지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야 음식이 내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되는 것처럼 책도 천천히 곱씹어 생각하며 읽어야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자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책을 접하게 하기보다는 책이 줄 수 있는 재미와 풍요로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해야 한다. 자녀를 위한 책을 선택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정리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즐거움을 주는 책●상상력을 자극하는 책●남을 배려하는 책●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가 신념과 실천하는 용기를 배울 수 있는 책●옳지 않은 일에 당당히 맞설 용기를 주는 책●육체와 정신의 성장을 돕는 모험 이야기 책●선택도 자신의 몫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자신의 몫임을 인식할 수 있는 책●지식을 주는 책●공동체 의식과 인간적인 삶을 희구하는 미래지향적 의식을 심어주는 책●자연이나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