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1973년 동아방송 송해 목소리 들어봤다

최고령 방송인 95세 일기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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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2-06-08 16: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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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송해는 49세 나이로 동아방송, 동양방송, MBC 등 여러 방송국의 라디오프로그램 진행자를 맡았다. [동아DB]

    1976년 송해는 49세 나이로 동아방송, 동양방송, MBC 등 여러 방송국의 라디오프로그램 진행자를 맡았다. [동아DB]

    현역 최고령 방송 진행자이자 최초의 국민MC 송해(본명 송복희)가 6월 8일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향년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27년 황해도 재령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웠다. 1951년 1‧4후퇴 때 피난하는 과정에서 미국 군함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 때 실향민으로 바다를 건너왔다는 의미로 바다 해(海)자를 예명으로 쓰기로 했다. 이후 군에 입대해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6‧25전쟁 휴전 소식을 처음 전보로 전한 통신병이 바로 그다. 전역한 뒤에는 성악을 전공한 경력을 살려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이때부터 악단 공연 진행을 맡으며 MC 경험을 쌓았다.

    동아방송으로 MC 데뷔

    1970년대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송해&이순주 쇼’ 방송 녹음 앨범. [동아DB]

    1970년대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송해&이순주 쇼’ 방송 녹음 앨범. [동아DB]

    고인은 1960년대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스무고개’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방송은 스무고개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코미디언 박시명(1924~1986)과 퀴즈 중간 콩트 코너를 맡았다. 이후 교통정보 프로그램 ‘나는 모범 운전사’ 등의 진행을 맡았다. 한국 최초 여성 MC 이순주(1945~2021)와 콤비가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이 콤비는 동아방송, 동양방송을 거쳐 MBC의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진행했다.

    고인을 전국구 스타로 만든 프로그램은 1974년 시작한 동양방송의 생활 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였다. 이 프로그램은 운전자들에게 특히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86년 당시 스무 살이던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자 그는 방송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고인은 KBS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으며 방송계로 복귀했다. 1984년 전국노래자랑 담당 PD가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고인을 찾아왔다. 당시 그 PD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바람이나 쐬러 다니자”며 전국노래자랑 MC를 제안했다. 이후 1988년 이한필, 이상용, 고광수, 최선규에 이어 전국노래자랑의 다섯 번째 MC를 맡았다. 이후 올해까지 34년간 전국노래자랑 MC로 전국을 돌며 각 지역의 시민을 만났다. 전국노래자랑으로 만난 시민만 1000만 명이 넘을 정도. 오랫동안 시민들과 소통한 공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올해 5월에는 ‘최고령 TV음악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다.



    전국노래자랑은 남북 교류의 장이 되기도 했다. 2003년 평양 모란봉 공원 평화정 앞에서 전국노래자랑 특집 무대를 꾸렸다. 이후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고인은 고향인 황해도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보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례 표명했다.

    올해부터 건강 악화

    송해는 2017년 MBC 예능프로그램 ‘세상에 모든 방송’에 이상벽, 허참, 임백천(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과 함께 고정 출연했다. [동아DB]

    송해는 2017년 MBC 예능프로그램 ‘세상에 모든 방송’에 이상벽, 허참, 임백천(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과 함께 고정 출연했다. [동아DB]

    송해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송해 1927’ 시사회에 참석한 송해. [동아DB]

    송해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송해 1927’ 시사회에 참석한 송해. [동아DB]

    이밖에도 고인은 다수 예능 프로그램과 각종 광고에 출연하고 드라마나 영화에 카메오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그는 12장의 앨범을 낸 가수이기도 하다. 2011년에는 전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고인의 일대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이 개봉했다.

    올해 들어 고인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1월 건강 이상으로 입원했으며 3월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4월부터 다시 전국노래자랑 녹화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나 5월 14일 서울 아산병원에 다시 입원했고 사흘 뒤 제작진에게 “더 이상 진행을 맡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며 하차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현장 녹화가 열린 6월 4일 고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고인 측은 “건강에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지방까지 장시간 이동이 부담스러워 현장 녹화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나흘만인 6월 8일 고인은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두 딸이 있다. 아내는 2018년 별세했다. 고인은 아내의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 부부가 함께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생전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장례는 대한민국코미디언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3호실. 발인은 6월 10일이다.

    송해는 2018년 아내 석옥이 여사를 먼저 떠나보냈다. 사진은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부고기사를 읽고 있는 모습. [동아DB]

    송해는 2018년 아내 석옥이 여사를 먼저 떠나보냈다. 사진은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부고기사를 읽고 있는 모습. [동아DB]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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