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호

北, 민간 단위 행사에서 무차별적 南 주사파 포섭

NL 운동권 핵심이 본 간첩단 사건 막전막후

  • 민경우 대안연대 상임대표·前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사무처장

    mkw1972@hanmail.net

    입력2023-03-0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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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첩단 사건 주역 주사파 2세대

    • 활동 무대가 창원·제주인 이유

    • 암약 공간은 민주노총·진보당·진보연대

    • 고정간첩 15만 명? 터무니없는 얘기

    • 2세대 간첩 조직 와해 계기 될 듯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뒤 박스에 증거품을 담아 나오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뒤 박스에 증거품을 담아 나오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최근 여러 곳에서 간첩 조직이 발각됐다. 경남 창원의 ‘민중자통전위’, 충북의 ‘자주통일충북동지회’, 제주의 ‘ㅎㄱㅎ’ 등이다. 이들 조직은 1980~1990년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나 중부지역당 등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2000년대 간첩의 특징을 1990년대와 비교하면서 살펴보겠다.

    먼저 북한발(發) 변화다. 첫째, 대남 공작 환경이 급변했다. 1990년대라면 대남 공작원은 물론 이들을 남한에 침투시키기 위해 상당한 비용도 있어야 했다. 잠수정·난수표·공작금 등에 더해 한국 말투와 생활 적응에 필요한 이른바 ‘남한화 작업’도 해야했다. 간첩 조직을 꾸렸다고 하더라도 조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공작원이 남파되기도 했다.

    1990년대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했다. 북한은 대남 사업의 고비용 구조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00년대가 되면 한국의 지하당이나 고정간첩을 조직·관리하기 위한 대남 간첩의 규모가 급격히 줄어든다.

    북한의 대남 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대남 공작 환경이 바뀌면서부터다. 한국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자 비용과 위험 부담이 큰 남파 대신 해외에서 사업하면서 남측 인사들에게 접근하는 길이 열렸다. 암호화된 e메일을 통해 조직을 손쉽게 관리할 수도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2000년대에 새로운 유형의 간첩 조직들이 등장했다.

    둘째, 1990년대 민혁당·중부지역당의 경우 북한이 민혁당 김영환, 중부지역당 황인오를 타깃 삼아 접근했다. 대남 공작원 윤택림은 김영환이 사는 집을 방문해 그를 설득하고 지하당을 조직했다. 노동당에 입당한 김영환은 주변 인맥을 규합해 민혁당을 조직했다. 이 과정에서 중심은 어디까지나 김영환이었다. 김영환은 이 모든 과정의 고리에 해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영환이 사상 전향을 시작했을 때 민혁당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중부지역당의 경우에도 황인오가 김영환과 같은 역할을 했다.



    남북 교류 국면서 이뤄진 접촉·포섭

    이번 간첩단 사건의 핵심은 북한의 대남 공작원 리광진·김명성이다. 리광진과 김명성은 캄보디아 등 해외에 정주하며 다양한 경로로 접촉한 한국의 주사파를 간첩 조직에 편입했다. 그들이 만든 간첩 조직 중 일부가 깨진다 해도, 리광진·김명성이 살아 있는 한 조직 역시 살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김영환·황인오의 사례와 다른 점이다.

    셋째, 간첩 라인이 가동되는 과정에서 리광진이 국내 주사파 인물들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촉하고 포섭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핵심은 2000~2007년 사이의 남북 간 교류 국면에 있다.

    2000년대 김대중 정권은 다양한 남북 교류 행사를 추진했다. 이에 여러 계기로 북측 인사들이 남측의 민간인들, 특히 운동권 또는 주사파와 만날 수 있었다. 대표 사례가 2000년 10월 10일 열린 북한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행사다. 나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자격으로 이 행사를 비롯해 2000년대 초반 다양한 민간 단위 행사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실무 책임자였다. 이 때문에 구속돼 징역형을 살기도 했다.

    북한은 2000년 6월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행사에 남측 정당과 사회단체를 평양으로 초청했다. 명목은 행사 참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동당과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이 참가했다. 기념행사 참관, 만찬 등 무리 없이 일정이 진행됐다.

    문제는 공식 행사 그다음이었다. 남측 참관단에는 오종렬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상임의장이 있었다. 당시 오종렬 의장과 안경호 간의 비공식 만남이 이뤄졌다. 안경호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으로 대남 사업에서 매우 비중 있는 인물이었다. 남북 행사에서 북측 인사는 대부분 두 개의 모자를 썼다. 하나는 해당 행사에서의 적절한 직급, 다른 하나는 노동당 직책이다. 북측 인물들은 두 개의 모자를 번갈아 써가며 남한 사람들을 상대로 대남 사업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안경호는 오종렬에게 전국연합이 민주노동당에 조직적으로 가입할 것을 ‘권고’했다. 오종렬은 한국에 돌아와 이 ‘권고’를 중심으로 주사파 운동권을 재편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시 최대 주사파 조직이던 전국연합이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이다.

    2000~2007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안경호-오종렬 만남과 유사한 민간 단위 접촉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여기에는 종교·여성·청년·노동 등 부문별 교류, 위안부 등 남북 공통 관심사를 주제로 한 공동 행사, 북측에 대한 남측의 인도적 지원, 한국에서 진행한 각종 스포츠 행사(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등이 포함됐다.

    간첩 조직, 1세대와 2세대 차이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는 사이 건물 밖에서 민주노총 노조원 등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1월 18일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는 사이 건물 밖에서 민주노총 노조원 등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자. 북한이 민주노총 간부 A씨나 제주 지역 시민단체 인사 B씨 등을 특정해 타깃으로 삼은 후 접근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A씨와 B씨 등은 앞서 언급한 광범위한 남북 민간 단위 접촉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우연히 북측과 접촉했을 것이다. 어쩌면 실무 회담 중에 명함을 주고받는 느슨한 형태의 접촉이었을 수도 있다. 북한의 대남 공작원은 안전한 해외에 주둔하면서 만든 수많은 만남의 고리 중 여러 개를 선별해 ‘미끼’를 던졌을 공산이 크다.

    즉 북한은 느슨한 만남에서 무차별한 미끼를 던지고 거기에 걸리는 주사파를 간첩망에 포섭했다. 따라서 2000년대 간첩 조직들은 특이한 행태를 보인다.

    첫째, 진보당·민주노총·통일단체 등 남들이 보기에 의심이 갈만한 소속과 직업을 갖고 있다. 북한의 미끼는 주로 남북 접촉 과정에 노출된 사람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다. 둘째, 주로 반미·통일 관련 행사를 빈번히 연다. 간첩과 지하당의 기본 원칙은 정간은폐(정계간부 은폐)다. 외부에 드러나는 대중운동보다 조직의 안전성을 우선시한다. 반면 이번에 발각된 간첩단 조직들은 노출을 주저하지 않고 대외활동을 했다. 아마도 이들 조직을 대하는 북한의 의도를 대변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은 한국 내에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사파 리더들을 타깃 삼아 포섭하는 대신 민간 단위 행사에서 느슨하게 접촉한 주사파 인물들을 무차별하게 포섭했다. 장기적인 당의 유지·안정보다는 당면한 정치 문제에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다음은 한국의 변화다. 이번 사건에서 발각된 인물들의 특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이는 40대 중·후반~50대 중반이다. 둘째, 대체로 마이너 캠퍼스 출신이다. 셋째, 창원·제주 등 지방에서 활동한다. 넷째, 민주노총 등 사회단체 소속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사파 운동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주사파의 핵심 리더는 대부분 1980년대 초반 학번이다. 김영환(82학번), 이석기(82학번·전 통합진보당 의원), 강희철(81학번·과거 인천연합 리더) 등이다. 이들이 1985~1986년 운동권에 주체사상을 도입하고 그에 기초해 민혁당과 중부지역당 등을 만든 주사파 1세대다. 주사파 1세대 중 간첩 활동에 참여할 정도의 인적 풀은 사실상 소진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2세대에서 새로운 간첩 조직이 만들어진 것이다.

    주사파 2세대의 중심기는 1988~1997년이다. 주사파가 학생운동을 석권하면서 주사파 운동은 서울의 메이저 캠퍼스에서 지방의 마이너 캠퍼스로 확대됐다. 이때 학생운동 또는 그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번 간첩단 사건의 장본인들이다. 그들을 주사파 2세대라 볼 수 있다.

    이들의 활동 무대가 창원·제주인 이유가 있다. 1세대 주사파들은 서울의 명문대 출신으로 수도권을 무대로 활동했다. 1세대 주사파의 에너지가 소진되면서 서울을 무대로 한 간첩 조직들도 약화됐다. 경기동부와 인천 등은 독자적 주사파 조직을 갖고 있다. 경기동부·인천 등에서 주사파 활동을 하려면 그 나름 이 그룹들을 관장하는 조직들과 충돌해야 한다. 최근 검거된 간첩 조직들은 그런 역량까지는 갖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민혁당과 중부지역당이 1980년대 초반 서울의 명문대를 배경으로 주사파를 도입·전파했던 1세대 간첩 조직이라면, 이번에 발각된 조직은 주사파가 전국적으로 확산했던 1990년대 초반을 뿌리로 둔 2세대 간첩 조직인 셈이다.

    무분별한 北 추종 간첩, 절벽에 서다

    이후의 상황을 전망해 보자. 첫째, 이번에 발각된 조직 수준의 간첩들은 꽤 많이 있을 것이다. 그간 진행된 세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먼저, 북한의 대남 공작이 워낙 무차별하게 이뤄졌다. 간첩단 사건이 일어나도 북한이 입는 손해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높다. 이와 동시에 2000~2007년을 포함해 북한과의 부주의한 접촉이 워낙 많았다. 이 와중에 국정원의 방첩 기능이 약화됐다. 이런 이유로 국정원이 방첩 기능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사건이 적발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민주노총과 진보당이 입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번 간첩단 사건은 대부분 민주노총과 진보당, 진보연대 등 넓은 의미의 주사파 정당·단체를 뿌리로 한다.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그런 신분을 갖고 있어야 북한과 접촉하고 서로 신분을 확인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나 진보당은 이번 기회에 북한과의 관련성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진보파는 오랜 기간 북측과 연계된 주사파를 민주화운동의 맥락에서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주사파들이 민주노총 내에 광범위하게 뿌리내렸다. 향후 노동운동·통일운동·평화운동 내에서 주사파 운동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필자는 이번 간첩단 사건이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간첩·주사파의 일각만 드러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고정간첩 15만 명 설(說)’ 등 일부 유튜버들이 꺼내 놓는 주장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것이다. 외려 필자는 이번 간첩단 사건이 1세대 주사파 당시의 민혁당·중부지역당과 마찬가지로, 2세대 주사파가 참여한 간첩 조직이 와해되는 계기라고 본다. 이것은 북한의 대남 공작이 중대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 2세대 주사파는 주체사상을 수용한 사실상 마지막 세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북한을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간첩 활동의 여지는 구조적으로 좁아졌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주사파 1·2세대처럼 주사파를 강도 높게 수용한 집단을 더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1·2세대 이후 주목할 집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이들은 주체사상을 본격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민경우
    ● 1965년 출생
    ●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 現 대안연대 상임대표
    ● 저서 : ‘86세대 민주주의’ ‘진보의 재구성’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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