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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오리엔탈리즘 담론’ 20년 앞선 이슬람 연구 역작

  • 이민호 서울대 명예교수·서양사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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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호지슨은 자신의 전공 분야인 이슬람 연구에 천착했다. 원래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의 전통과 그리스 문화를 공유하면서 기독교와 같은 문명의 줄기에서 나온 종교다. 그럼에도 이슬람은 유럽 기독교 세계에 의해 끊임없이 비하되고 멸시당했다. 유럽인에게 이슬람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그들’, 즉 ‘타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린이라는 ‘타자’가 없으면 어른이 있을 수 없고, 여성이라는 ‘타자’가 없으면 남성이 있을 수 없듯이, 이슬람이라는 ‘타자’가 없었다면 유럽 또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1453년 이슬람의 오스만 투르크가 기독교 세계의 동쪽 방벽인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난 뒤에야 ‘유럽’이 탄생했다고 한다. 그전에 ‘유럽’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이슬람의 위협이 임박해서 탄생한 ‘유럽’은 그후 이슬람을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악하고 위험하며 저열한 존재로 파악했다.

호지슨의 이슬람 연구가 빛을 발하는 대목은 바로 그런 유럽 본위의 편견을 통쾌하게 깨뜨리는 부분이다. 호지슨은 이슬람이 아주 오랫동안 지적, 문화적, 기술적으로 유럽 세계를 능가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16세기에 화성에서 온 방문객이 있었다면 인간 세상을 둘러보고 머지않아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호지슨은 유럽의 빛나는 르네상스조차 이슬람을 능가한 것이 아니라 간신히 그 수준에 도달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호지슨에 따르면 유럽이 실제로 이슬람을 능가한 것은 17∼18세기에 들어와서다. 이는 16세기 근대 세계 체제 속에서 유럽이 패권을 거머쥐었다는 월러스틴 류의 널리 소개된 이론과도 다르다. 여하튼 18세기 이전 1000년 동안 이슬람은 항상 유럽보다 우월하고 세계의 최선두를 달린 문명이었다.

세계시민적인 문화적 압력

이렇게 이슬람 문명이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이슬람 특유의 유연한 종교와 사회 질서가 작용했다고 호지슨은 판단한다. 우리에게 이슬람은 근본주의의 색채를 띤 종교로만 알려져 있지만, 원래 그것은 개방적인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유연한 종교였고, 그에 따라 현실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윤리를 발전시켰다. 또한 나일 강에서 옥수스 강에 이르는 이슬람 지역은 척박한 토질로 인해 농민들을 땅에 묶어두기가 쉽지 않았고, 따라서 이곳에서는 매우 유연하고 평등한 사회적 위계가 생성됐다.



그런가 하면 이 지역은 유럽, 동부 지중해 연안, 이란, 흑해 연안, 그리고 인도를 잇는 세계 무역의 요충지로서, 이 지역의 상업적 번영에 따라 발전한 세계시민주의와 개인주의가 이슬람 정신의 근간이 됐다. 이런 점들을 검토하면서 호지슨은 이슬람에 “평등주의적이고 세계시민적인 문화적 압력”이 잘 표현되어 있고, 바로 이것이 세계사 속에서 이슬람이 수행한 가장 큰 역할이었다고 주장한다.

호지슨의 책은 어렵다. 그럼에도 그는 특정 지역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와 세계사적인 전망을 훌륭하게 접목했다. 아쉬운 점은 동아시아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호지슨은 유럽인이 동아시아를 ‘동양’이라고 하면서 동양의 다양성을 무시한다고 비판하고 각 지역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온전히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확실히 우리가 보는 유럽과 세계는 이슬람의 시각에서 보는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이슬람이 유럽의 ‘타자’였다면, 우리에게 이슬람은 유럽의 ‘안과 밖’이 아닐까. 호지슨의 훌륭한 안내를 받으면서 동시에 그의 연구를 뛰어넘는 업적이 우리 학자들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신동아 200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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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서울대 명예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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