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교육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학부모들이 떠날 채비에 분주하다. 행선지가 어딜까. 서울 강남 8학군? 아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자리한 남한산초등학교. 2001년 폐교 위기에 처했지만, ‘우리만의 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몰려들었다. 7년이 지난 오늘, 이 작은 학교는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 벤치마킹 행렬이 끊이지 않는 ‘21세기 공교육의 싹’으로 성장했다. 못 들어가서 난리, 떠나기 싫다고 아우성. 꼬불꼬불 산길 끝 시골학교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슬프다, 벌써 졸업이네. 남한산을 떠나서 어디로 갈까? 졸업하고 남한산에 자주 와야겠다. 졸업하기 싫다.”
“남한산에서 보낸 5년의 세월, 아이들이 성장해서 힘들고 지칠 때 쉼표가 될 수 있는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곳 생활이 정말 힘들었지만 그만큼 행복했고 후회 없는 삶이라 자부합니다. 이제 큰아이의 졸업으로 이곳을 떠나 아파트로 갑니다. 가슴이 답답하지만 남한산의 추억이 있기에 웃으며 떠납니다.”
폐교 위기를 넘긴 작은 시골학교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아이도 학부모도 떠남을 아쉬워할까. 궁금증이 꼬리를 무는 사이, 눈앞에 불쑥 학교가 나타났다. 산꼭대기를 병풍처럼 두른 아담하고 소박한 단층 교사(校舍). 신발을 벗고 교사 현관에 들어서자 몇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띈다. 가정집 거실 분위기다. 복도와 교실 등 건물 전체를 온돌방으로 꾸민 실내에서 아이들은 맨발로 와르르 뛰어다니고 뒹굴며 깔깔댔다. 여느 학교와 다름없던 바닥을 온돌방으로 바꾼 데는 한창 활발하게 몸을 움직일 시기의 아이들이 옷 버릴 걱정 없이 맘껏 뛰어놀라는, 교사와 학부모들의 세심한 배려가 있다.
남한산성 안 산꼭대기 부근에 터를 잡은 전교생 130여 명의 작은 학교. 이곳을 둘러싼 한적한 시골동네가 졸업과 입학 시즌만 되면 ‘이사 소동’으로 몸살을 앓는다. 전세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나마 구할 집이 없어 학부모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학교 홈페이지 ‘학부모사랑방’도 조용할 날이 없다.
“큰아이를 2학년으로 전학시키고 싶은데 집이 없어 안타깝네요. 아는 사람이 없어 부동산을 통해야 한다니 답답해요. 현지에 사시는 분들이 집 소식을 더 잘 알지 않을까 해서 글을 올립니다. 학부모님들 연락 기다립니다. 도와주세요.”
“4개월 만에 방 세 칸짜리 집을 구했다. 온 동네 문 두드리고 다녀 얻은 집이다. 그런데 옆집 공사로 빗물 배수가 우리 집을 향했다. 3년 동안 남의 집 빗물 퍼내며 살았다. 지금은 힘들었던 모든 것이 용서된다.”
“이혼 도장 찍고 남한산 가라”
지난 3월3일 초빙제로 새로 부임한 최웅집 교장에 따르면 산성 내에 위치한 학교 주변이 신·증축 불가 지역으로 묶여 있다. 그나마 상가지역이라 음식점이나 찻집 외에 일반 주택은 거의 없다. 최 교장은 “대개 상가 반지하방, 도심으로 떠난 사람들이 남겨놓은 빈집, 무허가 집에 세를 드는데 그나마 물량이 많지 않아 학부모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다.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입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입학, 전학을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쳐 학교는 산성리를 포함해 주변 세 개 리(里)에 거주하는 학생들만 받고 있다. 가족 전체가 이 지역에 실제 거주해야 하고 부모의 전출로 이사를 가게 되면 아이도 가차 없이 전학 보내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지만, 전교생 가운데 외지 아이들이 70%에 달할 만큼 학부모들은 전·입학에 필사적이다. 교무부장이자 나무마을(2학년) 담임으로 9년째 근무 중인 안순억 교사의 말이다.
“학부모들이 학교 주변 음식점 지하방 곳곳에 이사 와서 살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서 살다가 다 쓰러져가는 빈집에 방 한 칸을 얻어 화장실도 없이 요강을 쓰며 사는 분도 있지요. 천장에서 빗물이 새는 곳도 있고요. 우리 학교가 뭐 대단한 학교라고 그러나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나라 학교가 얼마나 부실하면 저럴까 싶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남한산초등학교는 모든 교과 학습을 몸으로 배우고 익히게 한다. 그래야 입체적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처음 장만한 아파트 입주를 몇 개월 남겨놓고 남한산으로 이사하기 위해 1960년대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빈집을 얻었습니다. 전입신고 하러 면사무소로 가는데 남편의 전화를 했어요. ‘이혼 도장 찍고 남한산 가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추억도 없이 죽어라 공부만 하는 초등학교 시절을 겪게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 공교육만으로 아이를 잘 키우고 싶기도 했고요.”
‘산성 생활’ 5년째인 학부모가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남한산초등학교는 국가 교육정책이 그대로 반영되는 공립학교로 7차 교육과정을 따라야 한다. 국가가 정한 교과목을 국정 교과서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 운영방식은 정해진 틀에서 자유로운 대안학교를 떠올리게 한다. ‘함께 꿈꾸고 성장하는 교육공동체’라는 슬로건 아래 자율성을 길러주며, 아이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학교, 학부모가 적극 참여하는 학교, 교사의 자율적 교육활동을 존중하는 학교를 지향한다. 최 교장은 “초등생 시기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온몸으로 배우고 익힌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과학습과 방과 후 특기적성수업 등을 모두 체험학습 형식으로 진행한다.
첫 일과는 ‘숲속 산책’
아이들이 학습에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교육과정이 독창적이고 다양하다. 매일 아침 수업을 여는 시작은 교사와 아이들의 숲속 산책이다. 아이들은 나무 냄새를 맡고 식물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무와 교감한다. “겨울 숲속에서 살아 있는 것들을 찾아보라”는 교사의 말에 한 아이는 “바람이 나를 약간 춥게 하고 기운이 펄펄 나게 만들고 열도 조금 나게 해서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답한다.
숲속 산책에 이은 본격 수업은 ‘80분 수업 30분 휴식’의 블록수업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 과목 수업을 교사가 설명하고 아이들이 받아 적는 여느 학교의 단순반복 수업 대신이다. 교사 강의, 그룹별 토론과 발표 등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최소한 80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수업 후 ‘쉬는 시간 10분’ 대신 ‘노는 시간 30분’으로 정한 휴식시간에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뒷동산에 매어놓은 그네를 타며 논다.
여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7~10일간 열리는 계절학교는 교과과목 대신 목공예, 도예, 퀼트, 연극, 춤 등 아이들이 관심 있는 과목을 선택해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도록 한다. 생활공예와 예술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과정이다. 여름방학 일주일을 앞두고 열리는 숲속·바다학교는 자연에서 야영하며 자연친화적, 생태적 사고를 기르게 한다.
독특하고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각종 모임과 회의, 공개수업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머리를 맞댄 끝에 만들어졌다. 학교 교육의 실질적 의결기구는 교장을 포함해 교사 전원이 참석하는 주례회의다. 이 자리에서 토론을 거쳐 결정된 사안에 대해선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한다. 학교 운영에 관한 한 교장은 교사들에게 100% 자율권을 부여한다. 민주적인 학사운영과 교사들의 자발성이 아이들 중심의 재미있고 즐거운 교육과정을 만들어냈다.
안순억 교사는 “우리 학교는 틀이 완성된 학교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기체다. 학부모와 교사, 아이들, 지역사회가 함께 좋은 학교 만들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을 갖고 움직인다. 이 작은 학교에 학부모와 교사 모임, 학부모끼리의 모임, 아카데미와 강좌, 교사 워크숍 등 크고 작은 모임이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교육청의 ‘2001년 폐교 확정’ 위기를 넘기고 ‘공교육 혁명’으로 불리는 지금의 학교로 거듭나기까지 교사와 지역 시민단체의 힘이 컸다. 2000년 전교생이 26명이던 학교는 이듬해 9명의 졸업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입학이 예정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때 경기도 성남지역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의 여름캠프에 학교 운동장을 빌려줬다. 그들 사이에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없어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우리 아이 몇을 보내면 폐교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들이 오갔다. 얼마 뒤 이 모임 회원들을 주축으로 성남지역 시민단체와 더불어 ‘전·입학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당시 곤지암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안순억 교사는 공교육에 절망해 해외 출국을 고민하던 중 위원회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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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학생 수를 늘리는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뜻있는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이 아이를 전학시키는 건 좋지만 왜 우리가 그곳으로 가야하는가…. 이런 문제를 놓고 수십 차례 토론을 벌였습니다. 마침내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인격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작고 친밀한 학교를 만들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거대학교, 과밀학급, 인간성을 잃은 교육에 진저리치는 학부모가 워낙 많다 보니 지금과 같은 학교 운영방식의 큰 줄기가 잡힌 겁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설명회를 열자 성남지역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2001년 새 학기는 재학생 17명을 포함한 전교생 103명과 7명의 교사로 출발했고, 불과 두세 달 만에 폐교 결정이 취소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2001년 1, 2월 두 달 동안 7명의 교사는 휴가도 없이 ‘막일꾼’을 자청했다.
안 교사는 “의욕에 넘쳐 학교에 왔더니 전교생 50명 미만으로 20여 년간 방치되다시피 한 학교엔 제대로 된 칠판과 분필도 없었고,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귀곡산장이 따로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단지 ‘폐교 위기를 넘겼다’고 표현하면 수동적으로 들린다. ‘뜻있는 교사들이 일부러 작은 학교를 찾아내서 새로운 학교를 만들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0년 부임한 정연탁 전임 교장과 교사들이 이름 붙인 ‘우리들의 드림스쿨’은 기존 학교의 주입식 교육과 수월성 경쟁구도를 걷어내는 것에서 시작됐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교육이념을 담은 현관 위 현판과 학급교훈이 적힌 액자, 운동장 조회대를 없앤 것. 운동장조회, 주번조회, 시험도 없앴다. 핀란드는 초등학교에서 시험 보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욕설, 폭력, 왕따 없는 학교
교육과정은 학부모와 교사의 의견을 모아 만들어진다. 체험 위주로 자연친화적, 생태적 사고를 기르도록 한다.
통제와 지시, 경쟁이 지배하는 학교를 아이들 중심의 즐겁고 행복한 학교로 만들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폐교 위기를 넘긴 초기의 전·입학생 중에는 기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가 10명 중 2명꼴이었다. 그 무렵 아이들 사이에 만연하던 욕설과 폭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쩌다 아이들끼리 가벼운 주먹다짐이라도 벌이면 두고두고 화제가 될 정도다. ‘왕따’도 찾아보기 어렵다.
취재 도중 교실 문이 살며시 열리며 한 아이가 고개를 빠끔히 디밀고 안 교사에게 엽서 한 장을 건넸다. 도서부 저학년 아이들이 동화책을 읽고 주인공한테 편지를 써서 학교 우편함에 넣어두면 6학년 선배가 동화 속 주인공이 돼서 답장을 한다. 엽서를 아이 책상서랍에 넣어둔 안 교사는 “우리 아이들, 참 귀엽죠?”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남한산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38명으로 한 학년이 한 반으로 돼 있다. 한 반 학생 수는 평균 23명. 여기에 병설유치원이 있다. 반은 숫자 대신 ‘꽃마을’ ‘나무마을’ 같은 우리말 이름으로 나눈다. 교사는 각 학년 담임 6명과 교과담당교사 1명, 원어민 영어교사 1명 등 8명. 교장과 교감, 행정실 직원과 유치원 교사를 포함해도 모두 15명의 교직원이 근무하는 단출한 학교다. 하지만 그동안 거둔 성과는 크다. 지난해 고교 1학년이 된 졸업생 17명을 모니터링한 결과 80% 이상이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교사와 아이들, 학부모가 수시로 만나 소통하며 학교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쌓아왔지만 좋은 결실만 있었던 건 아니다. 폭력적인 아이가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떠난 사례가 있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며 토론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학교를 떠난 교사도 있다. 물론 지금도 학부모와 교사, 교사와 교사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불거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화를 통해 합의하는 방식을 알기에 더 이상 학교를 떠나는 극단적 사례는 생겨나지 않았다.
줄잇는 벤치마킹
남한산초등학교는 우리나라 공교육의 틀 안에서 학교가 어떻게 다양화, 개성화하고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그간 국내 초등학교와 지방 시·도 교육청은 물론 독일, 덴마크, 스리랑카, 대만 등 외국 교육 관계자들이 ‘남한산 방식’을 배우기 위해 이 시골학교를 찾았다. 남한산 방식을 벤치마킹한 초등학교도 적지 않다. 2005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가 펴낸 정책연구집에는 ‘학교혁신 사례’로 소개됐다. 서울대와 대구교대는 남한산초등학교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안순억 교사는 “몇몇 교사와 지역 학부모들이 머리를 맞대고 소박하게 출발했는데, 이제 해외에서 찾아올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니까 앞으로 학교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것인지 고민이 더 커졌다”고 털어놨다. “학교는 교사의 존재를 설명하는 터”라고 말하는 그는 “일반적 교육관점에서 보면 우리 학교는 정말 더디게 가는 학교, 꼴통학교, 말도 안되는 학교다. 하지만 수월성 중심의 특목고도 필요하고 대안학교도 필요하고 우리 같은 공립학교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모든 학교와 학부모가 우리처럼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