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호

사회부 사건팀 여기자의 ‘나의 하루’

홀서빙 여직원 가장 카지노바 잠입, 차 안에서 48시간 ‘뻗치기’…“뭘 상상하든 그 이상”

  • 홍수영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gaea@donga.com / 일러스트·박진영

    입력2008-07-09 18: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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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처럼 쉬는 주말. 외출을 하려 겉옷을 걸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경기도 공장에서 불났다, 뛰어가!” 외출길은 그길로 출근길이 됐다. 지난번 밸런타인데이. 아버지뻘 김 형사가 전화를 했다.
    • “홍 기자, 이따 들러서 초콜릿 가져가.”
    • 간만의 소개팅 자리. 헤어지며 그가 한마디 한다.
    • “안녕히 가십시오, 홍 기자님.”
    • 4년차 사회부 사건팀 여기자.
    • ‘출동 24시’에다가 경찰과 드잡이가 일상이다. 한때 ‘천사표’ 소리도 들었건만 성격도, 말투도, 피부도 까칠해졌다. 그러나 어쩌랴. 위험한 취재의 줄타기에만 서면 이리 흥분되는 것을. 나는, 사회부 여기자다.
    사회부 사건팀 여기자의 ‘나의 하루’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에 대한 장관 고시를 발표한 5월29일 오후 7시.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은 이미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화해 집회 참가자 수부터 확인했다. 경찰 추산 1만여 명, 주최 측 추산 2만여 명이 촛불을 켜고 있단다.

    문화제가 진행되고 있던 오후 8시 반경. 둥그런 서울광장 한쪽에서 취재를 하다가 반대편 끝에서 참가자 일부가 거리로 나서는 순간을 놓쳤다. 앉아 있던 참가자들이 일어나 이들을 따라나설 채비를 하는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시위대 선두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상황. 한 손에는 수첩을, 다른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냅다 뛰기 시작한다. 한국은행 사거리 방향이다. 빠르게 발을 놀리며 시경캡(사회부 사건팀의 수장,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입하는 ‘캡틴’의 줄임말)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캡, 오후 8시 반부터 시위대가 ‘고시 철회! 협상 무효!’를 외치며 한국은행 사거리 방향으로 행진 시작했습니다. 계속 따라가겠습니다.”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길에서 선두 행렬을 따라잡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소공동~명동~종로1가~종로2가~종로3가~종로4가~광장시장~을지로4가~을지로3가~종로2가~종각~세종로까지 3시간 넘게 쉼 없이 걸었다. 발목이 시큰거렸다.



    괜히 힐을 신었나. 구두를 내려다보니 얼마 전에 간 뒷굽이 벌써 많이 닳아 있다. 이날 시위대는 이튿날인 30일 새벽에서야 경찰과 한 차례 심한 몸싸움을 벌인 뒤 해산했다.

    24시간 불침번, 5분 대기조

    때로는 시위대와 경찰의 밤샘 대치 현장을 지켜본다. 때로는 불길이 치솟고 매캐한 연기가 자욱한 화재 현장에서 씨름을 한다. 연쇄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건질 수 있을까 범행 장소 일대를 맴돌기도 하고,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장병의 사연을 취재하기 위해 두어 시간 그저 유가족의 곡소리만 들을 때도 있다. 아니 곡소리라도 들을 수 있으면 행운이다. 빈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는 일이 숱하다.

    방송국 3년차 사회부 사건팀 기자 서우진(손예진 분)의 성공 스토리를 다룬 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가 방영되자 알고 지내던 취재원조차 새삼 묻는다.

    “홍 기자, 생활이 정말 그렇게 험했어요?”

    사회부 기자의 일상을 온전히 설명해낼 재간은 없다. 한 영화의 광고 카피처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란 말밖에는. 그렇다고 드라마에 나오듯 매 순간이 극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예고하고 터지는 사건사고는 없기에 일상 또한 ‘예측불허’라는 뜻이다.

    여기자라고 다를 건 없다. 입사 후 햇수로 4년 동안 사회부에서 생활한 기자에겐, 오전에 정장차림으로 대학교수와 입시 정책에 관해 논하다가 오후에는 검은 파도가 넘실대는 태안반도에서 바지를 동동 걷고 서 있는 게 일상이다.

    24시간 불침번, 5분 대기조. 사건팀을 지원했지만 정작 발령을 받았을 때 덜컥 두려운 생각이 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사건팀 기자로서의 포부를 다지기에 앞서 ‘아무리 바빠도 선머슴 같은 모습으로 다니진 말자’는 다짐을 먼저 했을까.

    하지만 백화점에 쇼핑을 간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옷장을 열면 예쁜 옷보다 편한 옷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잠이 부족해 일주일의 절반은 퀭한 눈과 푸석한 피부로 다닌다.

    사회부 사건팀 여기자의 ‘나의 하루’

    6월8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참석자들과 경찰의 대치 현장. 사건팀 기자는 사건·사고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야 한다.

    취재원이 아닌 사람을 만날 때, 심지어 소개팅 자리에서도 다부지게 꼬치꼬치 캐묻는 습관에 “기자 같으시네요” “취재 당하는 것 같아요”란 소리를 듣기 일쑤다. 그래서 차라리 인정하기로 했다. 내 정체성의 9할을 차지하는 것, “나는 사회부 여기자다!”

    어느 직업보다 ‘깡’이 필요한 직업이 기자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모든 취재를 ‘맨땅에 헤딩하듯’ 하는 사회부 기자는 ‘깡’이라면 둘째가 서럽다. 이름과 나이라는 단서만 던져주고선, “찾아내서 만나라”는 지시는 이제 그다지 곤혹스럽지 않다. 사회부 기자의 단골 취재기법인 ‘뻗치기(사건 현장에서 움직이지 않고 며칠간 지켜보며 취재하기)’로 며칠을 꼬박 새우는 것도 견딜 만하다.

    ‘깡’ ‘뻗치기’ ‘뻔뻔함’

    취재윤리 논란으로 예전보다는 확연히 줄었지만, 정치부나 경제부에 비해 사회부는 고발성 아이템을 많이 다루다 보니 잠입취재를 해야 할 때도 더러 있다. 잠입취재라, 말만 들어도 약간 전율이 인다.

    사건팀 수습기자 시절이던 2005년 1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불법 카지노바에서 한 가수가 ‘바카라’ 게임을 한 혐의(도박)로 경찰에 붙잡혔다. 마침 몇 달 전부터 강남 일대에 불법 카지노바가 붐처럼 퍼지고 있다는 얘기가 떠돌던 터였다. 식품업으로 등록돼 있지만 술을 마시는 이들은 없고 사실상 하루에 수억원의 판돈이 도는 게임장이라고 했다.

    1진 선배(수습기자를 관리하는 선배)가 “불법 카지노바를 찾아서 실상을 취재해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오늘 안으로’라는 단서까지 붙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대체 어디서 불법 카지노바를 찾을 것인가. 또 찾았다 한들 직접 게임을 해보라는 지시를 받은 남자 수습기자들과 달리 20대 여자가 무슨 수로 그 안에 들어갈 것인가.

    ‘머리를 쓰자. 머리를 쓰자…’ 중얼거리며 허공을 올려다보길 몇 시간. 카지노바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면 분명 일손을 구하는 곳이 있을 듯했다.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 ‘카지노바, 아르바이트’란 검색어를 쳤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일주일 새 문을 연 곳도 여럿이고, 이미 영업을 하고 있는 카지노바 중 규모가 꽤 커 보이는 곳도 있었다.

    홀서빙 여직원을 구한다는 몇 곳에 전화를 돌렸다. ‘오후 8시부터 오전 6시까지 유니폼을 입고 음료수를 주거나 재떨이를 가는 일. 기본급은 외모에 따라 15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차이나지만 팁이 많아 한 달에 300만원 보장’. 기자가 이것저것 묻자 불안해서라 여겼는지 “일단 와봐라, 이상한 데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 곳과 약속을 했다.

    “면접 왔다”며 카지노바 잠입

    막상 면접을 보러 가려니 ‘몰골’이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차례만 집에 들어가는 게 허용되는 ‘하리꼬미(경찰서 붙박이 근무)’ 중이라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질끈 묶은 머리, 어디서 뒹굴어도 아깝지 않을 허름한 옷과 운동화 차림이었다. 30, 40대 고소득자를 타깃으로 은밀하고 고급스럽게 운영된다는 카지노바의 면접에 이 꼴이 웬 말이람.

    경찰서 기자실에 가져다둔 옷가지 중 그나마 가장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데 낮엔 공부하고 밤엔 학원비를 벌려 한다”는 가난한 고학생 코멘트도 연습했다. 1진 선배는 혹시 위험할 수도 있으니 들어가기 전 위치를 알리라고 일렀다.

    오후 9시 반, 젊음이 북적대는 강남역 일대 한 골목. 통화를 한 영업이사는 분명 ‘XX 카지노바’라고 했는데 건물 외벽엔 ‘OO 재즈바’란 간판이 걸려 있었다. 카지노바로 오르는 계단에도 재즈 가수와 악기 사진이 붙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체격 좋은 남자들이 “왜 왔느냐”며 가로막았다. 애써 태연한 척 “면접 왔다”고 하자 안 쪽 사람과 눈을 맞춘 뒤 들여보냈다.

    300㎡(90평) 정도 되는 기다란 내부는 어두침침하고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게임 테이블 6대 가운데 2대에는 각각 딜러와 함께 40대 중반인 남자 5, 6명이 한창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서빙하는 여직원이 유니폼 입고 게임 테이블을 오가며 커피를 날랐다.

    가장 깊숙이 마련된 바에 영업이사와 마주 앉았다. 그는 “아는 사람만 온다. 불을 꺼놓아도 다 알아서 들어온다. 지금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도 자주 오는 사람들”이라며 말을 꺼냈다. 게임 방식을 슬쩍 물었지만 “며칠만 일하면 돌아가는 방식을 알 수 있다”며 답을 피했다. 40여 분 동안 얘기를 나눈 뒤 그는 “일할 생각이 있으면 전화 달라”고 말했다.

    사회부 사건팀 여기자의 ‘나의 하루’

    사회부 사건팀 방송 기자들의 일상을 다룬 MBC드라마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아이템 회의’에서 모든 기삿거리의 생사가 결정된다.

    한 곳을 다녀오니 자심감이 생겼다. 연기력도 나쁘지 않았나 보다. 강남구 역삼동의 한 카지노바에서는 절절한 면접을 가장한 염탐을 마친 뒤 건물 밖으로 나서는데 남자 직원 하나가 따라 나왔다. “공부만 하고 곱게 자란 것 같은데, 왜 이런 험한 데서 일하려 하느냐. 순진한 사람 물들까 걱정된다”며 “원하면 건전한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명함을 건넸다.

    취재한 내용이 모아져 카지노바 잠입 르포 기사가 나가던 날, 1진 선배에게 불법 카지노바 단속 실적을 올리려 애쓰던 여러 경찰로부터 “그 업소가 어디냐?”는 문의가 빗발쳤다.

    언론사의 꽃 ‘사쓰마와리’

    각종 사회 현안을 다루는 사회부 사건팀은 ‘언론사의 꽃’이라 불린다. 사건팀 기자면 연차의 구애 없이 누구나 다양한 분야의 특종을 할 수 있다. 노숙인부터 재래시장 상인, 시민단체 간사, 고위 공무원, 대학 교수, 대학생, 퇴직한 노인까지 연령·직업·이념 등에서 각양각색인 사람을 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연차가 높은 기자는 대개 필요한 부분만 핵심적으로 물을 수 있는 전화 취재나 고위 인사를 상대로 한 이른바 ‘고공 취재’를 통해 효율적으로 기사를 써낸다. 반면 연차가 낮은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은 일단 찾아가 만나고 본다. 노동집약적 취재인 셈이다.

    하지만 물리적 노력을 기울이는 취재를 무시 못한다. 정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는 안 될 것 같던 취재도 얼굴을 맞대면 가능해질 때가 있다. 경찰 출입 기자를 칭하는 ‘사쓰마와리’에게 부지런함이 최고 미덕이란 말은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니다.

    지난해 6월 7일 몸무게를 40kg이나 빼 다이어트 성공사례로 TV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대전의 여고생 이모(16)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이른 아침부터 데스크(취재부서의 차장 또는 선임기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당장 대전으로 내려가 여고생 어머니를 만나라.” 앞뒤 다른 말도 없었다. 어머니를 통해 이양이 죽음에 이르게 된 사연을 낱낱이 기록해 오라는 지시일 터. 살인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소녀들에게 경각심을 주자는 의미였다.

    딸을 잃고 상심에 빠진 이양의 어머니가 기자를 만나주겠나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우선 어머니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이 시급했다. 이양이 다닌 고등학교를 먼저 찾았다. 교장은 사건이 더 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교문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을 일일이 붙잡아 세웠다. “(이양을) 잘 모른다”는 학생들을 수차례 보낸 뒤 이양과 친했다는 친구 한 명을 발견했다. 학교에서 입단속을 시켰지만 기자에게 손목이 붙잡힌 친구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하지만 가족보다 공유하는 게 더 많았을 친구를 통해 한 사춘기 소녀가 죽음을 택한 이유를 들으려던 시도는 실패였다. 이내 “선생님이 기자와 말하지 말랬잖아”라며 반대쪽 손목을 잡아끄는 다른 친구들에게 휩싸여 사라졌다. 절망적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관할 경찰서 형사과장을 찾았다. 이양의 주소를 아는 척 “거기 무슨 아파트더라” 하며 말을 이어갔다. 형사과장의 말 속에 아파트명이 나왔다. 이제 절반은 됐다. 몇 동 몇 호인지는 가서 찾으면 된다.

    주소를 알아낸 뒤에는 12시간 가까이 이양 어머니와 기자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굳게 닫힌 아파트 현관문에는 인기척이 없고, 수소문해 알아낸 일터(한 신문사 지국)에서는 집에 갔다고 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날은 이미 어둑해졌다.

    관둬야겠다. 남의 고통을 들쑤시는 행동을 하는 건 아닌지 회의도 밀려왔다. 자정을 넘은 시각, 데스크에게 도저히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데스크는 시큰둥하게 “어차피 지금 올라와도 잠밖에 더 자? 기대는 안 할 테니 내일 오전 회의 때까지 ‘되겠다’ ‘안 되겠다’ 보고만 해”라고 말했다. 공은 현장 기자에게 넘어왔다. 그게 가장 무섭다.

    일터에서 ‘뻗치기’를 하기로 했다.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한 직원이 차창을 두드리며 “아침이면 출근할 거다”라고 귀띔해줬다. 믿어보자.

    오전 10시경, 사무실 앞을 초조하게 서성이는 기자의 어깨를 누가 ‘툭’ 친다. 이양의 어머니가 와 있단다. 기적 같았다. 문자로 데스크에게 보고부터 했다. ‘오후에 기사 쓰겠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여기자의 ‘나의 하루’

    동아일보 사회부 사건팀의 팀장과 팀원들.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인 홍수영 기자다. 이들 ‘사쓰마와리’들은 언론사의 꽃으로 불린다.

    딸의 삼일장을 막 치른 어머니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기자를 맞았다. 그는 “사실은 어제 집에 있었다. (기자가) 가려니 했는데 내내 기다렸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양의 모습이 담긴 휴대전화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두 시간에 걸친 긴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상황이 늘 극적인 것은 아니다. ‘뻗치기’를 해봐야 만나고자 하는 사건 당사자의 그림자도 못 보고 돌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대면접촉의 효과를 알기에, 각종 신형 통신기기로 무장한 21세기 사건팀도 하루고 이틀이고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뻗치기’를 주요한 취재기법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수습들의 ‘1진놀이’

    지난해 3월 인터넷 포털 다음의 언론고시 카페에 올려진 ‘기자 : 수습 vs. 1진’이라는 제목의 글이 언론계에서 화제가 됐다.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끼리 피자를 주문한 일을 1진기자에게 보고하는 상황을 풍자한 ‘1진놀이’ 대화록이었다.

    1진 : 보고해

    수습 : 서울시 B구 C1동 C경찰서 내 기자실에서 수습 5명이 피자를 시켰습니다.

    1진 : 피자 어디 건데?

    수습 : M스터입니다.

    1진 : P자헛, D미노, P파존스 많은데 왜 하필 M스터야?

    수습 : 그건…잘 모르겠습니다.

    1진 : 잘 몰라? 잘 모르면 어쩔 건데? 내가 가서 취재하랴?

    수습 : 아닙니다. 제가 더 알아보겠습니다.

    (중략)

    1진 : 음료는?

    수습 : 음료는…없었던 것 같습니다.

    1진 : 없었던 거야, 없었던 거 같은 거야? 똑바로 말해.

    수습 : 없었습니다.

    1진 : 야, 넌 피자 먹을 때 피자만 꾸역꾸역 먹으면 목이 메겠냐, 안 메겠냐?

    수습 : 멥니다.

    1진 : 그런데 음료가 없어?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이거, 네가 취재한 거 아니지? 풀* 받았냐?

    수습 : 아닙니다. 제가 직접 챙겼습니다.

    (중략)

    1진 : 배달원 전화번호 땄어?

    수습 : 못 땄습니다….

    1진 : 너 취재하기 싫냐?

    수습 : 아닙니다.

    1진 : 취재하고 싶은 놈이 이렇게 성의 없이 하냐? 번호 따는 건 기본이잖아.

    수습 : 네….

    1진 : 안 되겠다. 너 당장 M스터 피자집으로 튀어가서 배달원하고 사장 번호 알아내.

    수습 : 네….

    1진 : 30분 내로 번호 따서 다시 보고해.

    (*pool, 기자단 대표가 취재해 내용을 알려주는 것)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수습에게 보고받을 때 기자의 통화내용을 적어뒀다면 저와 똑같으리. 취재의 ABC를 가르치는 과정인데 글로 남겨놓으니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부인하지 않겠다. 저렇게 기자로 컸고, 저렇게 기자로 키우고 있다.

    사회부 사건팀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수습기자 교육이다. 수습기자는 밤에도 퇴근하지 않고 경찰서 ‘마와리(취재구역을 돌아다니며 취재원을 만나는 일)’를 돈 뒤 오후 10시 반과 오전 2시, 오전 7시에 1진기자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보고의 형식은 ‘1진놀이’와 대강 비슷하다. 중간에 고성이 오가는 것은 기본. 더러 욕설을 퍼붓는 1진도 있다. 페널티라며 중·고교 시절에도 안 써봤을 반성문을 “손으로 써서 바로 튀어와” 하는 일도 잦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의 기자도 수습기자를 세 기수 받고 나니 윽박지르는 것도 수준급이 됐다.

    사회부 사건팀 여기자의 ‘나의 하루’

    MBC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 주인공인 3년차 기자 서우진 역할을 맡은 배우 손예진.

    “너 또 잤냐? 기자 하기 싫어? 너 그러려면 짐 싸서 집에 가.” 보통 출근 전인 오전 7시, 집에서 아침 보고를 받으며 수습기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댈 때면 가족들은 ‘쟤가 원래 저랬나’ 새삼스레 쳐다본다. 의아할 법도 하다.

    기자가 된 뒤 지인들이 달라졌다고 지적하는 두 가지가 있다. 사실 ‘성격이 나빠졌다’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하나는 변덕이 죽 끓듯 해졌다는 것이다. 추울 때도 더울 때도 요란 떠는 법이 없고, 외로워도 슬퍼도 늘 웃는 낯이라 ‘캔디’라 불렸다. 소싯적 얘기다. 이젠 반나절에도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부처도, 예수도 변한다

    기자들은 보통 10여 개에 이르는 타사 신문을 보고 ‘물먹은’ 기사가 없는지 점검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타지에 출입처의 단독 기사가 났으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취재원에게 “왜 그 기사가 OO일보에만 났느냐”고 언성을 높이며 팩트가 맞는지를 확인한다. 그 뒤엔 캡에게 죽기보다 더 싫은 ‘물먹었다’는 보고를 해야 한다.

    하루를 천국으로 마감할지 지옥으로 마감할지 판가름은 이제부터다. ‘반까이(만회)’할 만한 기삿거리를 찾아 온종일 분주하다. 물먹고 물먹이는 게 기자다. 기자가 된 뒤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기도 하다. 기삿거리를 찾았을 때의 그 희열이란…. 하지만 반대의 경우 ‘반까이’할 때까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다른 하나는 조급증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음식점에서 주문한 뒤 ‘언제 나오나’ 싶어 계속 주방 쪽을 돌아본다.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도 중언부언 길어지는 얘기를 못 참아 “야마(주제)가 뭔데?” 하고 재촉한다. 물론 누가 지적해야 눈치 챈다. 정도가 심해지면 스스로도 느낀다.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이 빨리 전화를 받지 않으면 속이 타들어간다.

    사회부는 초판 신문이 나온 이후에도 시시각각 진행되는 사건의 내용을 확인해 기사를 개고해야 하는 일이 잦다. 느긋했다가는 신문 지면에 ‘펑크’ 내기 십상이다. 또 느슨했다가는 그 다음날 신문에 ‘바로잡기’ 기사를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변명하자면, 제아무리 성인(聖人)이라도 변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환경이란 얘기다.

    포기 당한 평범함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꾼다. 특히 사회부 사건팀은 오전 2시에 퇴근하는 당번제 정기 야근이 아니더라도 기사를 마감한 뒤 보통 출입처에서 회사로 들어간다. 매일 오후 6시 반경이면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을 거슬러 ‘제2의 출근’을 하는 셈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자정을 넘겨 퇴근하는 일도 잦다. 아니 퇴근 시각이란 게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한 회사를 벗어나도 엄밀한 의미의 퇴근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고가 났을 때는 와인을 마시다가 다시 회사로 불려 들어갔다. 숭례문 화재 때도 여러 기자가 귀가한 뒤 집에서 튀어 나왔다.

    휴대전화는 24시간 울린다. 출근하기 전 이른 새벽일 수도 있고, 퇴근 뒤의 깊은 밤일 수도 있다. 휴일일 때도 있고, 휴가일 때도 있다. 영화관 혹은 화장실 안일 수도 있다.

    전화벨 소리를 못 들었다면 모를까 들은 이상 안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전화를 놓쳐서는 안 되는 수습기자 시절에는 샤워할 때도 기능성 비닐인 ‘지퍼락’에 휴대전화를 담아 옆에 끼고 있었다. 지금도 영화관에선 출입구 가까운 통로 자리에 앉는다. 휴대전화 전원을 꺼놓는 일은 비행기 안에 있을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없었다.

    20, 30대 젊은 남자보다 40, 50대 아저씨가 말이 더 잘 통한다. 취재원의 대다수가 40, 50대 남성이기 때문이다. 수습을 막 뗐을 때는 그들에게 무슨 말로 말문을 터야 하나 몰라 주뼛주뼛하며 애먼 날씨 이야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새 친한 경찰관이 밸런타인데이나 생일을 가장 먼저 챙겨주게 됐다. 40, 50대 교수가 “한잔 받으세요” 하고 따라주는 술도 더는 어색하지 않다. 늦은 밤 젊은 여기자가 그 또래 딸을 둔 50대 가장의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다가 거실을 점령하고 장시간 밀담을 나눠도 그들 또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평범함은 기자가 된 순간부터 포기했거나 포기 당했다. 퇴근 뒤 친구와 느긋이 차나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또래 여성 직장인이나, 행여 싱글로 남더라도 일요일에 브런치나 스파를 즐기는 ‘골드미스’는 평생 불가능할 것 같다.

    4년차 사회부 여기자. 다른 길을 걸어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스스로 늦었다고 되뇌며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을 보면, 평범한 인생 따위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가 보다. 지금 듣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경험하는 세상의 폭. 기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현재가 더없이 소중하다.

    그래서 오늘도 거울을 보며 주문을 건다. 세상아, 부딪쳐라 내가 가마.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자부심과 ‘진실을 찾는 펜’이 되겠다는 열정이 있는데 뭔들 못 견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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