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호

김용기의 살맛나는 경제

소득주도 성장의 혁신친화성에 대하여

  • 입력2017-11-12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가열되는 ‘소득주도 성장’ 논란

    • 혁신은 첨단기술? 구조와 제도의 변혁!

    • 생산성 증대 관련 4차 산업혁명 효과 없을 수도

    • 文 정부의 ‘혁신 성장’, 내용 가다듬을 때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요컨대 소득주도 성장론만으로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으로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비판의 요지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분배정책에 불과하다’ ‘(잘 봐줘도) 총수요 확대를 통한 성장이라는 점에서 반쪽짜리 성장정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총공급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는 혁신주도 성장론에 의해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경제 패러다임은 ‘4륜 구동 성장정책’이다. △소득주도 △일자리 중심 △혁신 성장 △동반 성장이 그것이다. 소득주도와 일자리 중심에 방점이 찍혀 있긴 하지만 혁신성장 또한 4개 축 중 하나로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다.

    왜 여전히 목마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론자들이 혁신주도 성장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는데 이는 경제의 장기적 성장은 오직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득주도 성장론은 혁신과는 무관한 단기적 부양정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혁신주도 성장론이 소득주도 성장론과 동급의 중요성을 갖든지, 아예 소득주도 성장론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판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소득주도 성장론은 혁신과는 무관한, 그저 총수요만을 단기적으로 진작하고자 하는 단기 처방인가? 혁신주도 성장정책의 주요 내용이 일부에서 희망하는 것처럼 규제 완화와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 그리고 노동유연성을 포함한 기업 활동 자유의 확대라면, 왜 우리 사회는 지난 20년간 바로 그러한 혁신주도 성장을 추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혁신성장에 목말라하는가? 이유가 궁금하다.

    성장은 생산요소(자본과 노동) 투입량의 확대와 생산성 증가로 이뤄진다. 생산요소를 동일하게 투입하더라도 생산성의 차이에 따라 산출량이 달라진다. 주지하다시피 혁신은 생산성을 증대시킨다. 



    정혁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2016년 말 연구에 따르면 한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율은 빠르게 저하되고 있다. 2010~2014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실질증가율은 연평균 2.5%였다. 이 중 생산성 향상이 GDP 실질증가에 기여한 정도는 20%에 해당하는 0.5%포인트였다. 이전 10년(2000~2010)의 기여도가 55%(2.2%포인트)였던 것과 비교하면 급락했다고 할 수 있다(위의 표 참조). 

    생산성 하락의 빈자리는 5060세대의 고단함으로 채워졌다. 50,60대 인구는 이미 상당수가 주된 노동시장에서 물러났지만, 은퇴 이후의 안락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저임금, 단기적 고용, 열악한 근로조건, 불합리한 노무관계로 특징되는 2차 노동시장에 진입해야 했다. 그 결과는 경제활동참가율이 연평균 0.8%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GDP 증가에 대한 기여도가 생산성 증가보다 높다.

    포드의 ‘모델T’가 보여준 것

    1914년 출시된 미국 포드사의 ‘모델T’는 노동자 처우를 개선함으로써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하는 데 성공한 대표 사례다.[뉴시스]

    1914년 출시된 미국 포드사의 ‘모델T’는 노동자 처우를 개선함으로써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하는 데 성공한 대표 사례다.[뉴시스]

    한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는 혁신을 통한 생산성 증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혁신주도 성장론을 추진한다고 해서 혁신이 당연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미 노스웨스턴대학 로버트 고든 교수에 따르면 생산성 증가는 현란한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명 중 하나로 기록되는 자동차용 엔진을 교통수단으로 쓸 만한 수준으로 발전시킨 인물은 1879년 말 독일 사람 카를 벤츠였다. 이렇게 자동차는 유럽에서 태어났지만, 막상 자동차를 국가 생산성 확대의 밑천으로 만든 사람은 미국의 헨리 포드였다. 이동식 조립 라인을 활용한 대량생산 시스템의 구축은 마침내 자동차 가격을 끌어내렸다. 이전까지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는 헨리 포드에 의해 대중화될 수 있었다. 포드는 대량생산 시스템 구축 이외에도 그때까지 전혀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혁신을 실행함으로써 그 유명한 ‘모델T’의 가격을 하락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임금의 대폭 인상과 노동시간의 단축이었다. 

    모델T가 도입된 1914년 1월 포드는 직원들의 노동시간을 하루 9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했다. 노동자의 하루 최저임금은 기존 2.35달러에서 5달러로 두 배 이상 올렸다. 이후 공장의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높은 임금은 노동자의 이직률을 낮췄고, 숙련된 노동자를 포드 공장으로 불러들였다. 포드야말로 ‘소득주도 성장론’의 시조였다. 

    모델T는 1914년 미국 신차 판매량의 46%를 차지했고, 이후 거의 55%까지 늘어났다(1923). 1923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180만 대가 생산되고 팔렸다. 1914년 950달러이던 차 가격은 269달러까지 하락했다. 

    자동차가 대중화됨으로써 도시는 상호 연결되었다. 시골은 더 이상 고립되지 않았고, 자동차 구매를 돕는 목적에서 소비자 금융이란 새로운 금융상품이 등장했다. 고속도로가 건설됐고, 교외에 주거지역이 형성됐다. 도시 외곽에 대형 쇼핑센터가 등장한 것도 자동차 대중화가 가져온 결과다. 

    1차 산업혁명 또한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기술혁신에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이란 뒷받침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기계 및 생산기술의 발전과 운용, 공장제도의 보급과 그것을 기축으로 한 자본-임노동 관계의 확산이 더해짐으로써 일어난 변화를 우리는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단독으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킨 혁신적 기술은 생각과는 달리 현란하지 않고 평범한 양상을 띨 수 있다. 올 상반기(2017년 1~7월 기준) 중국,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교역 규모 5위를 차지한 나라는 유럽의 소국 네덜란드다. 중국 CCTV가 제작한 ‘대국굴기’ 중 네덜란드 편을 보자. 17세기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네덜란드 경쟁력의 기원은 14세기에 있었던, 획기적이지만 평범한 혁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네덜란드 인구는 1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중 20만 명이 어부였고 청어잡이로 생계를 꾸려갔다. 청어 어장을 놓고 스코틀랜드와 세 차례 전쟁까지 벌인 네덜란드는 1358년 어부 빌렘 벤켈소어(Willem Beukelszoon)가 창안한 ‘위대한 혁신’ 덕에 유럽의 청어 판매시장을 석권하게 된다. 벤켈소어가 작은 칼로 갓 잡은 청어의 내장과 머리를 한번에 갈라내고 이를 소금물에 절여 통에 보관하는 통절임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선상에서 염장 처리된 청어는 1년간 보관이 가능했다. 냉장고가 없던 당시로선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15세기 네덜란드는 갑판이 좁고 배의 중앙 양쪽이 볼록하며 아래가 움푹 파인 화물운송선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갑판의 크기에 따라 부과되는 항해세를 절감하는 한편 더 많은 화물을 실어 최저 수송비를 실현할 수 있었다. 

    혁신은 제도적 변화를 통해 구현되기도 한다. 돈을 번 네덜란드 상인들은 도시의 관리자이자 자신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던 귀족에게서 도시 자치권을 사들였다. 시민자치권의 확보다. 세금이 없어진 도시에서 네덜란드의 상업은 더욱 번성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11일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참석에 앞서 인기 캐릭터 뽀로로를 모델로 만든 인공지능 로봇 ‘뽀로롯’과 대화하고 있다.[동아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10월11일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참석에 앞서 인기 캐릭터 뽀로로를 모델로 만든 인공지능 로봇 ‘뽀로롯’과 대화하고 있다.[동아일보]

    한국 R&D 예산, 미국 꺾었지만…

    이제 다시 소득주도 및 혁신주도 성장론으로 돌아가보자. 국제노동기구(ILO)의 2012년 연구 ‘최저임금과 노동생산성’에 의하면 최저임금은 임금격차를 줄일 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이득을 임금 상승으로 이전시키고, 결국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기업은 노동자가 더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하고, 노동자는 고용주와 오래 함께 일하면서 상호 생산성 증진을 위한 훈련에 몰입하게 된다. 경제 전체로 보면 최저임금은 생산성 있는 기업이 생산성이 덜한 기업을 대체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전체 경제의 생산성이 증가한다. 근로시간의 단축과 일·가정 양립 또한 노동생산성 증가를 가져온다. 

    혁신적이지 않을 소득주도 성장론이 이렇게 혁신친화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작 혁신주도 성장론은 정말 성장친화적인가? 한국의 GDP 대비 R&D 지출은 세계 최고수준이다(그림 참조). 200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 이래 국가 R&D 예산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의 GDP 대비 R&D 지출 비중은 미국과 일본을 꺾고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어떤 통계를 보더라도 R&D 자금 지출이 생산성 증가를 가져왔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 IMF의 2017년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총요소생산성(TFP)은 1996년 조사 이래 2000년, 2012년, 2014년 조사에서 일관되게 미국의 TFP 대비 60%선에 정체돼 있다. R&D 투자를 통한 혁신주도 성장정책의 효율성이 매우 낮았던 게 그간의 경험인 셈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참여혁신수석을 지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주현 의원(국민의당)은 추석 연휴 직전 자신의 블로그에 현 정부 정책 비판론자들이 제기하는 혁신주도 성장론은 그저 정부의 재분배를 반대하기 위한 방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금 야당들, 특히 보수·중도 야당들과 기획재정부는 혁신주도성장을 위한 시스템 혁신의 그 어떤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막연히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소득 재분배를 반대하고 소득 역진적인 예산 집행을 지속하고자 하는 행태를 중단하십시오. 기재부는 예산을 통한 양극화 해소 효과를 OECD 꼴찌 수준에서 탈출해 최소한 보수국가라는 미국이나 일본 수준에 도달할 구체적이고 계량적인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십시오.” 

    - 국회의원 박주현 블로그 중 9월29일자 <정책산책>에서 발췌 

    그렇다면 생산성 증가가 이렇게 둔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매킨지글로벌연구소는 지난 3월 ‘생산성 퍼즐: 미국에 대한 밀착 관찰’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각국에서 생산성 향상 추세가 둔화되고 있는 원인을 다음의 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해 설명한다. 

    첫째, 생산성 향상이 측정되지 않기 때문. 모바일 GPS(지구위치측정체계), 구글, 클라우드, 다양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은 생산성을 향상시키지만 무상 서비스라는 점에서 GDP의 증가로 측정되지 않는다. 둘째,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꺼려 총수요가 위축됨에 따라 기업은 낮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 총수요가 위축되는 원인은 소득 불평등과 인구구조의 고령화에 있다. 셋째, 의학과 약학의 진보, 소형 로봇과 3D 프린팅의 발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전, 그리고 무인자동차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전은 기대만큼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지 않는다(기술비관론자의 시각). 혹은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해석도 있다(소로 역설론자). 

    소로의 역설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소로 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가 1987년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음을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생산성 관련 통계에서 이를 확인할 순 없다”라고 말한 데서 기인한다. 실제 IT에서 기인한 생산성 향상은 소로의 발언이 있은 지 10년쯤 지난 1995년부터 2004년까지 향후 10년에 걸쳐 나타났다.

    “소득주도가 곧 혁신성장”

    생산성 향상이 지체되는 이유에 대한 이상의 설명을 보면 소득주도 성장론을 비판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총수요와 총공급을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는 없다. 또 이미 도래한 것처럼 여겨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한다고 해도 당분간 생산성이 주목할 만한 수준으로 향상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에 비해 소득주도 성장론에 근거한 생산성 향상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확실하게 기대할 수 있다. 

    로버트 고든 교수는 특히 미국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인으로 소득분배의 불평등과 교육 수준 저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정부의 부채 증가 등을 꼽는다. 이를 한국의 경우로 생각해보자. 한국의 재정이 아직 건전하고 교육 또한 높은 수준에 있다는 점에서 두 번째(교육수준 저하), 네 번째(정부부채 증가) 장애요인은 배제된다. 첫 번째 장애요인(소득 불평등)은 소득주도 성장론의 충실한 관철을 통해 극복 가능하다. 세 번째 장애요인(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노동공급량 위축) 또한 임대주택 공급과 청년 지원 확대, 공공부문의 선도적 일자리 제공 등을 통해 최대한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혁신과 무관하기 때문에 혁신주도 성장이 소득주도 성장과 함께 새 정부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쌍두마차를 구성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소득주도 성장론을 대체해야 한다는 시각은 혁신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담긴 상당한 정책은 그 자체가 효과적인 혁신성장 정책이다. 현시점에서 필요하고 급한 것은 소득주도 성장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내용을 갖추지 못한 혁신성장 정책이 진정으로 혁신을 유도하고 한국 경제의 생산성 향상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감시하고 함께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김용기


    ● 1960년 강원 거진 출생
    ● 영국 런던정경대(LSE) 석사(경제학), 동 대학원 박사(국제정치경제학·금융)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 現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 저서 :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금융위기 이후를 논하다’ 등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