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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공공의 적’인가 ‘천리안 전략가’인가

‘NLL 南南전쟁’ 태풍의 눈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공공의 적’인가 ‘천리안 전략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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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1급 간부들은 계급과 근속 등 여러 가지 정년에 걸려 60세를 넘기기 어렵다. 원세훈 전 원장은 올해 62세(1951년생)니 두어 살 많은 나이로 국정원 간부들을 이끌었다. 그의 통제는 찬바람이 일었다고 한다. 남 원장은 1944년생으로 69세다. 고참 1급보다도 열 살 이상 많으니 직원들은 그에게 기꺼이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해박한 지식, 나이에 비해 젊은 기력이 그의 리더십을 이루는 3박자라는 것이다.

남 원장은 언론과의 접촉을 꺼린다. 국정원 간부들은 대(對)언론 관계를 위해 그에게 언론사 대표를 만나라고 조언하지만 따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도 남재준식 자기관리로 본다. 그는 군에 있을 때도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기자를 만나지 않았다.

그는 서울 배재고를 나왔다. 기자는 그가 육군참모총장에서 퇴임했을 때 비교적 오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배재 출신임을 자랑했다. 실력이 모자라 경기고, 경복고 같은 공립고를 응시하지 않은 게 아니라 “배재고가 대일 항쟁기에 민족자주성을 유지한 유일한 사립학교라서 갔다”고 했다. 그는 가슴을 펴고 걷는다. 고개는 숙이지 않는다. 특이해 보여서 “그렇게 걸으면 발을 헛디딜 수 있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물웅덩이에도 빠지고 지하철 공사판의 복공판에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의 선택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12·12, 광주 군 개입 비판

남 원장은 정치적인 의도 없이 회의록을 공개했다고 하지만 야당은 물론 일부 대학생과 교수들도 정치개입이라고 비난한다. 그는 어떤 정치관을 갖고 있을까.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전두환 보안사령관 세력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는 12·12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는 소령 계급의 육군대학 교관이었다(전사나 전술, 전략에 밝은 소령은 육군대학 교관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 총장을 체포할 때 보안사 세력은 정 총장 측근인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체포하려다 이를 막고 나선 김오랑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을 쏴 숨지게 했다. 김오랑 소령과 남재준은 육사 동기(25기)였다.

육군대학 강의를 하던 남재준 소령은 신군부의 등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군의 광주민주화운동 진압도 비판했다. 이 얘기가 보안사의 귀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진급에서 매번 탈락했다.

자격을 갖춘 장교에겐 세 번 진급 기회가 주어진다. 첫해에는 잘나가는 소수만 진급하는데 이들이 선두주자다. 이듬해 가장 많은 수가 진급하고(2차 진급), 3년차 때 소수가 진급한다(3차 진급). 3차에서 진급하지 못하면 그 후 매년 진급대상자로 올라가도 후배들에게 진급 기회가 돌아가기에, 경쟁률만 올리는 허수(虛數) 노릇을 하다 계급정년으로 전역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군에서는 4차 이상의 진급은 거의 없는데, 남 소령은 기적같이 4차를 넘기고도 진급했다.

‘공공의 적’인가 ‘천리안 전략가’인가

장군 진급 문제로 노무현 정부와 갈등을 겪은 후 2004년 11월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남재준 당시 육군총장.

동해안을 지키는 모 사단에서 한 병사가 수류탄을 던져 동료를 폭사시켰다. 이 때문에 아무도 이 사고 대대를 맡으려 하지 않자, 사단장이 불우한 처지에 있던 남재준을 진급시키려는 마음에 그를 대대장에 앉혔다. 그렇게 중령이 됐지만 한참 뒤처져 있었기에 그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런데도 육사 출신이라 3차로 대령 진급을 할 수 있었다. 그 무렵 군에서는 하나회에 대한 말이 많았다. 그는 군인이 사조직을 갖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지만 곧 전역할 사람으로 간주됐기에 누구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예비군 부대의 연대장 등을 전전했다.

1993년 김영삼(YS) 정부가 출범하며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YS 정부는 김진영 육군총장 경질을 시작으로 하나회를 날렸다. 그러고는 비(非)하나회 장교들을 찾았는데 그가 꼽힌 것이다. 더욱이 그에게는 똑똑하다는 평가가 따라붙었기에 이후 내리 1차로 별을 달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엔 육군총장에 지명됐다.

총장 시켜준 盧 정권과 불화

군인에게 전쟁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진급이다. ‘마누라를 인사권자 집에 무료 파출부로 보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급에 목을 맨다. 진급 인사 후에는 누가 누구를 밀어줬네 하는 말들이 나돈다. 기무사나 헌병대엔 투서가 쏟아진다.

그는 진급 문제로 누구보다도 많은 고생을 해봤기에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인사참모부장을 임명했다. “총장인 나도 누구를 진급시키라는 지시를 하지 않을 테니 누구의 부탁도 받지 말고 진급자를 선발하라”고 지시했다.

그가 총장을 하던 2004년 노무현 정부는 북한과 심리전을 중단하고 서해 NLL에서 남북한 함정이 교신한다는 합의를 했다. 그러나 그해 7월 북한 함정이 합의대로 교신하지 않고 NLL을 넘어와 교전이 벌어졌다. 당시 그는 NLL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인식을 주의 깊게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군 검찰을 독립시켜 군 검찰이 지휘관을 내사 및 수사할 수 있게 하자는 군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남재준 총장은 이를 군을 정권에 예속시키고 군권을 약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에 강하게 반대했다. 자신의 임명권자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해 가을 원칙대로 심사를 해서 준장 진급자를 확정했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국방부장관실을 통해 몇몇 사람을 바꾸라고 지시했다. 한밤중에 국방부 차관보가 헬기를 타고 계룡대로 내려와 그 뜻을 전했다. 그러나 남 총장은 진급 심사에 잘못이 없다면 바꿀 수 없다고 맞섰다. 안보에 대한 인식 차이와 군 사법개혁 문제 등으로 불편한 관계이던 청와대와 남 총장이 정면 충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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