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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과 조선

치유와 소통의 수단 그러나 탐닉하지 않다

이순신의 음주가무

  • 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goldagebook@naver.com

치유와 소통의 수단 그러나 탐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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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1596년 5월 5일 일기는 리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을 마셨지만, 7년에 걸친 전란 중의 일기 가운데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이 발견되는 건 다음 사례가 전부다.

1594년 7월 25일. 우수사에게 가서 활 10순을 쏘았다. 아주 많이 취해 되돌아왔다. 밤새 토했다.

1594년 9월 13일. 맑고 따뜻했다. 잠을 잤어도 술이 깨지 않았다. 술기운이 남아 있어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1596년 3월 5일. 아주 많이 취해 돌아오다가 이정충의 장막에서 조용히 논의하고 이야기했다. 취해서 나도 모르게 넘어졌다. 비가 크게 내렸다. 먼저 배로 내려갔다. 우수사는 취해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

1596년 3월 9일. 아침에 우(右)우후와 강진 현감이 보고하고 돌아갔다. 술을 권했더니, 곤드레만드레 취했다. 우후는 취해 넘어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가 왔다. 이별주를 마시고 보냈다. 취해서 대청에 쓰러져 잤다.



술에 취해 토하고 넘어지고 쓰러져 잔 이순신의 모습이다. 그가 거짓으로 일기를 썼다면 이와 같은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이 기록들은 거꾸로 그가 평상시에 얼마나 절도 있게 자제하며 술을 마셨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증거는 또 있다. 이순신이 무절제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비판한 일기다.

“놀랄 일이다, 놀랄 일이다”

1593년 2월 14일. 아침을 먹은 뒤 삼도(三道)의 군사들을 모아놓고 약속할 때, 영남 수사(원균)는 병에 걸려 참석하지 못했다. 홀로 전라 좌·우도의 여러 장수들과 모여 약속했다. 그러나 우후(虞侯)가 술을 마시고 헛된 말을 했다. 그 기막힌 모양을 어찌 다 말하랴. 어란포 만호 정담수와 남도포 강응표도 똑같다. 지금은 큰 적을 무찌르기 위해 약속하는 때이다. 어지럽게 마신 것이 이 정도이니, 그들의 사람됨은 더 말할 필요도 없구나. 원통하고 분한 것을 이길 수 없었다.

1593년 8월 26일. 원공(元公, 원균)은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조금 권했더니 곤드레만드레 취해 잘못된 행동을 했다. 말도 사납고 도리에 어긋났다. 놀랄 일이다, 놀랄 일이다.

수신(修身)하는 이순신은 여느 무인과 술자리가 달랐다. 그의 술자리는 휘황찬란하지 않다. 양반들의 술자리엔 기생이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무과 급제 후 함경도에서 근무한 박취문(朴就文·1617~1690)은 1646년 1월 1일 일기에 “망궐례를 한 뒤 좌기했다. 여러 관료들이 예를 올리고 행영의 노비들을 점검한 뒤에 한 무리는 기생들과 편을 나눠 쌍륙을 놀았다. 한 무리는 비장들과 편을 나눠 활쏘기를 했고, 다른 한 무리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고 군대 잔치 광경을 기록했다.

그의 아버지 박계숙도 함경도에서 근무할 때인 1606년 4월 23일 잔치를 할 때 주탕(酒湯, 하층 신분으로 기생 노릇을 했음) 4~5명이 노래를 부르며 함께 술을 마시고 춤도 췄다고 기록했다. 무인들만 기생과 어울려 놀았던 것은 아니다.

성리학자 조식(曺植·1501~1572)도 1558년 4월 지리산을 유람할 때 시중 드는 기생 10여 명과 동행했다고 했다. 관료 유희춘(柳希春· 1513∼1577)도 1571년 5월 12일 진남루에서 실록 봉안사 박순을 만났을 때 기생과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도 불렀다.

그런데 ‘난중일기’에는 술자리의 기생이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은 단 한 번밖에 없다.

1592년 2월 19일. 맑았다. 순행을 떠나 백야곶의 감목관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순천 부사(권준)가 그의 동생을 데리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생도 왔다. 비가 내린 뒤 산에는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해질 무렵 이목구미에 도착했다.

女色을 경계하다

이순신이 순시할 때 순천 부사가 기생을 데리고 왔고, 이순신은 봄 경치를 잠시 구경하고 다시 길을 떠났을 뿐이다. 1596년 9월 11일 일기에 나오는 인물인 세산월(歲山月)도 기생으로 볼 수 있지만, 일기의 내용을 보면 그 술자리는 무미건조하다. 이순신에겐 기생과의 술자리보다 봄날의 아름다움이 더 뜻 깊은 날이었다. 이순신이 여자를 대하는 자세도 술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1593년 5월 30일. 남해 현령 기효근의 배가 내 배 곁에 정박했다. 그런데 그 배 안에 어린 아가씨를 태워놓고는 사람들이 알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우스운 일이다. 나라가 이처럼 위급한 때에 미녀(美女)를 태워놓고 있다니. 그 마음 씀씀이가 제멋대로이고 엉망이다. 그러나 그의 대장(大將)인 원 수사 또한 같으니 어찌하랴, 어찌하랴.

전쟁 시기에 가장 중요한 무기인 전선(戰船)에 미녀를 태우고 다니는 행태를 비판한 일기다. ‘난중일기’에는 전선에 탄 음란한 여자들을 처벌한 기록도 나온다.

1594년 7월 3일. 음란한 여자를 처벌했다.

1595년 6월 24일. 우도(右道)의 각 고을과 포 소속 전선의 부정을 조사했다. 음란한 여자 12명을 붙잡았고, 그 부대의 대장(隊長, 종8품)까지 죄를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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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goldageb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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