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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파국적 한일관계

한일 통상 갈등 손익계산표

韓 “핵심부품 수입 막히면 산업 마비” 日 “기술협약, 합작투자 보류 움직임”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한일 통상 갈등 손익계산표

  • ●대법원 옛 신일철주금 배상 판결 후 한일관계 경색
    ●한국산 100여 개 품목 관세 인상?
    ●‘단교’ 현실화되면 핵심소재·부품 공급 체인 끊겨 韓 산업 마비
    ●국내 반도체 기업, 불화수소 대체 수입국 물색 중
    ●변속기 내부 장치 등 자동차 핵심부품 수급 차질 우려
    ●비관세 장벽 높은 일본, 아쉬운 쪽은 늘 우리
한일 통상 갈등 손익계산표
한일관계가 심상치 않다. 한일관계가 갈등으로 치달으면서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재계 간 협력도 연기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등 급속히 경색되고 있다. 갈등은 지난해 10월 30일 우리나라 대법원이 옛 신일철주금에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올 초 피해자들은 이 회사를 상대로 강제집행절차를 시작했다. 

대법원 판결 직후 일본의 3대 경제단체(게이단렌, 일본상공회의소, 경제동우회)와 한일경제협회는 공동으로 성명을 내고 한국을 비판했다. 평소 양국 간 정치·외교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해온 관례를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내 양국 경제 교류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양국 상공회의소 간 회의가 연기됐고, 오는 5월 서울에서 개최 예정이던 ‘제51회 한일경제인회의’도 갑작스레 무산됐다. 

과거에는 위안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가 불거져도 양국 재계에선 “민간 차원의 협력은 지속돼야 한다”며 갈등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본 ‘지지통신’이 자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은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이뤄질 경우 보복 관세, 일부 일본 제품 공급 정지, 비자 발급 제한, 한국으로의 송금 중지 등 한국을 상대로 한 보복 조처 목록 100여 개를 이미 작성해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4월 12일 한국의 일본 후쿠시마(福島)산 수산물 금수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승소 판정도 한일 갈등의 증폭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패소로 수세에 몰린 아베 총리가 자국의 비판 여론을 ‘한국 때리기’로 돌릴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다.


핵심부품·원자재, 일본 수입의존도 여전히 높아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 네트워크가 4월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일본산 수산물 WTO 분쟁 승소와 관련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 네트워크가 4월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일본산 수산물 WTO 분쟁 승소와 관련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신동아 ‘5월호’ 인터뷰에서 일본의 보복 가능성을 점쳤다. 그는 “신일철주금 등에 대한 자산 압류 및 매각이 일어날 경우 일본이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한 상황에서 1965년 청구권 협정까지 무력화해버리면 한일관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한일관계가 ‘단교’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그렇게까지 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불과 얼마 전 중국으로부터 당한 ‘사드 보복’을 생각하면 이번 일로 우리 경제가 또 한 번 휘청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심지어 일본의 ‘보복 조치’는 우리 경제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수입품 대부분이 소비재가 아닌 산업재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현재 일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핵심기술과 부품, 소재 등의 공급이 끊기면 이는 곧장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과거에 비해 산업별로 국내 자급력이 커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본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일본의 보복조치로 인한 타격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반도체 산업이다. 심순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반도체 소재, 제조 장비 등의 밸류체인이 단절되면 국내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철강, 정밀화학원료, 자동차부품 등 핵심 원자재 수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지난해 한일 간 교역액은 851억3000만 달러(96조7900억 원)로, 수출은 305억2900만 달러(34조7100억 원), 수입은 546억400만 달러(62조847억 원)다. 수출에 비해 수입이 월등히 많다. 일본산 수입품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은 반도체소재. 그 뒤를 이어 반도체 제조용 장비 및 부품이 2위에 올라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일본으로부터 핵심 원료 및 장비 관련 부품을 공급받고 있다. [동아DB]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일본으로부터 핵심 원료 및 장비 관련 부품을 공급받고 있다. [동아DB]

반도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수출 1위 품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공급 차단은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 일본 자민당 내에서는 벌써부터 “불화수소 한국 수출을 금지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불화수소(불산 플루오린화수소)는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물질 중 하나로 세정 작업에 주로 쓰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불화수소 수입의 90%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유럽에서 수입하면 물류비 증가해 손해

만약 일본 수입이 막히면 중국으로 수입처를 바꾸면 된다. 하지만, 제품의 질을 보증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심 선임연구원은 “불산으로 녹이려면 순도가 높아야 하는데, 현재 일본산 불화수소의 품질이 가장 좋은 걸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다른 수입처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용 반도체도 일본에서 주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기업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는 전 세계 자동차 반도체 시장점유율이 40%에 달한다. 자율주행차나 전기차, 하이브리드 등에 사용되는 엔진전자제어와 배터리 전압에 특화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심 선임연구원은 “차량용 반도체는 실외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도록 내구성이 좋아야 하는데, 일본 수입이 중단되면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제조장비 및 부품도 일본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다. 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일본(32.9%), 미국(25.7%), 네덜란드(25.9%)에서 반도체 제조 장비 관련 부품을 들여온다. 만약 일본 수입이 중단되면 미국, 네덜란드 쪽 수입량을 늘리면 되긴 하지만 그럴 경우 물류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곧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완제품이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제조장비 매출액 1위는 2년 연속 한국이다. 하지만 전년 대비 매출액이 가장 많이 줄어든 나라도 우리나라다. 반면 중국은 반도체 굴기로 1년 새 매출이 무려 59% 늘었다. 일본도 46%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반도체 제조장비의 핵심 부품들마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제조에 큰 손실을 입힐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주로 거래하는 일본 반도체 제조업체로는 도쿄일렉트론, 캐논 등이 있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미·중·일의 견제가 심하고 글로벌 경기도 악화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제조의 핵심 소재 및 장비의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우리나라 경제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자국 눈치 보느라 한국 투자 망설이는 일본 기업

포스코 포항제철소. 신소재 및 고부가가치 철강은 주로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박해윤 기자]

포스코 포항제철소. 신소재 및 고부가가치 철강은 주로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박해윤 기자]

플라스틱 및 정밀화학원료도 일본 수입품목의 상위권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는 국내 생산이 가능한 품목으로, 일본과의 교역은 물량수급 조절 내지 공급선 안정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설령 교역이 끊긴다 하더라도 제품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존재한다. 일본의 기술협력과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고부가가치 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올 초부터 일본 기업 측의 투자가 주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석유화학은 우리나라의 대일본 수출품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으로 전체 수출액의 17%(52억 원)를 차지한다. 일본과 긴밀한 공조가 이뤄지는 분야라 할 수 있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장은 “석유화학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산업으로 일본과의 자본협력과 기술교류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경쟁이 치열한 범용제품 대신 특수 기술을 요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데, 최근 들어 이들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의 대주주이거나 협력 관계에 있는 일본 기업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려온다”고 밝혔다. 일본 기업이 자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 기업에 섣불리 투자하거나 기술교류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얘기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 3대 수출품 중 하나인 화학제품 분야의 경쟁력이 떨어져 국내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소재 고부가가치 제품일수록 우리가 손해

야마자키 가즈유키 일본 외무성 경제담당 외무심의관, 왕셔우원 중국 상무부 부부장,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왼쪽부터)이 지난해 12월 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야마자키 가즈유키 일본 외무성 경제담당 외무심의관, 왕셔우원 중국 상무부 부부장,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왼쪽부터)이 지난해 12월 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4차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공식 협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철강판도 일본 수입금액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한다. 포스코 등 국내 기업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고품질 철강의 경우 일본에서 수입해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플라스틱·화학제품과 마찬가지로 철강판도 신소재 고부가가치 제품의 경우 일본산 제품이 많이 쓰인다. 

자동차 부품은 수입금액(1조340억 원)으로 보면 그리 크진 않지만 일본에서 들여오는 제품들이 대부분 핵심소재라는 점에서 수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자동차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 한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은 한 개의 단위 부품을 만들기 위해 수십, 수백 가지의 부품이 필요하다. 특히 변속기나 전동파워스티어링 제조에 일본산 핵심 부품이 많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동차 부품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든 상황에 수급마저 어려워지면 중소·영세업체들은 더욱 힘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일본이 도요타, 혼다, 닛산차 등 일본산 차량을 연간 수만 대씩 한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자동차 부품에 대해 섣불리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러 산업군에서 일본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 국가별 교류에 있어 일방적인 손해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장기적인 투자나 계약 관계를 생각하면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 대처 방안을 마련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일본은 우리나라를 상대로 ‘관세 인상’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섣불리 꺼낼 무기는 아니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특정 품목에 대해 관세를 높일 경우 우리도 보복 관세로 맞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병태 KAIST(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일본이 우리한테 수출하는 게 많은 상황에서 관세 얘기는 쉽게 꺼낼 수 없을 거다. 일본이 관세를 높이면 우리도 높이지 않겠나. 한일관계는 매우 타이트하게 엮여 있기 때문에 일부 특정 제품 수출을 금지할 수는 있어도 ‘관세 전쟁’까지는 일으키지 않을 걸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 역시 “관세 인상 조처는 설득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은 관세가 낮은 대신 비관세 장벽이 높은 나라로 관세를 올려 우리나라에 치명타를 안길 만한 품목이 많지 않다는 것. 엄 국제협력실장은 “만약 우리를 괴롭힐 거라면 농산물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05년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무산된 이유가 일본이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현 상태에서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올려도 일본에는 손해일 게 없으니 한국 농가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비관세 장벽의 일종으로 방역 등의 이유를 들어 채소, 과일, 육류 등의 수입금지 및 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관세보다 무서운 비관세 장벽

일본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도 취해질 가능성이 있다. 비자 발급 제한이 그중 하나다. 현재 우리나라는 비자 없이 일본 여행은 가능하나, 90일 이상 현지에 체류하려면 장기체재용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또한 한국 기업에 대한 인·허가를 불허하는 방식으로 길들이기에 나설 공산이 크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 속내를 절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전면적인 ‘충돌’은 없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내상이 큰 쪽은 우리”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일본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010년 중국과 일본이 동중국해 일부 섬들에 대해 영유권 분쟁을 벌일 당시, 중국은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수요의 95%를 공급하고 있고 이 중 절반을 일본이 수입하는 구조였는데, 이후 중국이 수출은 허용하되 일본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일본은 희토류 수입 대체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심순형 선임연구원은 “당시 일본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희토류가 생산되는 지역을 찾아, 해당 광산을 보유한 업체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희토류를 공급받았다. 중국산 희토류에 비해서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일 간 외교 갈등이 민간 대 민간의 문제로 확대된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가 간 갈등에 민간 기업을 끌어들인 건 다분히 위험한 행동이다”며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 판결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양국 모두 외교 갈등을 국내 정치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갈등을 봉합해 경제적 협력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아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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