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호

신각수 前주일대사 “정쟁 도구 된 ‘反日 포퓰리즘’ 도 넘었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9-04-2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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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관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 복합다중골절 상태”

    • 친일 딱지 붙이는 韓, 경제보복 만지작거리는 日

    • “포퓰리즘이 사회 분열, 대외정책 왜곡 일으켜”

    • “일본이 경제보복 할 수도… 불화수소 금수 시 韓 반도체 생산 중단”

    • “주한미군, 주일미군은 한 몸… 유사시 일본이 후방기지 역할”

    • “해양세력에서 이탈하면 대륙세력에 굴복해야”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경기도 각급 학교에서 사용하는 일본산 비품에 ‘전범(戰犯)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는 스티커가 붙을 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 낙인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고 했다. ‘친일’은 보수 세력을 공격하는 ‘낙인’이 됐다. ‘토착 왜구’니 ‘칼 찬 순사’니 하는 자극적 발언도 나왔다. 

    누구 못지않게 진보 세력을 아끼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3월 15일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대회 발제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이념 대립을 부추긴 관제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라고 죽비소리를 했다. 

    “3·1절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친일 잔재와 보수 세력을 은연중에 결부하며 이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역사를 굉장히 정치적인 좁은 각도로 해석하는 것으로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이자 발상이다. 정부가 일제 청산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거나 행동한다면 그건 위선이다. 가능하지도 않은 걸 옳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건 정치적 목적을 위한 기획일 뿐이다.” 

    역사를 망각한 일본의 우경화 행태와 이를 국내 정치에 활용한 여권의 반일 감정 부추기기가 착종(錯綜)해 한국의 반일과 일본의 혐한이 상승작용(synergism)을 일으킨다. 일본 우익은 혐한을 지지세력 결집에 악용하며 한국 여권은 시대착오적 친일 딱지를 붙이느라 혈안이다. 

    한일관계도 최악이다. 서로가 서로를 소 닭 보듯 한다. 경제 보복, 불매운동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 한일관계 왜곡은 경제 분야, 중국 부상에 대한 대응, 한미일 안보 공조, 북핵 위협 해소에 악영향을 준다. 감정적 접근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구조적 악순환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손에 꼽히는 대일관계 전문가다. 외교부 1·2차관을 모두 지냈을 만큼 양자·다자 외교 분야에서 공히 전략통으로 인정받는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주유엔 차석대사, 주이스라엘 대사를 역임했다. 4월 3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나 위험 수위의 한일관계를 주제로 대화했다.
     
    신 전 대사는 “반일 포퓰리즘이 도를 넘었다”면서 “70년도 더 지난 일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게 옳으냐”고 되물었다. “과거에만 머물러 곱씹고 있으면 현재와 미래는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냐”면서 “악순환을 끊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다”고도 했다. 

    - 한일관계가 ‘최악’이라는 낱말을 붙일 만큼 좋지 않습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가장 나쁘죠. 2012년까지는 문제가 생겨도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 나갔습니다. 대여섯 번 위기가 있었는데 1년 이내에 마무리되곤 했습니다. 2012년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장기간 위기가 이어진데다 원인이 구조적입니다. 복합다중골절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으며 일왕에게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 군데군데가 부러졌다는 말씀이군요. 

    “여러 군데가 부서졌어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반일’ ‘혐한’의 상승작용

    경기도의회 조례안의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입니다’ 스티커. [동아DB]

    경기도의회 조례안의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입니다’ 스티커. [동아DB]

    - 일본은 밉더라도 한국 사회 일각의 ‘반일감정 부추기기’ 행태가 과한 측면도 있습니다. 경기도의회가 학교 비품 중 ‘일본 전범(戰犯) 기업’이 생산한 제품에는 '전범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는 스티커를 의무적으로 붙이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제정하려고 한 게 대표적 사례인데요. 

    “도를 넘어선 측면이 있습니다.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추궁하는 것을 전범 기업 스티커라는 형식으로 하면 굉장히 문제가 있어요. 일본 군국주의에 기여한 기업은 해체 등의 방식으로 징벌받았습니다. 70여 년이 지난 마당에 전범 기업을 문제 삼는 게 옳을까요. 과거사 문제는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로 다뤄야 합니다. 현재의 일본 기업을 전범 기업으로 규정하는 나라는 세계에 없습니다. 35년 식민통치로 인해 받은 고통을 해소하는 방식은 정당해야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방식으로 과거사 문제에 접근해야 해요.” 

    전범 기업 스티커는 경기도의회 다수당인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시켜준다’는 명분으로 추진했다. 니콘 파나소닉 히타치 도시바 등 284개 일본 기업을 전범 기업으로 분류했다. 

    - 정치권이 ‘토착 왜구’ ‘칼 찬 순사’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반일감정을 국내 정치에 활용합니다. 시대착오적 ‘친일몰이’라고나 할까요. 

    “정치적 대립이 포퓰리즘과 섞여 표출됨으로써 사회가 불필요하게 분열되고 대외정책에서 왜곡이 발생합니다. 친일 청산은 분명히 해야죠. 그런데 70년도 더 지난 일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게 옳을까요. 일반 국민의 인식은 달라요. 한국은 ‘반일 사회’가 아닙니다. 지난해 750만 명이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일본인은 290만 명이 한국을 찾았고요. 정치권의 그 같은 행위가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감정을 악화시켜 혐한으로 이끌어버립니다.”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를 망각한 우경화 정책과 한국 사회 일각의 반일감정 부채질이 맞물립니다. 한국에서의 ‘반일’, 일본에서의 ‘혐한’이 상승작용(synergism)을 일으키는 모습입니다. 

    “에스컬레이트가 되는 구조예요.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은 혐한 감정을 보수를 결집하는 데 활용합니다. 아베 총리가 추구하는 개헌이라든지 하는 우경화 어젠다에 대한 지지를 높이는 데 이용하는 겁니다. 한국 정치인들도 포퓰리즘에 매몰돼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행태를 보입니다. 과거에는 한일 간 문제가 생기면 정치권이 해결했어요. 지금은 악순환을 끊어야 할 정치인들이 더 부추기는 형국입니다. 정치권이 뭔가 잘못하고 있어요. 도를 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20~30대의 상호 인식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좋습니다. 희망적인 것은 한일 젊은 세대가 서로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 문재인 정부가 청산하고자 하는 적폐에는 ‘친일’도 포함돼 있습니다. 

    “앞선 진보정권 10년 동안 뭘 했습니까. 이번 정권을 포함하면 12년간 친일을 청산하지 않고 뭘 한 걸까요. 물론 과거사는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왜 국가를 잃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친일을 한 이들을 비판해야 하고요. 그런 맥락에서 청산하는 것이지 상대방을 공격하고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것이 청산은 아니죠. 미래로 가야 합니다. 당면한 문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젊은이들한테 일자리 만들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살맛 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경제를 활성화해야 하잖아요. 과거에만 머물러 그거만 곱씹고 있으면 현재와 미래는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예요.”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 과거에는 혐한이 일본 극소수 세력에 국한된 정서였다면 최근에는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한일관계 위기가 7년째 이어지다 보니 상호 인식, 이해, 기대, 신뢰에서 틈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2011년 일본에서 한국 호감도가 62%였습니다. 지금은 30%대 초반이에요. 한국인들이 코리아타운이라고 일컬은 도쿄 신오쿠보 거리는 2011년만 해도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한류 붐이 대단했어요. 후지TV 한 곳에서만 주당 40시간씩 K팝, K드라마를 방영했습니다. K팝 페스티벌을 하면 4만 명이 들어가는 스타디움이 꽉 들어찼고요. 지금은 지상파 방송에서 한국 콘텐츠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혐한 정서를 부추기는 일본 정치권과 극우 언론 탓에 일본인들 사이에 사회적연결망(SNS)에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 퍼져나가고 있다. 

    - 한국과 일본 정부는 ‘상호 패싱’ 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한다고 할까요. 

    “패싱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우리말로 하면 상호 경원 현상입니다. 한국 외교 레이더에 일본이 없고, 일본 외교 레이더에 한국이 없습니다. 북한의 핵무장 완성 근접, 중국 부상에 따른 세력 전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기반 침하 등 세계가 전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 일본은 한국을 경원하는 것은 역설적 현상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치를 함께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습니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도 한국과 일본뿐이고요. 한일이 힘을 합쳐 전환기적 상황을 잘 넘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반목하면서 비용을 지불합니다. 협력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기회비용, 불화가 가져오는 비용, 다시 말해 이중비용을 지불하는 겁니다.” 

    - 한국에는 두 개의 일본이 존재합니다. ‘역사로서 일본’과 ‘경제·문화로서 일본’이 그것인데요. 

    “일본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봐야 해요. 나쁘게 볼 필요도, 좋게 볼 필요도 없습니다. 협력하면서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해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아닙니다. 감정이 앞서고 이성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 ‘경제·문화로서 일본’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일조차 ‘역사로서 일본’에 동조하는 행위로 여기는 분위기까지 생겨났습니다. 


    “친일 프레임이라는 게 있잖아요. 우리가 더 커지려면 그것을 뛰어넘어야 해요.”

    위안부 합의의 裏面

    모욕적 제목을 붙여 한국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일본 극우 매체의 표지. 극우세력의 선동 등으로 인해 일본에서 ‘혐한’이 확산하고 있다.

    모욕적 제목을 붙여 한국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일본 극우 매체의 표지. 극우세력의 선동 등으로 인해 일본에서 ‘혐한’이 확산하고 있다.

    - ‘부상하는 중국’도 한일관계 악순환에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큰 영향이 있죠. 2010년 중국 경제 규모가 일본을 추월합니다. 2010년과 2012년에는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를 두고 영토 분쟁이 격하게 벌어집니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대외정책의 핵심은 중국입니다. 부상하는 중국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역량을 집중합니다. 미일동맹 강화,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한 해석 개헌, 방위력 증강이 중국에 초점을 맞춘 3종 세트예요. 

    사드 갈등에서 드러났듯 중국의 부상은 한국에도 위협입니다.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한일의 전략적 이해는 전체적으로 유사하다고 봐요. 중국이 패권국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데는 이해관계가 일치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 교역의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아요. 미국, 일본을 합한 것보다 큰 게 중국 시장입니다. 둘째,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요해요. 그런 점에서 한일 간 중국 인식과 대응 방식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2015년 9월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기념식 때 박근혜 대통령이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오르면서 한중관계가 정점을 찍습니다. 


    “그때가 정점이었죠. 사드 갈등 이전까지 한일관계는 악화되고 한중관계는 굉장히 가까워졌습니다. 그즈음 도쿄에서 나온 게 한국의 ‘중국 경사론’입니다. 한국이 중국에 기울었다는 중국 경사론은 도쿄에서 워싱턴으로 전파된 겁니다.” 

    - 박근혜 정부는 중국에 경사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북핵 및 미사일 문제에서 비롯한 사드 갈등 이후 한미일 안보공조로 되돌아갔습니다. 2015년 12월 일본과 위안부 합의를 맺으면서 한일관계 회복에 나섭니다.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잘 설득했으면 한일관계가 좋아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렵게 합의해놓고는 이행하는 과정에 매우 문제가 많았습니다. 발표 당시 70% 지지를 받던 게 1주일 남짓 지나니 70% 반대로 바뀌더군요. 10억 엔을 받고 위안부 문제를 팔아버렸다는 인식이 확산됐어요. 1990년대 중반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 예산과 함께 민간 차원에서 기부금을 모금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려는 것이었지요. 정부 예산만이 아닌 민간 모금이 포함돼 비판을 받았습니다. 위안부 합의 때 한일 양국이 합의한 기금 10억 엔이 일본 정부 예산이라는 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일본 정부 예산으로 기금을 마련하라는 피해자와 지원단체의 요구가 반영된 것입니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국민이 이런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원 트랙’ 된 ‘투 트랙’

    2015년 12월 31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한일 양국 정부 간 타결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를 ‘굴욕적인 외교 참사’라고 규정한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동아일보]

    2015년 12월 31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서 한일 양국 정부 간 타결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를 ‘굴욕적인 외교 참사’라고 규정한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동아일보]

    -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 위안부 합의를 포함한 역사 문제 논의와 외교·안보·경제·문화 등에서 협력을 병행하는 ‘투 트랙 한일외교’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방향 설정은 잘했는데 결과는 투 트랙이 아니었습니다. 역사 문제 현안 해결을 꾀하면서 문화, 경제 트랙에서 속도를 내야 하는데 과거사 문제가 한일관계를 지배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합의했으니 이행하라고 하고,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오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말은 투 트랙이었는데 현실은 원 트랙이 돼버렸습니다.” 

    - 중국과 경제 교류가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한일 경제관계가 경시되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경제 면에서도 일본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계 공급망 사슬에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전자기기, 자동차 등 우리 주력산업의 부품, 소재, 장치에 일제가 많습니다. 일본과 중국 사이의 이른바 샌드위치에서 벗어나려면 제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노동생산성 향상과 기술 도입이 두 축인데 제조업이 가장 강한 나라가 일본과 독일입니다. 생산성 향상은 우리가 할 일이고 기술은 들여와야 해요.” 

    -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한국의 징용피해 소송에서 배상 명령을 받은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와 관련해 송금과 비자 발급 정지 등의 보복 조치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이 실제로 보복에 나설까요. 

    “일본이 보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징용피해 소송과 관련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자산의 압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압류한 자산을 현금화하면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결도 존중하고 한일관계도 감안한 절충안을 찾아야 합니다. 바람직한 해결 방안은 한국 정부와 일본의 관련 기업, 1965년 청구권 자금을 사용한 한국 기업 3자가 기금을 설립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것입니다.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한 상황에서 1965년 청구권 협정까지 무력화해버리면 한일관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 한국 정부는 사태를 방치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아직까지 특별한 안을 내놓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단교’라는 극단적 표현도 등장했다. 문예춘추(文藝春秋) 4월호는 ‘일한 단교 완전 시뮬레이션’ 제하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유엔사 후방기지 7곳 일본에 있어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 일본의 경제보복 수단은 뭐가 있을까요. 

    “자민당에서 나오는 얘기로는 반도체용 불화수소 한국 수출 금지 등이 거론됩니다. 불화수소가 없으면 반도체 생산이 중단됩니다. 관세를 올리거나 비관세 장벽을 높일 수도 있고요. 한일 교역 규모가 850억 달러로 액수가 상당합니다. 직접 투자에도 영향이 미치겠고요. 6월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그때까지 풀리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아요. 일본이 보복하면 우리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역보복하고 그러면서 한일이 싸우면 북한과 중국 좋은 일만 되는 거죠.” 

    한국과 일본의 산업구조는 상호의존적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도 일본산 부품과 소재를 공급받는다. 

    - 미국은 한미일 군사공조와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은 우리 동맹이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정리했습니다. 


    “일본은 동맹이 아니죠. 그런데 그 말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동맹이 아니라는 건 다 압니다. 한일은 오랫동안 안보 협력을 해왔습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사실상의 동맹(Virtual Alliance)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연계돼 동아시아에 힘을 투사합니다. 한일은 직접적 동맹은 아니지만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통해 안보협력 관계가 간접적으로 형성돼 있습니다. 한미연합군의 작전계획에 따르면 한반도 유사시 미국 본토의 군대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요. 일본 내 유엔사 관할 7개 기지에서는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 곧바로 병력과 장비가 전개됩니다. 일본에 주둔한 주일미군과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는 주한미군과 한 몸입니다. 일본의 항만, 공항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요. 현대전에서 보급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반도 유사시 보급을 담당하는 곳도 일본이에요.” 

    -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포위해 압박하는 건데요. 한국 처지에서는 지정학적으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껏 어떻게 발전했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와요.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중국과는 종속관계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양세력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받아들여 그곳에서 제공하는 기술과 시장으로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독재에 맞선 민주화 투쟁을 거쳐 민주주의를 체화했고요. 중국은 경제적으로 커졌으나 공산당이 이끄는 사회주의국가예요.”

    “세력 균형 확보해야”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 중국에는 아직도 언론·집회·출판·결사의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중국을 따라갈 거예요? 아니잖아요. 중국과 적대관계가 될 이유는 없으나 국가가 나아갈 지향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 존중이 우리의 헌법가치이자 이념 아닌가요. 그래서 한미동맹이 중요합니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해야 하고요. 해양세력과 손잡아야 평화와 번영이 확보됩니다. 해양세력을 기반으로 대륙 세력과 연계해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이해당사자(stakeholder)로서 책임 있게 행동하게 하려면 우리가 헤징(hedging)을 해야 해요. 해양세력에서 떨어져 나가면 대륙세력에 굴복하게 됩니다.” 

    - 중국이 글로벌 차원은 아닐지라도 동아시아에서 패권 의지를 드러낸 형국입니다. 

    “국가가 이사를 갈 수는 없습니다. 이웃 나라와 잘 지내는 게 외교의 출발점이고요.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국가 관계에서도 이익과 가치가 충돌합니다. 대국(大局)적인 큰 판을 봐야 해요. 중국이 부상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양상인데 적어도 21세기 전반에 글로벌 차원에서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결국은 동아시아에서의 패권 경쟁에 초점이 맞춰질 것 같습니다. 단층은 남중국해, 대만, 한반도, 무역, 기술에서 형성될 겁니다. 동중국해도 포함될 수 있고요. 한미동맹을 기축(基軸)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미국 의도에 따라 움직이자는 게 아니라 우리 국익을 최우선시하면서 동맹을 관리하자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은 압도적 존재예요. 세력 균형을 확보하는 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 사드 보복과 유사한 일이 앞으로도 있을까요. 

    “있겠죠. 전체 수출에서 홍콩을 포함한 중국 시장 비중이 30%예요.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 2012년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 때 중국은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보복 조치를 취했습니다. 일본은 이후 중국 투자를 줄이고 동남아, 인도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리밸런싱(rebalancing)에 나섰습니다. 

    “한국도 세계시장을 넓혀 분모를 크게 하거나 분산을 통해 분자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신남방은 한국이 숨 쉴 곳”

    - 문재인 정부는 신북방, 신남방 정책을 통해 해외시장을 다변화하고자 합니다. 

    “신북방은 어려워요. 러시아가 미국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하는 사업도 대부분이 극동 러시아가 아니라 서방 러시아입니다. 신남방은 한국이 숨 쉴 곳이 될 수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인도와 관계를 잘 맺어야 해요. 이를 통해 경제 분야에서 압도적인 중국 비중을 낮출 수도 있고요.” 

    - 5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집권 2년을 채웁니다. 대외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북한에 너무 매몰된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진보정부이기에 북한과 관계를 맺기 쉽다는 장점도 있고요. 그런데 남북관계에는 북핵 문제라는 굴레가 씌워져 있습니다. 굴레를 벗어나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면 한미관계가 손상돼 북핵 문제도 꼬이고 남북관계도 진전시키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집니다. 북한이 비핵화 교섭에 응한 것은 제재를 면해보려는 것 아닙니까. 금강산이니 개성이니 하는데 제재를 풀어버리면 북핵 문제를 풀 레버리지가 없어집니다. 제재가 지속되면 북한 경제가 더 버티지 못하는 한계 지점이 올해 내지는 내년에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탄탄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북핵 해결을 꾀하면서 주변국 관계를 다지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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