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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파국적 한일관계

‘한·일 단교’ 외치는 일본인의 진짜 속내

‘혼네’와 ‘다테마에’ 뒤섞인 복잡한 심경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한·일 단교’ 외치는 일본인의 진짜 속내

  •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일본 유력 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는 4월호 표제기사로 ‘일·한 단교 완전 시뮬레이션’을 내세웠다.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재팬 등에는 한국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소리 높여 단교와 한일교류 중단을 주장하는 일본인들은, 지금 정말 그것을 바라고 있는 걸까.
‘한·일 단교’ 외치는 일본인의 진짜 속내
2019년 3월 19일,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탑승장. 한 일본인 남자가 ‘만취상태’를 이유로 항공기 탑승을 거부하는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막무가내의 그는 항공사 탑승 수속 담당 직원 2명에게 발길질을 하고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나는 한국인이 싫어!”라고 소리를 지르며 서류뭉치를 내던지는 등 난동이 이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폭행해 현행범으로 서울 강서경찰서로 연행됐다. 그는 그날 저녁 7시 30분께 조사를 마치고 풀려났다. 조사 과정 중 “한국은 이상한 나라”라는 글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하기도 했다. 

공항에서 취객이 벌인 단순 해프닝이라 할 수 있지만, 파문이 인 것은 그의 신분 때문이다. 난동을 부린 이는 다케다 고스케, 일본 후생노동성 임금과장이었다. 한국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국가공무원 1종 시험에 합격한 관료다. 후생노동성은 유감을 표하고, 그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1주일 후 일본 후생노동성은 재차 유감을 표해야 했다. 산하단체인 일본연금기구 세타가야 사무소장 가사이 유키히사가 트위터에 게재한 글이 파문을 일으켜서다. “한국인은 속국 근성을 가진 비겁한 X(똥)민족!”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를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신규 입국 거부하라” 같은 내용이었다. 일본연금기구는 그를 본부 인사부 소속으로 대기발령함으로써 사실상 경질했다. 

두 사건은 개인의 단순 일탈 행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당사자들의 사회적 지위 등을 감안할 때 다테마에(建前·겉으로 드러난 마음이나 행동)와 혼네(本音·속마음)가 다른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혼네’가 드러난 결과 아닐까 하는 추측의 실마리를 준다.


‘한국 비호감’ 이유는 ‘역사 문제’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8년 5월 일본 성인남녀 1000명(남성 48.3%, 여성51.7%)을 대상으로 한 ‘제6회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에서 한국에 대해 ‘좋다’고 답한 일본인은 22.9%에 불과했다. 직전 해 조사보다 4%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한국 동아시아연구원(EAI)·한국고등교육재단(KFAS), 일본 비영리 싱크탱크 겐론(言論)NPO 공동으로 2013년부터 매년 실시하는 조사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호감도는 하락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비호감 요인 1위로 응답자의 69.3%가 역사 문제를 들었다. 

근래 수위가 높아지는 일본의 반한감정 기저에는 ‘해묵은 과제’인 역사문제가 자리한다. 그중 핵심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다.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철주금(2012년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이 합병해 탄생한 기업)을 대상으로 낸 소송에서 원고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신일철주금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판결이 한·일 양국 및 국민 간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1965년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 및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견해와 반한다”며 반발했다. 

그해 11월 21일, 한국 정부는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발표했다. 재단은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2016년 7월 28일 설립된 여성가족부 산하 재단법인이다. 일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28일 타결된 ‘위안부 합의’에 의거, 10억 엔을 재단에 출연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은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 아래 화해치유재단에 대한 다양한 의견수렴 결과 등을 바탕으로 재단의 해산을 추진하게 됐다”는 공식 해산 이유를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후 기자회견에서 “3년 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었으며 국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고 유감을 표했다. 일본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명위원회 위원장 나카소네 히로후미 전 외무대신은 집권 자유민주당 합동회의에서 “한국은 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며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믿을 수 없다”

2018년 11월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반한시위. 한국과의 국교를 단절하라는 문구가 보인다. [동아일보 김범석 기자]

2018년 11월 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반한시위. 한국과의 국교를 단절하라는 문구가 보인다. [동아일보 김범석 기자]

일본의 반발 속에 한국 사법부의 ‘일본 자극’ 판결도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29일 한국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해가 바뀐 뒤인 1월 8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변호인단이 신청한 신일철주금과 포스코(포항제철)의 국내 합작법인 PNR 주식 압류 신청을 승인했다. 

잇따른 한국 조치의 역작용으로 일본 내 반한감정 수위가 높아져갔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후 도쿄에서는 행동하는 보수운동,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등 극우단체를 중심으로 반한 시위가 이어졌다. 이들은 대(對)한국 강경조치를 주문했다. 

전반적인 일본 국민 여론도 악화하고 있다. 1월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강제 징용노동자 배상 판결 관련, “한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한 관계개선을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응답이 71%를 기록했다. 2월 산케이신문이 후지뉴스네트워크(FNN)와 공동으로 일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7.2%가 “한국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을 신뢰할 수 있다”는 답변(13.9%)의 5배를 상회하는 수치였다. 

확산 일로인 일본 내 반한 감정에 기름을 부은 것은 문희상 국회의장이다. 그는 2월 8일 블룸버그통신과 회견에서 일본의 위안부 범죄 사과를 요구하며 아키히토 일왕을 ‘전쟁 범죄 주범(히로히토 전 일왕)의 아들’이라 칭했다. 일본 정부는 즉각 유감을 표명하며 문 의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치부되는 일왕을 건드린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일련의 사태를 두고 한반도 전문가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한·일 양국이 신뢰감이 결여돼 소통하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화해·치유재단 해산, 강제징용 판결, 일왕 사과 발언 등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연이은 대(對)일 강경 조치 속에서 일본 정부도 레버리지(대응 수단)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일본 내 반한 감정이 ‘감정’을 넘어 ‘현실화’하는 징조다. 

3월 9일, 일본 지지통신은 일본 정부 관계자 발언을 인용, “일본 정부가 구체적 대한국 보복 조처 목록을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그 내용이 △보복 관세 △일부 일본 제품 공급 정지 △비자 발급 제한 등 100여 개에 달한다. 

일본 정치권도 해당 보도가 오보가 아님을 입증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대신은 3월 12일 일본 국회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 출석해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자산 압류가 실제 행해질 경우,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무역 관세 보복, 한국으로 송금 중지, 한국인 비자 발급 중지 등을 언급했다. 일본 정부나 정치인이 대한국 보복 조치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앞줄 가운데)와 내각 각료들. [AP=뉴시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앞줄 가운데)와 내각 각료들. [AP=뉴시스]

다음 날엔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이 나섰다. 그는 전날 아소 다로 부총리의 발언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는 모든 선택 방안을 염두에 두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대응조치를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 자산을 압류할 경우 일본은 보복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4월 지방선거, 7월 참의원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 총리는 반한 여론을 호재로 여기는 모습이다. 실제 총리와 각료들의 ‘한국 때리기’ 발언 때마다 내각과 집권당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일본 정부가 ‘대한국 보복’을 공개 천명한 가운데 한국에서는 다시 한번 어퍼컷을 날렸다. 3월 경기도 의회가 조례안 입법을 추진했던 ‘일본 전범기업 스티커 부착’ 사건이다. 이 뉴스는 일본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야후 재팬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읽힌 뉴스였다. 이른바 일본 ‘넷우익’을 중심으로 온라인 반한 감정의 발화점이 되기도 했다. 야후 재팬 뉴스 게시판에서 이른바 ‘전범 스티커 뉴스’에는 1만4000건의 댓글이 달렸다. 그중 “그쪽(한국)에서 단교를 신청하는 것 같으니 그 희망을 이뤄줘야 할 것 같다”는 글이 13만 명의 추천을 받았다. “전국 160개 지방자치단체가 한국과 교류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댓글이 11만 명의 공감을 얻으며 뒤를 이었다.


“교류 재검토” vs “사태 해결”

4월 발행된 월간 분게이슌주 표지. ‘단교’ 용어를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4월 발행된 월간 분게이슌주 표지. ‘단교’ 용어를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일한단교공투위원회로 대표되는 일부 우익과 네티즌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대한국 단교 요구는 점차 확산하고 있다. 월간 분게이슌주(文藝春秋)는 4월호 표제기사로 ‘일한단교 완전 시뮬레이션’을 올렸다. 데라다 데루스케 전 주한대사, 서울재팬클럽 이사장을 역임한 다카스기 노부야 전 한국후지제록스 회장, 후쿠야마 다카시 퇴역 육상자위대 육장(陸將·중장 해당), 아사바 유키 기나타현립대 교수,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등 지한파 인사 5명의 좌담회 내용을 정리한 기사다. 부속기사로는 ‘친일 청산’ ‘징용공 문제’ ‘미·한교류’ ‘신정한론’이 실렸다. 일본 출판계에서 ‘혐한(嫌韓)’은 하나의 인기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권위지라 할 만한 매체에서 ‘단교’ 용어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분게이슌주(文藝春秋)는 일본 유력 월간지다. 

경제 보복에 이어 단교까지 언급되는 상황에서 신중론도 확산되며 힘을 얻고 있다. ‘감정’상으로는 보복하고 싶지만 ‘실리’상 얻을 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계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잇따른 강경 발언에 우려를 표한다. 상호의존성이 높은 한·일 경제 구조 특성상 일본 기업의 대한국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상호 경제보복은 공멸로 가는 길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해당하는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에 따르면 2018년도(2018년 4월~2019년 3월) 기준, 한국에서 영업하는 일본 기업 85%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아시아·대양주 지역 진출 일본 기업 중 가장 높은 흑자 비율이다. 무역 부문에서도 한국은 매년 일본에 무역 흑자를 안겨주는 나라다. 지난해 한국은 305억 달러 규모를 일본에 수출하고 546억 달러 어치를 수입했다. 

1965년 국교 정상화와 양국 간 교역이 공식 시작된 이래 대일 무역수지는 한 해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2014년 이후 일본은 5년째 한국과 교역에서 미국·홍콩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흑자를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기업의 ‘혼네’는 “한국 내 반일 정서, 위안부·강제징용자 판결 등에 강한 분노를 느끼지만 사업에 부정적 영향이 미치는 건 피하고 싶다. 양국 정부가 냉정하게 사태를 해결했으면 한다”라는 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분석이다. 

이처럼 일본인의 속내는 복잡하다. 일본이 보복카드를 실제 사용해 한·일 관계가 파경을 맞이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적다. 일본 외무성 한·일 문화·인적교류 추진을 위한 전문가회의 위원장 곤도 세이이치 전 문화청 장관은 한·일 관계를 부부관계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결혼생활을 계속하려면 첫째 인내, 둘째 참기, 셋째와 넷째는 따로 없이 다섯째가 또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한·일 관계도 인내로 유지되는 부부 사이와 비슷하다. 두 나라는 이혼해도 서로 얻는 것이 별로 없다. 참고, 때로는 체념하는 기분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냉정함을 되찾아 서로 이익이 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동아 2019년 5월호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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