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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의 지혜를 옮긴다 핀셋으로 한 글자씩

한국고전번역원 ‘번역 전쟁’ 현장을 가다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선현의 지혜를 옮긴다 핀셋으로 한 글자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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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의 지혜를 옮긴다 핀셋으로 한 글자씩
승정원은 조선 초기부터 있어왔지만, 임진왜란과 인조대 이괄의 난과 화재 등으로 현재는 1623년(인조 1) 3월부터 1910년(융희 4) 8월까지 288년의 기록이 전한다. 절반이 훼손됐지만 일기 글자 수는 2억4300여만 자에 달한다. 팔만대장경이 5000만 자, 조선왕조실록이 4000만 자, 중국 전 왕조 역사를 기록한 ‘25사(史)가 총 4000만 자라고 하니 그 방대한 기록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연간 번역 계획에 맞춰 목표 번역량을 정해 임무를 줍니다. 번역 시작 전에는 번역의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 번역 지침을 숙지하죠. 역자 한 사람이 평균 1년에 19일치 기록을 번역해 한 책으로 내는데, 원문이 9만2000자(200자 원고지 1800장 분량)쯤 됩니다. 현재는 영조 5∼8년의 기록을 번역하고 있는데, 영조는 유독 신하들과 경연과 대화를 많이 해 당시 주서가 엄청 고생했을 거 같아요(웃음).”

김태훈 팀장의 말마따나 고전 번역은 참으로 지난한 작업이다. 조선시대 왕들은 신하와 대화할 때면 중국 고사나 선대 임금의 발언 등을 인용하며 ‘그 사람’ ‘그 당시’처럼 대명사를 썼다. 주서는 그대로 기록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 뜻을 이해했지만, 수백 년 뒤의 역자는 그 이전의 기록을 다시 들여다봐야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한 연구원은 왕실 묘터를 잡기 위해 논의하는 부분을 번역하다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지관(地官)을 따라 답사를 다닌 끝에 용어와 뜻을 파악했다. 정확한 번역은 이렇게 나온다. 1994년부터 승정원일기 번역을 시작했지만 예정된 전체 번역서 2449책 중 지난해까지 765책(16.9%)을 마친 걸 봐도 그 고단함과 정치(精緻)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초서와 한문에 정통한 한학자 70명이 1960∼1977년 18년간 초서를 정자(해서)로 바꾸는 작업을 한 것.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인터넷 DB화해놓은 것도 번역 작업에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오바마의 감탄

우리나라는 현재 11종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했는데, 이 가운데 역사기록으로는 조선왕조실록(1997년), 승정원일기(2001년), 일성록(2011년)이 등재됐다.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은 “한 나라에서 역사 기록이 3종이나 등재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승정원일기는 승정원을 거친 모든 문서와 그날의 일을 바로바로 기록한 1차 자료여서 기록자의 역사 인식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가 없어요. 편찬자의 눈을 통해 본 역사가 아니기에 사료 가치는 더욱 뛰어나죠. 조선왕조실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경복궁에서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듣고는 ‘단순한 왕조의 역사가 아닌 조선의 사회사 아니냐’고 했습니다. 남의 나라 대통령도 그 가치를 인정하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기록유산을 ‘언젠가 번역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부터 반성하고 있습니다.”

재번역을 시작한 조선왕조실록은 전체 600책 중 40여 책의 번역을 마쳤고, 앞으로 1년에 50책씩 재번역해야 한다. 조선 전기는 고려의 제도가 ‘조선화’하는 시점이라 생경한 어휘가 종종 등장한다. 기존 번역에서는 어휘의 분명한 의미를 밝힐 역사적 지식과 자료가 없어 역사 어휘를 그대로 풀어 썼다고 한다. 재번역을 하면서는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고 있다.

예를 들어 ‘재내제군(在內諸君)’이라는 어휘가 나오는데, 여러 대군(大君)이나 왕자군(王子君)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종친부를 재내제군부라고 칭하기도 했다. 과거 번역에서는 이를 ‘궐내에 있는 제군’으로 풀어 번역했다. 어휘 정리 작업이 체계적이지 않아 발생한 번역 오류다.

조선왕조실록 번역에 뛰어든 강대걸 연구원은 “실록은 문집 번역과 달리 시점을 정확히 이해해야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며 실록 번역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영조의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사도세자의 형)가 11월 19일에 11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내시가 3경(更·대략 오후 11시∼오전 1시) 1점(點·경을 다섯 등분한 시간)에 죽었다고 보고하자, 영조가 다시 ‘몇 시 몇 분이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내시는 ‘해시(亥時·오후 9∼11시)’라고 답합니다. 3경이면 자시(子時·오후 11시∼오전 1시)인데 말이죠. 조선시대는 낮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12시진(時辰)을 썼지만, 해가 지고 뜰 때까지의 밤 시간은 5경으로 나눠 사용했어요. 요즘 시간으로는 6시 40~50분부터 2시간 단위로 초경, 2경, 3경이 됩니다. 그러니 3경이라고 해도, 10시 40~50분 사이에 죽으면 12시진으로는 해시가 되죠. 계절마다 밤 길이가 달라 1경이 봄 · 가을은 1시간 33분, 겨울엔 2시간 4분, 여름엔 1시간 2분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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