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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오리엔탈리즘 담론’ 20년 앞선 이슬람 연구 역작

  • 이민호 서울대 명예교수·서양사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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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마셜 호지슨 지음, 이은정 옮김, 사계절, 509쪽, 2만8000원

최근 유럽과 이슬람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한 유럽 일간지에서 마호메트를 테러리스트로 풍자한 그림이 도화선이 되어 유럽에 거주하는 이슬람계 주민들이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문명의 충돌’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짧게는 2001년의 9 · 11 테러와 잇따른 이라크전쟁, 그리고 2005년 프랑스 파리의 이슬람계 주민 폭력 시위로부터 길게는 10세기 전의 십자군전쟁에 이르기까지 유럽(서양)과 이슬람은 끊임없이 충돌해왔다. 이처럼 국제 정세가 불길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유럽과 이슬람의 역사적 관계를 깊이 있게 분석한 마셜 호지슨의 책이 국내에서 번역 · 출간됐다는 소식이 참으로 반갑다.

호지슨은 1950년대 미국 대학에서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갖가지 해석이 버젓이 횡행하던 상황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이슬람 연구자다. 그의 연구는 ‘이슬람의 모험’이라는 필생의 역작으로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호지슨의 모험’은 당시에는 고독하고 가망 없는 도전이었다. 게다가 40대의 젊은 나이에 타계함으로써 그의 선구적 사상은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한 편집자의 노력으로 1993년에 그의 논문들이 ‘Rethinking World History’라는 제목으로 묶여 나왔다. 필자도 몇 년 전 세계사 해석 문제를 다룬 한 논문에 소개한 바 있는 이 책이 국내 한 동양사학자에 의해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이라는 제목으로 완역됐다.

호지슨이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는 사실은 세계 학계로서는 참으로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리오리엔트’라는 대작에서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아시아의 역사적 위치를 새롭게 조명한 바 있는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아주 오래 전에 호지슨과 같은 아파트에 산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호지슨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만일 그때 호지슨의 말을 알아들었더라면 역사라는 숲을 장님처럼 40여 년간 헤매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유럽 중심주의적 역사관 비판

프랑크와 같이 뛰어난 학자가 그렇게도 경탄해마지않는 이 책에서 호지슨이 주장하는 바는 무엇인가. 호지슨은 지금까지의 세계사가 철저하게 유럽 본위의, 그러니까 유럽인에 의한, 유럽인을 위한, 유럽인의 역사였다고 비판한다. 그는 우리 눈에 익숙한 메르카토르 세계 지도부터가 그 같은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에 의해 왜곡됐다고 지적한다. 즉 메르카토르 도법(圖法) 때문에 유럽은 실제 면적보다 크게 보이고 인도와 같은 큰 대륙은 작게 보인다는 것이다. 명칭만 해도 그렇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반도에 불과한 유럽에는 ‘대륙’이라는 이름이 붙고, 유럽보다 큰 인도 대륙에는 그저 ‘아대륙(亞大陸·sub-continent)’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 각 지역의 면적을 같은 배율로 보여주는 세계지도”라고 호지슨은 역설한다. 비단 지도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메르카토르적 역사’에서 탈피해 각 지역의 역사를 동등하게 보여주는 세계사 또한 필요하다.

호지슨은 새로운 세계사를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될 용어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유럽 대륙’이라는 용어다. 이 용어는 마치 유럽이 유라시아 대륙과 동등한 하나의 대륙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둘째, ‘동양’이라는 용어다. ‘동양’이라는 용어는 그 안에 포함된 극동, 인도, 근동, 아프리카, 중국의 다양성을 억압한다는 것. 호지슨은 셋째로, ‘알려진 세계’라는 용어 또한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지역이 알려졌거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유럽인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정작 그 지역의 주민들은 언제나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에서 호지슨은 세계사를 여러 지역과 문명의 교류와 상호침투의 역사로 파악하고자 한다. 이는 곧 “자기 나라를 지도의 중심에 놓을 뿐 아니라 자기 민족을 역사의 중심에 놓고 싶어하는 유혹”에서 단호히 탈피해야 함을 의미한다.

호지슨과 사이드는 닮은 꼴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까지 세계사는 서구의 자유와 이성이 전세계로 확산된 역사로 이해되고 선전됐다. 이 같은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사의 근저에는 모든 사물에는 변치 않는 본질이 있다는, 소위 본질주의가 도사리고 있다고 호지슨은 지적한다. 즉 유럽 문명의 ‘본질’이 있고, 이 ‘본질’이 다른 문명의 ‘본질’보다 우월한 탓에 유럽의 세계 지배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유명한 ‘오리엔탈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은 강하고 우월하며 문명적이고 동양은 약하고 열등하며 야만적이라고 보는 시각, 태도, 감정 따위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오리엔탈리즘에 오염된 ‘담론’이 우리의 지식과 정보에 속속들이 침투해 있다는 것이 사이드의 주장이다. 과연 호지슨의 주장과 닮은 꼴이다. 호지슨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담론을 이미 20여 년 전에 빼어나게 설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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